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나라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발표되어 온나라가 들썩이던 지난 주말, 고려대학교에서는 이미 1년간이나 학교를 다닌 학생의 합격을 취소하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니들도 알다시피 그 주인공은 인기그룹 SES의 멤버인 유진이었다. 이로써 SES는 외대 입학이 취소된 슈를 합쳐 두명의 멤버가 졸지에 부정입학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팬들은 아쉬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건은 그저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복잡하고 지저분한 우리 사회, 특히 연예계의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의 배후에는 울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스타들의 특권의식, 학교의 욕심, 기획사의 장삿속, 그리고 팬들과 사회의 비뚤어진 편견까지 복마전처럼 얽혀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상황의 본질을 알기 위해선 이 모든 관계를 디벼보지 않으면 안된다.
어려운 입장에 놓인 개인의 처지는 안됐지만 짚을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욕을 할려고 해도 뭘 알고 해야 자격이 있는거다.
고로, 본지는 이 기회에 대학과 얽혀있는 우리 대중음악계와 사회의 추한 모습을 깊숙히 파헤쳐볼까 한다. 어느 언론에서도 제대로 후벼파주지 못한 이 문제에 대한 손가락 두마디 깊이의 정조준 똥침이 될 것이므로, 사스러운 맘을 모두 비운채 겸허한 맘으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체험활동, 봉사활동, 특례, 수시, 정시, 가나다라 군과 종합 생활기록부,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정보소양인증, 심층면접, 환산표준점수, 교과목 석차 백분율... 헥헥.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본 기자도 매년 바뀌는 입시 제도들이 헷갈리는 판에 니들은 오죽하겠나. 여튼 위의 것들 중 하나라도 아리까리한게 있다면 당신은 대학 다갔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복잡한 울나라 교육제도 욕하는 사람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교육부나 교사들이라고 해서 그게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하나 없다. 오히려 최근 10년사이의 교육계의 대혼란은 이런 현실을 좀 제대로 바꿔보자는 노력이 실제 현실과 전혀 아귀가 안맞으면서 벌어진 '잘하려다 망친' 케이스다.
특례입학도 마찬가지다. '특별전형'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제도는 하도 복잡하고 다양해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간단히 말해 이제까지 성적으로만 줄세워 대학가던 것을 탈피해 성적 이외의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 그걸 근거로 대학에 입학시킬수 있게 한 제도다. 뜻은 얼마나 좋은가, 항상 우리가 이야기하던 '한줄이 아닌 여러줄 세우기'가 바로 이거 아닌가 말이다!
근데 항상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다. 비상 차량 외엔 갓길로 다니지 말랬더니 명절날 견인차를 빌려서 견인차 뒤에 자가용 걸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갓길로 다니는 울나라 사람들에게 특례입학은 공부안해도 대학갈수 있는 '뒷문' 정도로만 보일 뿐일지도 모른다.
특례입학의 장점은 뭐냐, 일단 수능시험공부를 '전혀' 안해도 된다.(내지는 못해도 된다. --;) 둘째로 잘만 골라간다면 심지어 내신점수도 필요없다. 대표적인 예로 탤런트 최모양은 서류전형 80%, 면접 20%로 학생을 뽑는 한양대학 연극영화과 특별전형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해서 애써 공부를 하고도 떨어진 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여튼 이런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특례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한번 말해보자.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된다.'
그럼 이번에 문제가 된 유진과 슈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했단 말이냐?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다'.
유진과 슈는 모두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다가 SES활동을 계기로 귀국한 경우로 모두 국내의 Kent 외국인 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 외대는 모두 이 학교의 졸업장과 추천장을 근거로 둘은 특별전형으로 뽑았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학교는 교육법상 정식학교가 아닌 '각종학교'(정규학교에서 가르칠수 없는 특수한 기능을 가르치는 학교)로 말하자면 학원과 비슷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 학교 졸업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유진이나 슈가 대학에 가려면 고졸검정고시를 쳤어야만 했던 거다. 그러니 유진과 슈의 현재 최종학력은 중졸이 되고 중졸이니 대학입학은 원천무효가 되어 합격이 취소가 됐다.
