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22
신종 감염성 괴질이 또 등장했다. 40도가 넘는 고열과 함께 기침,호흡곤란, 피로 등 전형적인 독감 증상으로 시작되고, 폐렴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 12월 초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 처음 등장한 괴질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아니라 왕관 모양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장에서 거래하는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14명의 의료인에게 감염을 시킨 슈퍼 매개자도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감과 흡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신종 괴질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지난 12월 31일의 첫 확진 이후 20여일 만에 확인된 확진 환자가 3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사망자도 6명이나 발생했다. 중국 전역에서 의심환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춘절이 지나면 확진 환자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더욱이 괴질이 이미 중국을 벗어나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자가 확인됐다. 미국 태국 일본 대만에서도 확진 환자가 나왔다. 구체적인 발생원이나 감염경로를 알아내지도 못했다. 자칫하면 2003년의 SARS(사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나 2009년의 신종플루와 같은 판데믹이 시작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당초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던 신종 괴질을 공식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용하는 'novel coronavirus'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언론이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여전히 '우한 폐렴'을 고집하는 언론도 있지만 '신종 폐렴'이나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부르는 언론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흔히 '감기'라고 부르는 급성비인두염이 대부분 리노바이러스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리노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자연 생태계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감기는 인류가 말과 소를 사육하면서 인간에게 전파되어 토착화된 질병으로 추정된다.
짧은 RNA에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에 해당하는 미물인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생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다. 그런 바이러스가 전혀 다른 감염 특성을 가진 변종 바이러스로 변신하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안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변종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8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킨 사스와 우리나라에서만 38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MERS(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도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킨 재앙이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감염성 질병의 이름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돼지 독감처럼 특정 국가·지명·동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 잘못도 없는 특정 지역이나 동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스페인으로 유입된 질병이었다. 돼지독감도 돼지가 만들어낸 질병이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의 고민이 깊은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조류독감'을 낯설고 혼란스러운 'AI'로 부르고, 2009년의 H1N1 독감에 우리말 어법에도 맞지 않는 '신종 플루'라는 해괴한 병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WHO가 붙여준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뜻을 암호화 한 '2019-nCoV'에서도 WHO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새로 등장하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언제까지나 반복해서 '신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중국이나 우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색하고 옹색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보다 '중국호흡기증후군'(CRS)이나 '우한호흡기증후군'(WRS)으로 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메르스의 경우처럼 고위관료나 정치인이 섣불리 나서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전문가들도 섣불리 들러리를 서지 말아야 한다. 전문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바이러스의 유입과 확산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