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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호 성령
Living the Life of the Lifegiver 에서 발췌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마가복음 4:26~29.
여기서 “추수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며, “낫을 대는” 농부는 그리스도 자신을 말한다. 마지막 큰 날에 땅의 곡식을 거두실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씨를 뿌리는 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한 말을 볼 때, 우리는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일을 맡기셨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 씨 자체에는 발아시키는 요소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씨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싹이 나지 않는다. 씨를 잘 발아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최선의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즉, 먼저 사람이 땅을 갈고 거기에 비료를 준 후에 씨를 뿌여야 한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기이하신 능력과 지혜를 통하여 수확할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의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씨에는 생명이 있지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역사되지 않으면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다. 마른 땅에 비를 내려서 수분을 공급해야 하며, 태양이 온기를 주어야 하고, 천둥과 번개가 땅에 묻힌 씨에 전기를 통해 주어야 한다. 창조주께서 넣어주신 생명은 오직 창조주만이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마음밭을 잘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씨 안에 숨겨진 생명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선 영역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비록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그 영혼을 소생시키고 죄인의 입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활기를 주는 것은 오직 성령께서만이 할 수 있는 역사이다. 씨의 발아와 성장에 관한 신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다만 하나님께서 그 곡식을 성장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수많은 씨를 뿌리기만 하고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씨들을 성장시키고 수확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들은 눈물과 희생으로 씨앗을 계속적으로 뿌려야 하며, 추수 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수백배의 수확을 밭에서 거두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라.” 시편 126:6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헌신하여 씨를 뿌릴 때, 그는 어떤 것이 잘 되고 어떤 것이 잘 안될지를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한 후에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좋은 씨가 뿌려졌을지라도, 한동안은 세속적이고 냉담하며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전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얼마 후에 하나님의 영이 그 영혼의 마음에 들어가시면, 드디어 씨는 싹을 내고 성장하여 결국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맺는 과정과 그 비결
씨가 눈을 트는 것은 영적 생애의 시작을 표상하고, 곡식의 성장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의미한다. 천연계와 마찬가지로 영적 은혜의 세계에 있어서도 성장이 없는 생명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것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곡식은 성장하든지 아니면 성장을 멈추고 말라서 죽든지 둘 중에 한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곡식이 아무런 소리 없이 눈에 잘 뜨이지도 않게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발전도 그러한 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루함을 달래고 어떤 특별한 이적과 흥분된 감정을 찾기 위해서 참된 복음의 길에서 떠나간다. 참된 복음의 단순성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마다 거짓 복음을 찾아나서게 된다.
곡식은 그 성장의 매 단계마다 완전하다. 씨에서 금방 나온 이삭은 그 나름대로 완전한 성장을 한 것이고, 싹이 나고 잎이 나오면 그것 역시 그 단계에서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매 단계마다 완전한 성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발전에 있어서도, 싹이 나와야 할 때는 싹이 나와야 하며, 이삭이 자라야 할 때에는 이삭이 자라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빛에 따라서 순종하며 전진하는 생애야말로 매 단계마다 완전한 성장을 거듭하는 생애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빛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처럼, 그에 따르는 우리의 거룩한 생애도 평생을 통해서 향상을 거듭해야 한다. 우리에게 많은 빛이 주어지면 질수록, 우리는 거룩한 생애에 대한 보다 밝은 이해를 가질 수 있으며, 보다 깊은 영적 경험을 가지게 된다. 또한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증가됨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강력한 믿음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곡식은 하나님께서 그것의 성장을 위하여 준비하신 것들을 섭취함으로써 자라난다. 곡식은 그 뿌리를 땅속에 뻗고, 햇빛과 이슬을 흡수하며, 공기를 호흡함으로써 성장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능력과 협력함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자신의 속절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깊이 통감하는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사모하게 된다. 곡식이 뿌리를 땅 속에 박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곡식이 햇빛과 이슬과 비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 는 것이다(스가랴 4:6).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면, 그분께서는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 실 것이다(호세아 6:3).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치료하는 광선으로 임하실 것이며, 우리는 신선한 백합화처럼 피어날 것이다.
곡식이 자라나는 성장 과정은 “처음에는 싹이 나며 다음에는 이삭이 되고 그 후에는 이삭이 완전한 곡식을 이루게 된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이삭을 가꾸는 유일한 목적은 곡식을 얻기 위함이다. 농부는 추수를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씨를 뿌리고 이삭을 가꾸어 나간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시는 농부께서도 당신의 수고와 희생에 대한 댓가로서 수확물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당신의 성품을 재현시키기 위해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의 유일한 목적 또한 열매 맺는 것이 되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이 먼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이웃과 다른 사람들의 열매 맺는 일을 도와 주어야 한다.
씨가 싹을 내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주기 위함이다(이사야 55:10).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않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사는 생애에는 자라남이 없고, 따라서 열매를 맺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와 희생을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잊어버려야 한다. 어두움과 부정적인 것들을 말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생각하라. 자기 앞에 주어진 모든 의무들에 힘쓰면서,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지혜롭게 그 사업을 수행하라.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기심 없는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자라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 가운데 맺힐 것이다. 그대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 질 것이며, 신념은 더욱 확고하여 질 것이고, 그대의 사랑은 더욱 온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더욱 더 많이 반사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다(갈라디아 5:22). 이 열매를 맺는 자는 결코 멸망할 수 없으며, 그 종류대로 풍성한 수확을 내어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품성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 풍성한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기이하신 역사를 감탄하게 될 것이다. 열매 맺은 그리스도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품성이 재현되기를 기다리신다. 그분께서는 재림의 때에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그리스도인들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오직 풍성한 열매를 맺는 생애를 살았던 자들만이 추수되어 하늘 곡간에 들여지게 될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지만,
그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지만,
이웃과 형제를 험담하고 어리석은 농담을 즐긴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날마다 기도하지만,
가정에서 불친절하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분께서 주시는 명령과 희생을 회피한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조그만 일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안절부절 한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생활의 염려로 인하여 낙망과 불평을 토해낸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녀를 하나님께 바쳤다고 말하지만,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자녀를 교육시킨다면
그것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32)
The Pathway to the Health & Healing 에서 발췌
하나님의 훈련 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로 학생들을 초청하고 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그리스도께서는“다 내게로 와서 배우라”라고 초청하고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피곤하고 지쳐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훈련 학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영혼들을 모집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멍에를 가볍고 쉽게 질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쉼을 소유할 수 있게 훈련시키는 학교이다.