자, 여기까지만 보자면 유진이나 슈는 질나쁜 학교에 속아넘어간 피해자고, 제도나 대학당국 또한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열분들이 이미 예상하다시피 여기서 얘기가 끝나는 거라면 이 글을 왜 쓰겠는가...
왜 그렇게 대학에 가고잡냐?
길가던 소도 웃을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반드시 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뭐 울나라에서 대학못간 넘은 인간 취급도 못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별한 재능'까지 가지신 분들이 그렇게 머리를 디밀고 대학에 가려는 것은 언뜻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알고보면 스타 개인과 학교, 그리고 기획사의 욕심이 맞아떨어진 한편의 장대한 드라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스타개인
노래 중간에 혀꼬부라지는 소리가 들어가면 환희의 경기를 일으키는 최근의 세태에 힘입어, 본토에서 직수입된 이른바 이민파 가수들이 늘어나자 몇가지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못한다든가 한국적 기준에서 싸가지 없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본토출신의 자부심으로 얼마든지 뻐팅길 수 있었지만, 울나라 남자라면 누구도, 혹은 빽없는 놈들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병역의 신성한 의무는 무식하게도 이런 선진 문화의 전수자에게도 예외없이 가해졌던 것이다.
오빠가 군대를 갔다오면 아저씨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음악적으로 승부한다기보다는 얼굴과 이미지로 그럭저럭 버티는 가수들이 아저씨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사태다. 게다가 군대에서 배우는 춤이란 태권무가 고작인데 제대하고나서 메탈릭 아웃도어 테크노 그룹 '태권V'를 결성할게 아니라면 이 뻣뻣해진 몸은 어쩐단 말이냐.
말하자면 군입대는 댄스가수들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해서 이 외제같은 국산 가수들은 6개월마다 앨범제작, 재충전, 공연등등의 핑계로 외국으로 정기적으로 나갔다 들어오면서 여권을 연장시켰지만(참고로 이건 동남아 출신 불법취업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다) 1년이상 국내에 거주한 병역의무자의 경우 입영시킨다는 규정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여기서 바로 대학이 등장한다. 울나라에서는 해외에 나가있는 동포들의 국내 수학을 장려하기 위해 '모국수학제'라는 것을 두고 있다. 즉 공부하러 온 동포들은 1년 이상 있어도 군대에 안가도 된다는 거다. 요걸 이용해서 이 가수들은 일단 아무 대학이나 입학한 후 일부러 재수강, 제적, 복학을 거듭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어 군대를 안가고 있다.
최근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예로 지적된 가수들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유모씨과 SM기획의 대표적 그룹 멤버인 A모씨이다. 특히 유모씨는 대한민국의 남자답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그러면 곧장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날 황급히 말을 바꾸는 대한건아 다운 기개를 보여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모2년제 대학을 곡예를 거듭하며 아쉽게 졸업한 후 다시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엄청난 학구열을 발휘하고 있다. 귀기울여 잘 들어보면 들린다. 강렬한 눈빛으로 병역제도를 뒤돌아보면 내뱉는 한마디,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물론 대학에 가려는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음악에 평생을 바칠 의지도 실력도 없는 어린 아이돌들에게 가수는 발목 제대로 돌아가고 아직 팬들이 싫증내지 않는 젊은 시절동안 돈도 벌고 인기도 끌면서 함 해보는 일에 불과하다. 결국 가수, 뮤지션으로서 본다면 이들은 사실상 프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진짜 '프로페셔널'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건 이제까지 '학생가수'로서 누리던 여러가지 관용과 특권, '애들'이라는 이미지를 포기하는 무서운 선택인 것이다.
서태지는 제대로 음악을 하는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이들은 정반대의 이유로 어떻게든 대학에 가야만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음악에 평생 목숨을 걸 것이 아니라면 '스타 이후'의 인생도 생각해봐야 한다. 인기도 사라지고 팬들이 없어진다해도 어찌 들어갔건 대학졸업장이 남는다면 상당히 해볼만한 장사 아닌가.
