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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형사기소사건에 대하여
I. 사건의 경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2014)』에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김현구 씨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한 것에 대해 김현구 씨가 형법상 명예훼손, 민법상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마포경찰서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고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의 이지윤 검사는 2015년 5월 15일 이덕일 소장에 대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했습니다. 서부지검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는 논리로 불기소처분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검의 임무영 검사는 7월 8일자로 이를 뒤집고 형사기소했습니다. 현재 대한 민국 검찰은 김현구 씨를 대신해 이덕일 소장을 형사처벌하겠다고 기소한 상태입니다.
Ⅱ. 김현구 씨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
이 사건은 고소인 김현구씨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이냐, 아니냐가 핵심 사안입니다. 김현구씨가 한반도 남부에 ‘임나’가 있었고, 이를 야마토왜가 지배했다고 주장했느냐 아니냐가 핵심사안인 것입니다. 김현구 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2010)』에서 임나를 백제가 지배한 것처럼 쓰기도 하고, 임나를 야마토왜가 지배한 것처럼 쓰기도 해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당연히 방점은 야마토왜가 지배했다는 후자에 있습니다. 같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평생 식민사학과 맞서 싸웠던 최재석 교수는 “(김현구 씨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최재석, 『역경의 행운』 244쪽)"라고 비판했습니다. 김현구 씨 역사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며 군사원조를 구걸했다고 주장
① “당시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자국 주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 투구(泥田鬪狗)를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은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군사원조를 요청하거나 적어도 상대국에게 군사원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삼국 중에서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 하는 캐스팅 보드는 일본이 쥐고 있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9쪽)"
② “당시 한반도에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 3국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3국은 서로 야마토정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40쪽)"
-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야마토에 군사원조를 요청했다고 기술
- 일본인들도 믿지 않는 『일본서기』 에만 나오는 주장.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는 전혀 나오지 않음.
- 고구려·신라·백제 등이 야마토에 조공사(調頁使:세금이나 공물을 바치는 사신)를 보냈 다면서 야마토를 세 나라의 상국(上國)으로 기술.
2. 백제가 야마토에 공주와 왕지를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기술
① “한편 (『일본서기』)「웅략기」5년(461)조에 의하면 (백제에서) 왕녀들 대신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곤지도 도일 목적이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의다랑(意多郞)이나 마나군(麻빼君).사아군(斯我君:모두 백제 왕자들엄) 등은 곤지 파견의 연장선상에서 도일하고 있다. 따라서 의다랑이나 마나군·사아군 등의 파견도 천황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왕족들의 파견이 천황을 섬기기 위해서였다면 왕녀들의 파견 목적과 일치하게 된다. (김현구,「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고대 한일관계사의 제문제』, 169쪽)"
- 백제에서 왕녀와 왕자들을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주장
- 백제에서 왕녀, 왕자들을 인질로 보낸 이유는 군사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주장
- 김현구 씨는 모든 책과 논문에서 ‘일왕’을 반드시 ‘천황’이라고 쓰고 있음
② 일왕이 백제왕녀 지진원을 불태워 죽였다고 기술
「천황이 “(백제 왕녀)지진원을 취하려 했는데 이시까와노따떼(石川楯)와 관계를 맺었으므로 화형에 처하였다”는 내용으로도 그들의 혼인상대가 짐작이 간다(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쪽)』
③ 왕녀를 불태워죽이자 백제에서 사과의 돗으로 왕자를 보내 일왕을 섬기게 했다고 기술 “그런데「웅략기」5년(461)조에는 옛날에는 여(女:지진원)를 보냈는데 무례하여 나라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동생인 곤지, 즉 남자를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직지왕이 누이동생인 신제도원을 파견한 이래 461년 곤지(昆支)를 파견할 때까지는 백제의 왕녀들이 왜에 파견되는 관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제도원·적계여랑·지진원 등이 그 왕녀들에 해당되는 것이다(김현구,「백제와 일본 사이의 왕실외교」,『고대 한일관계사의 제문제』, 167~ 168쪽)"
- 야마토에서 백제 공주를 불태워죽인 것이 백제가 ‘무례’한 것이라고 서술
- 백제는 공주가 불타죽어도 항의하는 대신 왕자를 보내 사과했다는 주장
- 『일본서기』에만 나올 뿐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주장
3. 일 왕가가 백제왕실의 조상이라고 기술
- 임무영 검사는 「공소장〕에서 “(김현구는) 백제의 왕자가 현 천황가의 사조가 되는 등 매우 친밀한 관계였고”라고 적시했다. 김현구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는 비슷하게 쓰기도 했지만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는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했음.
① “그러나 지진원(화형)사건이 발생하자 백제에서는 461년 왕녀 대신 개로왕의 동생 곤지를 필두로 의다랑, 마나군, 사아군 등 백제 왕족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야마토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 왕가에도 일본 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86~188쪽)"
-백제에서 야마토에 왕자를 인질로 보냈는데 일 왕실이 일본 여인들을 혼인시켜 주어 두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주장.
