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는, 제 생각에 언니는 근검하게 살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언니네 집에는 식구가 11명이나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중얼중얼하시는데, 어떻게 열한 명인가 하면, 보세요, 저의 언니와 형부, 거기에 다섯 아이들, 벌써 일곱 식구죠. 거기다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더하면 아홉 식구죠. 다시 또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더해서 열한 식구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열한 식구나 되는 대가족이, 무엇으로 생활했겠습니까? 제 기억에 저의 언니와 형부 두 사람의 임금을 합해도 100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임금이 81원 5전이었고요. 그러니까 세 사람의 수입을 합하면 180원 가량 되었지요. 그래도 200원은 되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11식구는 이 180원의 임금에 의지해서 생활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다만 언니는 그 시절에 살림살이를 아주 꼼꼼하고 조리 있게 안배했습니다! 생전 남에게 이것저것 빌리는 일이 없었고 돈 따위도 빌리지 않았지요.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니는 알뜰하게 계획을 세워 솜씨있게 안배를 해서, 살림을 매우 안정적으로 꾸려나갔습니다. 편안하고 안정되어서, 오늘 갑자기 이게 없다 저게 떨어졌다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고, 나의 살림도 충분히 절약하는 편이지만, 언니에게 비하면 또 못 미치는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다섯 아이들을 입히고 먹이고 교육 시키려면 어디인들 돈이 들어가지 않는 데가 있겠습니까? 큰아이가 입었던 옷은 둘째에게 물려주고 둘째아이에게서 다시 셋째에게로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언니네 다섯 아이들은 이 점에서는 참 착했습니다. 까다롭지 않았거든요. 무엇이든 입으라고 하면 그냥 입었지요. 그랬으니까 이렇게 다섯 아이들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언니네 집은 침대보건 어떤 물건이건, 침대커버나 옷이나 양말이나 찢어지면, 언니는 손재주가 매우 좋아서 네모반듯하게 가지런하게 만들어 놓곤 하였습니다. 반듯한 것은 반듯하게 만들고 둥근 것은 둥글게 만들었지요. 언니가 나한테 왔다가 내가 수선한 것을 보고는 그러더군요. “소운아, 너 뭘 수선한 거니? 이건 대체 어느 나라 지도니?” 왜냐하면 제가 수선한 것은 반듯한 부분도 없고 둥근 부분도 없었거든요. 그게 어떤 모양이건 간에 우리 동북지역에서는 포친铺衬이라고 부르는 천조각 모양으로 박고 깁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언니는 제가 수선한 것을 외국 지도라고 놀리면서 가지고 가서 다 뜯어 버리고 새로 가지런히 수선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언니에게 아주 어려운 요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언니가 오면 제가 일거리를 찾았서 내오곤 했거든요. “소운아, 뭐 기울 거라도 있니? 가지고 나와라. 내가 다 기워 줄게.” 우리 집의 이불 호청은 다 30년 넘게 쓴 것들이어서, 얄팍한 것들은 어떤 건 손가락으로 잡아당기기만 해도 구멍이 났습니다. 언니는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천 같은 것을 덧대서 기워 줄게. 완전히 구멍이 나면 수선할 수도 없게 되니까 그럴 때까지 놔두지 마.” 그러면서 언니는 모두 수선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말했지요. “언니, 나 반바지 하나 좀 수선해 줘요.” 언니는 제게 가지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바지를, 제 기억에 언니는 가지고 나온 그것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소운아, 이건 도저히 수선하지 못하겠다.” 제가 말했지요. “언니의 그 솜씨로도 이걸 수선하지 못한단 말이예요?” 언니가 말했습니다. “내가 세어 보니까 이 반바지에 구멍이 48개나 되더라. 이걸 어떻게 수선하니?”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 그럼 언니도 이걸 수선할 수 없단 말예요? 수선할 수 없으면 그만 두죠 뭐.” 언니는 말했습니다. “버려라. 이건 수선 못한다.”
언니가 근검하게 살림하는 모습이 사실 저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모양입니다. 다만 저는 할 줄을 몰랐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언니처럼 그렇게 반듯하고 정교하게 수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멀뚱멀뚱 보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니가 근검하게 살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겨우 그 정도의 임금으로 살 수 있는지 요즘의 우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지만 언니는 살아냈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하나하나 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말입니다.