하나님의 훈련 학교는 고난과 역경과 오해와 슬픔으로 가득차 있는 이 세상을 기쁨과 보람과 확신으로 걸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 준다. 그렇다면 그 훈련 학교의 입학생들은 어떤 훈련 과정을 거치게 되며,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가?
훈련 학교의 목적
순결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조용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생애는 가장 유창한 설교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감화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사람들을 확신시키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생애가 자신의 가르침과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우리의 영향력은 우리 자신의 품성과 날마다의 생애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있는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증거하기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애가 그분의 은혜에 의해서 변화되는 경험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영혼이 그 복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해서만이 세상 사람들의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가 급히 흐르는 급류 속에서 죄인들을 건져내려면, 우리 자신의 발이 만세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시는 겉으로 달고 다니는 어떤 표식이 아니며,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거나, 십자가형 목고리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써 자연스럽고 풍요롭게 맺히는 성품의 열매들이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 죄인의 성품이 변화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이야말로,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죄인들을 구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입증하는 증거이다.
사람들은 어떤 착한 사람을 볼 때에 흔히“저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모든 면에 있어서 유순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만을 행하는 사람들을 가르켜서“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으로 사람의 성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자 가운데도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칭송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성품이 좋은 것같은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성경이 말하는 좋은 성품이란 어떤 성품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품을 만한다. 성령께서 마음에 호소하실 때에 자신의 뜻과 편견을 버리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품성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무엇임을 정확하게 깨달았을 때에 그것을 짐짓 모른 척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생애를 개혁하는 성품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착하고 어진 마음”이다. 하늘이 인정하는 성품은 다니엘과 같은 성품이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타협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꿋꿋하게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품성이다. 또한 성경이 요구하는 원칙과 신앙에 굳건하게 설 뿐 아니라, 온유하고 친절하며 겸손하고 자비로운 품성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 하나님의 훈련 학교이다.
훈련 학교의 교육 과정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과 이웃과 세상에게 아름다운 감화를 끼치는데에는 매 발걸음마다 좁은 길을 걷는 자아 희생의 정신이 요구된다.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믿음으로 부인하고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길을 걷는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철저한 신뢰가 필요하다.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일지라도, 자신이 이전에 결코 경험했던적이 없는 장애물과 시련을 당하게 되면 당황하고 실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훈련시키시고, 어떻게 교육시키실 것인가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써, 그들이 그런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훈련 과정인 시련과 난관을 허락하실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자극하는 시련과 시험에 처하게 되면, 믿음으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감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끼치기 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결점을 드러내면서 불평과 불만을 토해내곤 한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했던 것처럼,“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면,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의심의 말을 내뱉는다.
우리가 우리의 눈을 가리운 휘장을 걷어치우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볼 수 있다면, 시련과 장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될 것이다. 시련과 난관은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 방법이며,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성품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훨씬 더 정확하게 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훈련시켜야 최선의 능력과 성품을 배양할 수 있는지를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사람들이 각기 다른 위치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한채 감추어 졌던 결함들을 자신의 성품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깨닫고, 그것을 교정하여 당신의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하신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넘어지고 자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족과 결함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 때때로 우리를 엄습하는 고난의 불은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은, 그분께서 변화시키기를 기대하는 어떤 것이 우리의 성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예수께서는 그 영혼 속에서 귀한 가능성을 발견하신다. 그분께서 시련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는, 우리 속에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뜻대로 형체를 만든다. 그는 흙을 이기고 또 빚는다. 그는 그것을 떼어서 찧고 눌러서 뭉친다. 그리고 그것을 물로 적시고 다시 말리면서 원하는 모양의 질그릇으로 만들어 간다. 결국에는 토기를 굽는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낸다. 예수께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빚어 만드신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완전히 내맡겨지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빚어가시는 그분의 손을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토기장이의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토기장이이신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뜻과 지혜에 따라 아름답게 꼴지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고난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례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12~13
비록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선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 주어진 환경 내에서, 우리의 손이 미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무부터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대신에,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웃과 부모와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는 사람이 어떻게 멀리 오지에 가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가정 안에서 보고,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꼭 배워야 할 경험의 노래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한가지 노래를 배우게 되기를 원하신다: “새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고자 애쓰는 주인이 있었다. 밝은 대낮에, 그리고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오는 때에는, 주인이 새장 안에 있는 새에게 아무리 노래를 가르쳐 주고자 할지라도 새는 정신을 집중해서 노래를 배울 수 없었다. 그런 경우, 대개 새는 노래의 이곳 저곳을 조금씩 떼어내어 짤막하게 부르는 흉내를 낼 수는 있었지만, 결코 노래의 전 곡조를 완전하게 부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주인이 새장을 천으로 덮어서 어둡게 만들고, 그 새가 주인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넣어 두었더니, 주인이 요구하는대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는 주인이 가르쳐 주는 노래를 완전한 곡조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주인은 그 새를 밝은 곳으로 내어 놓았더니, 새는 밝은 빛이 있고 여러가지 소음이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배운 노래를 끝까지 아름답게 부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집중될 수 있는 그러한 장소와 환경에서 훈련시키길 원하신다. 그러한 곳에서 우리에게 경험의 노래를 가르치기를 원하신다. 이기적인 경쟁과 세속적인 유혹들이 항상 눈에 보이는 환경을 떠나서 한적한 자연 환경 속에 우리의 가정을 두기를 원하신다. 그러한 곳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가르쳐 주시는 경험의 노래를 보다 집중적으로 잘 배울 수 있다. 그러한 곳에서 가족은 하나로 잘 연합될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노래를 가장 먼저 불러야 할 장소는 가정이다. 우리가 가정 안에서 가족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웃과 교회와 사회에 내보내셔서 보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 과정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뉘어 진다. 어떤 사람은 고난과 시험의 교육 과정을 통과하면서 불평꾼이 되고, 어떤 사람은 동일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찬송하는 감사의 노래를 배우게 된다. 동일한 훈련 과정을 통과하면서, 한 종류는 하나님의 노래를 배우고, 다른 한 종류는 사단의 노래를 배운다. 한 종류는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고, 다른 한 종류는 사단의 성품을 닮아서 나온다. 하나님의 훈련학교는 학생들의 훈련을 위해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잘익어서 수확할 수 있는 알곡과, 불에 태워버려야 할 가라지로 정확하게 갈라내는 역할도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우리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때때로 우리 생각에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계획을 버리는 것이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최선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비록 부족한 점이 많을지라도 자기 자신과 소유를 당신께 겸손한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들을 끝까지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어떤 것을 바치고 희생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헌신하라는 명령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장애와 짐들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에 아무리 좋아보이는 것일지라도, 그러한 것들을 버리라는 하나님의 요구 속에는 우리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꾀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해야 한다. 이 세상의 법칙은 “끌어 모으라. 더 많이 쌓아놓라”이지만,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하늘의 법칙은 “주라. 더 많이 나누어 주라” 이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는 자아 희생의 법칙을 성경에 기록해 두신 이유는, 그 법칙에 따르는 순종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이고 죗된 습관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가서야 비로서,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케 했던 모든 일들의 신비가 벗겨질 것이다. 우리가 드렸던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던 것과 우리의 소원이 좌절당했던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되었던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영원토록 찬양하게 될 것이다.
