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청교도들은 교회정치제도를 놓고 크게 온건파(Non Conformist)와 분리파(Separatist)로 나뉘어졌다. 여기서 온건파는 장로파와 독립파로 구분되고, 분리파는 회중주의파와 침례파로 구분되었다(김홍기, 105-6.). 앞에서 우리는 장로파와 분리주의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독립파의 흐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독립파(Independent)는 영국국교회를 인정하면서도 교회정치체제는 회중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자들로서 비분리회중주의(Non-Separatist Congregational)라고도 한다. 이러한 독립파들은 제이콥주의자로 불렸다. 헨리 제이콥, 윌리엄 브래드쇼, 윌리엄 에임스 등이 이 그룹에 속하였다.
헨리 제이콥(Henry Jacob, 1563-1624)은 비분리회중주의 교회를 영국에 세운 최초의 청교도로서 침례교도는 아니었지만 특수침례교회의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교회의 무리들이 분리되어 나와서 특수침례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케임브리지대학보다 더 온건한 옥스퍼드 출신이었다. 그는 1599년 존슨에게 보낸 편지, 「영국의 교회와 사역의 수호」(A Defense of the Churches and Ministery of Englande)에서 확인하듯, 국교회를 비난하기를 꺼려하였다(리언 맥베스, 50.). 그러면서도 개혁에 대한 열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1603년 ‘1,000인의 청원’에 서명하고, 1605년「우리의 영국교회를 개혁할 필요를 입증하는 하나님 말씀과 인간의 증언에서 유추된 이유들」(Reasons taken out of Gods Word and the best humane Testimonies proving a necessitie of reforming our Churches in England)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의 일련의 개혁활동들을 이어나갔다. 제이콥은 위의 논문에서 “하나의 교회란 자유로운 상호동의에 의해서 믿는 자들이 하나의 거룩한 사회의 멤버로 살기로 언약을 맺고 연결되어 모여 세워지는 곳이다(Michael R. Watts, 52.)."라고 정의하면서 온건한 견해들을 피력하였지만 8개월간의 옥살이 후에 망명을 택하였다(리언 맥베스, 51.). 그는 책을 배포하지 않을 것이고, 영국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리포트를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네덜란드에 있던 망명교회들은 분리주의 성향이 강하였지만 제이콥은 레이든(Leyden) 근처의 영국의 상인들로 구성된 독립교회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비분리주의 원칙을 고수했으며, 분리주의와는 상반되게 영국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참 교회라고 주장했다.”(리언 맥베스, 51.) 그러면서도 제이콥은 감독들 대신에 목사들, 장로들, 집사들의 지도하에 있는 독립교회를 원했으므로 그의 입장은 “사실상 실질적인 분리”였고 “반(半)분리주의”(semi-Separatism)였다(리언 맥베스, 51.).
1616년 제이콥은 영국으로 돌아와서 분리주의자와 비분리주의자와 상관하지 않고 개혁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논의한 다음, 런던의 서더크(Southwark) 지역에서 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최초의 독립파 회중교회로, 훗날 세 목회자인 헨리 제이콥(Henry Jacob), 존 래스롭(John Lathrop), 헨리 제시(Henry Jessey)의 이름을 따서 'JLJ 교회’라고 불렸다.
제이콥은 교회를 설립한 후 『영국국교회의 교리에 동의하지만 약28개 항목에 대해 성령의 증거가운데 반대해야 하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으로 된 고백 및 항변』(A Confession and Protestation in the name of certain Christians showing therein wherein they were bound to dessent in about twenty-eight particulars)을 출판하였다(마틴 로이드 존스, 170.). 이 문서는 분리주의자들과 존 로빈슨의 교회에서 사용한 것과 거의 일치하며, 4번 항에 회중주의와 개교회주의가 나타난다. 제이콥의 회중주의 원리들은 하나의 독립된 회중이 참 교회를 이루는 것이며, 회중에 의한 통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임을 천명하고 있다.
“복음에 나타난 가시적이고 통치권을 가진 참 교회는 한 회중이라는 점입니다... 이 그리스도인들의 한 회중은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른 영적인 하나의 통치 기구입니다. 그러므로 이 회중은 자유로운, 독립된 한 회중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회중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적 행정력을 발휘할 권리와 힘을 부여받았고, 그 통치기구는 그 자체를 스스로 다스리며 스스로를 통제하되, 독립적이고 즉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이고 자유로운 승낙을 받아서 통치하고, 언제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질서를 지키며 통치하는 정부 형태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171.)."
이와 같은 회중주의 사상은 개 교회들 위에 노회나 총회와 같은 상부기관들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던 “장로교 교회정치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당시에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유호용, 62-4)."
제이콥의 교회는 회중주의에 입각한 교회체제를 이룩하여 부흥하였다. 그는 교회를 섬기다가 1622년 버지니아로 이주하여 2년 후에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Michael R. Watts, The Dissenters: From the Reformation To the French Revolution (Oxford: Clarendon Press, 1978):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재인용.
-김홍기, “청교도주의운동, 그 역사적 재발견”, 「신학과 세계」2006년 여름호(56호)(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6).
-리언 맥베스, 『침례교회의 역사와 유산』(상), 김용국 남병두 장수한 역(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13).
-마틴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 서문강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0).
-유호용, “청교도신조를 통하여 본 초기 회중교회주의: 1582년부터 1648년까지” (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 2000).
첫댓글 참고문헌에 로이드 존스가 있네요. 현대의 마지막 청교도로 불리는 분이지요. 글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회중교회와 침례교회는 세례의 형식 외에 교회론에서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관심과 격려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카페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더 신경 쓰고 글 자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코뱅님의 좋은 글에서 항상 힘을 얻고 있어요~
로이드 존스의 회중교회 설명을 들어보니 성경적이면서도 민주적인 교회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네. 교회정치 형태가 시간이 가면서 보다 더 직접적이고 회중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지요. 장로파는 개교회를 지도하고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상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독립파나 분리주의교회로 오면 그런 것 필요 없이 개교회가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두 시스템 다 장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하듯이 지상의 교회는 어떤 교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독립파나 분리파는 교회정치 형태에서 굉장이 진일보한 것이죠.
분리주의, 비분리주의, 독립파 등의 교회 모습들이 조금 헷갈리고요.
짧은 글이지만 논점들이 너무 많네요. 영국 교회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 종교개혁에서 시대순으로 보면 장로파-분리파-독립파(비분리주의 회중파)-회중파-침례파 등이 출현하고 있어서 대략 그 순서를 따라 글을 쓰고 있어요. 앞의 운동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으면서 개혁이 진행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헷갈리시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교회사 관련 좋은 글을 많이 쓰시는군요. 잘 읽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공감에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렵게 써서 죄송하네요. 원래 그 분야에 지식이 많을수록 쉽게 쓰게 되어 있는데 저도 공부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정리하다보니 좀 어렵게 보이네요. 잘 숙지해주셔서 감사해요^^
@Be fl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