또 하나는 제 생각에 언니는 자비희사慈悲喜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비慈悲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자비라는 말은 누가 발명한 것일까요? 아마도 저의 언니를 위해 발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자비로웠거든요. 다른 사람이 조금 괴롭거나 곤란해 하는 것을 언니는 도무지 참지 못했습니다! 언니 자신은 괴롭고 곤란해도 혼자서 견디고 짊어지지만, 다른 사람의 괴로움과 다른 사람의 곤란은 보아 넘기지 못했습니다! 집안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은, 집안에 애들과 어른이 그렇게 열 한 식구나 있었지만 남은 밥과 남은 반찬은 전부 저의 언니 몫이었습니다! 노인네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에게도 먹이지 않았고 남편도 먹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언니가 먹었습니다. 어떨 때는 그 밥이 완전히 상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어도 언니는 차마 버리지 못했습니다. 언니는 물을 부어서 씻어 버리고 또 씻어 버리고, 씻어 버리고 또 씻어 버리고는 말했습니다. “됐다 됐어. 아무 냄새도 안 나! 먹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먹어!”
이런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집안의 어떤 친척 한분이 늘상 저의 언니를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거나 물건을 달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 사람 집안 형편이, 그 사람 말로는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저의 언니는 부탁하기 좋은 사람이지요. 돈을 달라면 돈을 주니까요. 설령 내가 나가더라도 빌려주고 물건을 달라면 물건을 주고, 설령 그 옷이 저의 언니의 몸에 걸친 것이라 해도 그 사람이 만약에 “입은 옷이 아주 좋네요. 저 주세요.”라고 한다면, 언니는 바로 옷을 벗어서 그 사람한테 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매번 올 때마다 가지가지 이유를 지어내서 저의 언니한테 돈을 요구하고 물건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좀 참지 못해서 언니한테 말했습니다. “언니, 자꾸 그 사람한테 꾐수에 넘어가지 마세요. 도대체 얼마나 여러 번 속은 거예요. 그 사람 집에는 어째서 그렇게 자꾸 사고가 생긴대요?” 언니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속이려면 속이라고 하렴. 그 사람이 한 번 와서 입을 떼고 말을 하면 그렇게 다 큰 어른한테 어떻게 할 수 있겠니?” 언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친척도 좀 미안했는지 아니면 이유를 지어내다가 지쳐서 더 이상 지어낼 수 없었는지, 이번에는 수법을 바꿨습니다. 어떤 수법이었냐고요? 설날이 가까워지면 그 사람은 돼지를 사가지고 와서 돼지를 잡고 돼지고기를 팔아서 돈을 벌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돼지는 어쩌다 갈비 요리에 적합해서 잘 팔리겠다 싶으면 팔아넘기고, 또 어떤 고기가, 그러니까 비계가 많아서 잘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사람은 돼지고기를 메고 저의 언니 집으로 왔습니다. 어느 해인가, 돼지 반 마리를 들쳐 메고 왔더군요. 돼지를 반을 자르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그 반을 메고 와서 언니에게 팔았습니다. 그 반 마리는, 저는 언니가 저에게 했던 말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언니의 한 달 월급을 줬다고 했습니다. 언니의 한 달 월급으로 그 사람의 돼지 반 마리를 샀는데, 언니는 반 마리 돼지를 몇 조각으로 나누어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언니는 돈을 주고 샀으면서도, 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걸 돈을 받고 되팔 수는 없어. 그냥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지!” 왜냐하면 언니네 집도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비계를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메고 와서, 그 사람은 팔리지 않아서 메고 왔다고 말하지 않고 줄려고 가져왔다고 말을 하면서, 곧 설도 다가오는데 드세요, 라고 말을 한 거지요. 그 사람은 분명히 저의 언니가 돈을 안 주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게다가 돈을 줘도 반드시 시장 가격보다 높게 쳐 줄 거라는 것을 알았던 거지요. 그렇게 벌써 계산을 하고 온 겁니다!
그렇게 언니는 그 사람에게 돈을 줬고, 그 사람은 기분이 좋아서 돈을 들고 떠났습니다. 저의 언니는 이쪽 방면에는 영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설은 되었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다 고기를 사버렸으니까요. 게다가 고기는 또 다 나누어 줘버렸지요. 제가 갔더니 언니가 말하더군요. “소운아, 올해는 설을 쇨 돈이 없구나.” 제가 물었지요. “돈은 다 어떻게 하고요?” 언니가 말했습니다. “고기를 샀어.” 제가 말했습니다. “고기를 그렇게 많이 사서 뭐 하려고요? 먹을 사람도 없는데.” 그러자 언니가 일의 경과를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랬지요. “언니 너무 칠칠맞아요. 그 사람이 어째서 나에게 팔러 오지 않았겠어요? 나에게 팔러 와도 내가 사지 않을 거기 때문이예요. 나라면 그 사람을 여지없이 폭로했을 거예요!” 언니는 말했습니다. “미안하잖아. 그래도 어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