마가렛 데이비스
혹시, 자신은 이미 잃어버린 바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낙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새롭고 깨끗한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 또한 공급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발견함으로서, 그분의 뜻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12,1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강제적으로 이루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에 있어서,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이성과 양심 속에서 말씀해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겠는가? 또한 우리가 그분의 진리를 무시하거나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협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구원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요.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셨습니다. 그대는 그저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교회에서 점점 더 이러한 소리를 많이 듣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선택과 결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 양심에 호소하실 때, 우리는 스스로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회개를 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속에는 인간인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결심해 주시거나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대신 해주지 않으신다. 물론,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이성과 양심 속에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결심케 하시며, 그분께 우리의 생애를 바치도록 호소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의 헌신과 결심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하나님과 사단 중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대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당신의 뜻과 계획에 굴복시키도록 호소하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것을 결심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헌신을 받으시고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마음 속에서 변화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서 모든 생각과 감정은 아름답고 고상하게 변화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의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우리의 선택과 결심 자체에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과 결심을 취하여서 우리의 마음과 생애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 놓으실 수 있다.
사람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협력할 때, 그것은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우리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굴복할 때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게 된다. 그 때,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능력에 의해서 채워진 영혼은 사단의 어떠한 공격 앞에도 함락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두 세력의 투쟁 사이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과 악의 쟁투이다. 우리 모두는 그 두 세력 중의 어느 한편에 속해 있다. 흑암의 왕자인 마귀의 세력에 가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를 섬기기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단지, 빛의 왕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등한히 하기만 하면 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계획에 전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악에 대한 유일한 방어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영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어서 성령의 음성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강력한 성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나타내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을 의미한다. 다음에 나오는 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것에 대하여 나타내는 우리의 반응을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아가타 트레쉬 의사
동맥 경화(athero-sclerosis)라는 말은 두개의 그리스어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동맥 경화라는 단어 앞부분인 “athero"에는 부드럽다는 뜻이 담겨 있고, 뒷부분인 “sclero”에는 단단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동맥 경화증이라는 이름은 이 질병이 혈관 내에 부드러운 찌꺼기가 쌓임으로써 시작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단단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부쳐졌다. 일단 혈관 내에 쌓인 찌꺼기는 점차적으로 커져서 혈관의 벽을 두껍게 만들고, 그 결과로 인하여 혈액이 흐를 수 있는 혈관의 단면적을 축소시키게 된다. 혈관에 쌓이는 찌꺼기를 분석해 보면, 콜레스테롤, 지방성 단백질, 지방산, 칼슘, 섬유성 반흔 조직 등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혈관에 쌓이는 이러한 찌꺼기들은 결과적으로 혈관벽의 탄력성을 빼앗아 간다.
만일 찌꺼기에 의해서 좁혀진 부분이 혈액의 작은 덩어리에 의해서 막혀서 심장으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심장마비가 일어나게 된다. 또한 찌꺼기에 의해서 두뇌로 흘러가는 혈액의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는 뇌일혈(stroke)이 일어나게 된다.
혈관에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대부분은 콜레스테롤이 수치가 높다. 날마다 고기와 계란과 우유를 먹는 사람들의 경우, 800~1000mg의 콜레스테롤을 받아들이게 된다. 단 한개의 계란에도 약 250mg의 콜레스테롤이 함유되어 있다. 식품을 통하여 섭취하는 콜레스테롤의 총량과 혈중 콜레스테롤의 수치는 일반적으로 비례한다.
포화 지방을 섭취하면, 혈청 내의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지만, 복합 불포화 지방을 섭취하면, 혈청 내의 콜레스테롤이 감소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동물성 지방은 포화 지방이며, 식물성 지방 가운데서는 예외적으로 코코넛 오일이 포화 지방에 속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식물성 기름은 복합 불포화 지방에 속한다.
동맥경화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듦에 따라서 생기게 되는 퇴행성 질병으로 알려졌지만, 근래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후 일년생 아기의 혈관에서도 지방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학자들은 신생아에게 모유 대신에 소의 젖을 먹이는 것이 아기의 혈관에서 지방의 축적 현상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동맥경화는 혈관에 나타나는 질병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질병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혈관에 생기는 질병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혈관이 경화되는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동맥경화 현상은 일반적으로 주요 혈관에서 찌꺼기가 축적됨으로써 나타나는데, 혈관이 경화되는 현상이 팔과 발에 일어났을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경화 현상이 신체의 다른 곳에도 있다고 보아야 된다. 팔보다는 발의 혈관이 경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혈관이 경화되면, 혈관이 좁아지게 되고, 따라서 혈액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동맥경화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요소로는 콜레스테롤의 상승, 트라이글리세라이드의 상승, 고지방식, 흡연, 비만, 감정적 스트레스, 운동부족, 그리고 당뇨와 고혈압과 같은 질병 등이 있다. 에스트로젠과 몇몇 홀몬은 동맥경화에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에스트로젠은 동맥 경화가 발전되는 속도를 늦추어 준다. 동맥경화에 있어서, 유전적인 인자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맥경화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질병으로 대두되고 있다. 60세에서 70세 사이의 사망자 중의 50% 이상은 그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동맥경화 증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심장마비나 뇌일혈은 동맥경화에 의해서 가장 많이 초래되는 문제들이다. 일반적으로 동맥경화의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걸을 때에 간헐적으로 다리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천연 치료법
1. 설탕은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높임으로써, 동맥 경화성 심장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는 식품이다. 자당(sucrose)과 과당(fructose)도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식품으로 분류된다.
