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9일
‘이익의 카르텔’ 누렸던 文정부… 조국 사태 본질 흐리려 ‘공정 몰이’
공정의 진정한 가치는 특권·반칙 거부하고 갑질 배격과 공직자의 치우침 없는 법치 전제돼야
공수처 설치·대입 정시확대는 민심 되돌려 다시 주도권 잡겠다는 정치적 타개책일 뿐
70일간의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권에는 사실상 첫 정치적 위기였다. 진보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 함성을 쏟아낸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장의 정치는 원래 진보층에 익숙하다. 그럼에도 중도와 보수층 시민들이 ‘역대급’으로 모여 광장의 분노를 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광장의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임을 강조했던 정권 입장에서는 머쓱할 수밖에 없다.
여권이 조국 사태로 돌아선 민심을 추스를 카드로 꺼내 든 것은 ‘공정개혁’이다. 국정 혼란에 대한 책임 문제를 덮고, 국민이 조국 사태를 통해 느낀 분노를 역으로 공정의 가치라는 화두로 전환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 입시 정시확대 등을 메뉴로 공정개혁을 의제로 내세워 선제적으로 국면을 주도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성공 시나리오를 써내려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겉으로는 ‘공정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성과 개혁성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권의 의도는 공정성을 구현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공정개혁에 있는 게 아니라, 조국 사태의 본질을 일단 덮고 다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공정 몰이를 하려는 것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 공정의 척도는 특권·반칙·갑질의 배격
공정의 가치가 오늘의 시대정신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공정의 가치가 부각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놀라운 경제발전과 성공적인 민주화 덕분이다. 압축비약형 성장은 온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었지만, 상대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 역시 함께 높여 놓았다. 부의 대물림과 ‘강남’의 특권적 이미지는 ‘기회의 평등’ 즉 출발 선상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충돌했다. 알렉시 토크빌의 얘기대로 민주주의는 ‘평등의 에토스’다. 민주주의가 진전될수록 불평등에 대한 인내력도 소진된다.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모든 국민이 자신이 누릴 권리에 대해 더 민감해진다. 민주주의의 성과로 축적되는 시민권의 확장은 자신에게 확보된 권리의 목록을 늘리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권리의식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 없이 대우받고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의식이기도 하다. 특권과 반칙을 거부하고, 갑질을 배격하는 ‘공정 문화’는 민주주의의 척도다.
원래 공정(fairness)이라는 말은 정의(justice), 평등(equality), 신뢰(trust)라는 개념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특히 존 롤스가 공정으로서 정의를 정식화했다. 그에게 정의는 나와 남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때만 불평등이 허용된다는 최소수혜자 우선 고려 원칙, 직무와 직위가 만인에게 열려 있는 공정한 기회의 평등 원칙으로 구성된다. 이에 대해서는 숱한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다음은 분명해졌다. 정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낙오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을 호출한다. 또 정의나 공정은 칸트의 말대로 시민 각자가 다른 시민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즉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존중하는 신뢰사회를 함축한다. 특히 심판의 역할을 하는 법이나 법을 다루는 공직자들이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법치가 전제인 것이다. 단 정치적으로 좌파의 공정 개념은 ‘결과의 평등’까지 뻗어가지만, 우파의 공정 개념은 노력과 능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자유의 덕목으로 보는 비례성의 원칙을 중시한다.
◇ 부패인식지수 세계 51위…갈 길 먼 공정개혁
사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가 나름대로 공정사회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공개로 공정의 가치를 부각했다. 김대중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초생활보장제로 공정을 추구했다. 노무현 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내세우면서 노인복지를 강화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공정사회론’에 입각해 100대 과제가 추진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신뢰공동체를 강조하면서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사에서부터 공정의 가치를 강조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약속은 시대정신으로 손색이 없었다.
역대 정부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사회로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국인의 부패인식지수는 2017년 현재 세계 51위 수준이고, 사람들 간의 신뢰지수는 북유럽 국가들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공정의 가치에 예민하다. 과거 성장 세대와는 달리 기회의 창이 넓지 않고,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일수록 공정이라는 구호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 문재인 정부, ‘이익 카르텔’로 끝없이 불공정 사례 쌓아
문재인 정부는 취임사의 약속과는 달리 지난 2년 반 동안 불공정 사례를 쌓아왔다. 그중에서도 이익의 카르텔과 ‘지대 추구’는 심각한 불공정 사례들이다. 역대 정부를 훨씬 능가하는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나 ‘탈원전 태양광 지원’ 등이 이익의 카르텔과 직결된다. 민변이나 법원 내 특정 단체 출신으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사법부의 코드 인사는 공정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인헌고 사태에서 보듯이 초·중·고에서 노골화된 정치이념 교육 역시 불공정 현상이다. 이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정치보복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적폐청산은 권력의 불공정한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공영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출했던 법안은 사라지고 KBS와 MBC 등 공중파 방송을 신속히 장악해 코드 인사를 배치했다. 서울시의 교통방송까지 포함해 공영방송이 지켜야 할 공정의 가치는 무색해졌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진보를 자임하는 지도층의 특권과 반칙, 그리고 공정의 가치를 무시한 인사권 남용이다. 그럼에도 여권은 마치 검찰개혁과 교육개혁이 안 돼 조국 사태가 벌어진 것처럼 교묘하게 원인과 결과를 비틀어 공정 몰이를 하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적 대안으로 내놓은 건 공수처 신설, 대입 정시 확대 등이다. 이른바 집권 진보진영 내 특권과 반칙의 문제를 제도 탓으로 돌리며 공정개혁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특히 공수처 설치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사실상 공수처장과 절반의 외부 검사들에 대한 임명권을 가짐으로써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대입 정시 확대 추진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성적이고 창의적이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인재로 만들어야 하는 인공지능혁명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교육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공정의 가치를 앞세우고 공정사회를 실현하려면 그 구호에 합당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릇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담겨 있는 음식이 고약하다면 먹기가 힘들 것이다. 공정개혁이 조국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공정 몰이가 되는 한 그것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타개책일 뿐 오늘의 시대정신인 공정의 가치를 구현하는 진정한 수단은 되지 못할 것이다.
박형준 /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문 정권의 공정개혁론: 민심 추스를 카드. 공정성을 구현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공정개혁이 아니라, 조국 사태의 본질을 덮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공정 몰이를 하겠다는 것.
공정의 진정한 가치: 특권과 반칙을 거부하고, 갑질을 배격하는 공정문화가 민주주의의 척도. 서로 보살피고 존중하는 신뢰사회 구현이 목적. 공직자들의 치우침 없는 언행과 법치가 전제돼야.
불공정 쌓아가는 문 정부: 문 대통령 정부는 취임사의 약속과는 달리 ‘이익의 카르텔’과 ‘지대 추구’로 불공정 사례 쌓아와. 공정 몰이는 집권층 내 불공정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
■ 용어 설명
알렉시 토크빌 : 알렉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역사를 평등의 부단한 진전으로 보지만, ‘자유 없는 평등’은 다수자의 전제와 중앙집권화, 개인의 자발적 예종(隸從)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지대 추구 : ‘지대 추구(rent seeking)’란 이득을 얻기 위해 부당한 활동에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독점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로비, 약탈, 방어 등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