스타 되기가 어렵다지만 명문대 들어가는 것도 스타가 되는 것보다 쉬울 것이 없다면 차라리 이쪽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거꾸로 대학에 가기위해 가수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으며 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대학에 넣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방송사에서 주는 신인상이 '수상경력'으로 중요하게 점수가 매겨지는 통에 매니저마다 연말이면 로비하느라 정신이 없고 어떤 연예인은 대입에 실패한 후 부끄러운 마음에 매니저가 원서접수마감을 놓쳐서 대학에 떨어졌다고 덤터기를 씌웠다가 알고보니 시험까지 다 치르고 떨어진 것이 밝혀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가수들은 매주 차트를 볼때마다 시험등수를 보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기획사
아무래도 가수들의 입시결과에 가장 신경쓰는 곳은 바로 가수들이 소속된 기획사일 것이다. 이들에겐 '대학 = 돈'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이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미지'라는 면에서 대학은 가수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해주고 있다.
무슨 소리냐면, 먼저 대학은 가수들의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유지시켜준다. '10대가수'라면 당연히 19살까지겠지만 지금까지 잘 팔아오던 가수를 스무살이 됐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이돌 스타의 생명은 '동일시'에 있다. 나와 같은 사람, 나의 또다른 모습, 이웃집 오빠, 멋진 형 이런 '타인에 대한 나의 투사'가 아이돌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스무살이 된다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이런 동일시의 행복한 환상을 깨는, 이젠 '오빠'가 아니라 '가수'로서 보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애들이 꿈에서 깨면 남는 것은 화려하지만 텅빈 껍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획사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병역기피 가수들이 하듯 고등학교를 꿇을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면 '나가 노는 아이들' 혹은 '날라리 양아치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완전히 이질감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홍대근처의 클럽에서 연주하는 애들에게 갖는 부당한 경멸과 위협의 느낌은 이런 이질감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아이돌 스타들은 나와 다르지 않으면서도 착하고 능력있고 지극히 정상적인, 정상적이면서도 '잘난' 아이들이라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부지런히 이런저런 프로에 출연해서 뜀박질도 잘하고 애도 잘보고 불쌍한 사람도 돕고 위대한 이나라의 통일과 한국인의 자존심까지 가슴에 품고사는 건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 아니겠냐. 그러니 대학에 못가면 '알고보니 노는 아이들'이 되는데다 더불어 '사회인'이 되는거다. 이건 오빠가 아저씨가 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
그런만큼, 뒤집어보면 만약 좋은 대학을 간다면 엄청난 프리미엄을 보장받게 된다. 얼마전 설날 방영한 코미디 프로에 어느 코미디언을 소개하면서 자막으로 's대학 출신 코미디언!'이라는 뜬금없는 자막이 당당히 강조 표시와 함께 떠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S대학이 뭔 상관이냐, 코미디언이라면 웃기면 되는거 아닌가. 근데 울나라에서는 이런 딱지만 붙으면 타잔 복장을 하고 나와도 지적인 인물이 된다. '똑똑한데다 웃기기까지 하는' 인물이 되는 거다.
'아이돌'이란 어떤 의미에서건 선망의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좋은 대학'이라는 간판은 아이돌 스타의 상품성을 극적으로 높이게 된다.
이같은 싸구려 이미지 플레이가 아닌 정말 음악을 진지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딱지가 더 부담스럽다.
신해철, 정석원, 김동률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음악을 열심히 해도 음악 자체보단 그들이 다닌 대학을 먼저 보기때문에 피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억지로라도 대학을 가려는 것은 완전히 '음악 외적인' 목적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수 밖에 없다.
두번째는 울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학맥과 인맥의 문제가 연예계에도 공공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연기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수들의 경우도 캐스팅이나 홍보에 이런 학맥이 강하게 작용한다. 아무래도 스타 시스템이란 것은 스타의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대중매체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웃기는 유행어도 수십 수백번하면 뜨게 되어 있고 안좋은 노래도 수백 수천번 들으면 무의식중에 흥얼거릴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대중매체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과의 연계는 스타의 생명력 그 자체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별다른 히트곡이나 특별한 재주 없이도 꾸준히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런 인맥과 학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 알수 있을거다.
