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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세평 하늘길” 트레킹 시작지점인 경북 봉화의 승부역이다. 이 역은 1999년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나라 안의 최고의 오지역으로 인기가 높아진 곳이다. 사면이 중중첩첩 산으로 에워싸인 이 역의 플랫품에는 1963년부 18년간 이곳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한 "김찬빈" 씨가 쓴 시비가 음각되어 세워져 있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맥이다.
주변이 온통 산세로 에워싸여 하늘이 세 평밖에 보이지 않는 승부역 풀랫폼에는 세 평 쉼터가 있었다. 세 평 하늘과 세 평 꽃밭과 그리고 세 평 쉼터가 있는 곳. 그곳 쉼터 공간엔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생전 낯선 행려의 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면엔 이 역사의 탄생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해온 이력의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기차는 먼 산모퉁이 푸른 강길 돌아올 때마다 육중한 바퀴로 쉼터를 흔들어 놓고, 내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한바탕 마음을 흔들어 놓곤, 산모퉁이 돌아간 텅 빈 철로 위엔, 마디마디 아련히 이어진 침목 위엔 마알간 그리움이 고인다. 그 그리움은 이내 이승의 못다한 슬픔이 된다.
승부역에서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
쉼터도 세 평인 그곳엔
첩첩산중처럼 포개어진
고단했던 삶의
궁벽했던 삶의
밑둥치에 역사驛舍는 서 있다
기차는 내 삶의 궤적을 부려놓고
참나리꽃의 몸을 흔들며 산모퉁이 돌아간다
행려의 객들이 다 떠난
텅 빈 철로 위엔
큰 산 작은 산 넘어온
마알간 그리움이 모여 서성거린다
저 철로 위 침목을 끝없이 밟고 가면
이승의 끝이라 싶은 곳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러면 내 슬픈 그리움에 닿을 수 있을까
산비탈 길에 던져진 삶의 낙차落差처럼
가슴에 내리던
하얀 겨울눈을 맨발로 밟으며
한평생 외로움을 모시적삼에 묻혀
길 떠난,
어머니의 하늘 길에 닿을 수 있을까.
내 못다한 그리움이
철로 위에 산더미 꽃처럼 쌓인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
쉼터도 세 평인 그곳에서
기차는 내 삶의 궤적을
슬픈 그리움으로 부려놓고
강물에 몸을 씻고
산의 속살을 부비며
푸른 바람 속으로 몸을 흔들며 떠났다
이순耳順을 넘긴 소년은
텅 빈 철로 위에 홀로 남아
산을 적시는 그리움과
강물을 적시는 그리움에 젖어
못 잊을 이승의 그리운 몸살을 앓고 서 있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 트레킹에서._ 2019. 08월._ 석등 정용표._
▲승부역 간이 매점.
낙동강 강물이 세 평 승부역을 적시며 휘돌아간다. 그곳 난간을 이어 붙인 곳에 간이 매점이 둥지를 틀어 오가는 행려의 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흔을 넘기신 듯한 할머니 몇 분이 음식을 장만하고 계셨다. 허공에 걸린 네모 난 메뉴판을 훎어보니 감자전, 메일전, 메밀전병, 찬치국수, 좁쌀동동주, 커피, 식혜, 맥주, 소주 등이 글씨가 눈에 들었다. 토요일 인데도 식당는 한산했다. 삶의 한 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왔을 주름 깊은 할머니의 기름 때 절은, 세 평 가계를 그냥 둘러보는 내 뒤통수에 미안함이 따라 붙는다.
▲ 낙동강 세평 트랭킹 시발점(승부역).
제 1코스 : 낙동강 세평 비경길 : 승부역-양원역 5.6km
제 2코스 : 체르마트구간 : 비동승강장∼양원역 2.2km
제 3코스 : 분천 비경길 : 양원역∼분천역 4,3km // ※ 총 12.1km : 도보 4,5시간 소요 예정
낙동강 강길을 끼고 걷는 이곳은 가호佳湖의 가경佳景이다. 낙동강의 이름은 상주의 옛 지명인 상락上洛의 동쪽에 흐르는 강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낙동강은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해 봉화와 안동 구미 대구를 휘돌아 적시며 부산을 거쳐 남해로 흘러드는 525km의 나라 안에서 가장 유장한 강줄기다. 제 1코스인 승부역에서 트래킹을 시작한다.
