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도르트 신조에 관하여 올립니다. 도르트 신조의 다섯 가지 교리를 압축하고 요약한 앞글자 모음 TULIP를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P는 다섯째 교리로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견인의 긍극적 원동력은 성령이시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성도가 견인(堅忍, 굳세게 견딤)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김홍만 박사님이 해설을 쉽게 이해토록 써주셔서 구분선 아래에 올립니다. 읽고 심령에 힘을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다섯째 교리 8항
은혜와 믿음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지지 않으며, 은혜와 멀어진 상태가 지속되지 않아 결국 멸망에 이르지 않는 것은 자신의 공로 혹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총으로 인함이다. 그의 목적에 따른 부르심은 취소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은덕과 그분의 탄원과 보존하심은 무효화 될 수 없다. 그리고 성령의 인침은 없어지거나 떨어져나갈 수 없다. |
보존의 은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진정한 신자의 견인은 선택의 열매가 아니라 사람이 언약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서 신조는 견인의 은혜가 오직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의 견인은 중생한 자로 하여금 완전히 은혜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은혜에서 멀어진 상태가 지속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중생의 수단이었던 말씀을 다시 살려서 갱신케 하기 때문에 결코 은혜에서 멀어진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이다.
타락
인간의 측면에서는 은혜의 상태에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진정으로 중생한 자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 은혜나 혹은 성령의 일반 은혜에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다. 거짓 은혜의 경우는 그 은혜가 부족하고 온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착각하고 있다가 결국 타락함으로 진정한 은혜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열 처녀 비유에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게 해당된다(마 25:1-13). 그들은 외적으로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의 차이는 오직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느냐의 여부였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추가의 기름이 없었으며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준비하고 있었다. 부족한 은혜로 외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은혜의 부족함이 드러나 위선자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성령의 일반 은혜인 은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구원의 은혜 없이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가 있다(히 6:4-6). 사실, 이 경우는 원래 구원의 은혜가 없었던 상태에서 결국 타락한 것이다. 따라서 은혜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타락한 것은 원래 구원의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위선자로 있다가 타락으로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 구원의 은혜가 있었다가 타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도의 견인과 하나님의 계획
성도의 견인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 취소되지 않기 때문이다(시 33:11).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될 수 없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사 54:10). |
하나님의 부르심 또한 취소될 수 없다. 부르신 이를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결국 영화롭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인해 중간에 이 연결고리는 부서질 수 없다. 성도의 견인은 구원의 황금사슬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롬 8:28-30).
그리스도의 보존하심
선택의 유효한 실행으로 중생한 자는 믿음을 끝까지 가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시며 그를 보존하시기 때문이다(요 17:9, 24; 롬 8:34; 히 7:25: 요일 2: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양 무리 가운데 두시고 지키신다(요 10:28 29; 17:11,12),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존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으로 달려가거나 죄 가운데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은혜를 힘써 지켜야 한다(유 1:1, 3).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과 같다(빌 2:12).
성령과 견인
성령께서는 구속의 날을 위해 우리를 인치셨다(엡 1:13,14).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보여 준다. 성령의 인침으로 인해 하늘의 유업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더욱이 성령께서 그의 은사와 은혜로써 신자 안에 내주하셔서 하늘 유업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늘 유업을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인침은 취소될 수 없다. 따라서 성도의 견인은 그리스도의 보존과 성령의 인침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다.
김홍만, 『52주 스터디 도르트 신조』, pp.115∼117.
첫댓글 알미니안주의와 그에 대한 반박인 TULIP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면 아래 포스팅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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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묻은 구두를 신은 신사
https://cafe.daum.net/1107/YlDw/4
다시 잘 읽었습니다. 현실적이고 도르트 신조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네요.
구원의 확실성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 있다(롬 8:37).
https://cafe.daum.net/1107/YlDw/10
알미니안의 주장과 달리, 진정한 성도는 믿다가 타락하지 않고 성도의 견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것처럼 보이다가 타락한 자는 참 성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은 도르트 신조(The Canons of Dort)를 요약한 것입니다. 영어 앞 문자만을 따서 TULIP이 된 것이지요. 한글로 튤립이라고 부르는 분도 많습니다.
Total Depravity (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 선택)
Limited Atonement (제한 속죄)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총)
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
초신자들에게는 이런 초보 기초도 다시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노베 공감합니다.
TULIP의 5대 강령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은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https://cafe.daum.net/1107/YlDw/6
댓글에 좋은 설명이 많군요. 댓글들을 잘 살펴 보아야 하겠어요. 저는 잘 참고했습니다.
"요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위 말씀에 해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시지 않고 다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입장에서는 성도의 견인(堅忍)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TULIP의 P(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우여곡절과 평지풍파를 거칠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황금사슬이라고도 불리우는 구원의 서정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위로와 소망 가운데에서 살아갑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에게 성도의 견인이라는 확신을 주는 좋은 이 포스팅에 매우 공감하고 감사합니다.
"성령의 인침은 취소될 수 없다. 따라서 성도의 견인은 그리스도의 보존과 성령의 인침으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다."
네, 저도 주목을 한 문장입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물려지거나 취소될 일은 없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좋은 해설서입니다.
중간에 타락하여 배교하거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는 거짓 은혜나 성령의 일반 은혜에 있다가 타락하는 경우라는 걸명이 인상적입니다. 거짓 은혜는 은혜가 충분치 않았음에도 은혜라고 착각하다가 타락한 경우이며, 성령의 은사가 있음에도 타락한 경우는 원래 구원의 은혜가 없었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잘 됩니다. 물론 생소한 내용은 아닙니다만 다시 한 번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게 해주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 참고하고 공감합니다.
네, 코람데오님의 댓글에 공감합니다.
특별은혜를 받지 않고 일반은혜를 받은 상태에서 일반적인 종교성으로 사역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그 위선이 드러나고 한계와 바닥이 드러나는 사역자들이 꽤 있습니다.
@장코뱅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