2. 동물성 단백질은 심장혈관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과 매우 깊은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3. 과일이나 콩과 식물, 채소류의 섬유질은 혈중 지방을 낮추어 주며, 담즙산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혈중 지방을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 밀기울(wheat bran)에 있는 섬유질과 몇몇 섬유질은 과일, 채소, 콩과 식물의 섬유질만큼 효과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 토끼에게 마늘에서 뽑은 기름을 섭취시킨 결과, 혈관내의 지방 소립자 분포가 감소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양파도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5. 실험을 한 결과, 피넛 기름과 코코넛 기름은 식물성 기름임에도 불구하고,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식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동물성 기름은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식물성 기름은 혈관을 경화시키지는 않지만 그 섭취량을 제한해야 한다.
6. 정제된 설탕과 흰밀가루를 쥐에게 먹였더니, 동맥경화증이 일어나는 것이 발견되었다. 설탕의 섭취를 삼가하고 통밀로 만든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
7. 올리브 기름은 콜레스테롤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 혈관성 질병을 가지고 있는 10명의 환자들에게 4개월 동안 올리브 기름으로 조리한 음식을 섭취시킨 결과, 혈중 지방이 평균 26% 저하되었으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14% 저하되었다. 유리 지방을 함유하지 않은 식단이 대부분의 혈관성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식단이 된다.
8. 가지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가지는 복합 콜레스테롤을 파괴하여 그것을 소화기관을 통하여 배출시킨다.
9.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진 8명의 남자에게 하루에 반 컵의 마른 콩을 섭취시킨 결과, 3주 후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20% 저하되었다. 흥미있는 사실은,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인 LDH(low density lipoproteins)는 저하되었는데,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high density lipoproteins)의 양은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 엄격하게 채식으로 식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식사법이다. 철저하게 채식으로만 식사하는 사람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육식가들이나 채식을 하지만 우유나 계란을 먹는 사람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낮다.
11. 많은 사람들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써, 무지방 우유(non-fat milk)를 마시지만, 위스칸신 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지방 우유 역시 실제적으로는 혈중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12. 크롬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인 토끼에게 실험을 한 결과, 크롬이 토끼의 혈관 내에 있는 찌꺼기를 50% 이상 감소시켰다. 브류얼스 이스트(Brewer? yeast) 그리고 통밀이나 현미 같이 가공처리하지 않은 곡류가 크롬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원천들이다.
13. 헐리웃 메디칼 센타의 책임자로 있는 폴 롼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지방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저녁 식사는 동맥경화에 크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녁식사에서 섭취한 많은 양의 동물성 지방은 주로 잠을 자는 밤시간에 소화가 진행되는데, 밤에는 전체적으로 신진대사의 속도가 늦어지고 혈액의 순환속도가 느려진다. 이러한 상태에서 콜레스테롤은 보다 쉽게 혈관에 축적될 수 있다. 저지방의 식품으로 꾸며진 소량의 저녁식사를 잠자리에 들기 몇시간 전에 일찍 마치는 것이 밤 시간 동안에 올라갈 수 있는 혈중 지방의 양을 방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가장 이상적인 저녁식사는 과일과 통밀빵을 소량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14. 방사선이나 X레이에 노출되는 것은 동맥경화를 조기에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15. 걷기 운동과 같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은, 환자들의 기분을 훨씬 좋게 만들어 준다. 운동은 팔다리의 굴절부를 지나는 혈액의 흐름을 향상시켜 준다.
16. 체중이 초과된 환자들은 체중을 정상이나 정상보다 약간 낮게 조절해야 한다. 정상보다 20% 가량 초과한 체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맥경화의 위험성은 훨씬 높아진다.
17. 흡연은 피부층을 도는 혈액의 속도를 감소시키며, 혈관에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흡연은 혈중 지방을 증가시키며, 혈중 지방의 대사작용을 저해한다. 담배를 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HDL(유익한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당뇨병 환자들이 담배를 피울 경우, 동맥경화가 담배를 피지 않는 당뇨병 환자들보다 두배나 빨리 악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8. 다리의 혈액 순환이 느려질 경우, 치료가 지연될 수 있기 때문에 다리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발에 적당하게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하며, 반드시 따뜻한 물로 발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고, 항상 발을 잘 말려야 한다. 날마다 깨끗한 면양말을 갈아 신어야 하며, 벗은 발로 다니지 않음으로써 발에 상처를 입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
19. 몸에 조이는 모든 종류의 의복을 피해야 한다. 몸에 죄는 옷은 혈액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20.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뜨거운 물병이나 열찜질 패드를 사용하기 보다는 전기 담뇨를 사용하는 것이 화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이 느려진 사람들은 고온에 대한 감각이 저하되기 때문에 화상을 입기 쉽다.
21. 항상 따뜻하게 옷을 입어야 한다. 수족이 차가우면 혈액의 흐름이 저하될 수 있다. 차가운 상태에 있는 쥐들에게 있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차가운 기온에 대한 스트레스는 콜레스테롤을 높일 수 있다.
22. 고혈압은 혈관벽에 가하는 압력을 고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혈관의 경화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혈압이 높은 사람이 동맥경화증을 치료하고자 할 경우, 먼저 혈압을 정상으로 조절해야 한다.
23. 글루코스(포도당)에 대한 내성이 없는 사람의 경우(glucose intolerance), 동맥경화가 생길 위험률이 100%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혈당치가 매우 조심스럽게 조절되어야 한다.
창조주가 만든 수면제
요즈음 발레리안이라는 약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약초의 성분 중에 신경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취하게 만드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레리안 약초에는 습관성 마약 성분이 없기 때문에 가장 천연적이고 안전한 수면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New Choices in Natural Reme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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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요리법의 3대 원칙
1. 세치 혀의 만족을 위해서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 것. 이 문제에 있어서, 합리적인 판단과 균형있는 사고가 요구된다.
2. 어떤 식품이 신체의 세포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가를 연구할 것.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을 비교 연구할 것.
3.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할 것. Light fo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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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를 아시나요?
무화과는 아열대 기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실이다. 무화과는 맛이 좋은 과실일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경우에 있어서 훌륭한 약효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있어서, 무화과 열매는 피부에 생기는 여러가지 통증의 치료에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서 피부가 쓰리고 아플 경우, 잘 익고 신선한 무화과를 쪼갠 다음에 쪼개어진 안쪽 면을 화상을 입은 부위 위에 엎어 놓으면, 강력한 단백질 분해 효소인 펩신이 죽은 세포를 녹이고 분해키는 일을 도우며, 삼투압 작용에 의해서 상처 안에 있는 독소들을 빨아내어서, 박테리아의 번식을 방지할 수 있다. 이와 다른 종류의 통증에도 유사한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훌륭한 장 청소제로도 손색이 없다. Last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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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치료제
양파는 풍부한 비타민C 를 함유하고 있는데, 종양이나 위궤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나, 특히 고름이 생긴 곳에 양파를 으깨서 목면에 싸서 찜질하면, 통증이 사라진다. 이 때, 생 양파를 장시간 동안 피부에 접착시키면 피부가 상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Natural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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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2가지를 잊지 말라!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실천해야 할 두가지 사항이 있다.
