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데이' 연방 공휴일이어서, 연방공무원인 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연휴가 주는 편안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수요일엔 요즘 듣고 있는 학교 강의시험이 있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 이렇게 더 주어진 휴일에 감사하는 기분으로 일요일 하루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 휴일이 오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습니다. 마틴 루터 킹. 뛰어난 민권운동 지도자이자 사회개혁가였고,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을 기념일로 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고, 적지 않은 추모행사가 미 전역에서 열립니다.
이민자로서,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킹 목사를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 내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로움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대의 선지자였고, 비폭력 사회개혁운동가로서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습은 인종과 시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인류의 역사에 각인된 위대함이었고, 예지였다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계속되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미국에 노예로 잡혀 팔려온 아프리카인들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필요성으로 인해 공업화된 미 북부 지대의 노동력 확보 요구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노예해방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남부 대농장들에 묶여 있던 흑인들을 표면적으로 '해방'시키게 되었고, 이로부터 자각된 미국 내 흑인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그들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실제적으로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그나마 어느정도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소련과의 냉전시기였습니다. 군대와 국방 부문에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미국 사회는 그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던 유색인종에의 공직 진출 허용을 단행했고, 자각한 흑인들은 지금까지 드러내놓고 자행됐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번번히 그 두터운 차별의 벽에 막혀 그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흑인 사회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니,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입니다. 각각 미국 내 인종관련 사회운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 두 지도자는 모두 암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지만, 이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뤄낸 이 사회에서, 지금 저같은 유색인종 이민자도 비교적 여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콤 엑스는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의 초기엔 극렬한 흑백 분리자로서, '흑인만의 공화국'을 외쳤고, 인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극렬 폭동주의자'로서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됐었으나, 그의 삶을 마감하기 전 비폭력주의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노선이 다른 '같은 흑인'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반면, 킹 목사는 처음부터 비폭력주의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민중들에게 전달했으며, 이같은 그의 입장은 흑인 뿐 아니라 진보적 백인들에게까지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꿈은, 그 스스로가 '희생제물'로서 제단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성취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서 미국 사회는 킹 목사가 성취하고자 했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흑인들의 지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향상되어 왔고,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인 법안들도 마련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위는 아직도 이 사회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백 인구비율과 대비해 볼 때, 미국 내 교도소 수감 인구를 흑백으로 비교해 보면 사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평등의 '허구'가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백인 중심의 이 사회의 건재를 위해, 미국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가족의 부 축적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한 아시아인들의 대량이민을 허용했고, 이들은 '흑백 갈등'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일종의 '버퍼'로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은 빈부 격차로 인한 대규모 갈등 폭발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4.29 폭동을 '인종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매스컴을 통해 몰아부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의 폭동으로 삶터를 잃은 한인들에게 이같은 사실 왜곡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일부 한인들은 흑인들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진실은 사실 다른 데 있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우리 한인 이민자들 역시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장사를 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이 싸워서 얻은 것들을 거의 우리 힘 안 들이고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처지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올 때는 경제적인 이유로, 보다 잘 살아보겠다고 왔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남북 분단이라는 보다 특수한 이유가 있어서, 흩어진 혈육과의 재회를 위해 미국에 온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단 때문에 갈라진 피붙이들이 그리워, 이들을 찾기 위해 디아스포라의 길을 택한 사람들 이외엔 분명히 '경제적 성공'을 위해 미국에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나름으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송한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 와서 3D 직종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온 한인 이민자들도 본질적으로 그들과 틀린 것이 무엇일까요. 그나마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민 한인들은 저런 선각자들의 투쟁으로 이만큼 차별받지 않으며 그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며 살아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우리 민족이 가진 근면성과 불굴의 도전 정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들이 과연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중범죄로 취급하는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우리는 이곳에서 때때로 미국인들에게 받는 차별에 대해 분노하지만, 글쎄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을 찾아 땀흘리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는 걸까요?
