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10~20 작은 출애굽 사건
하나님 나라는 언약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브라함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언약을 잊고 말았다. 어려움이 생기자, 위기가 생기자 곧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앙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성경의 인물들에게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면 신앙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람은 대형사고를 쳤다. 만일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으면, 아내 사래를 애굽 바로왕에게 빼앗기고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자녀가 사고를 치면, 부모가 정리하듯이, 아브람이 자초한 일을 하나님께서 정리해주셨다. 그리고 점점 아브람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언약을 깨닫고 붙잡고 믿음이 자라게 된다.
아브람은 바벨론에서는 나와야 되겠다 나와야지 그러다가 부르심을 받고 출 바벨론을 하였는데, 기근이 생기자 애굽으로 가자. 애굽에 가면 먹을 것도 많고, 좀 그렇지만 거기는 바벨론보다는 괜찮지, 그러나 애굽은 성경에서 세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안 나가다가, 동네 처녀 예쁜 줄 모른다고, 교회를 당연하게 여기고, 빠지는 것이 점점 세상으로 기울다가 대학교 때 완전히 나가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는 경우이다. 한 마디로 세상이 좋아 나갔다가 혼이 나서 돌아오는 것이다. 교회는 너무 고리타분하다. 화려한 세상이 좋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광야에 있는데, 돌덩이가 너무 많고, 강도 변변치 않고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굽은 나일강이 흐르고 먹을 것이 많고, 또 화려하다. 그런데 애굽의 체계는 굉장히 질서가 있고, 능수능란하며 교묘하고 멋있고 주도면밀하다. 마치 빠지면 나오기 어려운 늪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나오기 어렵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 기근이 무겁게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인가.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람아 너에게 보여줄 땅, 곧 네 민족이 될 땅, 곧 가나안 땅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언약을 잊어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다. 물어보고 내려갔더라면.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도 않았다. 곧 기도하지 않았고, 또한 애굽에서 제단을 쌓지도 않았으며, 언약도 잊고 있었다.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또는 초신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중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점령당하였을 때, 이 땅에 가만히 있으라 하지만, 아니요 우리는 이미 마음에 정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겁니다. 애굽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설마 바벨론에게 애굽이 당할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갔으나, 그러나 바벨론에게 애굽은 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물어봐야 한다.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생활을 놓쳐서는 안된다.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 원어를 보면, 사래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미스코리아처럼 또는 금처럼 번쩍이는 군계일학같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뿅 반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 옛날에는 치안이 허술해서, 남편을 죽이고 부인을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였다. 예쁜 여자는 납치당하거나, 보쌈을 당하였거나, 또는 남편은 살해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가인박명도 그렇거니와 또한 예쁜 아내를 둔 남편이 힘이 없다면 빨리 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광야생활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과 조상들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나중에 광야에서 사는 법을 모세를 통해 배우게 된다.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 사래는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 아브람과 사래는 같은 아버지이지만, 다른 배에서 나온 남매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창20:12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 사래는 매우 눈에 띄는 엄청난 미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임이 분명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는 동시에 영적인 하나님의 신부 교회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고 스데반과 순교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이 주신 옷을 입고 눈이 부실 것이다. 이미 예수님도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흰 옷과 눈부신 모습으로 계시고, 교회도 웨딩드레스 버금가는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 이를 성경은 예복이라고 말한다. 예복이 없이는 천국에 못들어간다.
마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 기억하는 미스코리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스코리아는 누구누구지. 하여간 그런데 바로의 대신들이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처럼, 사래를 보고 ‘할렐루 사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왕이 얼마나 이쁘길래 얘들이 노래를 부르냐 나도 좀 봐야겠다. 애굽에도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그보다 이쁘겠어. 그래도 신하들이 사래를 두고 노래를 부르니 바로가 분명히 사람을 시켜서 사래를 궁궐로 데리고 온 것일 것이다. ‘이끌어들였다’는 것은 사래를 빠져나올 수 없도록 유인했다는 것이다.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 그런데 바로도 사래를 보자마자 뿅 첫눈에 반하여, 그의 오라비 아브람에게 갑자기 선물공세를 하였다. 양과 소도 좀 받으시고. 또 남종 여종도 받으시고. 또 나귀도 좀 받으시고. 또 낙타도 좀 받으시고 받으세요. 이 중에는 나중에 이스마엘을 낳을 하갈도 있었을 것이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빼앗기는 것을 막으셨다. 여기서 재앙은 전염병을 말하는데, 아무튼 이 일로 인하여 아브람의 가족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작은 출애굽이자 미래의 출애굽의 전조현상이다.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 바로는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인줄 모르고 이런 일을 하였으므로, 아브람을 불러서 책망하였다. 이후 이 그림은 모세의 출애굽으로 확장되는데, 왕정 이후 가나안 정착 후, 어려울 때, 이사야나 예레미야 모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였다.
사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렘42:15~17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가 없으리라
물론 이 말씀은 신약으로 와서 적용하면, 기본적으로 예배 중심생활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19 네가 어찌하여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 아무튼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는 언약관계 곧 결혼 관계인데, 이를 바로도 깨뜨리지 못하였다.
아브람은 애굽을 생각하다가 언약도 잊고, 제단 쌓는 것도 잊고, 자기 마누라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주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가정을 구출하신 사건이다. 작은 출애굽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는 계속 되는데,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부터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하나님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죄와 죽음의 문제가 들어오고 이 문제는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침내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어찌 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오셨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새언약이라고 하는데, 십자가는 새언약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도 언약을 잊어버리고, 믿음없이 살 때가 적지 않다. 새언약을 잊고, 또 기도하지 않고 내 맘대로 결정해버리고 움직이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교회를 등지고 살다가 한 참 후에 돌아오기도 하고. 그럼에도 교회는 돌아온 탕자같이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산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때론 광야생활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비루먹은 말과 그렇지 않은 통통하게 살찐 말을 두고 비루먹은 말을 골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비루먹은 말이 훨씬 좋은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배고픔을 겪어본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애굽사건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위하여 허락하신 사건이다. 이는 언약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빌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그러므로 거친 세상에서 새언약을 붙잡고 예배 중심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