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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퇴계원교회(2000~2009년)
(1) 제4대 임병훈 목사 부임
2000년 3월 1일에는 6년 동안 둘째 성전을 건축ㆍ헌당하며 교회를 안정시켜 발전하는 교회를 만든 정양윤 목사는 서중한합회 총회가 마침과 함께 의정부 교회로 전근하였다. 3월 1일에 서중한합회의 여러 교회를 담임하고, 서중한합회 총무부장을 수 차례를 역임한 행정력이 뛰어난 임병훈 목사가 제4대 목회자로 부임하였다.“내 자신이 먼저 말씀에 깨어지고, 성령이 쓰시는 온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사업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목회 철학을 갖고 4년 동안 마지막 목회를 하였으며, 퇴계원교회가 “도약하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열정을 불태웠다.
(2) 청년, 학생, 어린이 전문 목회 시작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목회자도 담임목사, 부목사, 교육전도사, 학생전도사가 상주하는 교회가 되었다. 따라서 청년, 학생, 어린이반을 목회자가 전문적으로 책임 맡아 지도하는 체제가 되었다. 2001년 5월 5일 안식일부터 어린이부가 대예배를 분리하여 시행하였다. 어린이부 설교예배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프로젝터를 설치하였다. 매년마다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를 개최하여 어린이들의 마음에 확고한 신앙을 심어 영적으로 곧게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000년에는 137명, 2001년에는 150명의 학생이 수료하였다. 2002년 7월 22일 토요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한 어린이 성경학교는 삼육 주니어 영어학원 강사 2명을 모시고 하였다. 교회에서 어린이 교사 26명이 협력하여 165명이 수료하였다. 2003년에는 English Summer Camp로 170명 수료하였다.
청년과 학생 부서의 활동도 전도사의 전담 지도로 활력이 넘치고 다양한 활동이 계속 되었다. 2000년 10월부터 학생회는 화, 금요일 저녁예배를 분리하여 별도로 드리기 시작하였다. 2003년 8월 5일부터 14일까지 청년회 하기봉사를 강화도 교회에서 실시하였다. 대장은 김준호 회장, 강사는 전찬수 전도사, 성경학교장은 손윤정, 수료 인원은 50명이었다. 이들 중 김준호는 목회자로, 손윤정은 삼육초등학교 교사로 성공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청년과 학생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하여 2003년 4월 19일에 교육관 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을 하였고, 11월 29일 안식일에 청년과 학생 교육관을 완공하였다. 이리하여 청년과 학생이 독립된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실시하게 되었다. 청년관은 2011년에 별도로 현재 위치에 마련하여 더 넓은 공간으로 발전하여 이사하였다.
(3) 전도회와 침례 행렬
2000년 4월 교회직원회에서 교회 홈페이지를 개설하기로 하고 운영위원장 유광호 장로, 실무위원장 채수덕 집사로 임명하였다. 교회 홈페이지를 통하여 교회의 행사와 대예배 실황까지 올려서 교회가 소통하는 모습을 갖추었다.
기간 | 집회명 | 강사 |
00.9.29~10.8 | 위성전도회(10 침례) | 마크 핀리 |
00.11.26~12.2 | 연말기도주일 | 오정채 목사 |
00.12.31 | 심야기도회 | 이승동 목사 |
01.11.4.~10 | 대전도회(9 침례) | 권만복 목사 |
02.4.29~5.4 | 건강전도회 | 조원웅 목사 |
02.10.7~12 | 건강전도회(8 침례) | 신원식 목사 |
02.10.14~19 | 공중전도회(4 침례) | 임동운 목사 |
03.6.23~28 | 건강전도회 | 함택영 장로 |
이러한 활동적인 목회자의 목양과 장수대학의 계속된 봉사로 3년 동안 임병훈 목사의 집례로 112명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새롭게 출발하였다.
(4) 도약을 준비하는 퇴계원교회
특별한 사업으로는 2001년 5월 26일에 특별헌금으로 5,824만원을 약정하였다. 이 헌금으로 8월 18일에 15인승 그레이스 선교 차량을 구입하였고, 9월에는 액정을 구입하여 설치하였다. 그 외에 교회 당면 사업에 지출하여 선교 활동과 각 부서의 활동에 활력을 주었다.