마틴 루터 킹이 위대한것은 그가 지지하고 그가 찾으려 했던 가치가 단지 그가 속했던 소수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함께 지녀야 하고 공유하는 것이 마땅한 보편타당한 가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가 보다 작아지고, 자본과 인적자원의 교류가 훨씬 쉬워진 지금, 마틴 루터 킹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타민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박 2일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눈물흘린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 눈물이 흐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 '보편타당한 가치'와 '인권'이란 사실을 가슴으로 믿고 있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미국에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생활에 감사하면서, 문득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자신이 추구하는 꿈을 찾아 땀흘리는 이민족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감사함과 더불어 그들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 때문인 듯 합니다.
시애틀에서...
첫댓글 정말 훌륭한 말씀입니다. 간디나 킹 목사가 실천하고 간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그분들이 암살된 것으로 보면 그렇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겠지요. 저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도 정의, 평등은 약자들의 자기 방어 수단일 뿐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힘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친구가 있었지요. 늘 삐닥하게 앉아 저의 강의를 가소롭다는 듯이 듣곤하였지요. 한동안 논쟁과 설득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그럴 수만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하였죠. TV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들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데, 너는 그러지 않느냐고요....
사실 우리의 역사를 더 깊게 살펴본다면, 타민족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민족들의 침입에 시달리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말이죠.
그럼, 그 아이들이 뭐라든가요? 이 이야기의 끝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을거란 제 추측이 잘못된 생각이었으면 합니다.
아고라에 올려진 종상님 글에 저도 가서 지원사격 좀 하고 오긴 했지만, 답답하긴 마찬가지에요.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너무 삭막해요.
동물학대하는 거에 대한 분노에 대해 인간이 먼저라는 말들이나 하고,
아프리카어린이나 북한 어린이 얘기하면 우리나라의 어린이부터 챙기라는 얘기나하고..
그렇다고 그 인간들이 가까운 주변사람에 대해 마음쓰는 거 못봤거든요.
너무 이기적이고, 각박해진 아이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게 우리 어른들이라서 더 안타까워요.
예... 뭐라고 할까요,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받고 있는 교육은 분명히 서로 '밟고, 올라서고, 죽이는' 것만 배워서..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교육들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교육'이라고 말하죠.
그게 일부의 일이 아나라 아주 평범한 아이들 속에서도 부모들에 의해 그런 심성을 배우더라구요.
요즘은 아이들과 부모가 아주 밀접하게 감정을 교류하는 시대인데, 학부모모임에서부터 엄마들이 그러는 걸 보고 아이들도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에 대해 올케에게 듣고 정말 놀랐어요.
평수가 작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도 늘 조카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을까봐 걱정스러워하며 살죠.
계층분리가 아이들때부터 생기고, 나보다 힘든 사람에 대한 배려에 대한 교육은 소홀해지고 있으니,
지금같은 현상이 생기는 거겠죠.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제가 그 학생들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고3교실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 그 친구의 변화는 제가 잘 모릅니다. 재수할 때 원서쓰러 왔었는데,,, 저 한테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뿐이었습니다.
더 심한 얘기 해드릴까요? 경상도 포항 쪽 사는 놈을 하나 알았었는데,,, 그 녀석 입만 벌리면 이게 다 김대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쳇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사니... 그 심각한 정서적 왜곡은 무엇으로 바로잡아야 하는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제가 자꾸 스트레스만 드리네요^^
종상님 글얘기에서 자꾸 딴데로 가긴 하지만...^^
얼마전 들은 얘기에요.
예전에 조중동에선 신입기자가 들어오면 선배들이 알게모르게 사상교육을 시켰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미 계층이 확실히 나뉘어서 굳이 사상교육 안시켜도 이미 다 되서 들어온답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긍이 가는 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이건 정말 웃기는 얘기지만, 저의 친정아버지도 언론인출신이신데,
예전엔 자랑스러웠는데, 사상이 바뀌면서, 자리를 지키신 아버지를 의심하기도 했었어요. ㅎㅎㅎ
제 제자 중에 조중동 기자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서울대간 똑똑한 친구하나 있었는데,,, ㅋ 다행히 경향 기자로 갔어요.. 아마 제 영향도 좀 있었을 겁니다 ㅎㅎ
수고하셨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