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쩐지..
누가 보더라도 미소 띠는 얼굴을 하고 싶더라고예.."
이날은 박찬봉 선생님의 전수관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얕은 비를 맞으며 들어서니 선생님의 거대한 작품들이 눈에 띄네요~
날씨 때문인지 석물들의 분위기가 더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박찬봉 선생님은 누굴까요?
너른고을 광주시에서 활동하시는 석장(石匠) 조각 보유자이자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2호이십니다~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을 일컫는 것으로 사찰, 궁궐 등에 남아 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의 작품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동양의 삼국 미술을 비교할 때 흔히들 "중국의 벽돌, 일본의 나무, 한국의 돌"이라고 한다는데요
양질의 석재가 각처에서 생산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석조미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발달하자, 돌을 다듬어 부처의 형상을 만드는 불상조각이 성행하게 되었죠~
하여 석공(石工)은 우리 전통문화의 아이콘으로, 석불과 석탑은 대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찬봉 선생님은 석탑, 석등, 사리탑 등도 많이 제작하셨지만 석조로 된 불상을 주로 만드셨는데요~
어느 날, 예배의 대상인 불상이 너무 근엄하면 안 된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선생님의 철학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처음 얼굴을 봤을 때,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이 더 호감 가겠지요? 친근한 미소를 통해 부처님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그 철학을 지켜오셨다고 합니다~
하여 박찬봉 선생님의 작품은 일반 석불에 없는 아름다운 미소가 특징이라고 해요~
선생님의 작업실로 들어서니 석굴암을 재현하신 불상이 장엄하게 느껴집니다~
신라의 불상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시네요~ 해당 실존 불상보다 60cm 정도 작게 제작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시절, 채석장이 학교 근처에 있어 그곳이 곧 선생님의 놀이터였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채석을 하며 놀았던 시절이 선생님께 인생으로 다가온 걸까요?
선생님은 그 시절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석장이 되신 과정을 듣고 있으면 선생님의 걸어왔던 길이 운명처럼 느껴지는데요
1차적으로 선생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보유자 박찬수 선생님의 집안으로 예술가로서 우수한 DNA를 지니셨고요~
일하셨던 곳에서 우연히 좋은 돌을 찾아 그곳을 들렸던 한국 불교 조각의 큰 스승, 권정환 선생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조각을 배우려면 한번 와 봐."
라는 권정환 선생의 말에 부산으로 향하셨다고 해요~ 그 이후 은사님의 작업실에서 불교미술 작업을 7년간 사사받으셨습니다~
낙산사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죠! 낙산사는 역사적인 내력과 빼어난 풍광으로 국내 관광객이 많은 사찰인데요~
몇 년 전, 저도 여름휴가철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무교인데도 물구하고 숙연해질 정도의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이 기억에 강렬히 남았더랬죠~
그 해수관음상 작업에 박찬봉 선생님이 참여하셨다니!!!
선생님은 이 해수관음상을 조각하실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합니다
그중 특별했었던 일이 있었는데요, 조각상을 거의 완성할 때쯤 거북이가 관음상 위로 올라왔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모두 예사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 낙산사의 주지스님은 관음상이 다 완성되려 하니 바다에서 용왕님이 왕자를 보내셨다 보다고 했다네요~ 목탁을 두드려 잘 돌려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낙산사에서의 작업은 크기에서 알 수 있듯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요~
너무나도 큰 작업이라 신경을 곧추세워도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작업환경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사고 없이 잘 끝마쳤다고 하시며 이것도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그 이후 스승님의 품에서 독립하게 되고요~
3년 만에 단일 석재로는 국내 최대 높이(9m)의 보광사 석불을 조성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스승님 밑에서 배우실 때도 항상 만족이 없어 고민하셨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은 스승님께서 3년만 더 하면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하셨다지만 그만한 시간이 흘러도 자신은 한참 멀었다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독립 3년 만에 이런 작품을 완성하셨다니.. 타고난 장인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매스컴에 소개된 내용을 스크랩하신 것도 보이고요~
예쁘게 찍어서 포스터를 만들어줬다고 좋아하셨던 작품입니다~
선생님,
불상이 아름다우니 포스터도 예쁘게 나오지요~
저 천진난만한 미소 보세요~ 귀여우면서도 따듯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요?