2003년 9월 20, 30일에 수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한 결과 271만원을 서중한합회와 해당부서에 전달하였다. 청년과 학생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하여 2003년 4월 19일에 엘리베이터 설치와 교육관 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을 하여 1억 8,500만원을 약정하였다. 6월 21일에는 건축업자로 유케이 종합건설을 선정하여 공사를 위탁하였다. 11월 29일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설치 및 청년과 학생 교육관을 완공하여 홍명관 서중한합회장을 모시고 준공예배를 드렸다. 한편 절차와 난관이 복잡한 도시가스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교육관과 가스공사 등 모든 공사비는 2억원이 소요되었다. 특별히 이때에 건축한 청년관과 학생관은 다음 목회자의 몫으로 넘겨져 학생교회와 청년교회 운영에 기초가 되었다. 한국 재림교회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질 선교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퇴계원교회의 심장이요 자랑이 되었다.
(5) 임병훈 목사 정년퇴임
2004년 2월 28일에 임병훈 목사는 34년의 목회를 마치고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다. 임병훈 목사는 시무하는 동안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라는 표어와 “건강한 교회, 평안한 교회, 은혜가 충만한 교회”를 목표로 안정된 교회, “도약하는 교회”로 운영하였다. 이를 위하여 매년마다 수 차례의 전도회와 모임을 가짐으로 106명의 새로운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또한 120명이 출석하는 어린이를 위하여 교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결단을 내렸다. 100여명이 출석하는 학생과 청년들을 위하여 학생관과 청년관을 건축하여 도약하는 교회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다. 평소“예수님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보여주고 예수님을 닮도록 합시다.”하고 가르치고 기도한 임병훈 목사는 500여 성도의 축복 가운데 은퇴를 하였다. 퇴임 후에는 에덴요양병원 원목과 여러 교회를 목양한 후, 지금은 퇴계원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6) 제5대 양종호 목사 부임
양종호 목사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삼육영어학원 바이블 클래스에서 배우다가 오늘의 신앙,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한 후 장로교에서 개혁하였다. 삼육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삼육대학원 신학과을 졸업한 뒤, 미국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D.MIN.)를 취득한 학구파 목회자였다. 양종호 목사는 서중한합회 여러 교회를 거쳐 대방교회에 시무하다가, 2004년 3월 1일에 제5대 퇴계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양종호 목사는 학구파 목회자답게 말씀을 중심으로 목양을 하며, 6년 동안 수 많은 침례자를 내어 으뜸교회로 가는 초석을 놓았다. 청년교회와 학생교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세계적인 교회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서중한합회의 선교 방침에 따라 소규모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해외 선교에도 인력과 재정을 투자하는 도약하는 교회가 되었다.
(7) 말씀 중심의 목양
양종호 목사는 깊이 있는 성경 연구로 강단과 각종 모임에서 말씀을 은혜롭게 선포하고 감동을 주었다. 국내 교회는 물론 해외의 모임에도 강사로 초빙 받는 목회자였기에, 2005년 1월 1일부터는 안식일 대예배 설교를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국내와 해외에서 시청하도록 인터넷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매주 선포된 말씀을 동영상 인터넷으로 올려 300회 이상 접속하여 전세계적으로 시청하였다.
삼육교육을 위하여 몰려온 성도의 자녀들과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수십 명의 지도교사가 합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지도하였다. 어린이 성경학교를 매년 운영하여 수많은 어린 영혼이 교회의 주역으로 자라났다. 2007년에는 210명이 수료하였고, 2008년에는 160명이 수료하였다.
1998년부터 계속 실시해온 장수대학과 무료급식은 남양주시청의 보조금과 성도의 후원을 받으며 여집사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었고, 70여명의 노인들이 찾아오는 지역사회의 사랑 받는 장수대학이 되었다. 어린이반과 학생반 135명, 장수대학 47명과 성도들의 선교 봉사를 통하여 94명, 모두 276명의 새로운 영혼이 양종호 목사가 시무하는 동안 거듭났다.
