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또다시 말이 담긴다. 가령 지그시라는 말에는,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슬며시 힘을 주는 모양이나 조용히 참고 견디는 모양이라는 뜻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최정란의 시 중에도 「지그시」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 「지그시」에도 지그시의 뜻이 담긴 것일까. 시를 읽어본다.
눈까풀을 내리고 지그재그 흩날린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그림, 북쪽에서 태어난다 바람을 타고 띄엄띄엄 허공을 채우는 소문, 첫 행이 시작된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붙이고 손을 내민다 국경을 모르는 아나키스트, 확신은 아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혹시와 어울린다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이따금 역시와 함께 출몰한다 손끝에 닿으면 이별의 역사가 녹아내린다 반드시가 수시로 연락하지만 진심을 확신할 수 없다 깨어진 약속이 이 말을 수긍할지도 모른다 따뜻한 동사를 편애하지만 응달에 혼자 머문다
—「지그시」 전문
시의 첫 구절이 혼란스럽다. “눈까풀을 내리고”는 시인 자신이다. 눈을 지그시 내려감았다는 뜻이다. “지그재그 흩날린다”는 것은 시인의 앞에서 날리고 있는 눈(snow)이다. 시인 자신과 눈은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 둘을 하나로 이어놓고 있다. 문장의 구조상 지그시 눈을 감은 시인 자신이 지그재그로 흩날리는 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내가 겪은 혼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서 혼란을 제거하면 문장은 지그재그로 흩날리는 눈을 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로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왜 시인은 혼란을 감내하면서까지 이러한 문장을 고집한 것일까. 그것은 시인이 흩날리는 눈을 본 것이 아니라 눈을 감으면서 그 자신이 ‘지그시’가 되고 그렇게 지그시가 된 자신에 흩날리는 눈을 담았기 때문이다. 시의 첫구절은 바로 그 결과이다. 때문에 이 시의 제목 「지그시」에는 지그시가 된 시인 자신이 담겨 있고, 동시에 그 시인 자신에게 담긴 눈도 담겨있다. 시인이 눈을 감은 이유는 시가 말해주고 있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그림”이 눈이었기 때문이다.
지그시에 눈과 지그시가 된 시인 자신이 동시에 담겨 있기 때문에 시는 어떤 때는 눈을 말하고 어떤 때는 지그시라는 말이 된다. 가령 “북쪽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눈을 가리키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혹시와 어울린다”는 말은 지그시라는 말 자체와 엮여있다. 이 시는 그 점에서 또 읽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 혼란을 감내하면서 구별하고 즐기는 것이 이 시를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인용한 시는 최정란 시집, 『독거소녀 삐삐』, 상상인, 2022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