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내쉬 (1928- )13)
존 내쉬는 1928년 6월 13일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블루필드에서 아버지 존 내쉬와 어머니 마가렛 버지니아 마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의 가문은 남부 주에서 이주해온 스코틀랜드 침례교 교사 집안이었으며 아버지는 전력회사의 엔지니어였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 집안의 딸로 교사생활을 했다. 존 내쉬는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보다는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에 의하면 벨의 “수학의 사람들 (Men of Mathematics)"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카네기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48년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천재성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그는 ”비협조적 게임“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비 적대적(non-zero sum) 게임에서의 게임의 해(解) 문제를 다룬 것이다. 게임이론의 창시자 격인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은 주로 두 사람이 참여하는 적대적 게임 (two person zero-sum game)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반면 내쉬는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비 적대적 게임에서의 게임 해로서 균형(equilibrium)의 개념을 제안하고 그것이 항상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그의 균형 개념은 적대적 게임에서는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의 해와 일치한다. 그의 논문을 읽어 보면 그의 독창성과 빼어남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오만했으며 이기적이었고 허영심이 강했다. 동성연애를 했으며 내연의 여자에게 사생아를 안겨주고 나 몰라라 했다. 그가 쓴 수학분야의 논문들은 대부분 뭇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이사의 “아름다운 정신”을 읽어보면 그는 마치 찬사라는 보수를 얻기 위해 수학계의 난제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살인청부업자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다양체 매장 문제 (embedding problem for manifolds) 그리고 편미분 방정식의 해의 존재, 유일성, 연속성 등의 문제에서 큰 업적을 이룩하여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 메달 (fields medal) 수상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의 연구의 특징은 책이나 다른 사람의 업적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법을 이용한다는데 있었다. 말하자면 무에서부터 시작하여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그를 숭배한 물리학 전공의 아름다운 여학생과 결혼했다. 그렇지만 그의 명성이 절정에 오른 때인 서른 살을 갓 넘긴 59년 초에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구할 임무를 띤 요원이라든지 또는 남극의 제왕이라고 생각하는 과대 망상증에 시달렸다. 이후 약 30년 동안 이 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중간에 조금 나아진 적도 있지만 다시 악화되었다. 그러나 프린스턴 대학교 당국과 여러 수학자들 그리고 가족의 인내와 배려 속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의식주의 걱정없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1990년 경에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존 내쉬의 게임이론 관련 주요 저작
"Equilibrium points in N-Person Games", 1950, Proceedings of NAS.
"The Bargaining Problem", 1950, Econometrica.
"A Simple Three-Person Poker Game", with L.S. Shapley, 1950, Annals of Mathematical Statistics.
"Non-Cooperative Games", 1951, Annals of Mathematics.
"Two-Person Cooperative Games", 1953, Economet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