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휴가 <2편>
휴가를 나왔던, 돈이 없는 군인들은 항상 십이열차를 이용했다. 이 열차에 붙은 군용 칸은 항상 좌석에 비해서 이용하는 군인이 더 많았기 때문에 좌석을 잡지 못한 대부분의 군인들은 흔들리는 열차 속에서 열두 시간을 서서 버티고 가야 했다. 그래서 십이열차를 이용하여 귀대하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좌석을 잡기 위해 몇 시간씩이나 일찍 나와 TMO 앞에 미리 줄을 섰다.
그 날도 TMO 앞에는 많은 군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 역시도 십이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그 대열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계산을 해보아도 내가 좌석을 차지할 수 있는 확률은 1/10도 안 되었다.
그때였다. 군인들이 줄을 서 있던 곳으로 두 사람의 헌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헌병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일부러 고개를 딴 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그 헌병들은 내 앞에 서 있는 군인들을 그냥 지나치더니 내 곁에 다가와서는 유독 나에게만 휴가증 제시를 요구했다.
나는 즉시 휴가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헌병들은 나에게 휴가증을 돌려주지 않은 채 나더러 동행을 요구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헌병들을 따라간 곳은 부산역 구내에 있던 당직 사령실이었다.
나를 연행했던 헌병 중 한 사람은 상병이었고, 또 한 사람은 나와 계급이 같은 일등병이었다. 당직실로 들어가자 나를 연행했던 두 헌병 중에 일등병이 나에게 "업드려 뻗쳐!"하면서 기합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요령을 알대로 알고 있는 나는 쉽사리 헌병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야! 나는 니 말은 안 듣는다."
나는 당직실에 있는 선임하사를 바라보며 내가 기합을 받아야 한다면 선임하사가 주라고 했다. 그러자 나의 거동을 살피고 있던 선임하사가 성을 내면서 말했다.
"저 자식 죽여 버려!"
나는 그래도 태연하게 헌병들에게 응수를 했다.
"내가 기차를 타고 안 타는 것은 니들에게 달려 있다. 나를 죽이건 살리건 그것은 니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니들이 하는 짓을 보고 니들 대대장한테 직접 찾아갈 테니까 니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면서 배짱을 내밀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당황하게 된 것은 헌병들이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열차가 출발할 시간이 반 시간도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헌병들은 거지같이 생긴, 나이 어린놈한테 잘못 걸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헌병들은 애초부터 상대를 잘못 선택했던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헌병들이 불리했다. 한 헌병이 나를 당직실에서 내쫓으려고 나에게 휴가증을 되돌려 주면서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를 끌고 왔던 두 헌병이 이번에는 나를 모시고 나에게 십이열차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제야 나는 못 이기는 채 당직실을 나왔다. 군용 열차 쪽으로 걸으면서 나는 두 헌병 중의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니, 부산 빼빼 아나?"
그러자 헌병은 모른다고 했다. 그때 나는 폼을 억지로 잡으며 내가 부산 빼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헌병들은 금방 태도가 달라졌다.
"형님, 몰라 봬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하면서 한 헌병이 사과부터 했다. 그리고 두 헌병은 나와 함께 군용 칸에 오르더니 한 좌석에 앉아 있던 세 병사에게 일어나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힘없는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헌병들이 시키는 대로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비웠고 헌병들은 그 자리에 나를 앉게 했다. 그리고 헌병들은 돌아가면서 고급담배인 아리랑 한 갑과 사이다 한 병을 사서 나에게 주고 갔다.
군용 객차 안은 서 있는 군인들로 통로까지 메워졌고 모든 좌석에 세 사람씩 앉아 있었지만 내가 앉은 좌석만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객차 안에 서 있던 군인들은 누구도 내가 앉은 자리에 함께 앉으려 하지 않았다.
기차가 대구쯤 지나갈 때 나는 내 곁에 서 있던 상병을 내 곁에 앉게 했다. 그랬더니 그 상병은 서울까지 가는 동안 나에게 몇 차례나 먹을 것들을 내놓으며 같이 먹었다. 열차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용산역에 닿았다.