세번째로 이런 기획사의 '입시 능력'은 재능있는 신인들을 픽업하고 스카우트하는데 막강한 유인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요즘은 신인들을 뽑을때 기획사측에서 대학입학과 병역면제까지 책임져준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기획사간의 경쟁관계가 점점 치열해 지면서 이런 '능력'은 기획사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 거꾸로 스타로 만들어서 대학에 넣어달라고 돈을 싸들고 오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하고.
이런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신문을 잘 안봐서 그런지 세상 돌아가는 감잡는 능력이 떨어진걸 느낀다. 언제부터 국방부와 교육부가 민영화된거냐?
학교
하지만 가장 욕을 먹어 마땅한 곳은 역시 학교들이다. 여기서 학교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통칭한다. 아무리 울나라의 교육이 개판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공정성을 지켜야할 학교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멋대로 학생들을 뽑고 관리하고 있다.
가수들의 연령이 심각할만큼 낮아지면서 사회인과는 분리되는 개념으로 '학생'이라 불리워왔던 아이들이 사회 생활을 겸하는 약간 애매모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각 중고등학교가 대처하는 방식은 과거엔 '절대 불가'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엔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유연성'이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교 졸업장은 그 학교에 입학하고 3년 있으면 자동으로 받는게 아니다. 영어로 'Certificate', 말 그대로 증명서란 말이다. 증명서를 받으려면 당연히 소정의 과정을 이수받아야 한다.
이 과정의 최소요건은 '수업일수'다. 대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의 경우 1년에 220일정도를 출석해야 정상출석이고 특별한 사유 없이 결석을 하면 내신점수에서 결석일수만큼을 감점한다. 그리고 전체 수업일수의 1/3선을 넘어 결석하면, 즉 위의 수치대로라면 73일 이상 결석한 경우 유급을 당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방학기간 두달을 합쳐 한 가수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한 결석한다고 했을때 넉달을 조금 넘는다.
한번 생각해봐라. 일년에 여덟달 활동을 쉬는 가수가 있었는지, 있다면 그 가수가 과연 살아 남을수 있었겠는지.
대부분은 반대로 짧아도 여덟달 정도를 활동하고 고별 우짜고 무대를 하고 한 넉달 쉬는게 고작일거다. 더구나 이렇게 최대한 결석을 한다면 감점이 엄청나서 내신이 바닥을 면할 수 없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요술을 부릴 차례다. 어떻게 학교에 출석은 안하면서 졸업은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괜찮은 내신성적으로? 여기에 또한번 우리의 교육제도가 악용된다.
결석이라고 다 같은 결석은 아니어서 아무말도 안하고 결석한다거나 가출할 경우 '사고결석'이 되어 이것은 감점과 결석을 모두 잡는다. 아파서 결석한 경우는 '병결'로 결석으로는 잡히지만 감점은 없다. 마지막으로 '공결'이라는게 있다. 이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느라 어쩔수 없이 결석한다거나 교외 백일장, 사생대회, 수학경시등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결석하는 경우 공적인 이유로 결석한다고 학교장이 인정하면 결석처리도 안하고 감점도 안해서 출석과 마찬가지로 인정하는 경우다.
바로 이 '공결'을 이용해서 연예인들은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의 경우 십대 가수들의 활동을 '교위선양'(말 어렵다, 학교의 위신을 높인다는 말인갑다)활동으로 인정해서 공결처리를 한다고 들었다. 도대체 음악텐트 나가서 노래부르는 것이 어떻게 공적인 활동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일부 중고등학교는 나와 세계관이 다른지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이다.
실제로 본 기자가 아는 어느 학교에도 기획사측에서 전화를 해서 전학을 할테니 그런 편의를 봐줄수 있겠느냐고 해서 거절했더니 다른 학교로 전학갔다고 한다.
그래서 4인조 여성그룹 F의 멤버들이 다니는 K고교에서는 이들이 출석도 안하고 시험도 안보다시피했는데 중간등수의 내신성적을 받은 것은 나머지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3등씩 밀어낸 것이라고 다른 학생들이 인터넷상에 항의서한을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학생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학생들의 결석을 장려하고 해당 학생들의 학습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한 이런 태도는 학생을, 내지는 교육을 포기한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니들도 아는지 모르겠다만 현재 중고등학교의 학생수가 무지하게 줄어들면서(현재 중학교는 한반에 30명 정도인 학급도 많다. 2부제 수업 세대인 기자로써는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 대학에 들어가는 인원수도 줄어들고 있다. 2002 학년도의 경우 예상 전체 경쟁률이 0.9:1이다. 이게 뭔말이냐, 대학이 학생보다 많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대학도 장사다. 이렇게 손님이 줄어들다 보면 망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대학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특례입학이 좋은 먹이로 등장한다.