(8) 청년교회, 학생교회 운영
학생과 청년을 위한 교육관이 확보됨에 따라, 2004년 10월 23일 안식일에는 한국교회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퇴계원 청년교회”가 탄생하였다. 약 7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김연철 전도사를 전담목회자로 청년교회의 문을 열었다. 청년교회는 안식일학교뿐 아니라 설교예배, 오후활동까지 모든 순서를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며 교육과 운영, 양육을 책임지는 ‘맞춤형 교회’였다. 이처럼 청년들만으로 구성된 교회는 ACT교회나 학교교회를 제외한 독립교회로는 퇴계원 청년교회가 한국에서 처음이었다. 퇴계원 청년교회는 앞으로 재림교회의 청년문화와 사역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청년선교의 중심에 서고자 하였다. 청년들은 “미력이나마 교회의 발전을 위해 성심껏 돕겠다”고 입을 모으며, “청년교회가 학생과 개척대, 장년교회까지 아우르는 선교활동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재림마을 뉴스, 2004.10.25).
2005년 5월 28일에 세계 십대 교회로 보고되어 있는, 퇴계원학생교회는 대예배를 독립적으로 드리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예배운영의 주체가 되는 ‘학생교회’가 창립되었다. 퇴계원학생교회는 안식일학교뿐 아니라 설교예배, 오후활동까지 모든 순서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 양육을 책임지는 ‘맞춤형 교회’이다. 권영걸 학생전도사가 전담목회자가 되고, 5명의 지도교사들과 함께 봉사하며 운영되었다. 학생회장 김병규 군은 이날 “교회에 오면 거의 어른 중심으로 순서가 진행되는데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는데 우리만의 공간이 생겨 무척 기쁘다”고 웃어 보이며, “전국 최초의 학생교회라는 말이 무겁고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부흥하는 모습을 통해 학생교회가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고 다부진 포부를 그렸다(재림마을 뉴스, 2005.6.1).
(9) 국내외에 펼치는 구호봉사와 선교활동
퇴계원교회는 이제 이웃을 돌보는 맏형과 같은 교회이며, 지역사회의 노년기 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봉사하는 교회가 되었다. 2004년 5월 3일에는 문산교회 선교 및 발전을 위해 자매결연을 맺었다. 7월 24일에 문산교회에 전도대를 파견하였다. 그 결과 구도자 6명이 전국 야영회에 참석하였다. 자매교회와 협약을 맺고 정책적인 지원과 인력과 재정 지원을 하였다. 정기적으로 안식일에 방문을 하여 설교와 자원봉사를 하며, 치료봉사도 베풀었다. 2007년 8월에는 호원동 교회, 2008년에는 수락산 예배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수년 동안 지원하였다.
2004년 5월 15일 안식일에는 특별 헌금 7,400만을 약정하였다. 이 특별헌금은 5월 22일에 북한 륭천 대폭발 참사 구호자금으로 100만원을 지원하였다. 5월 29일에는 남양주지구 송릉교회 건축을 위해 400만원을 지원하였다. 6월 5일에는 서중한합회 본부 건물 건축을 위하여 300만원을 지원하였다. 2005년 3월 19일에는 필리핀 현지 교회 건축을 위하여 100만원 헌금을 보냈다. 8월 30일에 캄보디아 씨엔립 고아원에 의류 12상자를 평신도 훈련센터에 선교 지원금을 지원하였다. 2006년 2월 4일에 삼육구호봉사회 퇴계원지회 발대식을 황춘광 서중한합회장과 이광길 남양주시장을 모시고 가졌다. 남양주시에 자원봉사단체로 등록하였다. 2007년 7월 14일 청년 몽골 해외 선교 봉사를 1,655만원으로 결의하여 실행하였다.
(10) 12년 연속 모범 성장 교회
2010년 1월 11일 서중한합회 총회에서 퇴계원교회는 셋째 성전을 헌당한 1997년부터 12년 연속 모범 성장교회로 3대 성장 표준을 달성하여 수상하였다.