열차에서 내려서 해가 뜰 때까지 나는 남산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남산에 올라간 것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호주머니에는 부대 가까이 가는 시외버스 요금을 제하고 나면, 아침 요기를 할 수 있는 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산의 약수로 아침을 대신한 채, 9시쯤 신설동에 있던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도 나를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다 헤진 군복을 입고 앳되어 보이는 나에게 한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 "야! 너 저기서 누가 보잔다." 상대는 다짜고짜 나에게 반말을 하면서 나를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좀 모자라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누가 나를 보잡니꺼?"하고 말했다. 상대는 가 보면 알 것이 아니냐 하며 무조건 나의 옷깃을 잡고 끌었다. 그 사내는 나를 얼마쯤 끌고 가더니 건물과 건물의 사이에 있던 막힌 골목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작은 칼을 꺼내어 나의 배에 들이밀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모자라는 흉내를 내며 상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상대는 징그럽게 웃는 모습을 입가에 지어 보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전광석화처럼 나는 칼을 쥐고 있던 상대의 손목을 잡으며 사정없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러자 상대는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놓치고 힘없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다시, 쓰러진 상대의 가슴팍에다 군홧발을 올려놓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 아직도 혁명 맛 못 본 놈 아냐!"
그러자 군홧발에 가슴이 짓눌린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는 두 손으로 싹싹 빌면서 애원을 했다.
"형님, 제가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한 번 더 사내의 기를 꺾기 위해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누군줄 알고 까불어, 응! 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그전 같으면 니 같은 거 갈비뼈 몇 개 뿌질러 놓고 말았어."
그러자 사내는 더욱 겁을 먹고 용서해 달라며 애원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사내의 가슴에서 군홧발을 내려놓았다. 나는 골목에서 나와서 다시 사내에게 내 얼굴을 들이밀며 또 겁을 주었다.
"니, 정말 내 모르겠나?"
그러자 사내는 정말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에게 내가 부산 빼빼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사실 부산 빼빼라는 별명은 내가 지어낸 별명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상대들은 내가 별명을 말하면 나를 상당한 실력을 가진 싸움꾼으로 여겼다.
상대는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앙상한 몸매, 허름한 군복,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내 위세에는 크게 놀랐는지 나에게 형님 소리를 빼놓지 않았고 계속 존칭어를 썼다.
그리고 그 사내는 나에게 시외버스 정류장 근방에 있던 음식점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는 국밥을 시켜서 나에게 대접을 했다. 그리고 내가 국밥을 다 먹고 나자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느냐고 묻더니 부대 가까이까지 갈 수 있는 차표를 사왔다. 그래서 나는 부대에 복귀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군대생활 중의 첫 휴가를 무사히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18세였다.
내가 부대에 복귀하자 부대 내에서는 어느 병사의 휴가복귀보다 더 반겨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인사기록카드에는 내가 무의탁사병으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급자들은 행여 내가 사고를 저지르거나 복귀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휴가를 갈 때 입었던 사지군복이 헌 군복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원대 복귀한지 몇 달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중대의 운동장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날 부대 내에서 힘깨나 쓰던 선임자들을 모두 차례로 눕히고 최종결승에서 1등을 했다. 나는 그 덕택에 중대장으로부터 3일간의 특박(특별외박) 포상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특박증을 받아 들고 부대 정문을 나왔지만 가진 돈도 없었고, 또 특별히 찾아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저녁이 되자 다시 중대로 들어가서 자야 했다.
바로 다음날 아침, 부대에는 비상이 걸렸고, 부대 내의 전 장병은 운동장에 집합했다. 그리고 대대본부에서 내려온 장교가 명단을 들고 호명을 했다. 호명된 병사들은 복창을 하고 다른 한쪽으로 모여 섰다. 곧 그들에게 사물을 챙기게 하더니 트럭에 올라타게 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곧 트럭은 출발했고 한참 후에 우리를 1군사령부의 보충대에 내려놓았다.
그때서야 우리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충대에서 우리는 며칠 동안 하는 일이 없이 대기를 했다. 그 후 우리는 각각 다른 부대로 뿔뿔이 헤어졌고, 내가 새로 배치받은 부대는 전방에 있던 한 사단의 보병대대였다.
나는 그곳에서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근무를 했다. 내가 머물게 된 중대는 다행히도 대대의 본부중대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