-가야 및 백제계가 야마토정권을 수립했다는 사실과는 정반대의 주장
② “백제왕이 비다쯔(민달)천황의 손자라면 백제왕들이 일본천황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되지만 일본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문면(文面)만으로는 천황가가 백제인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들이었던 모양’ 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김현구,『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26쪽)"
-백제왕들이 일 왕가의 자손이지만 일 왕가가 백제인은 아니라는 서술로 「공소장」 과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
-백제계가 야마토를 세운 것이 아니라 백제가 인질로 보낸 왕자에게 일 왕가가 피를 섞어 주었다는주장
4. 한국학계의 용어보다 일본학계의 용어가 맞다고 주장
임무영 검사의 「공소장」은, “즉, 피해자(김현구)의 견해는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을 부정 함은 물론, 일본이 고대사의 특정 시기에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을 점령하거나 통치했다는 사실을 일본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이용해 반박하는 내용(임무영「공소장」)"이라고 적시함. 이 역시 김현구 씨의 기술과 정반대 내용임.
① “한국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보다는 한반도 남부지배라는 본질 을 담고 있는 일본 학계의 이른바 ‘남선(南鮮)경영론’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러나 ‘남선경영론’은 ‘남조선경영론’을 줄인 말로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남조선경영론’을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바꾼다면 ‘한반도 남부경영 론’ 정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현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21~22쪽)"
- 한국학계에서 사용하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보다는 일본극우파 학자들이 사용하는 ‘남 선(南鮮)경영론’을 변형한 ‘한반도 남부경영론’을 사용하겠다는 내용.
② “그런데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지방장관으로 있던 차리(영산강 유역)는 전방후원형고분이 발견되는 지역과 중복된다. 다시 말하면 전방후원형 고분이 발견되는 지역은 왜계 백제관료가 지방장관으로 배치된 지역 중에서 백제조정이 직접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나 중앙에서 군을 파견하여 상주시키던 지역이 아니라 조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산강 동안 차리의 지방장관으로 있던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야말로 ‘백제중추의 왕통이 아니라 직접 왜와 교류 관계가 있던 지방수장’이라는 성격에 맞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192쪽)」 "
- 야마토에서 온 호즈미노오미 오시야마가 전라도까지 직접 지배했다고 주장
- 야마토왜가 전라도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
- “일본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이용해 반박하는 내용”이라는 「공소장」과 정반대로『일본서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야마토가 전라도까지 지배했다고 주장
5. 야마토 왜군이 현재의 주한미군과 같다는 주장
① “『일본서기』에는 507년에서 562년 사이에 백제가 야마토정권에 파견한 24회의 사자 중에서 백제의 요구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 경우는 14회라고 되어 있다. 그중에서 임나에 관한 내용은 5회이고 나머지 9회는 전부 원군이나 군수물자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시 야마토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던 것은 군사원조였다고 볼수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42~143쪽)"
② “당시 백제는 야마토정권으로부터 지원받은 군사를 임나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으로는 왜계 백제관료 등을 배치하고 있었다. 신라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치 오늘날 미군을 남북이 대치하는 휴전선에 배치하고 있는 것 처럼.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신라와의 접경인 임나지역에 야마토정권으로부터 제공받은 군대나 왜계 지휘관을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김현 구『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51쪽)"
-『일본서기』에 따른다 해도 야마토왜에서 백제에 보낸 구원군 숫자는 500~1,000명에 불과
- 군사 강국 백제가 500~1천의 구원군을 위해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는 논리 모순
- 야마토 왜군을 주한미군에 비교하는 것으로 아전인수격 해석
일본 극우파 교과서와 같은 사고
김현구씨의 지도 제목 ‘왜의 진격루트와 대방계’
임나(=가야)관 일본 극우파 후소사 교과서의 임나(=가라)관
6.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인지도 모른다고 주장
-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김현구 씨가 임나가 있었다는 식으로 강연하자 청중 들이 독도문제에 대해서 공격성 질문.
- 김현구 씨는 “본인은 독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답변이 불가능하다”면서, “본인이 동북아 재단 이사인데 이사회 연수회에서 서울법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독도에 관해서 강의했는데 학생들이 독도는 일본 것이네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측에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 다. 우리 것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문제다. 전공이 아니어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라고 답했음(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강좌 녹취록)
-독도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지속적 침탈의 배경
7. 일왕의 전범 면제를 찬양
“결국 미국은 한 일본 연구가의 연구를 바탕으로 천황을 이용하여 700만 일본군을 저항 없이 항복시킨 것이다. 그리고 공산혁명을 막고 일본으로 하여금 극동(極東)의 반공 보루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게 만들었다(김현구,『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217쪽)"
- 원자폭탄 투하로 전력이 상실된 것을 외면하고 700만 운운하며 상황 호도
- 식민통치의 주범 일왕 히로히도의 전쟁 책임 면죄 찬양
Ⅲ. 광복 70주년 대한민국의 할 일
- 일제 식민사관 청산은 민족사의 과제
- 검찰은 식민사학 처벌하고 민족사학, 애국사학 지원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
- 위의 주장을 편 김현구 씨 편에 서서 기소권 사용하는 것은 검찰의 자기부정
- 식민사학 편에 서서 민족사학, 애국사학 처벌할 수 없어
첫댓글 김현구는 그래도 자존이 있는 학자라 알고 있었는데 사실이라면 수악한 모리배네요,혹 일본 지원금으로 유학한 출신인지 또 이덕일이 아무 근거없이 김현구를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위 내용이 참말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학계는 똥통이겠네요,하여튼 왜구 쥐새끼는 멸종시키는게 답 같네요,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나,
자료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