▲ 참나리꽃
강길을 내려 선다.
참나리꽃이 먼길 온 날 환하게 마중한다.
혼자 가는 길에 꽃단장 화사한 모습으로 행려의 객을 반겨주니 내 마음에도 꽃이 핀다.
▲ 은병대(隱屛臺)
'몸을 숨기고 병풍으로 선 바위'
깊은 골짜기로 찾아들어 몸을 감추고 병풍처럼 선 암벽. 우뚝한 바위 틈새마다 깃든 생명들을 품고 바위는 서있다. 비바람이 분 그 많은 세월, 해와 달이 뜨고 진 그 많은 시간만큼, 쪼개지고 갈라지고 무너져 내리며 허물을 벗었다. 그렇게 올곧게 남은 가슴으로 산새가 날아들고 안개가 스며들어 갈라맨 시간의 파편물로 은병대의 때가 벗겨진다.
▲ 세평 하늘길 트래킹.
이곳은 시발지점인 승부역에서 마지막코스인 분천역까지 푸른 강물과 푸른 산과 푸른 철로를 끼고 걷는 길이다.
▲구암(龜巖)
'거북 형상을 한 바위'
꽤나 멀리서도 거북의 형상임을 알아볼 수 있는 바위가 있다. 구암(龜巖)이다. 거북은 아득한 산 너머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신선들의 세상이다. 거북은 원래 두꺼비로 달에 살고 있어서 월섬(月蟾)이라 불렸다. 가끔씩 선계로 유람을 다니며 선녀들을 놀라게 하거나 장난을 치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신선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설홍선녀를 꾀여 인간세상으로 보낸다. 그 죄로 거북바위가 되어 이 세상에 남게 되었지만 자신이 살던 달과 선계를 잊지 못하고 곤륜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관련 설화. 제5선경. 연인봉관 선약소)
▲ 제 1 출렁다리
▲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인봉(戀人峰)과 선약소(仙藥沼)
'한쌍의 아름다운 봉우리'
설홍선녀와 남달(남다른 아이)은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남달이 설홍의 손을 잡고 달빛이 놓은 길을 따라 선계로 올라간 곳이 이곳 연인봉이다. 선계로 간 설홍과 남달은 일 년에 한 번, 둘의 추억이 깃든 소(沼)를 찾아 함께 목욕하고 연인봉에 올라 서로의 몸을 닦아준 후, 다시 선계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소를 선약소(선녀와 약초꾼의 소)라 불렀고 설홍과 남달이 몸을 닦아주던 곳을 연인봉이라 불렀다. 그 후, 연인봉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약을 나눴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선문(仙門)
'선계로 가는 문'
양쪽의 암벽이 미닫이문처럼 열려 있는 곳이다. 저 멀리 선계의 산인 곤륜이 보인다. 선문은 그 곤륜으로 아득한 이상향으로 가는 문이다. 물을 건너 물을 열어 산으로 가는 길이고 하늘로 가는 길이며 비 내린 뒤 안개가 가는 길이다. 신선이 되고가 하는 자는 선문을 열고 곤륜으로 가면 된다. 생과 삶을 살면서 삶과 생에서 벗어나 살아가고픈 꿈. 선문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는 누구에게 있는가?
설숲 길을 지난다. 8월의 칡꽃이 한창 이어서 강바람 따라 강한 칡꽃향기가 비등한다.
▲ 양원역(兩院驛)
'최초의 민자 역사가 자리 잡은 오지마을'
오지의 산골. 소박하기 그지없는 역사다. 역사라기보다는 농기구를 보관하는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로 비친다. 그리고 우측 전봇대 맞은편엔 당시의 재래식 화장실이 먼 전설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봉화군의 원곡마을과 울진군의 원곡마을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마을로 1988년 교통이 없던 시절 2개의 산골오지 마을 주민들이 대통령에게 간이 역사를 지어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2개의 원자를 따서 양원이라 불렸다. 양원은 이렇게 온 하늘과 산과 물과 길로 행려의 객에게 말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을 생각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라고 말이다.
