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전례에 근거를 둔 차례상 차리기와 지방 쓰는법...
그리고 필자식 차례상 차리기과 지방 쓰는 법이다.
나이가 드신 어른들이 차차로 돌아가심에 따라 유교식 교육을
배우지 못한 현대인들이 명절때나 제사때를 만나면
당혹스러워 하게 된다. 설과 추석 명절의 차례상 차리는법과
지방을 쓰는 법을 간추려 여기 올린다.
설 차례상 차림(일명 : 떡국 제사)
추석 차례상 (일명 : 송편제사)
일반 기일 제례차림 (일명 : 국밥제사)
시대가 바뀌고 종교가 다르므로 꼭 똑같이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근본은 알아야 변형이 가능하다. 즉, 차례상과 제상상
에는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과 가족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대체해도 좋다. 차례상과 제사상의 표본은 옛날시대에
그 시절에 음식을 위주로 한 것이고 지금 우리는 과거 당시의 기
준으로는 미래사람들이다. '소고기 산적' 대신 '캔터키 후라이드치킨'
을 올려도 되고...굴비 대신 '광어 회'를 올려도 좋다. 먹지도
않는 옥춘팔보 (꽃무늬 사탕과 별모양의 사탕) 대신 과일사탕과
초콜렛으로... 부침 대신 피자...(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이렇게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으로 바꿔도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을 핑계로 정성이 부족하지는 말자.
밥과 국의 위치 : 반서갱동(飯西羹東)
밥은 서쪽,국은 동쪽입니다. 즉 제사자의 입장에서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으로 놓습니다. 이는 산사람의 상차림과 반대입니다.
따라서 숟가락과 젓가락은 중앙에 놓습니다.
생선과 고기의 위치 :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에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즉 생선은 오른쪽.고기는 왼쪽에 놓습니다.
머리, 꼬리의 위치 : 두동미서(頭東尾西)
머리와 꼬리가 분명한 제수는 높은 방위인 동쪽 즉 오른쪽
(제사자의 입장)으로 머리가 가고 꼬리는 왼쪽으로 가게 놓습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서쪽이 상위라 하여머리를 서쪽으로
놓는 집도 있습니다.
과일의 위치 :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제사에서 반드시 이 원칙대로 놓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편람]등의 예서에는 보통 전열의 왼쪽에서부터 대추,밤,배,감
(곶감)의 순서로 놓고 있습니다. 배와 감은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전열의 오른쪽에는 약과,유과 등의 과자류를 놓습니다.
적의 위치 : 적전중앙(炙奠中央)
적은 상의 중앙인 3열의 가운데에 놓습니다. 적은 옛날에는 술을
올릴 때마다 즉석에서 구워 올리던 제수의 중심 음식이었으나 지금은
다른 제수와 마찬가지로 미리 구워 제상의 한 가운데에 놓습니다.
차례상,기본 5열에 `7원칙`
설날 지내는 차례는 추석 때와는 달리 밥과 국 대신 떡국이 올라 갑니다.
새해 떡국에 쓸 가래떡은 둥글게 썰어야 합니다. 새해 아침 에 떠
오르는 해를 상징하기에 어슷하게 썰지 말라는 것입니다.차례상은
신위나 지방을 북쪽에 두는 것이 기본으로 제주가 차례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기준이 되므로 신위가 놓인 쪽이 북쪽이고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이 됩니다. 신위를 차례상 위에 바로 올리거나 병풍에
붙이는 일은 예법에 어긋납니다. 제사상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작은
상이나 책을 괴어 조 금 높게 신위를 모셔야 합니다. 복숭아, 잉어, 꽁치,
삼치, 갈치, 고추, 마늘 등은 차례상에 올 려서는 안되는 음식들입니다.
상차림은 기본적으로 5열이구요. 차례상 차리기의 순서는 병풍 쪽
신위 앞으로부터 1열에 떡국과 잔, 수저, 2열에 적과 전, 3열에 탕,
4열에 포와 나물,5열에 과일을 7가지나 5가지, 3가지의 홀수로 놓습니
다. 다음의 7가지 원칙을 지키면 차례상 차리기에 크게 틀리지 않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① 어동육서(漁東肉西):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②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③ 홍동백서(紅東白西):과실이나 조과의 붉은색은 동쪽에 흰색은 서쪽에 놓는다.
④ 조율이시(棗栗梨枾):서쪽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으로 놓는다.
⑤ 좌포우혜(左脯右醯):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놓는다..
⑥생동숙서(生東熟西):동쪽에는 김치를 놓고 서쪽에는 익힌 나물 등을 놓는다.
⑦ 좌반우갱(左飯宇羹):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에 놓는다.차례 지내기
차례 지내기 절차는 젊은층일수록 잘 모르는 경향이 있고
차례를 지낼때마다 헷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차례지내기 순서는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없죠. 건양대학교 예학교육연구 원이
제시하는 차례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신(迎神):제사상의 뒤쪽(북쪽)에 병풍을 치고 제사상 위에
제사 음식을 차린다. 지방을 써 붙이고 제사 준비를 마친다.
2. 강신(降神):제주가 분향하고 재배한 후, 모사그릇에 술을 세 번
기울이고 다시 재배한다.