1.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죄를 고백하며, 원수를 용서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신체 전체의 저항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생활 방식을 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운동하며,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저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Ministry of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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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과 정욕을 자극하는 식품
동물의 피와 고기는 인간의 욕망을 비정상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과다한 조미료의 사용, 맵고 짠 음식, 과다한 설탕의 섭취 또한 어린 자녀들을 짜증스럽고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Your Home and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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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무 기름으로 잇몸 질병을 예방하세요!
치아가 썩어서 치아를 잃어버리는 경우보다 잇몸에 문제가 생겨서 치아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300 여종이나 되는 각종 박테리아들이 입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사 후에 양치질을 하고, 치실로 잇몸에 쌓이는 플라그를 제거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잇몸이 붓고 피가 나오는 증세를 갖게 되며, 심한 경우 치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잇몸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소식이 있다. 잇몸이 약간 붓거나 불편하기 시작할 때에, 치약에 차나무 기름(Tea tree essential oil)을 한방울 떨어뜨린 다음에 양치질을 해보라.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New Choices in Natural Remedies
윈스턴 크레이그 영양학 박사
오늘날, 천연 치료에 사용되는 약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 의학이 제시하는 치료법에서 한계를 느낀 사람들의 관심이 약초를 사용하는 천연치료법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약초의 종류에 따라서 성분과 함유량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약초의 사용법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와 의논해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연치료에 사용되는 약초는 물론 독성이 없어야 하며, 인체를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성분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약초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먼저 자신의 생활 습관과 음식물을 올바로 개혁한 다음에 약초를 치료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면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질병에서 해방되고자 하는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과 생애 전체를 바친 다음에,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들을 버리고, 음식물을 신선하고 살아있는 영양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바꾼 후에, 그대를 가장 적절한 치료법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라. 편집실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약초
약초의 의학적 가치는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약초 중에는 매우 강력한 치료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만일 그러한 것들이 올바르게 사용된다면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면에 있어서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건강을 유지하는 법과, 치료가 어려운 여러가지 질병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건강 정보를 얻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관절염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원인 모를 두통에 대한 치료책을 찾고 있으며, 이 밖에도 위궤양, 알러지, 고혈압, 당뇨병 등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하바드 대학의 의학부에서 조사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약 10%의 사람들은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일반 병원을 찾는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 중에 약 3%가 약초를 사용하여 천연으로 치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초를 사용한 천연 치료법은 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약용 성분이 인체의 저항력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퇴치시키는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세계 건강기구(WHO)는 전세계 60억 인구 중에서 80%는 아직도 그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천연적인 치료법이나 약용 식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현대 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들 중의 많은 것들이 처음에는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들로부터 출발했었다. 예를 들어서,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용액으로부터 발전되기 시작했으며, 몰핀은 양귀비에서 뽑은 진액에서 시작되었고, 강심제는 디기탈리스 식물에서 뽑은 물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치료제의 생산 단계를 넘어서 상업화 됨에 따라 화학적인 치료제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고, 순간적으로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치료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현대 의학에서 그 한계점에 부딪힌 사람들이 다시 원래의 치료 방법인 천연 치료법으로 돌아가서 약초들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채소와 과일류가 면역 시스템을 향상시키는 것처럼, 약초류에도 면역 시스템을 상승시키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약초들은 AIDS를 치료하는데에 사용되고 있으며, 암치료에도 사용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약초는 그 종류에 따라서 각기 다른 약용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은 천연적인 수면제로서, 어떤 것은 두뇌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서, 어떤 것은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어떤 것은 소화기관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숲 속에 심어 놓은 천연 치료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만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잡초처럼 보이는 식물에 치료 성분을 담아 두심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다. 만일 병자들이 식물의 뿌리와 나뭇잎이 가지고 있는 치료의 성분을 이해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낙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숲 속에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각종 약초들을 심어 놓으셨다는 생각이야말로 환자들에게 가장 큰 격려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뿌리와 줄기의 껍질에는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죽이는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성분이 없으면 그 식물 자체가 땅에서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연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초 중에서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에키네시아(Echinacea)
에키네시아는 면역시스템에 자극을 줌으로써 신체의 저항력을 높여 준다. 특히 백혈구의 생산을 향상시키고, 임파선을 기능을 촉진하며, 혈액으로부터 독소를 제거하는 일을 도와준다. 특히, 에키네시아는 혈액 정화의 왕이라고 불리울만큼 강력한 혈액 정화 작용을 한다. 골든 씰과 함께 사용하면 가장 좋은 천연적인 항생제로서 사용할 수 있다. 각종 혈액 관련 질병에 좋으며, 임파선 및 전립선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2. 알파파(Alfalfa)
인체를 알칼리화 시키고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알파파는 클로로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체내를 청소하고 염증과 싸우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매우 생명력이 있는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여러가지 질병에 매우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흡연과 알콜 중독 상태로부터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성분이 있으며, 비타민 A,K,D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뼈, 출혈, 대장, 소화 기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관절염, 혈액 정화, 입맛을 돋구어 줌, 콩팥 청소, 위궤양, 뇌하수체 관련 질병, 빈혈, 체내에서의 출혈, 구토증 등에 유익을 줄 수 있다.
3. 고투 콜라(Gotu Kola)
고투 콜라는 정신적, 육체적 힘을 증진시키며, 스트레스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고투 콜라는 두뇌에 영양을 주는 약초(brain food)로 분류되며,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 그리고 우울증과 신경쇠약 환자에게 유효하다. 또한 높은 혈압을 낮추어 주는 역할도 하며, 심장과 간에도 유익을 준다. 여러가지 면에서 노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약초이다.
3. 옥수수 수염(Cornsilk)
옥수수 수염은 방광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방광에 생긴 문제 뿐만 아니라, 심장과 콩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화학적 이뇨제의 부작용 때문에 옥수수 수염을 이뇨제로 처방하는 의사들도 있다.