▲ 양원역(兩院驛) 플랫폼의 풍경
마을 할머니들이 손수 농사 지어 수확한 농산물을 봉지봉지 담아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배낭을 메고 할머니의 난전 앞을 지나가기가 부담스러웠다. 도시 냄새를 묻히고 이곳까지 왔으면 두툼한 지갑을 열어 안부의 인사라도 놓고 가는 게 저 할머니들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저분들에게 정을 주고 마음을 주는 일일 터. 하지만 도시의 마트에 깔끔하게 진열된 상품에 익숙해진 터여서 산지의 산물을 배낭에 담아 먼길 가야하는 것도 다소 부담스러워, 할머들니의 난전을 피해서 건너편 양원 역사를 둘러본다.
▲ 양원역(兩院驛) 안 모습
오지의 산골에 소박한 둥지를 튼 양원역의 산자락에 눈물 접히듯 소박하다. 녹슨 난로와 나부 벤치 그리고 벽면엔 원형벽시계와 기차 시간표와 역사의 이력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인 이곳 양원역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과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 사이에 있어 양원역으로 이름 지었다. 기차역이 없어 승부역에서 내려 걸어가던 중 여러 사고가 나자 주민들이 대통령께 탄원서를 제출해 1988년 간이역 허가를 받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작은 시골 간이역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 발을 걷고 강길 건너는 모습.
강물이 넘쳐 발을 걷고 강길을 건너고 있다. 무지막지한 폭염은 정수리로 꽂히는데, 낙동강 강물은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저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서 몸을 담그면 신선이 부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그랬었다.
▲ 용골쉼터
낙동강 세평 하늘길에선 유일한 쉼터이다. 출발할 때 이곳에서 냉커피에 얼음 띄워 목을 축이며 땀을 식혀야겠다 생각하였으나, 복중 더위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날 내가 만난 도상의 트래커들은 모두 십여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소수의 그들을 위해서 이 폭염 속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진종일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차라리 긴 고통이리라.
▲ 체르마트 길
비동(肥洞) 승강장에서 양원역까지 체르마트길이 시작된다. 이 트래킹의 종착지점인 분천역과 스위의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체르마트길이 탄생되었나 보다. 두 해 전 스위스 체르마트를 난생 처음으로 다녀왔다. 그곳의 다운타운엔 100년 이상 된 발레 지방의 전통 가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집집마다 앞뜰엔 꽃을 불러 둘이고, 별을 불러 들였다. 골목마다 바람이 지나갈 때면 희고 노란 보라색의 작은 꽃들의 향기가 골목길을 덮었으며, 바람이 세계 불면 마을 전체가 꽃향기에 취해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풍경 속으로 성당의 종소리가 스며들 듯 평화롭게 내려앉았다. 나는 지상의 파라다이스 같은 그곳에 반했다. “세상에 이런 곳이....”하며 나는 몇 번이나 탄복했다. 난생 처음 만난 그곳의 목가적 평화로운 풍광은 인간의 세상이 아닌 꿈속을 더듬는 어떤 느낌마저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르마트 길 역시 먼 훗날 이곳을 찾는 나처럼 낯선 행려의 객에게 스위스의 체르마트처럼 꿈같은 풍광을 안겨 주기를 기원해 본다.
▲ 비동(肥洞) 승강장
▲ 비동(肥洞)
'마음이 살찌는 마을'
비곡을 그리면 산길로 걷다 내리면 비동에 이른다. 비동의 비는 살찔 비(肥)이다. 전해지기로는 이 산골에 먹거리가 많아서 살이 찌는 동네이기 때문에 비동(肥洞)이라고 하였다. 비곡에서 비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철교를 건너야 한다. 지금까지 흘러온 낙동강을 가로 지는 철교의 육중한 소리를 들으며 건너면 바로 비동이라는 작은 푯말 하나를 만나게 된다. 간이역도 역무원도 없는 자그마한 텅 빈 승강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푯말. 아담하다 못해 허하다. 비동은 이렇게 허함(비어있음)으로 살쪄있다. 욕심을 줄이고 비동의 소박한 절경을 담아 가심이 어떨까 싶다.
월원(月園)
'달의 정원'
월원은 넓은 거울 같은 영지(影池: 그림자 연못)와 영지에 반쯤 잠긴 와탑암(臥塔巖: 옆으로 누운 탑처럼 생긴 바위)이 영지에는 하늘 길을 걷는 달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비경길을 걷는 사람과 하늘 길을 걷는 달이 하나가 되는 곳이 이곳이다. 옛날 이 마을에 '달을 먹고 산다'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달을 사랑한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밥보다 달을 더 좋아한 그를 사람들은 달바보[월치(月癡: 달에 미친 사람)] 라고 불렀다. 월치가 사랑했던 네 가지 달이 있다. 연월(戀月: 그리움을 품은 달), 소월(笑月: 웃음을 머금은 달), 누월(漏月: 눈물을 흘리는 달), 고월(孤月: 외로운 달)이다.