이 작품은 경주에서 나온 돌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경주석은 핑크빛이 도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요~
제 뒤에 있던 작품입니다
저는 무교인 탓에 불교미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데요
손에 약함이나 약 단지를 들고 계시면 약사여래구나!라고 대략 찍는답니다~
(약사여래 : 불교에서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부처)
이 작품은 보령에서 나온 돌로 작업하셨다고 하네요~ 보령에서 나온 돌은 대체로 질이 좋아서 정교한 작업을 하기에 수월하다고 합니다~
이제 야외에 나가서 선생님의 설명을 더 들어볼까요?
웬만하면 망치와 정과 같은 기본 도구로 조각을 하신다는 선생님..
거대한 작품을 많이 작업하신 탓에 어깨와 폐의 손상이 심하다고 합니다..
이제 선생님의 작품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비가 오는 와중에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작품은 비나 바람을 잘 막아줘서 작품을 비교적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하시네요
작품을 하시다 보면 우연히 검은색 돌이 나올 때가 있다고 하는데요
얼굴에 이런 점이 나오면 얼마나 공을 들였던 작품을 폐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나오거나 조각 중에 없어지길 바라면서 노심초사 작업하셨을 모습이 상상되네요
제자인 전수조교님이 이 작품을 하셨는데 쌍꺼풀은 선생님이 만드셨다며 설명하시는 모습 ㅋㅋ
여래께서 쌍수를 하시니 미모가 돋보입니다 ㅋㅋ
석굴암 감실에 모셔져 있는 보살사유상을 모조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곰실곰실한 결이 아름답습니다~
양쪽 귀 위치가 살짝 다르다고 설명해 주신~
선생님!
말씀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ㅎㅎ
약사여래 같죠?
주변에는 부처 대신 다른 것을 조각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 기억엔 연꽃이었던 것 같네요~
이 밖에도 많은 작품들의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모두 담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만드신 작품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선생님의 작업세계는 넓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찬봉 선생님의 작품은 낙산사를 비롯해 양산 통도사, 강화 보문사, 울산 동화사 등 100여 곳의 사찰에 봉안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선생님이 만들어내는 부처의 미소는 불교 경전 책자의 속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불교계에서 정평이 나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끝날 때까지 만족이란 없다는 선생님.
서민적인 미소로 서로 감정이 통하는 부처님을 계속 조각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선생님의 솜씨를 통해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42호 석장(조각) 박찬봉 선생님
1972 불미전 출품 종정상 수상 작품 제작 조력
1972 낙산사 해수관음상 제작 조력
1976 대한민국 불교미술전람회 특선
1980 대한민국 불교미술전람회 입선
1980 경주시 복두암 해수관음 및 16나한상 조삭
1980 파주 보광사 석가모니 입상 조각
1985 대한민국 불교미술전람회 장려상
1987 문화재청 석조각공 기능자(제939호)등록
대한민국 전통문화재 회원전
1990 부산 옥련선원 좌불,
서울 화양사 석조입불상 조각
대구 동화사 약사여래 입상조각
1992 KBS방송 ‘한국의 미, 돌과 석장’,
KBS방송 역사스페셜 출연
미국 서미사 수조,
함안 능가사 약사여래상 등 십 수점조각
1993 전통문화재 조각회 회원전 /
서울 공평아트센터 회원전 /
전통문화재 기능인전 /
한국불교문화 명인전 /
경북 울릉군 북면 성불사 약사좌상조각
2002 KBS방송국 ‘뿌리 깊은 나무’ 출연
2005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2호 석장(조각)
지정 외
첫댓글 너른고을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역량 강화 활동의 일환으로, 해설사가 직접 찾아간 문화유산 답사 리뷰입니다 :)
답사를 준비하신 선생님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리마인딩용으로 남기고 있는 기록입니다
혹여 잘못된 기억의 기록으로 선생님들께 누를 끼칠까 걱정됩니다
정정해야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수고 많이 했어요 . 다시한번 공부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