4. 카모밀(Chamomile)
카모밀은 몸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믿을만한 약초이다. 각종 염증과 신경 계통, 그리고 월경 경련(menstrual cramps)에 매우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성분이 매우 부드럽기 때문에 아기들이 배아프거나 잠잘자게 하는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기관지염, 고열 등에도 사용된다. 스트레스를 이완시키는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5. 타히보(일명, Pau d?rco)
이 약초는 남아메리카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남아메리카의 몇몇 병원에서는 이 약초를 사용하여 암환자를 치료하여 좋은 결과을 얻고 있다. 바이러스를 죽이는 강력한 항생제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체내에서 질병을 야기시키는 요소를 공격하는 복합물질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종류의 암치료에 사용되며, 백혈병의 치료와 통증을 경감시키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8.성령을 받는 길
3년 이상이나 의지하고 믿고 따르던 예수께서 이제 하늘로 떠나가실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열두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폭탄보다 더한 충격적인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생애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그분께 있었다. 그분 때문에 그들은 모든 집과 농토와 배와 그물들과 생업들을 버렸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의 비난과 조소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훌쩍 떠나 버리시고 나면 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쿠오바 디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대답은 그들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게 하였다.
이렇게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마치 다정한 아버지처럼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씀을 꺼내시기 시작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께서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 자신이 그들에게 보혜사였었기 때문에 이제 떠나가시는 마당에 다른 보혜사를 그들을 위하여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었다. Comforter(보혜사) 라는 영어 단어가 내포하고 있듯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라는 뜻으로서 “항상 곁에 있어서 위로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성령의 임재는 그들에게 마치 예수께서 항상 그들 곁에 계셔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해야 할 일을 알게 하시고 갈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와 꼭같은 역할을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아직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채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셨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7-20). 예수께서는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셨다.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직분이라는 말씀이다. 같은 장 26절에서 주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도 성령의 직분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셨던 그 똑같은 일을 그들을 위하여 해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생명의 진리의 길로 늘 가르치시고 인도해 오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아처럼 내버려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령은 영이시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도 영이시다(요 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시간에 모든 곳에 존재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는 육체로 이 땅에 오시었다. 우리 죄인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치시고 보여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사람의 육신을 취하신채 이 땅에 임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사업을 다 이루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시점에서, 불쌍한 제자들을 위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한가지 선물을 약속해 주시고 계신 것이었다. 육신을 쓰시고 임하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항상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이 계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어 주심으로써,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그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신 것이었다. 이 약속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약속이었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가운데서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이었다. 이제 예수께서 하늘로 다시 돌아가시는 입장이셨으나 그들은 홀로 버려진바 되지 않을 것이었을 뿐더러, 그들은 더욱 더 놀라운 영적 체험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요 16:7).
성령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회 역사에 있어서 항상 토론과 이견의 주제가 되어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마치 능력을 주고 기적을 베풀게 하며 환희의 경험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로서만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게 하시는 분으로 설명하셨다. 요한 복음 7:37~3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명절 끝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기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는 의미는 아직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하시는 당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승천하시기 전까지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보내신 약 40일간의 황금같은 시간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이 주님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즉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고 설명하여준 성경 말씀들을 찾아서 설명하여 주시는 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셨다. 누가복음 24:25-27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러므로 제자들이 메시야의 사명과 사역에 대한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을 받으시고 직접 체험하셨던 예수께서 성령을 이해하시는 것처럼 성령에 대하여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한 복음 7:39은 저희에게 아직 성령이 계시지 아니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해 오셨다. 십자가 이전에도 성령께서 계셨었다. 창세기 1:1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옳바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들을 통하여 능력을 행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시었다. 그 말은 과거에 지은 죄들과 현재에 의롭게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리고 미래에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양심에 자각을 주는 일을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떠나서 의롭게 살아가도록 촉구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개혁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감화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을 받고자 원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먼 길을 마다하고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달라고 정성껏 기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들에게 문제가 하나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성경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성령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막연히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굴복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성령의 능력과 현시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지 않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교회나 그 당사자에게 있어서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성령이란 인간 편의 욕심에 따라서 주어지는 장식품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죄를 깨닫고 의롭게 살도록 양심을 일깨우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사도행전 1:8참조).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그리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시기에 따라서 행하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성령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은 어떠한 능력이나 기적을 행하는 정도에 따라서 성령을 받은 증거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표로 삼으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 때문에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사도행전 5:32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고, 같은 장 23절에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가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한가지 점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마치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는 기운이나 힘, 내지는 능력 같은 비 인격적인 물질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령을 하나의 인격체이신 분으로 소개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그가”, 또는 “저가”라고 호칭하시며 당신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개체로 말씀하셨다. 고린도 후서 3:17에서 사도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여 주의 영, 곧 성령을 한 인격체로 말씀하신 사실도 보게 된다. 또한 베드로도 “네가 성령을 속이고..”(행 5:3)라고 말씀하여 성령님을 인격체로 언급한 사실을 알게 된다. 히브리서 9:14은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호칭하고 있는가 하면, 시편 139:7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령께서는 신성의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 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셨고, 예수께서는 요단 강 물에 서 계셨으며, 성령께서는 비들기 모양으로 주님 위에 임하셨던 사실로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삼위 일체 가운데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믿는자들을 얻게 될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성령님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할지에 있어서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성령님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인격적인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고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령님께 쓰인바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많이 명상하여야 된다. 성령께서는 순종하는 자들 속에 임재하신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22
The Act of the Apostiles 에서 발췌
이 글은 위대한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성령 받기를 소원하는 그리스도인마다, 제자들이 십자가 이후부터 오순절까지 50일 동안에 겪었던 경험을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50일의 기간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자신들을 준비시켰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성령을 퍼붓듯이 받고 싶은가? 성령 받기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성령을 받기 위해서 준비한 제자들의 경험을 연구하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신 이후, 제자들은 거의 완전한 낙담에 빠져 있었다. 제자들의 희망의 태양은 사라졌고, 깊은 밤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다만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누가복음 24:21). 예수께서는 생전에 여러번 제자들에게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너무나 어렵게 들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분의 말씀은 신비하고 모호한 것으로 들려졌다. 그리하여 그들의 신앙은 사단이 그들 앞에 뿌려 놓은 안개 저편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과 그 임하는 목적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요한복음 16:8,13). 그러나 실망과 슬픔과 낙담에 빠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설명과 약속을 잊어버린채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을 굳게 닫고 그들이 사랑하던 주님의 죽음이 자신들의 운명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1. 가장 중요한 첫단계,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스도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을까? 왜 부활하신 이후 하늘로 곧 바로 승천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전체의 복음 전파 사업을 12명의 제자들 어깨 위에 올려 놓셔야만 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교육시키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직 복음 전파사업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진리에 대해서 아직 어두웠으며, 그분께서 주신 예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러한 상태 가운데 남겨두고 떠나실 수가 없으셨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전해야 할 복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 그러한 상태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위대한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당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을만큼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깊은 회개를 통하여 모든 죄를 버렸고, 성품에 거룩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의 위대한 능력을 맡기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세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그들 앞에 놓인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당신 자신에 관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초림과 유대인이 당신을 거절할 것과 당신의 죽으심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기록해 두신 예언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그러한 예언들의 모든 세목이 성취된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의 이해는 제자들의 신앙에 강력한 확신과 보증이 되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람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5~48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낸 40일 동안, 그들은 전혀 새로운 영적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구약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였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더 할 수 없이 굳건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신앙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디모데후서 1:12).