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科學者의 세상읽기] ‘5종 염모제(染毛劑)’ 딴지 건 식약처가 놓친 것

[黑面書生]

2022. 09. 26 

요즘 식약처가 실망스럽게 변해버렸다.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중소기업의 신제품에 대해서 연이어 딴죽을 걸고 있다. 근거도 확실하지 않은 위해성을 핑계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멋대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폴리페놀의 변색 기능을 이용한 ‘모다모다’ 샴푸의 신기술에 대한 식약처의 억지는 중앙행정심판원의 판단과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로 이미 김이 빠져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o-아미노페놀 등 5종의 염모제 성분을 사용금지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이번에도 ‘토니모리’라는 작은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모양이다. 식약처가 만들어준 어부지리(漁父之利)는 모두 뒤늦게 유사 제품을 내놓았던 대기업들에 돌아가게 된다. 식약처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일본 등은 아무런 조처 하지 않아 

사실 식약처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해버리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2월 초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 바이오업계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신속’ 항원 진단키트의 경우가 그랬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가 두 손을 들고 반겼던 신속 키트가 정작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유전물질인 핵산을 검사하는 PCR 키트보다 정확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2년 동안 우리는 느리고 비싼 PCR 검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는 불필요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정부는 엄청난 비용을 낭비해야만 했다. 결국 정부가 작년 가을 일상회복을 시작할 때까지 PCR 키트 업체만 짭짤한 재미를 봤다. 식약처와 질병청의 어설픈 전문성과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심지어 ‘신속’ PCR 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지자체·대학과 식약처가 볼썽사나운 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식약처가 5종 염모제 성분의 인체 ‘유전독성’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이 2009년 11월 화장품에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것이 유일한 핑계다. 지난 13년 동안 그런 사실을 애써 무시해왔던 식약처가 갑자기 돌아서서 법석을 떠는 이유가 도무지 석연치 않다.

더욱이 EU 못지않게 유해물질 관리에 철저한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일본은 5종의 염모제 성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모다모다가 보조성분으로 사용했던 1,2,4-트라이하이드록시벤젠(THB)의 경우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EU도 5종의 염모제 성분에 대한 인체 독성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세균(박테리아)에 대한 초보적인 실험에서 유전독성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고작이다. 결국 EU의 사용 금지는 ‘사전 예방적’ 조치였다. 기업이 굳이 인체 독성이 의심스러운 성분을 선택해서 정부에 독성 검증 부담을 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1,2,4-THB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EU의 규제를 무작정 무시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식약처가 EU의 규제를 충실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저개발 국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더욱이 EU의 규제가 국제사회의 합의라고 볼 수도 없다.

유해물질에 대한 규제도 우리의 ‘주권(主權)’의 일부다. 남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무작정 따라 나설 수는 없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규제를 시행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식약처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 다른 나라의 규제 현황을 따르기만 한다면 굳이 식약처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 8월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함께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 공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위해성 평가는 ‘과학’의 영역 

사실 발색 샴푸에 대한 식약처의 최근 조처는 어설프고 위험한 것이었다. 중앙행정심판원과 규제개혁위원회조차 설득시키지 못했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아야 하고, 오이밭에서는 짚신도 고쳐 신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식약처의 윤리성과 전문성에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다.

국민의 안전은 식약처의 말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분명하게 정해놓은 법과 제도를 따라야만 한다. ‘화장품법’의 제8조에는 화장품 성분의 위해성 의미와 평가 방법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식약처는 반드시 ‘인체 독성’을 확인해야 하고,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한 노출 평가도 실시해야만 한다.

그런데 1,2,4-THB와 염모제 성분의 인체 독성을 완벽하게 확인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독성학과 의학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가 복잡한 장비를 활용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인체에 대한 실험에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까지 개입된다. 독성이 의심되는 물질을 인체에 직접 노출시키는 일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용납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임스 시험처럼 세균을 이용하는 실험이 가장 초보적인 첫 단계다. 그러나 세균 실험에서 양성이 확인된다고 무작정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체 독성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더욱 설득력이 강한 자료를 확보해야만 한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세포주(細胞株) 실험도 해야 하고, 쥐·토끼·개·원숭이 등을 이용한 동물 실험도 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식약처가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체 독성이 의심스러운 성분을 사용한 제품이 개발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는 ‘선제적 예방 조치’가 가능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굳이 인체 독성이 의심스러운 성분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카테콜이나 염산 m-페닐렌다이아민과 같은 염모제 성분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인체 독성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사용을 금지시킬 수 있다. 그런데 모다모다가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1,2,4-THB나 토니모리가 사용 중인 o-아미노페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m-페닐렌다이아민·피로갈의 경우도 그렇다. 합법적으로 허용했던 성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합법적으로 제품을 개발한 기업의 권리도 지켜줘야 하고, 그런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권도 존중해줘야만 한다. 일단 스포츠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경기 규칙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법이다.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비자단체가 함부로 나설 일도 절대 아니다. 국민 안전은 소비자단체의 여론조사에 맡겨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1,2,4-THB의 유전 독성 확인을 소비자단체협의회에 맡기겠다는 식약처의 주장은 명백하게 화장품법의 취지를 무시한 억지일 수밖에 없다.

식약처의 주장은 유해물질의 독성을 연구하는 독성학자들의 전문성과 함께 윤리성까지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참을 수 없는 망발이고, 망언이다. 화장품법의 취지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소비자단체도 자신들의 사회적 본분을 지켜야 한다. 위해성 평가는 소비자단체가 나설 일이 절대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식약처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설픈 정보로 소비자를 위협하고, 힘없는 기업들을 몰아내는 ‘공포 마케팅’은 식약처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