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요>
약수암(藥水庵)이라고도 한다.
약수사(藥水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에 속해있는 사찰로서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많아 일찍이 남쪽의 금강산으로 불리웠으며 기암괴석이 장대하며, 골이 깊은 경기 오악(五嶽)의 하나인 관악산 언저리 신림동에 위치해 있다.
본래 신림동은 마을에 숲이 무성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시흥군이었다가 1963년에 서울에 포함되었다
예전 이곳은 서울과 시흥을 넘나드는 어귀의 조용한 기도처였지만, 1960년대 이후 불어난 서울인구로 인해 달동네가 형성되면서 산 아래 무수한 주택들이 둘러싼 도심지가 되어 버렸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조망은 이 곳이 도심임을 보여주나, 주위 암벽과 가람의 조화는 여느 시골사찰처럼 아담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또 시민선방으로서 이런 자연조건은 더 할 수 없는 수행장소로서의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신선하고 깨끗한 약수로 유명했으나(약수사명칭유래), 중창불사간 물길이 끊겨 지금은 약수가 나오지 않는다.
<연혁>
《봉은본말사지》에 따르면 세종대왕 3년(1421년) 무명대사가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었던것을,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김처사(金處士)라는 사람이 초가삼간을 짓고 수도하던 것이 절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후 1880년(고종 17)에 명성황후가 법당을 건립하면서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성왕후가 이곳에 법당을 건립하였던 연유는 아마도 당시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속에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기도처로 삼은 듯하다.
이는 1880년 법당 건립 후 8년 후인 1888년(고종 25)에 약수암에서 멀지 않은 관악산 연주암에 일만오천냥을 시주하여 극락전과 용화전, 그리고 괘불을 조성하였던 데서도 그러한 일면을 엿 볼 수 있다.
1923년 무렵 화재로 초가집이 완전히 타고 법당은 반쯤 남게 되자 주지 최영원(崔永源)스님이 중건했고, 1934년 칠성각을 중건했다.
1969년에는 혜초(慧草)스님이 대웅전 석가모니 후불탱과 법당을 보수하여 그 맥을 이어갔다.
이어 1970년대 초에 주지 이묘희(李妙喜)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잠시 승가대 소속의 비구니 사찰로서 운영되다가,
1995년 광옥(光玉)스님에 의해 설법전 중창 불사를 다시 시작해서 1998년에 회향(回向), 다시 조계종 직할 사찰이 되었으며, 당시 칠성탱을 비롯해 독성탱이 조성되었다.
현재의 도량은 1995년 시작된 중창불사의 노력으로 1998년 대웅전을 비롯한 삼성각, 그리고 무량수전이 보수ㆍ중창되어, 신림동 일대의 신심 깊은 불자들의 기도도량으로서 또는 시민선방으로서 기틀을 마련하였다.
지금은 2005년 주지로 부임한 범운(梵雲) 주지스님의 포교활동으로 기도,수행도량으로서의 면모와 휴일 관악산을 찾는 불자들에게도 편안한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련문헌]
『太古寺寺法』
'在京畿道始興郡東面(今康城府上道町)冠岳山 大本寺奉恩寺末寺'
『奉恩寺本末志』
'其初也 有金處士者 建茅屋三間而修道 朝鮮高宗十七年(庚辰)明成皇建法堂 一九二三年頃 失火 草葺全燒 法堂半焚 住持催永源 重建 一九三四年(甲戌)重建七星閣'
<약수사 청년회>
~2000년대초반(?) 구)약수사청년회 해산
2009년 1월 범운스님 지도하 새롭게 ‘약수사청년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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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위원장: 원제 ---- 창립기여자 : 여산, 정명, 구)등룡사청년회임원및 법우들,
약수사참선법회법우들 등등......
초대회장 : 탄공 ---- 부회장 : 한경 / 부회장 : 신해선
2대 회장 : 여산 ---- 부회장 : 만행
3대 회장 : 향천 ---- 부회장 : 만행
4대 회장 : 탄공 ---- 부회장 : 법광 / 부회장 :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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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사 둘러보기 >
건물로는 대웅전과 미타전, 응향각, 요사채가 있다.
