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가
도움이 되는가?
By Dean Hays (Part
Two of Eight)
앞서
우리는 헬라어가 성경 해석에 “조명”을 주는지 공부했고 헬라어 지식이 학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자기보다 더 “헬라어 원어”에 더 정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뜯어 고치는 데 “헬라어”를 쓸 수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더 우월한 지식을 내세우는 자가 나타나면 그가 학계를 평정한다.
헬라어
지식의 등급들을 말하기 전에 필레오(phileo)와 아가페(agape)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겠다. 데이비드 넴스라는 친구가 쓴 “하나님은 아가페 사랑이시다.”라는 글에 이 단어들에 대한 학자들의 전형적인 생각이 들어 있다. 여러분은 넴스가 아가페에 대해 설명하는 그 글에서 많은 “사사로운 해석”(벧후 1:20)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성경 본문이나 논리적인 면을 고려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해석을 늘어놓고 있다.
넴스에
의하면 “아가페
사랑은 … 항상
주는 것이며 받고자 하지 않는 사랑이다.” “이것이 원초적이며 유일한 진짜 사랑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러분은 마 22:37; 막 12:30; 눅 10:27에서 명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위로자(요 14:16), 화평(요 14:27), 그리고 영생(요 17:2)을 주셨는데 만일 여러분이 주를 “유일하게 진실된 사랑”(아가페 – 마 22:37; 막 12:30; 눅 10:27)으로만 사랑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받거나 받으려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전적으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아가페 사랑은 해답을 알고 있으며, 그 문제를 인지하고 경험하는 이들과 답을 공유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백성들을 사랑하신 게 아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그의 교리를 감추기 위해 청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느 때라도 회심하지도 못하고, 그들의 죄들이 용서받지도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 4:11-12).
“아가페 사랑은 심판하지 않으며 무엇이든 영원히 포용하는 것이다.” 이 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맞는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아가페”하신다고 말씀하신 그 예수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요 3:18).
분명
주께서는 행 12:23에서 헤롯에게 “영원히 참아주지” 않으셨다. 아닌가? 혹은 행 13:11에서 요술사 엘루마에게도 참지 않으셨다. 그렇지 않은가?
“아가페 사랑은 결코 필요를 말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고(요 14:15) “사랑 받는 사도들”도 마찬가지다(요일 5:3).
“아가페 사랑은 온전한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시며(요 14:6)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딤전 3:16, 참고. 요일 4:8)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온전한 진리”는 언젠가 죄인들을 “영원한 불” 속으로(마 25:41) 던져 넣을 것이다. 요 3:16이 진리인 것 만큼이나 이것도 진리이다. 여러분은 지옥 불이 “아가페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는가?
“아가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시간이 아직 없었을 때부터 천상에 있었기에 영속적이다.” 그렇다면 내가 추측하기로 바리새인들이 “가장 높은 자리”(눅 11:43)를 탐했던 그 사랑은 변치 않고 영속적이므로 결국 그것도 “아가페” 사랑이 아닌가 싶다.
“영적인 사람에게는 아가페 사랑만이 유효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 분의 사랑이 변질되었다는 뜻이 된다. 최후의 만찬을 하던 2층 방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을 “아가페” 사랑하셨다(요 13:23). 부활 이후에 그 사랑은 “필레오” 사랑으로 다운그레이드 되었다(요 20:2). 그렇다면 부활 후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여러분은
“학자들의
상상들”이 성경과 상식을 완전히 저버렸다는 것을 이제 알았을 것이다. 데이비드 넴스는 아가페 사랑에 대해 정말 “웅변조”로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의 주장이 사실과 진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헬라어 학자들 간에 구분된 네 개의 계층이 있는 것을 말해주겠는데, 여러분이 더 숙련된 상위 등급으로 올라서면 덜 훈련된 아래 등급 학자들을 지배할 수 있다.
1단계: 스트롱의 성구 사전을 펴서 단어의 의미들을 찾아라. 누구든 스트롱 성구 사전의 헬라어를 가지고 성경을 고칠 수 있다. (당신이 더 유식한 체 하고 싶다면 영(Young)의 성구 사전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영의 성구 사전보다는 스트롱 성구 사전을 활용해서 성경을 고치려 한다.)
2단계: 더 자세한 헬라어 분석 사전을 활용해서 성경을 고쳐 나간다. 이렇게 하려면 헬라어 기본 지식이 더 많이 필요하다.
