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전증과 색전증 (피가 혈관 속에서 굳는다니?)
칼에 손을 베인 상처에서 피가 나오거나, 혹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코피가 흐를 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피가 멎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혈관이 찢어진 부위에서 새어 나오던 피가 멎는 이유는, 우리 몸이 피가 나는 곳에서는 피를 굳게 하고 (지혈작용), 반대로 피가 비정상적으로 굳는 곳 (혈전, 또는 색전)에서는 굳은 피를 녹이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혈작용).
우리 몸의 그러한 시스템이 고장나서 피가 굳는 기능이 약해지면 출혈성 질환이 생기게 되고, 반대로 피를 녹이는 기능이 약해지면 (또는 피가 과도하게 굳는 방향으로 균형이 기울게 되면) 혈관 내에서도 피가 굳는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혈관 내에서 피가 굳는 현상을 혈전 (thrombosis)라고 부르며, 이러한 혈전이 부서져 나가면서 다른 곳으로 날라가서 다른 혈관을 막게 되는 현상을 색전 (embolism)이라고 부릅니다.
다리에 생긴 심부혈전
혈전과 색전은 다양한 증상 및 증후군으로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병명으로는 심근경색 (심장을 먹여살리는 관상동맥 coronary artery가 막히는 것), 뇌경색 (뇌를 먹여살리는 뇌혈관 자체의 문제로 뇌동맥이 막히거나, 심장 등의 뇌 이외의 부위에서 색전이 날아와서 뇌동맥이 막히는 것), 심부정맥 혈전증 (골반이나 다리 등 깊은 부위에 위치한 정맥에서 혈전이 생기는 상황)등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생긴 용어인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 (economic class syndrome)의 경우,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움직이지 않다 보니 다리쪽에 혈전이 생기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며, 심한 경우 폐색전증까지 발생하여 급사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요.
이런 혈전, 색전증은 암을 가진 분들에게 잘 일어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왜 그러지와, 예방법 및 치료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암환자에게 혈전증이 잘 생길까?
암은 그 자체로 잘 알려진 혈전증의 위험인자입니다. 암 투병 중인 분들의 10-15%는 증상이 있는 혈전, 색전증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러한 혈전,색전증은 질병이 진행하며 발생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완화의료병동 (호스피스)에서는 거의 50%에 육박하는 분들이 혈전증이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지요. 종양에 따라서도 위험도가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난소암, 뇌암, 췌장암, 위암 등이 위험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전신상태라던가 치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현대 병리학의 아버리라 불리우는 Rudolf Virchow 선생님께서는 이미 100년도 이전에 혈전증을 일으키는 인자들에 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3가지를 이야기 하였는데 (Virchow's triad), 혈류정체 (stasis), 혈관벽손상 (vessel wall damage), 그리고 과응고성향 (hypercoagulability)이 그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 요인들이 단독으로 또는 같이 작용하여 혈전이 생기게 됩니다.
종양이 있는 경우 이 세 가지 인자가 모두 작용하게 됩니다.
우선 통증이나 전신상태 저하로 누워만 있는 경향이 있고, 그리고 림프절이 커져서 또는 원발부위 종양 (난소, 대장 등)이 큰 정맥을 누르면서 혈류가 정체되게 되고, 종양이 혈관에 침범하거나 투약을 위한 혈관 내 카테터 (catheter)삽입, 또는 항암제 자체에 의한 혈관손상으로 혈관벽 손상이 일어나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종양자체 또는 종양주위 혈관에서 응고인자를 분비하거나, 종양에서 응고인자를 활성화시키는 성분을 분비하면서 과응고성향을 갖게 됩니다.
이외에도, 고령이며,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고 (심장질환, 폐질환), 다양한 약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혈전, 색전증의 위험은 더 올라가게 되지요.
