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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살아난 사람 열왕기하 20:1-7 주일예배
성경에는 너무나 확실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방법입니다.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도 기도로 되살아났고, 멸망으로 치닫던 나라도 기도하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위기 가 닦아오면 특별한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럼 오늘본문은 히스기야가 죽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더 살 수 있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그럼 오늘본문은 히스기야가 죽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생명을 15년이나 더 살 수 있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1절에 있는 "그 때에"라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 때라고 함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으로 만든 바로 그때를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가 되는 해로써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를 말합니다.
39세라면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러한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당신은 곧 죽게 될 것이며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1절) 사람에 의해서도 아니고 의사의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38:1읽기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에 죽을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병든 사람들의 보호자는 그가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지만 환자에게는 충격이 될까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히스기야는 이사야선지자를통해 사38:1"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인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 라는 말을 들었으니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충격적인 선언 ! 이 절망적인 선언 ! 이 말씀은 히스기야 만을 향한 선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들어야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는 어떤 기도를 하는지 말씀을 통하여 나타내 보여주시고있습니다. 히스기야는
1.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죽음의 선언 앞에 좌절하지 않고. 2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한 것에 대해 칼빈은 "불신자처럼 포기하지 않고 고난을 인내로 이겨내기 위해서였다"라고 해석했고, 로린슨은 "자신의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선 절망의 벽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은 벽을 쌓고 담을 만듭니다만 하나님은 그 벽을 허물고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엔 벽이 많습니다. 넘기 힘들고 무너뜨리기 어려운 장벽, 철벽들이 앞으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벽 앞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고 말지만, 벽 너머에 우뚝 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벽은 징검다리가 될 것이고 사닥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금성 철벽이나 장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스기아의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절에."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기도였습니다.
렘33;3절"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 하겟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으며
시50;15절엔"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히스기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깝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아직 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절 중반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하나님께서는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들의 기도를 지금도 듣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즐겨 불렀던 복음 성가에 영문 밖의 길이란 것이 있습니다.. 거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도 못 가는 길 ..."이란 가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보리의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이 바로 갈보리의 길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도 자주 자주 눈물을 흘리시었습니다.
3절 하반절에"...심히 통곡하더라"고 했습니다.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확신하며 기도 했 습니다. 통곡의 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물이 매말라 가고 있습니다. 정작 울어야 할 자리에서는 울지 않고울지 말아야 할 자리에선 곧 잘 울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형제를 대할 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볼 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왜 ????? 우리들의 기도엔 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기도해도 눈물이 나오지않아 그러면서 옛날에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없대요 거짓말입니다,
자기심령에 주님의 눈물이 메말랐다는 것을 잊고 있던 것이지요.
주님의 생명이 그않에 없단 것을 잊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눈물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아 그안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내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가득차면 흘러서 죽어있는 세상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5절 중반절에"...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들었노라 보았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그 눈물을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이 나라와 우리가족과 내 이웃을 마음에 품고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통하며 이시대에 우리리가 마음을찟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시기바랍니다.
3.히스기야 기도가 응답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려 졌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에 보여졌습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눈물이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입니다.
5절 하반절에서"...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 위해 건강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히스기야에게 건강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성전에 올라가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래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올라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뭔가를 하기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의해서 하나님의 일하기 위하여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내가 네 날을 십 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그렇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라고 했습니다.
또한 6절을 보면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하셨습니다.한마디로 히스기야를 살려 주시고 그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 응답입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살아났고 기도로 나라를 살렸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농사짓는 할머니가 목사님을 대접하기 위해 감자 껍질을 벗기고 솥에 쪄서 내왔습니다.
목사님이 할머니한테 기도를 시키자 그 할머니는 기도를 못한다며 사양했습니다. 목사님은 한마디라도 좋으니 기도를 하라고 강권하자 그 할머니는 마지못해 "하나님, 제 죄를 감자 껍질처럼 싹싹 벗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목사님은 내 평생 이렇게 진실한 기도는 처음 들었다며 칭찬했다고 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위에는 누구에게나 위기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위기, 경제적인 위기, 가정의위기. 사상적인 위기, 신앙적인 위기, 등 많은 위기가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사람 히스기야 왕처럼 성전에 올라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사정을 낱낱이 아뢰며 간절히 기도할 때에 위대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로 살아난 히스기야, 기도로 위기를 극복한 히스기야, 기도로 나라를 지킨 히스기야, 처럼 우리도 히스기야 같은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죽음에서 살아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왕하 20:1-7)
우리 같이 따라서 하십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심해서 세 가지 내용으로 은혜를 사모하려고 합니다.
