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 자활공제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
작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이제 우리나라도 모든 분야에서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의 설립은 농협이나 신협, 생협처럼 정부에서 허용하는 분야에서 특별법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협동조합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법인격은 주식회사와 같은 영리법인으로 하되, 협동조합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방법을 취해 왔다. 그러나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는 운영상의 고민을 가중시켰고, 정신의 약화는 피할 수 없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이후 우리 사회에는 협동조합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저소득취약계층이 중심인 자활공동체와 사회적기업, 대리운전기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 영세소상공인들 사이에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혹은 설립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으며, 공공성이 강조되는 보건의료, 육아 등의 분야에서도 관심이 높다.
정부에서도 협동조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과 달리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며, 불경기에도 인력을 감축하지 않는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빈곤을 낮추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매우 독특하고 가치있는 기업모델’이라며 협동조합의 가능성에 주목한바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부화뇌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운동선수가 더 잘 달리기 위해 출발선에서 운동화 끈을 조이듯 우리도 협동조합운동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따지고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씨알사상이 스스로 하는 주체의 철학인 것처럼 협동조합의 첫 번째 가는 가치도 ‘자조’, 즉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위대한 유산으로 꼽히는 영국 로치데일의 협동조합이 그랬다. 1800년대 영국의 노동자들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하루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과 끼니를 고민해야 할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주식으로 먹는 밀가루는 불순물이 잔뜩 섞여 있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도 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맞서기 위해 밀가루와 같은 생필품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결과는 놀라워 6년 뒤에는 제분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0년 후에는 조합원은 50배로, 출자금은 400배로 성장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공제협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노숙인, 쪽방촌 주민, 수급자 등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이 모여, 출자를 하고, 이렇게 모인 돈으로 긴급한 생활자금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자조’의 원리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들은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타율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농협도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관제협동조합이다. 거름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 스스로가 싹을 틔웠을 때 값어치가 있는 것인데, 농민들 스스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억지로 물을 주고 거름을 준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농협은 규모는 비대해졌지만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번에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은 민(民)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라는 측면보다는 정부정책에 의해 힘입은바 크다. 장기간 경기침체로 심각한 일자리 부족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정부에서 주목한 것이다. 물론 이번 협동조합기본법의 또 다른 특징이 정부로부터의 지원과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었기에 농협과 같이 관제화 될 가능성은 없지만 당사자들의 준비가 아직 덜 된 상태에서 협동조합 기본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우리에게 던진 첫 번째 과제는 ‘스스로가 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외부에서 주어져서 하는 협동조합이 아닌 ‘스스로 하는’ 협동조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가에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개인의 발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상대를 승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쟁심,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공명심, 이기심 등을 내려놓아야 한다.
제정구기녑사업회에서 하고 있는 배달학당에서 박재순박사님으로부터 이승훈 선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 속에서 울컥 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선생은 3·1운동을 주도하다 감옥에 가서는 3년이상 변기 청소를 도맡았다고 했다. 자신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는 마당쓸고 청소하는 일에 앞장섰다고도 했다. 한겨울에 변기의 똥무더기가 얼어서 올라올 때 도끼를 가지고 가서 직접 깨트렸다고 했다.
고 제정구 선생의 평생의 도반이라 할 수 있는 정일우 신부는 미국에서 태어나 20대에 머나먼 우리나라 땅에 와서 40여년을 도시빈민, 농민들과 함께 살았다.
이런 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승훈 선생이나 정일우 신부가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도 빈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를 중심으로 ‘생산공동체’라는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적이 있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지도자들은 제대로 된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자본이 부족해서 충분한 사업기반을 갖추지 못하기도 했고, 사양산업인 봉제업종이 중심이어서 사업적 전망이 어두웠던 것이 주요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산공동체 참여했던 이들이 주인됨으로 함께하지 않고 지도자에게 의존하거나, 동료들이 이룩해놓은 성과에 무임승차하려 하는 등 서로를 섬기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도 빼먹을 수 없는 이유였다.
함석헌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씨알이지만, 인간이 지위와 소유로부터 자유롭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회의 특권적 지위와 부를 누리지 못하는 민(民)이 씨알이라고 했다. 모든 물이 바다로 가듯이 모든 문화와 역사는 씨알에게로 간다고 했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와 협동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운동이다. 로치데일에서 협동조합을 처음 시작한 이들은 파업하다 공장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었다. 생산공동체 운동을 했던 이들도 달동네의 가난한 주민들이었으며, 자활공제협동조합의 주역도 노숙인, 쪽방촌 주민, 수급자 등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이후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도 사회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협동조합은 씨알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다.
동시에 협동조합운동은 씨알을 깨우는 운동이며, 역사의 주체로 세우는 운동이다. 생각하는 씨알만이 주체로서 살 수 있으며 모두를 삶의 길로 이끌어간다고 했다.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모두를 살리는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