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民世)는 평택 두릉리 (게루지) 출신으로 일제시대 조선 독립과 우리 민족의 세계화를 위한 큰 뜻을 갖고 실천한 안재홍( 安在鴻)의 호입니다.
안재홍 선생은 1891년 평택 게루지에서 출생하여 조선일보 필화 사건, 광주학생운동 보고를 위한 민중대회, 만주동포 구호 의연금 유용사건, 난징 군관학교 학생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생가터 입구와 기념물 표지석 ... 생가 건물은 조카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해방이후 여운형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곧 탈퇴하고 민족주의 정당인 국민당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반탁운동을 하기도 했고 이후 좌측 보다는 우측 입장에서 활동했습니다.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에 취임하였고 1950년 고향 평택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6.25전쟁 중 9월에 압북되었고 1965년 3월 1일 평양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생가터에 대한 건물과 안재홍 선생의 활동 기록
안재홍 선생님의 호인 민세(民世)는 民衆의 世上이라는 뜻도 있지만 선생이 1934년 이후 조선문화 운동을 제창하였는데 이후에 "민족에서 세계에, 세계로 민족에, 교호(交互)되고 조합(調合)되는 민족적 국제주의-국제적 민주주의를 형성"하자는 민세주의(民世主義)를 주장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입구부터 생가터 안쪽까지 다양한 꽃 식물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생가터가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로 되어 있기는 하나 아직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는 않고 있지만 고덕 지구 개발이 진행되고 나면 생가터 인근을 포함하여 공원화될 계획이라고 하니 아름다울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방문하면 사랑채에 방명록을 적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데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방문 소감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 안재홍 선생님에 대한 내용은 다음백과 기록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