첫째 히스기야의 고난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고난을 만나기 십중팔구입니다. 히스기야가 만난 고난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1절 내용인데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의 고난을 하나님의 묵시를 받아 전해주었습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여기 '집을 처치하라'는 말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라,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선택하고, 재산도 이제는 정리하라'는 뜻입니다. '결코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 말은 '이제 죽을 차비를 하라, 지난날을 청산하고 천국 갈 준비를 하라, 모든 것이 끝장이다, 죽음이 지금 문턱까지 다가왔다' 는의미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한 번도 자기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을 텐데 막상 죽는다는 통고를 받았을 때 눈앞이 깜깜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야'이러한 착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성경 적으로 잘못된 해석과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잘 믿어도 고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도 환난, 실패, 질병, 어려움을 만나기 일수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요 마치 바다에 풍랑이 있는 것과도 똑 같습니다. 풍랑 없는 바다를 본 적이 있습니까?
욥5:7인데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으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불티는 위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면 누구나 고난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요16:33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고난을 당한 다는 말이요, 환난도 당하고, 질병도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그 고난을 능히 이겨 낼 수가 있느니라는 뜻입니다.
본문20:1에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히스기야가 이와 같은 사망선고를 막상 받았을 때 아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어쩌면 억울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나이 겨우40입니다. 아직도 젊은 나이요,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이라고 해서 어쩔 도리가 있다는 말입니까? 여기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바로 내 자신이 이러한 고난, 위기, 실패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내 자신이 여기 히스기야처럼 죽을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니야' 라고 말할 성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스위스의 이름난 의사인 스루미애가 인생에게는 사 계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20세 까지는 봄이요, 20세에서 40세까지는 여름이고, 40세에서 60세까지는 가을이며, 60세에서 80세까지는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무엇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차례대로 오는 사 계절의 순리처럼 오지 않고 갑자기 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히스기야는 나이 40세인데 갑자기 외롭고, 쓸쓸하고, 싸늘한 겨울 황혼을 맞게 된 것입니다.
우리 누구도 예외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아갈 때 죽음을 준비하면서 한 날, 한 날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만사가 끝장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자'이렇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죽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약5:15을 믿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히스기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그가 만난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불러 볼까요?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죽음에서 살아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둘째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자주 합니다. 믿는 성도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이 기도는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께 구하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리라, 항상 기도하라,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고 응답도 약속하셨는데 마7:7절'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 당했을 때 히스기야가 결사적인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앗수르 군대 십 팔만 오천 명을 완전히 전멸시키고 계셨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역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히스기야가 자기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성도들에게 기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그러한 내용이 아닙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바로 그것이 기도요,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내는 열쇠가 되는 그것이 기도라는 말입니다. 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먼저는 벽을 향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2절입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했습니다. '벽을 향했다'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아마 그는 중병으로 침상에서 일어날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어나 기도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누운 채 얼굴을 돌려 벽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벽쪽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스기야의 눈앞에는 두터운 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벽 너머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벽 너머에는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문제의 벽 앞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 질병, 실패, 낭패의 벽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이 벽만 바라보면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벽 건너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없었던 소망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얍복강 강가의 벽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질 만큼 기도했을 때 기어이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벽 앞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십자가의 쓰디쓴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 잔이 없었더라면 부활의 태양이 따라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지금 죽음의 불똥이 발등에 떨어졌습니다. 죽음의 벽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또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본문 말씀을 보니까 눈물로 통곡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3절 "심히 통곡하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눈물의 기도, 그 다음은 문제해결 인 것을 종종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눈물이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떠한 눈물 말입니까? 참회하는 눈물 말입니다. 참회하지 않아도 좋을 인생은 아예 없건만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이 있었지요? 십 팔 명이 압살을 당했습니다. 그 때 저마다 '안됐구나, 불쌍하다, 진즉 죄를 해결할 일이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얼마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까?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정성껏 대접을 하려고 감자 껍질을 잘 벗겨서 삶아서 목사님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말하기를 '할머니 기도하세요' '저 기도할 줄 몰라요' '그래도 짤막하게 기도해 보세요' 할머니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죄를 감자껍질 벗기듯이 다 벗겨 주세요'이렇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감자껍질 벗기듯이 하나 하나 벗겨야 될 죄가 너무도 많다는 말입니다.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하소서♬우리는 눈물로 기도하는 경건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 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기도의 응답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해 기도했으며, 그의 진실된 삶을 바탕한 기도를 했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외면하시리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까? 본문말씀이 답합니다.