통계에 의하면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절반정도가 학사경고나 제적등으로 학교를 오래 다니고 심지어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특별전형 대상중에 대부분은 수업료쯤 아까와 할만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특별전형 입학자는 대학의 큰 수입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들을 모셔와서 얻게되는 홍보효과다. 학교광고에 무료로 출연하거나 입학을 계기로 각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장기적으로 스타의 프로필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직접 광고효과도 만만치 않지만 '누구누구가 간 학교'에 나도 가고 싶다는 식의 간접광고 효과가 엄청나다. 실제로 국내 최고의 인기 5인조 그룹의 멤버 K군이 입학한 어느 학교에서 함께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실시한 입학 동기 설문조사를 보면 이 스타를 보고 싶어서 입학했다는 학생수가 50%에 이르는 농담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러다보니 학생 한명이 아쉬운 대학의 입장에서는 스타를 유치하는데 매달릴수 밖에 없다. 대학마다 예능특기자 관리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특별관리-이게 '특권'과 다른 말일수 있을까?-를 함은 물론, 수업을 안들어도 '교위선양활동 학점'이라는 말도 안되는 학점을 부여하는 한편 아예 연예인들만 들어가는 과를 만들것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가수 Y모 씨의 경우 해외공연기간에도 출석한 것으로 표시되었고 학점도 제대로 나왔다고 한다.
대학의 빤한 속마음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경우가 얼마전 충격적인 입학취소를 당한 유진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은 입학결정을 내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진양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영어를 잘하고 특히 대학관과 가치관이 뚜렷하다."
음대조차 없는 고려대에서 음악적 재능은 무슨 참고사항이 되며, '영어를 잘한다' 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토익 900, 토플 600 이상을 요구하는 입학 조건임에도 유진이 그 시험들을 봤다는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면접만 봐도 알 수 있다면 다른 학생들도 면접만 보지 왜 성적표를 내라는 거냐. 글고 '대학관과 가치관'이 진정 입학 자격에 속하는 사항이라면 이게 뚜렷하신 분들은 모두 고대에 지원하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 유진이 들어간 학과는 서양어문학부였다. 모 TV프로에서 고대 관계자에게 왜 음악과 상관없는 과에 특별전형으로 받았는가를 물었더니 대답하신 분이 또 걸작이었다.
'음악 잘해서 뽑았지만 뭐 꼭 음악하는 과를 갈 필요는 없잖아요. 컴퓨터 하는데 가서 컴퓨터 음악을 할 수도 있는거고..'
그런 심오한 뜻이! 그래, 고대에서는 서양어와 음악을 결합하여 팝송가수를 하나 키우고 싶었던거다. 말도 안되는 한국어 가사 중간중간에 더욱 말도 안되는 영어가사를 끼워넣어 노래하는 우리 대중가요계가 얼마나 안타까왔겠냐.
그런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니 참회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쉽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더라면 건축학과에 들어가서 하우스뮤직을 하고 농대에 가서 자연을 노래하는 가수들을 만날수 있었을 것을.
고려대는 이번과 같은 사소한 난관에 굴하지 말고 쭈-욱 밀고나가 이나라 가요계를 풍성하게 해주시길 바란다.
뭐가 진짜 문제냐?
자, 이제 결론을 말할 때가 되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는 '결론이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더라. 걱정마라, 본지는 결론이 확실하다.