정맥혈전의 증상과, 그에 대한 평가 및 검사
안타깝게도 심부정맥 혈전이 있어도 증상이 전형적이거나 특이적이지가 않습니다. 다리가 붓거나, 아프거나, 숨이 차거나 하는 증상들인데, 여러 가지 상태에서 저러한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가령 다리가 붓는 것만 보더라도, 혈관이 눌리거나, 심부전이 있거나, 신부전이 있거나, 알부민 수치가 낮거나, 수술에 의하여 림프부종이 생기거나, 갑상선 기능이 낮아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숨 찬 것도 마찬가지로 심부전이나, 만성 폐쇄성 폐 질환등으로 생길 수 있고요.
가장 흔한 증상은 비대칭적인 다리의 부종입니다. 한쪽 다리만 갑자기 붓는 경우 반드시 다리 정맥의 혈전을 의심해 보아야 하고, 의료진에게 이야기 해 주셔야 합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한쪽 다리만 붓는 경우 (사진에서는 오른족 다리)이지요. 눌렀을 때 움푹 파인 채로 일정 시간동안 회복되지 않는 함요부종 (pitting edema)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부종이 생기는 부위가 아닌 곳에 생긴 부종인 경우에는 혈전증을 강하게 의심해야 합니다. 전신 질환에 따라 잘 붓는 다리와는 다르게, 팔 같은 경우 붓는 경우가 적습니다. (유방암 수술 후 림프부종 생기는 경우는 제외) 그러니 한 쪽 팔이 갑자기 부으면 상지의 심부정맥 혈전증을 의심해야겠지요.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나 종격동 (mediastinum)의 림프절 전이, 또는 혈관 내 카테터를 가지고 있는 경우 팔에도 혈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폐동맥 색전증이 생긴 경우 갑자기 숨이 찰 수도 있고, 객혈을 하거나 흉통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정맥 혈전이 생긴 경우 복수가 갑자기 생기거나, 간기능이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도 있지요. 어쨌거나 갑자기 생긴 증상들을 담당 의사에게 이야기해 주시고, 의료진들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진찰을 자세히 해 봐야 합니다.
혈전과 색전에 대한 검사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검사로는 혈관 내 혈액응고가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한 피검사로 d-dimer검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양이 있는 것 자체로도 d-dimer수치가 올라갈 수 있어서 암환자에서는 이 검사 수치로는 어떠한 결론도 내리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d-dimer수치가 정상이라면 혈전이나 색전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할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정맥에 직접 조영제를 주사하며 X-ray를 찍는 정맥조영술이나 폐동맥조영술이 표준검사였지만,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최근에는 다른 검사들이 편리하고 검사도 정확해서 주로 시행이 됩니다.
도플러 초음파 (Doppler sonography)를 이용하여 혈관 내의 혈전을 관찰하고, 초음파 탐촉자 (probe, 검사할 때 몸에 대는 부분) 혈관이 잘 눌러지나 안 눌러지나 (안에 혈전이 있는 경우 눌러도 혈관이 잘 눌러지지 않습니다)를 검사하는 것은 매우 정확하고, 신속한 검사입니다. 하지만 골반 내의 정맥에 생긴 혈전은 관찰이 어렵고, 무릎 아래의 작은 정맥에 대해서는 검사의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폐동맥 색전증을 찾기 위해서 예전에는 핵의학적 검사 (폐환기/관류 스캔 ventilation/perfusion scan)을 시행하였지만, 최근에는 나선형 CT가 가장 많이 시행되고 정확한 검사입니다. 95%정도의 정확성으로 색전을 찾아낼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검사 시간도 몇 분이면 끝납니다.
숨이 차서 검사를 했는데 색전증이 아닌 경우, CT를 통해서 다른 원인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기흉이라던가, 흉수, 폐렴 등) 최근에는 폐색전증 뿐 아니라, 다리 정맥의 혈전을 찾기 위해서도 정맥CT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정맥혈전증의 치료
혈전증이 발견되면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는 혈전이 커지는 것을 막고, 혈전이 날아가서 색전증을 유발하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증상 (부종, 통증, 호흡곤란 등)을 조절하기 위해서 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치료는 약으로 하는 치료 (항응고제 치료)가 주된 치료입니다.