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했으며, 세상에 선포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위임된 진리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과 같은 사건들을 천년 전부터 미리 지적하여 왔던 구약 성경의 예언들, 구속의 오묘한 경륜,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같은 진리들을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를 앞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2. 진리에 일치하는 경험을 소유함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온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맡기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남겨두신 영생을 위한 진리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진리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시련과 희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사람들에게 나타내었던 그분의 동정과 사랑을 보았다. 또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하였다(요한복음 16:33).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좌절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업을 전진시켜야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였다. 그들의 신앙과 생활은 능력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들의 표어요, 그들을 구별시키는 표요, 그들의 계획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권위가 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모든 영혼들을 그리스도 교회로 불러들여야 하였다. 복음 사업은 희생과 사랑으로 전진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단순한 믿음이 수반되어야 하였다. 허식과 자랑을 적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미치는 감화는 크게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배워야 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을 소유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에 대해서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들 자신이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변화된 제자들에게 비로서 성령의 위대한 능력과 은사를 안심하고 위탁할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업이 쉬우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서는 거대한 악의 세력과 맞부딪쳐야만 하였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혼”들과 싸워야만 하였다(에베소서 6:12). 그러나 그들은 홀로 싸우도록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에게 방패가 될 것이고,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분의 진리에 순종하고, 그분의 영과 연합하여 일하는한 실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활과 신앙의 전부가 되었다. 드디어 그들은 진리와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3.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소유함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베다니로 인도하셨다. 감람산 위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서서히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다.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셨다(누가복음 24:51). 제자들이 승천해 올라가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두 천사가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전하였다. “흰옷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행전 1:10~11.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항상 살아있어야 하였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환란과 시련을 앞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희망이 되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굳게 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 사업을 촉진시켜야 하였다.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이해해야만, 그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가난하고 시련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설명해 주면서 위로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재림에 관한 진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가 된다. 왜냐하면 재림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단은 재림에 대한 진리를 왜곡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복음 24:3~4.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지 않으며, 재림에 대한 진리를 믿지 않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지막 시대에 퍼부어질 놀라운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허락될 수 있겠는가?
4. 오순절 직전의 경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누가복음 24:53). 또한 그들은 하늘에 자신들을 중보하는 한 대표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였기 때문에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머리 숙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3. 그들은 굳센 믿음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께 손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었고, 그들이 과거에 예수님을 괴롭게 하였던 불신을 자복하였다. 그들은 구세주의 사업의 목적을 오해하였던 자신들을 스스로 책망하였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자아희생의 생애의 장면들이 그들 앞에 지나갔다. 그들은 만일 그들 자신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힘들어서 못할 수고가 없으며, 너무나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간 3년을 예수님과 다시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르게 행하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다시 한번 예수님을 곁에서 모실 기회를 얻는다면, 그들이 주님을 매우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구세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 보면서, 그들은 깊은 회개 가운데로 들어갔다. 자신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일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가능한한 담대하게 주님을 세상 앞에서 인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나만 속죄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모든 불화와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고상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충전되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면서 영혼 구원사업을 위한 지칠줄 모르는 정렬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그들이 구하였던 것은 자신만을 위한 축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으로 짖눌렸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찼다. 제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성령을 간구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에 대한 애착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복음 사업에 대한 부담만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누르고 있었다.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은 약속받은 성령의 선물을 간절한 마음으로 탄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 상태에 확신을 가질 수 있으셨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자들은 “사랑은 여기 있”다고 부르짖었다. 제자들은 나누어 주신 하늘의 선물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일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에 우쭐하여져서 그것을 자랑하거나 광고하였는가? 아니다. 오히려 겸손과 인내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들의 생애를 불태웠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제자들은 하루에 수천명을 회개시키면서 그리스도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5. 조건이 있는 선물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하신 감화가 세상 끝날까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지금도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완전히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다른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에 대한 약속에도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을 간구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지도에 다스림을 받지 않거나 진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 오해하면,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빛에 일치하는 생활을 살지 않으며, 알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성령의 선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고 싶은가? 성령을 받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마다 제자들의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사랑이, 영혼 구원에 대한 제자들의 부담이, 그들이 했던 회개가,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있던 헌신과 충성이, 오늘날 성령을 간구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도 존재해야 한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온 하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표할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기 전에 성령의 열매가 자신의 성품에 맺히기를 기도하자.
1. 성령의 역사는 신약시대의 오순절 때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 시에 성령께서 함께 동참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인간이란 도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대인 광야 교회에도 당신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셨다(느혜미야9:20). 성령을 통하여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셨으며, 사도시대에는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도 교회에게 힘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의 크신 능력을 허락하셨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에는 성령께서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역사하여 종교 개혁의 길을 예비하였으며,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모든 국가와 민족의 방언으로 번역한 것도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킴으로써, 그들의 시선을 갈보리로 이끌고 계신다.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며, 죄를 범하였을 때에 양심의 가책을 주심으로써, 진정한 회개의 정신을 갖도록 유도하고 계신다.
2. 성령을 받을 때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갖게 됩니까?
성령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이 동일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은 증거로써 감정의 극치를 기대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8. 우리는 바람을 보지 못하지만 바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바람을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역사할 때에 그것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의 능력은 조용한 가운데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준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보거나 만지지는 못할지라도, 그분께서 해놓으신 결과를 볼 수는 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변화된다면, 우리의 생애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에 의존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오직 변화된 생애를 통해서만 분명하게 확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마음 속의 우상과 죄를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충만하게 채우실 것이다. 오직 이러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자랑치 아니할 것이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0,12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에, 우리는 어떤 황홀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함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서와 생애를 생각해 보자. 그분처럼 성령이 충만하였던 사람이 있는가? 그분의 생애는 감정적 환희와 흥분으로 차있는 생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생애였다. 그분께서는 죄와 불의를 거절하셨으며,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치료해 주시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께서는 성령이 충만하신 결과로 거룩한 삶을 사셨던 것이지,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제와 치료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성령의 능력을 구하셨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함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행하는 순종의 삶으로 표시되었다. 그분의 삶은 사랑과 희생과 극기와 자아부인으로 꼴지워졌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이성적인 분별력과 하나님의 진리가 감정과 느낌을 지배해야 한다. 진리는 건전한 상식 위에 세워지며, 질서 있는 가정생활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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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의 효과적이고 신속한 전파이다. 성령의 은사가 개인의 신앙적 만족감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되서는 않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신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복음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해서 주셨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질문과 관련있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교훈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고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린도전서 14:26,33,40.