실제 창건된 것이 근대 이후이므로 중요한 문화재는 없다.
[대웅전(大雄殿)]
울창한 수림을 배경으로 높은 석단 위에 서 있는 약수사의 금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건물로 1998년 광옥(光玉) 스님에 의해 중수된 것이다.
단촐한 가람에 어울리는 아담한 규모로, 외부는 4분합의 격자살 창호에 편액과 주련이 걸려 있으며, 삼면에는 여느 대웅전처럼 십우도가 단청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마루 위에 불단을 놓고 그 위로 금동석가삼존상을 배치한 모습으로 불상은 석가ㆍ관음ㆍ지장의 삼존상이 좌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뒤에 석가후불탱화·칠성탱화·신중탱화·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불화는 1969년 금어 춘해(春海), 우일(又日)스님이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을 비롯하여 1914년 금어 봉법(奉法)스님이 그린 지장시왕탱이 있으며, 좌우로 1975년 조성된 칠성탱과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외 법구로는 높이 102㎝, 구경 67.8㎝의 조그마한 범종이 있다.
주련의 글귀는 장엄염불의 일부이다.
極樂堂前滿月容 (극락당전만월용 : 극락당전의 둥근달과 같은 용모)
玉毫金色照虛空 (옥호금색조허공 : 옥호의 금색광명 허공을 비치네)
若人一念稱名號 (약인일념칭명호 : 만약 사람이 일념으로 명호 부르오면)
頃刻圓成無量功 (경각원성무량공 : 잠깐 사이에 무량공덕 원만히 이루리라)
[무량수전(無量壽殿)]
약수사 초입에 들어서면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로 대웅전 아래에 있다.
약수사의 강당을 겸한 시민선방으로 중앙은 법당으로 좌ㆍ우측은 요사채로 활용되고 있으며, 지하는 공양간으로 쓰이고 있다.
법당은 무량수전으로 불리며,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상과 소형의 원불이 봉안되어 있다.
일자로 짜여진 불단 위로 후불탱 없이 원불이 벽면 가득 봉안되어 있으며, 그 앞에 화려한 다포식 닫집이 감실의 모습으로 아미타ㆍ관음ㆍ대세지의 아미타삼존을 감싸고 있다.
아미타불은 앉은 키 118㎝, 무릎 폭 90㎝의 중형 불상으로 화려한 키형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온화한 미소로 약수사를 찾는 불자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이외 좌측에는 2002년 금어 윤기록이 조성한 높이 242㎝, 폭 368㎝의 대형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영가를 모신 영단과 범종이 있다.
50여평이 넘는 넓은 실내공간을 가지고 있어 약수사를 찾는 이들의 참선과 수행을 위한 더 없이 좋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뻗은 산길을 따라 오르면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을 배경으로 삼성각이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아담한 맞배건물로, 내부에는 칠성탱을 비롯해 산신탱ㆍ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탱과 산신탱은 1996년 금어 윤기록이 조성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녹색과 청색이 가미된 청아한 느낌을 주는 현대적인 불화이다.
그 중 산신탱은 여느 사찰의 산신탱과 다른 특이한 모습으로 문무백관이 쓰는 관식과 관복을 입고 있으며,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다. 산신의 얼굴은 초상화를 보듯 사실적인 느낌을 주나, 동자나 호랑이는 아주 해학적인 모습을 띄고 있어 비교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20세기 초반 조성된것으로 보이며, 높이 112㎝, 폭 76.5㎝이다.
[응향각(凝香閣)]
대웅전 좌측에 있는 스님의 요사채로, 콘크리트 건물이다. 외부는 전형적인 1970년대 가정집의 모습으로,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으며, 어칸에는 일신(一臣)이 쓴 응향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참고):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koreatemple.co.kr)
: 네이버 백과사전
: blog.naver.com/niling
인터넷에서 믿을 만한 정보는 싹~ 다 긁어왔어요^^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역쉬 약수사의 브레인 대의법우님이십니다^^. 깔끔한 정리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