3. 참신(參神):참석자 전원이 재배(절 두번)한다.
4. 진찬(進饌):떡국을 올린다.(추석 때는 밥과 국을 올린다)
5. 초헌(初獻):제주가 꿇어 앉아 첫 번째 술잔을 올린다.
이때 집사가 술을 따라 준다.
6. 아헌(亞獻):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 술과 적을 올리고 재 배한다.
7. 종헌(終獻):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을 올렸던 사람 의
다음 서열의 사람이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8. 삽시정저(揷匙正箸):숟가락은 떡국그릇 중앙에 바닥 쪽이 동 쪽으로 향하도록
꽂고, 젓가락은 어적이나 육적 그릇 위에 가지 런히 놓고 재배한다.
9. 철시복반(撤匙復飯):숟가락 젓가락을 거두어 시접에 바로 놓는다.
10. 사신(辭神):참석자 전원이 재배한 뒤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 다.
작별 의식으로 차례를 올리는 절차가 모두 끝난다.
11. 철상(撤床)과 음복(飮福):제사상을 물리고 참석자가
모여앉아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지방은 성균관 제례도감에 따르면 반듯이 한지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쓰도록 명기하고 있다. 이것도 차례상을 설명한 것처럼
꼭 그와 같이 따를 필요는 없다. 옛날에는 한지와 먹, 붓이
상용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프린터 용지, 볼펜이 상용
되는 시대다. 그러니 더 나아가 컴퓨터로 작성하고 프린터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1. 종이재단법
ㅇ 지방에는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의 체제에 유사하게 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방은 깨끗한 한지에 길이는 주척(周尺)으로
한자(尺) 두치(寸)이고 너비(幅)가 세치(寸)인 바 길이는 22cm
에 너비가 6cm정도이다. 이 크기에 맞추어 직사각형으로 절단
하여 위쪽을 둥글게 오려서 만들었다. 위를 둥글게하고 아래
쪽을 평평하게 하는 까닭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 을 상징한 것이다.
2. 지방서식(紙榜書式)
ㅇ 기제(忌祭)때 가문(家門)에 따라 단설(單設 : 돌아가신 본인
한 분만을 제사 지냄)로 도 지내고, 합설(合設 :돌아가신 내외
분을 함께 제사 지냄)로도 지낸다. 현대에는 거의 합설로 지낸다.
ㅇ 지방(紙榜)을 쓸 때 단설(單設)일 때는 돌아가신 분 한분만을
쓰고, 합설(合設)일 때는 돌아가신 내외분(內外分)을 함께 쓴다.
만약 전후취(前後娶)일 때는 세분을 함께 써야 한다. 이때 서고동비
(西考東비 :서쪽은 고위(考位)이고 동쪽은 비위임)이므로 좌편에
남자의 신위를 쓴다.
ㅇ 아내의 제사에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齊主)가 되고
장자(長子)의 제사에는 손자(孫子)가 있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제주(齊主)가 되며,남편의 제사일 때는 자손
(自孫)이 없을때만 아내(妻)가 제주(祭主)가 된다.
ㅇ 지방(紙傍)을 쓸 때는 관직(官職)이 있을 때는
그 품계(品階)와 관직(官職)을 쓰고, 관직이 없을 때는 남자는
학생(學生) 또는 처사(處士), 수사(秀士)또는 수재(秀才)
라고 쓰며, 여자는 유인(孺人), 여사(女士)라 쓴다.
ㅇ 조선조(朝鮮朝) 때는 남편(男便)이9품이상의 관직자(官職者)
일때 그 아내에게 외명부(外命婦)의 품계(品階)를 주었으므로
지방을 쓸때 남편이 9품이상의 관직이 있으면 아내도
그에 상응하는 품계를 쓰는데 조선조 후에는 그런 제도가
없으므로 여자 자신이 관직에 있었을 때만 그 관직을 써야 한다.
ㅇ 벼슬이 없었던 분의 경우에는 관작 대신에 처사 또는
학생이라고 쓰는데,조선시대에는 이 말이 과거 시험을
준비중이던 예비 관원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던 용어이다.
근래에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와 같이
쓰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서이를 마치 지방 문안의 표준인 것처럼
여겨 관직을 지낸 사람이건 아니건 이렇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풍습이라 할 수 있다.
ㅇ 오늘날에도 공직에 있었던 분들의 지방에는 당연히
관직을 써야 하고,일반 사회 단체나 기업체 등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었던 분들 모두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직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관직을
쓸 때는 대표적인 직함 하나만을 간략하게 쓰는 것이 좋다.
ㅇ 박사, 석사, 학사와 같은 학위를 가진 분은 그것을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전의 진사나 생원도 일종의 학위로서
신주나 지방에 쓰였기 때문이다.
ㅇ 여성의 경우에는 오늘날은 남편의 벼슬에 따라 봉작하는
법이 없으므로 봉작은 쓸 수 없다. 따라서 남성의 경우에
준하여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곧 관직이나 사회적 직함
또는 학위를 쓰는 것이 무방하다. 관직이나 사회적 직함은
전통 시대의 봉작과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남녀 평등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일정한 직함이 없는 여성은 그냥 유인이라고 쓰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에도 봉작을 받지 못한 여성은
모두 유인이라고 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