3대 성장목표 달성
년도 | 수침자수 | 안교생수 | 십일금 | 년도 | 수침자수 | 안교생수 | 십일금 |
1998년 | 20명 | 367명 | 1.5억원 | 2004년 | 44명 | 484(출석생) | 2.8억원 |
1999년 | 25명 | 392명 | 1.8억원 | 2005년 | 43명 | 557명 | 3.5억원 |
2000년 | 27명 | 446명 | 2.0억원 | 2006년 | 46명 | 561명 | 3.1억원 |
2001년 | 25명 | 526명 | 2.3억원 | 2007년 | 42명 | 570명 | 3.1억원 |
2002년 | 27명 | 580명 | 2.8억원 | 2008년 | 59명 | 577명 | 3.3억원 |
2003년 | 33명 | 591명 | 2.8억원 | 2009년 | 31명 | 579명 | 3.8억원 |
2005년 1월에는 특별헌금을 하여 부목사 사택 마련하였고, 2006년 7월에는 담임목사 사택 구입과 숙원 사업을 위하여 특별헌금을 약정하였다. 그리하여 10월 11일에 담임목사 사택으로 퇴계원 70-3번지 신도아파트를 매입하여, 2007년 1월 6일 안식일에 담임목사 사택 봉헌 및 입주예배를 드렸다. 목회자의 사택이 마련됨으로 안정적으로 사역하게 되었다. 7월 28일에 그랜드 스타렉스를 구입하였고, 8월에는 교회 야광 간판을 설치하였으며 본당 음향시설 일체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성도들과 장수대학생들이 편안한 음향과 편리한 수송 수단으로 교회 생활에 즐거움을 누렸다.
2008년 7월에는 특정사업 헌금을 약정하고 교회 주요 사업을 계획하여, 9월에는 영아부 교실을 리모델링 하였고, 10월말에는 스크린, 액정, 외벽 발수 처리, 성전 바닥 카펫 교체를 하였다. 또한, 10월 8, 9일에 장수대학을 헌신 봉사하는 35명이 하반기 소풍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10월 15일에 장수대학 소풍을 북한 개성으로 40명이 다녀왔다. 2009년 7월에는 그랜드 스타렉스 승합차를 구입하여 선교 활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11) “도약하는”퇴계원교회
2010년 3월 1일에 양종호 목사는 6년의 퇴계원교회의 목회를 마치고 용인교회로 전임하였다. 그 후 삼육대학교 교회교목으로 봉사하다가 방글라데시 삼육대학교 총장으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고 있다. 양종호 목사는 시무하는 동안 인터넷 선교사역을 실시하였고, 청년교회에 이어 학생교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청소년을 위한 전문 목회의 장을 한국 재림교회 최초로 열어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말씀에 충실한 목양으로 276명의 영혼이 거듭나는 “도약하는”퇴계원교회를 만들어, “위대한 교회”로 나가는 발걸음을 놓았다.
(12) 주요 교회 직원 명단
년도 | 수석장로 | 선교회장 | 서기 | 재무 | 안교장 | AY회장 |
어린이 부장 | 남수석 집사 | 여수석집사 | 구호부장 | 도르가회장 | ||
2000년 | 김정원 | 김용운 | 박채수 | 도승리 | 변종아 | 조국희 |
박옥자 | 심춘섭 | 김정순A | 우홍정 | 정연순 | ||
2001년 | 김정원 | 마승락 | 정길종 | 임휘진 | 김용운 | 전선정 |
이경희 | 박병철 | 조금순 | 우홍정 | 이삼숙 | ||
2002년 | 김용운 | 김정원 | 김봉수 | 이희남 | 홍미영 | 이수진 |
이경희 | 김인근 | 이삼숙 | 우홍정 | 이경숙 | ||
2003년 | 김용운 | 박채수 | 김봉수 | 이희남 | 정영희 | 김준호 |
윤혜린 | 조성기 | 김정순A | 우홍정 | 황은자 | ||
2004년 | 김용운 | 김봉수 | 박채수 | 손원영 | 정성훈 | 김기석 |
홍미영 | 강성열 | 송오순 | 이희남 | 황은자 | ||
2005년 | 박채수 | 김정원 | 도승리 | 마승락 | 정성훈 | 주찬양 |
홍미영 | 박병철 | 송오순 | 심춘섭 | 박옥자 | ||
2006년 | 김정원 | 김봉수 | 김태훈 | 도승리 | 정용표 | 손병섭 |
박해경 | 임은수 | 정순희 | 주형귀 | 이삼숙 | ||
2007년 | 김정원 | 정용표 | 김인근 | 도승리 | 이인난 | 서혜란 |
송재란 | 김영두 | 김정순A | 윤화현 | 이경숙 | ||
2008년 | 김용운 | 한봉희 | 김인근 | 심춘섭 | 이인난 | 주찬양 |
여은희 | 정성훈 | 정순희 | 박채수 | 손순남 | ||
2009년 | 김용운 | 임휘진 | 도승리 | 김정원 | 태해봉 | 민충기 |
여은희 | 신원철 | 정영희 | 한봉희 | 김명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