3. 나는 방언의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와 같은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앞서, 우리는 “같은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중요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린도전서 12:11). 우리가 받기 원하는 성령의 은사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복음의 전파를 위한 당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각 사람을 도구로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당신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서 준비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우리가 성령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우리를 부리신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다. 우리는 성령의 기적과 은사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이나 은사의 필요성과 그것이 행하여 지는 장소와 시간과 환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기적이 행사되어야 하는 최적의 시간과 장소와 환경을 알 수 없다. 언제, 어느 때, 어떠한 환경에서 하늘 아버지의 기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주시는 능력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지혜가 부족하며, 또한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를 구할 때에 예수께서 하셨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는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 그러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4. 나는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어떤 기적이나 은사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구원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증거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않된다.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적인 삶을 산 결과로 인하여 멸망받았던 예를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은사가 누구에게 발견되느냐에 따라서 서로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어떤 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또 다른 어떤 교회에는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가 마치 유행처럼 교회 안에 그룹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하고 안수해서 병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형편이 아닌가? 사도 시대의 고린도 교회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로써,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을 훈계하였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린도전서 12:27~30.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은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우리 몸에는 지체가 있어서 서로 협력하면서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특별히 “방언은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라고 말하였다. 사도 시대에 복음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서 언어가 다른 각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하였는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그 일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께서 복음의 신속한 전파를 위해서 방언의 선물을 제자들에게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이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될 수 있게 섭리하셨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목격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방언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용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확신용으로 사용됨으로써, 그 용도가 변경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시험 기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7:20).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갈라디아 5:22,23). 성령의 열매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불만과 낙담이 아니라 희락이고, 분냄과 근심과 스스로 지어낸 불화가 아니라 화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자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풍성하게 내려주신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5. 기적이 모두 성령의 은사인가요?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 이 시대에도 나누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은사를 분석하고 사용할 때에 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진리에 굳게 닻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사단의 활동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데살로니가후서 2:9). 사단의 활동이 매우 기만적인 이유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자칭하” 고 있으며,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11:13,14). 그 기만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마태복음 24:24).
이러한 말씀들은 성령 은사를 추구하는 교회나 성직자들을 모두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교회와 모든 종교적 체험, 그리고 모든 기적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다(데살로니가전서 5:21).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충고를 들어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한일서 4:1
그렇다면, 성경은 영을 시험하는 판단 기준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성경절을 제시하고 있다.
1)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사야 8:20. 성령의 참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며, 자신이 믿는 바가 성경의 진리에 일치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예레미야 29:9. 어떤 사람이 예언하는 은사를 받았으면, 그가 예언하는 바가 정확하게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3)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20.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대표자로 설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며, 모든 금전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정직을 유지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방언을 하고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온 은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를 잘 알고 있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감화를 끼칠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두가지의 다른 양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이상한 혼돈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러한 사람은 혹시 자신이 다른 영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늘은 위대한 성령의 능력을 받기에 적합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하늘의 거룩한 선물을 준다. 거룩하게 변화된 성품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위탁하였을 때에 복음 전파사업에 어떠한 혼돈과 위험이 따르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4)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리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일서 4:2~3.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체로 오셔서 시련과 고통 중에서 승리하셨던 것처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서 죄와 시험을 승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영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죄와 유혹에 대하여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며,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룩한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하늘의 선물이 내려지게 된다.
5)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1,12. 사도 요한 역시 앞에서 이사야가 말했던 영의 구별법에 동의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로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나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계시를 보면서, 사도 요한은 그들의 신분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영을 분별하는 분명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기적과 은사를 무조건 하나님의 영의 은사라고 보아서는 않된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대답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충고는 모든 기적과 은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고 판단하여 유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6. 현재,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는 영원불변하지만, 진리를 이해하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리를 검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준점으로 해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경험을 진리 위에 놓으려고 애쓴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올바른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치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관찰했을 때, 각기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가 어떤 교단에 속했으며, 어떤 사람에게 성경은 배웠느냐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동일하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다. A) 나는 어떤 놀라운 기적을 경험을 하였다. B) 그런데, 나는 나의 경험과 매우 흡사한 경험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C) 그러므로 나의 경험은 진리이다. 이와 같은 3단 논법에 의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성령의 은사로 받아 들인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자신의 경험이 초대 교회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해서 자신들의 경험이 진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단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수 있고,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최고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영”에 의해서 진리를 척량하려고 한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데살로니가후서 2:10,11.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라. 그것만이 마지막 시대에 펼쳐지는 사단의 대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한다고 공언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적인 위치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진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만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감정적인 신앙을 갖게 되며, 진리를 주장하면서 사랑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며,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랑과 진리를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니라.” 요한복음 14:15~17.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commendment, 명령)을 순종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자신의 경험을 시험할 수 있는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며, 동시에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 그리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생애를 사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지배하는 영을 분별하는 최고의 기준이다.
기적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표적이지만, 마귀도 그것을 매우 흡사하게 모방함으로써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미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질문에 대하여 주시는 매우 명백한 교훈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0~23.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많이 내쫓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했으며, 구원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과 은사같이 보이는 것들을 행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멸망의 선언을 받았다. 왜 그런가? 이 성경절의 서두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9~20.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아름답고 거룩한 열매가 맺히지 못했던 것이 그들이 불에 던지우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깨끗하지 못한 마음과 불의한 생활 가운데서 성령의 은사를 간구했으며, 그때 마귀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을 매우 깊은 기만 가운데로 끌어갔던 것이다.
Spiritual Gifts in the Bible
성경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은사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과 탈렌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서 권능과 능력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성령의 은사로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은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부여하신다. 예를 들면, 봉사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사람을 다스리는 은사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심으로써, 은사로서 능력있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예언하는 은사나 기적을 행하는 은사 같은 것들은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노력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서, 이러한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속한 은사이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은사의 종류를 살펴봄으로써,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갖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