정상적인 경우, 혈관 내에서 굳은 피는 우리 몸에 존재하는 혈전을 녹이는 시스템에 의해 녹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항응고치료는 현재 있는 혈전을 녹이는 치료라기보다는, 혈전이 더 생기지 않게 하는 효과 (2차적 예방효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미 생긴 혈전은 저절로 서서히 녹게 되지요.
항응고제는 혈액응고인자의 생산을 막거나 기능을 방해하는 약으로, 혈액이 굳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이드신 분들게 쉽게 설명드릴 때는 "피를 묽게 해주는 약"이라고 설명드립니다.) 약제의 종류를 크게 나누면 정맥으로 맞는 주사약 (헤파린), 피하에 맞는 주사약 (저분자량 헤파린), 먹는 약 (와파린 또는 쿠마딘)으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새로운 약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블로그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개 혈전, 색전에 대한 초치료는 정맥으로 항응고제를 주게 되고 (헤파린), 경구 약제 (와파린)은 효과가 날 때 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헤파린과 같이 사용합니다. 최소 5일 가량은 헤파린과 같이 주게 되는데, 와파린만 단독으로 복용할 경우 초기에는 오히려 혈액응고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와파린의 용량을 맞추기가 어렵고 같이 먹는 음식이나 약제들에 의하여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효과가 일정하지 않은 큰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헤파린의 경우 정맥 주사를 지속적으로 달고 있어야 하며 혈액검사를 자주 확인해야 해서, 요새는 저분자량 헤파린 (low molecular weight heparin)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저분자량 헤파린은 피하주사로 맞게 되며, 혈액검사로 모니터링이 필요없고 헤파린 유발성 혈소판감소증이 적게 일어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가격이 비싸다는 경제적인 단점과, 반감기가 길고 해독제 효과가 헤파린에 비해 적게 나타나 출혈이 생기면 지혈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경구항응고제로 rivaroxaban과 dabigatran이란 약제가 있는데, 암환자에서의 사용은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항응고제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피가 굳는 것을 방해하는 약제이니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출혈이겠지요. 원래 경구용 항응고제는 쥐약으로도 쓰이던 약입니다. 쥐가 항응고제를 먹고 나서 내출혈이 생겨 죽게 만드는 원리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이 경구용 항응고제를 복용할 경우에도 용량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경우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항응고제 사용이 금지된 경우 (금기)는 출혈성 질환이 있을 때 (최근 뇌출혈이나 위장관 출혈), 최근에 큰 수술을 받은 경우,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등입니다.
만일 출혈 등으로 항응고제를 사용하지 못할 상황이거나, 항응고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혈전 및 색전이 생기거나, 심폐기능이 너무 나빠서 조금마한 색전에도 생명이 위험할 경우 하대정맥에 필터를 삽입하기도 합니다 (IVC filter insertion). 그러나 필터 자체로도 혈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레 사용하고 항응고제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혈전용해제를 사용해서 혈전 자체를 녹이거나, 수술을 이용하여 혈전을 제거하기도 합니다.
혈전증의 예방
위에 설명드렸다시피 암 자체로 인하여 혈전/색전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미리부터 예방하는 전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항응고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기 때문에, 현재 진료지침 상에서는 입원을 요하는 암환자에게는 혈전증 예방을 하라는 권고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 걸어다니고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는데 항암제를 맞기 위해 입원한 분께는 항응고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으며, 감염이나 기타 심각한 문제로 입원하여 주로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보내는 분들께는 예방적 항응고제가 필요합니다. 국가에서는 아직 보험으로 이를 해결해 주고 있지 않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이 예방을 해 드리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벽이 있네요
자료출처:http://blog.naver.com/ingni79/22015037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