3단계: 더 전문적인 헬라어 사전을 찾는다. 잘 알려진 사전으로 BDAG lexicon이 있다. 이 사전은 Walter Bauer가 썼고 Frederick Danker가 편수했다. 이 사전의 정식 표제는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ition이다. BRAD는 일반적인 헬라어 사전보다 더 많은 단어 정의를 제공하고 어떤 단어의 한 정의와 어원을 설명하는 데 반 페이지씩 할애하곤 한다.
4단계: 여러분이 진짜 “거물” 헬라어 학자 반열에 오르고 싶으면 게르하르트 키텔의 저작들을 읽어야 한다. 키텔은 “헬라어”에 관한 열 권의 책을 썼다. 거기서는 BDAG에서 반 페이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을 한 단락씩 할애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키텔은 단어 하나를 설명하는 데 40페이지씩 기술하기도 한다. 그는 이집트, 바빌론, 라틴어, 고전 헬라어에서는 그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 헬라 철학자들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지, 교부들은 어떻게 말했는지 등을 모두 설명한다. 그는 한 단어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들을 모아 놓았다. 나는 키텔을 인용하기를 선호하는데 중급 레벨 학자들의 모든 헛소리들을 건너 뛰고 곧장 본질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발견한 사실은 모든 다른 학자들이 키텔의 말을 단순히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종 키텔은 다른 헬라어 학자들의 말에서 오류를 찾아내기도 했다.
내가
키텔의 설명에서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언급을 찾아서 보여주자면 이렇다. 이 독일의 대학자가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한번 보자: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녀간의 열정적인 사랑(솔 8:6), 친구 간의 헌신적 우애(삼상 20장), 확고하게 의를 고수함(시 45:8) 등에 적용된다. 히브리어는 헬라어 단어의 세 의미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키텔, Vol. I, pg. 38).
이것은
흥미로운 발언이다. 히브리어 단어 하나가 헬라어의 세 의미를 포괄해서 반영한다면 영어 단어 하나가 여러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것은 내가 아가페에 대해 찾고 있을 때 발견한 사실이지만 필레오에 대해 토론할 때 훨씬 적합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거기 있다.
“그러나 요 21장을 보거나, 복음서 전체를 볼 때 아가페와 필레오는 거의 동의어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짧은 절 legei auto to triton을 보면 의미가 유사하다. 이는 그것이 “세 번째”이지 “세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키텔, Vol. 9, pg. 135).
키텔은
많은 성경 교사들과 목사들이 요 21장에서 아가페와 필레오가 서로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을 뒤집고 있다. 그들이 틀린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요한복음에서 두 단어는 동의어로 쓰였다, 2) “세 번째”는 세 번째 질문했다는 말이며 같은 말씀을 세 번 반복한 것이다.
이건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성경을 뜯어고치는 학자들이 숭배하는 그들의 헬라어 최고 권위자(키텔)가 같은 학자들에게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현명한 체 하는 현대 성경 교사들과 목사들이 떠받드는 “허수아비”인 키텔이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해 설명한 마지막 발언은 이렇다.
“… 필레오의 용례는 폭넓게 보아 아가파오와 동의어로 쓰인다고 볼 수 있다”(키텔, Vol. 9, pg. 128).
가장
위대하고 박식하다는 헬라어 학자라고 하는(실제로 명석했다) 사람이 이 두 단어가 같은 뜻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동의어”). 키텔은 히틀러 편에 서서 반셈주의를 선동한 구원받지 못한 죄인으로서 지옥에 갔지만, 성경의 원어들에 대해서는 어떤 현대 헬라어 학자들도 키텔의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학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헬라어 석학이 이 두 단어에 대해 동의어라 정의한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펼쳐서 여러분에게 실제 그 단어가 동의어임을 설명했다. 다음 번에 멍청한 성경 개정자가 앞에 나타나서 여러분이 헬라어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 요 21장에서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화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고 주장하거든 크게 웃어 주기 바란다. 그는 당신의 시간만 낭비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만일 그가 듣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내 글을 인용해서 그에게 설명해 주기 바란다. 하지만 그 얼간이들은 대부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다. 여러분은 내가 “헬라어”를 공부함으로써 더 명석해졌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아니다. 나는 자국어 성경(KJV)을 읽고 지식을 얻었다. 헬라어에 의존하는 것은 종종 “진실을 은폐시키고” 순진한 사람들을 오도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여러분이 보는 “헬라어”가 정말 “헬라어 원문”인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겠다. 우리는 성경 개정자들이 근거로 삼는 “필사본 증거”에 대해 검증해 볼 것이다.
헬라어가 도움이 되는가(By Dean Hays).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