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을 머리에 감은 여자'
나는 죽음이 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여 다음 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쪼매(좀 많이) 예쁘면서도 많이 건강하고
잡 밖을 좋아하는 밝은 여자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현재는 안 예쁘고 안 건강하고
집에 있기 좋아하는 안 밝은 여자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뻐지기 위한 노력을 1도 하지 않는 언행불일치)
직업은 도서관에 근무하는 정도가 나에게 맞을 것 같고
퇴근 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림은 쓰레기(?)만 쌓이고 돈이 드니까
글을 쓰는 게 가성비 측면에서도 나은듯하다.
강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택에 살아도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는 강아지가 무섭고 주택에 사는 것도 무섭다.
요즘은 나만 강아지가 없는 것 같다.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리 없겠지만
예전에는 좀 이뻐 보이고 싶어
가끔 분홍색 플라스틱 헤어롤을 머리에 감고 잤다.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굵은 롤이 만들어졌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직장으로 뛰어가곤 했다.
지금도 분홍색 플라스틱 헤어롤을 가지고 있지만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쌩머리카락이며 어깨까지 넘치면 내가 머리를 자른다.
그리고 목에 닿는 머리카락 한 올도 설가셔서
삔과 고무줄을 이용해 거의 야무지게 틀어 올리고 있다.
최근에 머리 말리는 것도 어쩐지 힘들어서
성능이 좋은 드라이기를 구입했는데
신세계라는 다이슨 드라이기를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헉, 너무 비싸서 양심상 찔려서 사질 못했다.
저렴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좋은 드라이기도 못 쓰셨지... 하면서
엄마는 짧은 펌이거나 커트 머리였으니
나랑 상황이 다르긴 하다. ㅎㅎ
앞으로 헤어롤을 안 쓸 것 같은데
버릴까 말까 쪼매 고민하고 있다.
저장강박증 정도는 아니지만
나에게 한 번 왔던 물건은 좀처럼 버리기가 힘들다.
당근이 있어서 자잘한 것들을 좀 비워냈지만
뭘 버리지 못하는 것도 불안 강박 때문인 것 같아서
나의 타고난 성향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은 도무지, 좀처럼 이뻐할 수가 없는 나로구나.
2022.07. 캔버스에 아크릴. 16*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