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을 뜨겁게 달구던 TV 프로그램 ‘남자, 그리고 하모니’ 편이 9월26일자로 종영되었다. 지난 7월부터 시작하여 약 두 달간 많은 시청자들을 TV앞에 붙들어놓은 그 프로그램이다. 평소 뮤지컬에 대해 문외한인 나에게도 주제곡인 ‘넬라 판타지아’를 비롯해서 ‘지금 이순간’ ‘Think of Me’ 등의 멜로디가 익숙해지면서 가끔 흥얼거리게 만든 마법 같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게다가 합창이라는게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구나, 한 사람의 리더가 사람들을 이렇게 몰입하게 할 수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프로그램 이기도 하다.
시청률 29%대를 기록하면서 장안의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라 구구한 설명은 불필요하겠지만, ‘남자의 자격-죽기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타이틀로 코미디언 이경규 등 고정멤버 7명이 나와 여러가지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그동안 자격증 따기, 집안일 하기, 금연, 영어 배우기 등의 미션을 수행해 왔으며 이번에 새로 시작한 미션이 바로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이다.
7명의 고정멤버와 새로 선발되는 합창단원 등 총 32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2개월 뒤에 열리는 전국합창대회에 출전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인데, 내가 주목한 것은 합창단을 이끌어가는 음악감독 박칼린씨이다.
처음 화면을 보고 놀란 것은 그의 인상이었다. 이국적인 외모에 편안해 보이면서도 매우 진지하고 절제된 인상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인상이라고나 할까?
곧이어 놀란 것은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말이다. 외모는 분명 외국인인데 한국사람보다 더 잘하는 외국인.. 이전에도 그런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박 감독처럼 아무런 이질감 없이 한국사람처럼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고 학교를 다닌 경력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오디션 내내 보인 박 감독의 소신과 원칙이었다.
“우리 팀에 필요한 사람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과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혼자서는 뭐든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럿일 때는 다르다.”
“합창은 나와 상대방의 약속이다. 자기 것을 지켜내면서 남의 것을 듣고 배려해야 한다.”
하루 종일 진행된 오디션에 약 80명 가까운 사람이 응시를 했고 개중에는 이미 유명인사도 많이 있었기에 사방에서 청탁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위의 기준에 미달인 사람은 가차없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칼린 음악감독은 LA와 부산을 오가며 성장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한국무용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연극을 했고 첼로를 전공했다. 명창 박동진 선생을 만나서 판소리를 사사받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처음 안 사실이지만 이미 박칼린씨는 `시카고``명성황후` `노틀담의 곱추` ‘아이다’ 등 40여 편이 넘는 뮤지컬에 음악감독을 맡아왔고 대한민국의 뮤지컬 역사를 그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한다.
‘하모니’에서 박칼린 감독이 부여받은 미션은 각기 다른 배경의 합창단원 32명을 데리고, 매주1회 총8번의 훈련으로 2개월 뒤에 열리는 전국규모의 합창대회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물론 몇 등을 해야 한다는 목표는 없었지만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어 각자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여 기대이상의 성과를 보여야 하는 의무감은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 코치들의 역할과 박감독의 미션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였다.
우리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해진 기간안에 다양한 스킬과 리더십을 발휘해서 코칭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입장 아닌가? 코칭형태에 따라 1:1코칭, 그룹코칭 그리고 팀코칭 등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박 감독의 경우에는 팀 코칭에 해당할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각기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목표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 일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가 있다.
그 이후로는 바야흐로 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과연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질적인 팀원들을 목표에 동참하게 하고 적절하게 동기부여하고 숱한 장애요인들을 극복해나갈 것인지가 매우 궁금해졌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프로페셔널 합창단이 즐비한 전국합창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고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얘기로 끝을 맺지만, 고비고비마다 펼쳐지는 박감독의 리더십과 거기에 화답하는 팀원들의 업무수행기는 지금도 커다란 여운으로 남아있다.
박칼린 감독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실력과 열정을 겸비한 따뜻한 카리스마’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실력이나 경험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 자기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사람, 구성원을 핍박하거나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 그러면서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팀원들에겐 추상 같은 엄격함을 보이는 카리스마..그는 그런 느낌을 주었고 그것이 팀원들과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키팅 선생처럼 박 교수는 ‘남자의 자격’ 합창단원들에게 ‘오 마이 캡틴’ 이었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등 마흔이 넘은 `아저씨`들도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동화되어 박 감독을 ‘캡틴’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외부코치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갖가지 장애요인에 부딪힐 때가 많다.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고객, 실행과제를 수행하지 않고 덜렁덜렁 나타나는 고객, 주제와 관계없는 얘길 하면서 시간만 축내는 고객,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평가는 혹독하게 내리는 고객, 그리고 코칭을 잘 모르면서 임의로 코칭절차와 시간 등을 디자인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기업 담당자들… 이 모든게 외부코치로서 가지는 한계인양 치부해버린 나의 가정은 박칼린 감독을 보면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박 감독은 처음 제작진과 미팅할 때 “합창단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 팀원들을 만날 때부터 “나를 믿고 따라와라. 여러분들은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과제수행에 소홀하거나 어려워하는 팀원에게는 별도의 개인레슨과 코칭을 통해서 미션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매번 연습이 끝날 때 마다 박감독이 팀원들에게 한 얘기가 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진정으로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 대해서 무한한 관심과 배려를 보일 줄 아는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행동들이다.
두 달간의 한시적 프로젝트를 수행한 박칼린 감독이 할 수 있다면 외부코치인 나로서도 가능한 일이다. 만약 차이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실력과 열정이리라!
박칼린 감독을 한국코치협회 월례세미나 때 강사로 초빙하면 어떨까?
그 자리에서 ‘명예코치’자격을 수여하면 멋질텐데….
10월 코칭컬럼 : 김두연 코치(ICF Korea회장, P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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