▲ 와유곡(臥遊谷)
'가만히 누워 마음으로 유람하는 골짜기'
와유는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모습을 그리며 노닒이다. 그저 마음을 보내보는 것이다. 그런데 모자란다. 마음을 보내기보다 산과 물을, 산수를 품은 하늘과 땅을, 하늘과 땅의 사이를 채운 것들을 가져오고 싶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 그저 그 산과 나무와 숲과 새와 물과 소리와 바람과 구름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있음만 품은 그림이면 된다. 이제 되었다. 그림이 그려졌으니 벽에 걸어두고 눈을 감고 심안(心眼)을 열고 자유롭게 물의 흐름 아래로 위로 허(虛)와 공(空)을 노닌다.
▲ 미인, 무한한 사랑의 금마타리꽃
트래킹 종착역 가까이에서 황금빛으로 치장한 금마타리꽃이 내 지친 행려의 길을 마중한다. 샛노란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미인이 오지의 산을 넘고 넘어 강을 건너온 내게 "정말 수고했어"라며, 황금빛 꽃다발을 한아름 내민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싶어, 한참을 마주 보며 애상에 젖을 때, 하얀 손 수줍게 흔들던 옛 청춘의 그리움이 송이송이 일어 그 푸른 청춘 시절로 날 데러간다. 금마타리의 꽃말은 "미인, 무한한 사랑"이다. 미인과의 무한한 사랑, 이 얼마나 꿈 같은 사랑의 꽃말일까. 곱게 치장하여 정겨운 마음 가득 날 마중한 미인과 "안녕~. 안녕~." 작별의 손을 흔들며, 종착지 분천역으로 향한다. 더위에 지친 바걸음이 미인의 살가운 인사를 받으니 생기가 돈다.
분천역
이윽고 분천역이다. 한여름 뙤약볕이 정수리고 내리 꽂히던 세평 하늘길 종착지점이다. 거리상으로 12.1km. 그곳에 버들나무가지가 휘휘 늘어져 그늘을 드리우고, 나무 밑 벤치엔 몇 몇 중장년의 낯선 이들이 쉬고 있었다. 이곳은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의 출발점으로,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2014년 12월 분천역 일대를 산타마을로 조성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눈사람 등이 어울려 이국적 내음을 풍긴다.
▲ 분천역 산타마을 우체국
분천리 마을로 접어들었을 때, 어느 집 담장에 칸나꽃이 붉게 피어 있었다. 몸을 녹이는 그 붉은 빛이 산타마을 우체국의 붉은색과 같았다. 그 붉은 칸나를 가만히 보노라니 숨이 막힐 듯 정수리로 쏟아지는 폭염만치 뜨거웠다. 자신의 온 몸을 녹이는 그 뜨거운 정염이 첫사랑처럼 지순한 빛으로 다가왔다.
▲분천리 마을 풍경
종착지에 도착하니 허기가 돌았다. 역사 밑 마을에서 얼음 둥둥 띄운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나서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 옛날 시골장터 국밥집의 속살을 보는 듯 소담했다. 콩국수의 양이 많아서 반은 남기고, 얼음 뜬 시원한 콩국물로 허기를 채우니 든든했다. 그곳 분천리에도 예전엔 5일 장이 섰다 한다. 이 중중첩첩 산중 마을을 보니 궁핍하게 살면서 가난을 가난으로 여길 줄도 모르고 성의껏 살았던 지난 삶들이 보이는 듯했다.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 이마와 어깨를 다정히 부비는 모습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졌다. 그 마을길 걸어나오면서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으로 남겨논 붉은 홍씨가 떠올랐다. 앙상한 가지 끝에 낙관처럼 매달려 석양빛을 받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그리워졌다. 그랬었다. 우리 도시는 모든 풍요로움과 화려함과 모든 삭막함과 비참함과 비애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우리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떠도는 영혼들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때때로 의식의 맨밑바닥에선 언젠가는 밀레의 이삭 줍는 풍경으로 돌아가야 하리라는 생각이 그리움처럼 물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 트레킹에서._석등 정용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