①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부르짖으라, 무작정 눈물을 흘리라, 이렇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5절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그 눈물을 보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실 만큼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큰 소리로 기도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귀가 어두우셔서 듣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중심에 있는 기도, 조용한 기도를 똑똑하게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물이 헛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애통하고 회개하는 그 눈물을 지켜보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② 삼일만에 성전에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죽을병에 걸려 있고, 일어날 수 없으며, 침상에서 움직일 수 없는 히스기야인데 3일 후에 그가 성전에 올라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5절입니다.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왜 삼 일 후에 성전에 올라가는 축복을 주셨습니까? 히스기야는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성전을 그리워하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병이 낫게 되면 맨 먼저 성전에 올라가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릴 것을 미리 아시고 주신 축복의 내용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시84:1을 보면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 스러운지요" 했으며,
84:4에 보면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믿음 생활이 성전을 사모하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③ 생명을 연장하신 것입니다. 본문1절을 다시 보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분명히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히스기야에게 한 길이 뚫려져 있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막혀있었는데 하늘을 향해 한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셨으며, 죽을병에서 15년 생명을 보너스로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꼭 기억할 것 하나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시게도
본문7절입니다. "무화과 반죽을 가져 오라 하매 무리가 자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왜 히스기야의 그 종처에다가 무화가 반죽을 발랐습니까? . 약5:14절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기름을 바르며 저를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들이 왜 우는가? 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구불만 때문에 울고, 의사표시를 위해서 울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울음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언어입니다. 아이들은 아파도, 기분 나빠도, 배가 고파도 웁니다. 그리고 울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눈물의 기도, 그 다음은 문제해결 인 것을 종종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눈물이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얼마만큼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십니까?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얼마만큼 나는 봉사를 하고 있는가 한 번 쯤 물어야 할 것입니다. 왜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으며, 나 같은 죄인의 생명을 6.25동난 때도, 8.15해방 때도, 5.18때도 데려가지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연장해 주셨겠습니까? 괜히 생명을 연장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요, 그 가운데는 주의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위해서 오늘날 생명을 연장해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남은 날 열심히 기도하면서 히스기야가 받았던 하나님의 그 응답을 축복으로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마 전에 장로님이 소원을 말한 적이 있는데 '두 발로 걸어서 교회에 나가 다른 장로님들과 같이 예배드리는 것이 소원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중공, 북한의 지하교회의 성도들의 소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경, 찬송을 옆구리에 끼고 자유스럽게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성도는 자동차 사고로 다리에 중상을 입고 입원했는데 첫 번 주일입니다. 기부스 한 채로 부축을 받아 병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주일을 어겨 본 일이 없는데 이렇게 걷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예배당에 나왔습니다. 남은 생애도 주일을 범치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건강을 주셔서 내 평생토록 주의 일을 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84:1을 보면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 스러운지요" 했으며, 84:4에 보면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믿음 생활이 성전을 사모하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 열왕기하 20:12-21
기도는 능력입니다제목 성도의 위기
히스기야는 훌륭한 왕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며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히스기야 왕도 본문에서와 같이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자신이 다스렸던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의 위기는 언제오는가, 성도가 어떻게 할 때 위기는 찾아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바벨론왕이 보낸 사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귀를 기울여 들었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사자의 말을 듣고 보물고의 금품과 향품등을 보였주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였던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병들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처들어왔을 때에도 그는 이사야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가 끝나고 육신의 죽을 병이 고침을 받고 난 후 바벨론왕의 특사가 친서와 보물을 가지고 공세를 폈을 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즉,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기 이제는 회복이 되고 성공을 하고 난 후에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바벨론왕은 호시탐탐 남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벨론왕 특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히스기야로서는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죽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가 언제입니까? 바로 구약시대가 끝나고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바로 암흑의 시대, 어둠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거의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었으나,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위기입니다.
성도의 위기는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입니다. 오히려 사람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보다 클 때, 사람의 말을 더 듣고자 할 때, 그 때가 바로 위기입니다. 지금 내 신앙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쟁쟁하게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어가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어보다도 세상적인 언어에 더 익숙하다면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고 그 언어에 끌려가게 되는 것을 당연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언어에 훈련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위기는 바로 편지와 예물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다왕국의 주변에는 두 왕국이 세권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바벨론과 앗수르였습니다. 이미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를 노리고 한번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창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벨론왕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유다왕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히스기야왕이 강한지 정탐하러 특사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히스기야가 사람의 말에 익숙하다보니 속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짓의 아들이며 위장술의 대가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 약한 부분으로 침투해서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위기는 생기게 됩니다. 시험이나 환란에 겁먹고 떨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나 행복, 출세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보물과 편지에 속아버린 히스기야 왕은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13절에 살펴보면 그는 왕궁과 나라안에 있는 것, 전부다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보여주었을 까요? 여기서 보여 주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살아난 히스기야로서는 바벨론 특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랑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와 국력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가 이루어 놓은 양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군기고와 내탕고까지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진정 보여주어야 할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 보여줄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 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있을수록 더욱 근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더욱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할 수록 평안할 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사람의 말과 세상 것의 잠시 홀깃하여 위기를 맞이하였다 할지라도 다시한번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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