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슨 색일까 싶습니다. 설렘을 동반한 봄은 연둣빛이 분명한데 아지랑이와 함께 오는 봄에는 어김없이 분홍빛이 꼭 함께 옵니다. 기묘년 새해에 봄빛 가득 담은 《표현》 제86호를 발간합니다. 귀한 글로 지면을 밝혀주신 문우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은 깔끔하고 운치 있는 문장과 짜임새 있는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 있는 인물 묘사로 소설 문학의 진수를 보여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수필 <매화梅花>에는 ‘散脚道人無性坐 閉門十日爲梅花’이라는 시가 인용되고 있는데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나, 완서阮書 한 폭을 얻은 후로는 어서 겨울이 되어 이 글씨 아래 매화 한 분盆을 이바지하고 폐문십일閉門十日을 해보려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궁금하여 완서 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膽甁春色滿欞紗 담병춘색만령사
담병 봄빛은 깁을 바른 격자창에 가득한데
一座名香輕琖茶 일좌명향경잔차
홀로 앉아 좋은 차향을 가벼운 찻잔에 담네
散脚道人無坐性 산각도인무좌성
본디 한곳에 오래 머무는 성품이 아닌 사람인데
閉門十日爲梅花 폐문십일위매화
열흘이나 문을 닫고 있는 것은 매화 때문일세
찬란한 봄이 되었으니 담병膽甁과 명향名香을 두고 매화梅花를 핑계 삼은 도인의 경지를 차마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공부하느라 늙는 줄 모르셨던 그분처럼 책 속에 파묻혀 ‘폐문십일閉門十日’할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