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자의 사명감을 느끼다
대구의 가을 하늘은 오늘따라 더욱 청명했다. 산과 도심이 맞닿은 바람결에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나는 대구그랜드호텔 2층 파인홀로 향했다. 문 앞에는 ‘제7기 시민언론아카데미 개강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평생 글을 사랑해온 이들에게, 그리고 사회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이곳은 또 하나의 배움터였다.
자리에 앉자 푸른 표지의 교재가 눈에 들어왔다.
‘시민언론아카데미.’ 단순히 강좌가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자질과 사명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표 옆에 놓인 안경을 고쳐 쓰며, 나는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간 듯 마음을 다잡았다. 개강식은 정중하고도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대구경북언론인회 관계자들의 인사말 속에는 언론의 본질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언론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창구가 아닙니다. 시대를 기록하고, 사회를 이끄는 힘입니다.” 그 말이 깊이 남았다. 언론이란 결국 ‘기록의 인간학’이자, ‘공감의 사회학’이 아닐까. 진실을 향한 글 한 줄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공동체의 의식을 일깨우는 순간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가.
첫 강의가 시작되자, 대형 스크린에 ‘Legacy Media vs Digital Media’라는 문구가 떴다. 강사는 특유의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론은 기술보다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 한마디가 곧 이 강좌의 핵심 같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진실은 더 쉽게 묻히고, 거짓은 더 쉽게 번식한다. 언론은 그 혼탁한 물결 속에서 등불처럼 서 있어야 한다. 글을 쓰는 이들의 책임,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이들의 양심이야말로 언론의 뿌리라는 것을, 나는 이날 다시금 깨달았다.
강의실은 조용히 집중의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수강생들은 연륜이 깊은 문인, 시민기자, 수필가, 교사, 그리고 현직 기자까지 다양했다. 노트북을 펴는 이도, 수첩에 펜을 달그락거리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엔 한결같은 진지함이 스며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작은 기자’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며, 세상의 불공정을 마주해 온 삶. 그 모든 시간이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점심 무렵,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들었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가을 햇살은 유리잔 속에서 반짝였다. 기자란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일까, 아니면 세상을 잇는 사람일까. 언론의 본질은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일 것이다.
진실을 밝히되, 상처를 덮지 않고, 세상을 비추되, 한쪽만을 보지 않는 시선. 그런 균형 잡힌 마음이야말로 언론의 품격이 아닐까 싶었다.
두 번째 강의는 언론윤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좋은 기사는 사람을 살립니다. 그러나 무책임한 기사는 사람을 죽입니다.” 강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순간 나는 기사라는 단어를 다시 보았다. 기사는 기록의 형태이지만, 동시에 생명과 존엄을 다루는 도구였다. 언어 하나, 표현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에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 책임 앞에서 기자는 언제나 겸허해야 한다. 뒤편에서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개강식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모두가 함께 자리한 단체사진 속에는 웃음과 결의가 함께 있었다. ‘진실을 향한 한길’이라는 공통된 마음이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따뜻한 연대감을 느꼈다. 세대를 넘어, 직업을 넘어, 언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같았다.
강의가 끝나고, 강당을 나서며 복도 끝 유리창 너머로 저녁 햇살이 기울었다. 가을빛 속에서 오늘의 배움이 조용히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오늘, 기자라는 이름을 새롭게 정의했다.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언론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진심의 시작점이 바로 이 작은 아카데미였음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진실의 펜’을 쥐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진정한 기자의 사명감이란, 빛이 닿지 않는 곳에도 따뜻한 시선을 비추는 일일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언론은 기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그 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