일단 이 글을 통해 언급된 가수의 대부분은 여하튼 피해자다. 그건 사실이다. 이번 부정입학 사건에서 '형법상의 죄'를 지은 사람들은 부정입학을 알선하고 서류를 조작한 고등학교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한 대학측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관계들은, 그리고 처벌은 대중 개개인이 아니라 법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런 사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의 비뚤어진 의식이다. 그 의식을 다섯글자로 표현하자면 '특권은 있다!'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아주 오래전 일을 들춰볼까한다. 정확하게 12년 전, 1989년 미국에서의 일이다. 그해에 등장한 최고의 신인듀오로 Milli Vanilli라는 그룹이 있었다. 사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살벌하게 잘생기고 몸 잘빠진 애덜이다. 거기다 노래까지 잘해서 순식간에 미국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고 All or Nothing이라는 노래로 빌보드를 점령하는데 이어 한 앨범에서 다섯곡을 싱글커트하면서 연속히트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 뮤직어워드와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신인가수상을 휩쓸었다.
당시 이들의 인기는 가히 당시 팝의 3대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위협하는 수준이었고 가는데마다 팬들이 울고불고 기절하는 광란을 연출했다.
근데 그해 말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들이 실은 립싱크만 했을뿐 실제 노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밀리 바닐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데 반해 어둠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불만을 가져서 폭로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언론들은 엄청난 보도공세를 퍼부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팬들의 태도였다. 그 폭로가 사실이고 밀리 바닐리가 '원칙을 어겼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팬들은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여 이들을 완전히 매장시켜 버리게 된다.
정확하게 1년간의 반짝 인기 끝에 이들은 해산이고 뭐고 없이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원래 목소리를 맡았던 가수가 다시 앨범을 냈으나 그 역시 애초에 범행을 도운 사람이라는 인식때문에 실패했다. 사태는 결국 98년, 밀리 바닐리의 전 멤버 한명이 사회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자살해 버린 것으로 비극적인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 이후로 팬들을 상대로 한 기획사의 사기나 농간은 미국에서 꿈도 못꾸게 되었음은 물론, 전자음악의 유행과 함께 잠시 고개를 들던 립싱크의 유혹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가수라면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라이브를 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만약 같은 사건에 대해 울나라 팬들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우린 오빠를 사랑해요', '우리가 지켜드릴께요', '너무 인신공격이 심한 것 같아요 흑흑, 그분들도 분명히 괴로왔을 거예요', '왜 오빠들한테만 뭐라고 그러죠?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잘못한게 많은데?' 등등의 멘트가 떠오르는 것은 본 기자만의 생각일까?
이런 분위기가 된 진짜 이유는 뭔가. 그들은 뭔가 특별하고 특별해도 되고 특별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안되는 건 안돼'가 아니라 그래도 어떤 방법을 쓰면 될수 있고 특별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 머릿속의 썩은 부분이고 도려내야 할 부분이다.
가수라도 학생이면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겠다면 학생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이다. 표절을 했으면 비난받아야하고 도둑놈 취급을 해야 한다. 왜 구멍가게에서 껌 한개를 훔치면 경찰서에 가고 일본노래를 통째로 베껴오면 선진문화의 수용자가 되나? 왜 누구는 집안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수업일수가 모자라도 제적이고 누구는 방송국에 노래만 하러 다녀도 졸업이냔 말이다.
미국의 경우 특기자 제도가 거의 없어서 운동을 하든 음악을 하든 정규 수업을 이수해야 하고 그래서 어느 대학 미식축구팀 쿼터백은 프로로 갈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영국 내각의 어느 장관은 절친한 친구의 비행기표를 구해줄 수 있겠느냐고 항공사에 전화했다가 권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쫓겨났고 미국의 어느 장관은 불법체류자를 불쌍하다고 가정부로 고용했다가 법을 집행할 사람이 법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아 사임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였다면 기획사가, 가수들이, 그리고 대학이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할 생각조차 했겠는가. 우리 마음속의 썩어서 물렁물렁해진 부분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 거다. 이번 부정입학 사건을 기사화한 언론 매체의 게시판은 전부 위와 같은 팬들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걸로 알고 있다. 문화일보의 어느 기자는 말도안되는 항의와 협박메일을 받다 못해 인터넷을 통해 정식으로 항의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당신이 정말 바라는 것이 진실하고 공정한 삶인지, 아니면 스타와 팬들의 권력에 편승한 자신의 특권, '건드리면 죽어!'라는 조폭식의 삶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딴따라딴지에는 '특권'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는 넘들만 모여있다. 이 단어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우린 계속 주절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