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申采浩) (1880 - 1936)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 호는 단재(丹齋). 본관은 고령. 충청북도 청주 출생. 25세(1905년)때 성균관 박사(博士)가
되었으나, 그 해 가을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황성신문(皇城新聞)에 논설을 쓰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의 주필이 되어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07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국채보상 운동을 벌였으며,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해조신문(海潮新聞)'을 발간하였고, 1919년 35세 때 상해임시정부 전원위원장
(全院委員長)을 지냈다. 1928년 다롄〔大連〕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56세에 복역중
사망하였다.
단재 선생은 순수한 민족주의적 사관(史觀)에 입각한, 독립운동의 이념적 지도자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으며. 저서로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사론(朝鮮史論)' 등이 있다. 이중 우리의 삼분법(三分法)의 세계에
대해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부분을 살펴 본다.
"사기(史記)의 봉선서(封禪書)에 삼.일신(三.一神)은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니 삼일중(三一中)에 태일(太一)
이 가장 귀하며, 오제(五帝)(동.서.남.북.중. 오방의 신)는 태일(太一)의 좌(佐)라 하고,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천황
(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의 삼황중(三皇中)에 동황태일(東皇太一)의 가명(歌名)이 있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誌)
에 태일잡자(泰一雜子)의 서명(書名)이 있으니 삼일신과 삼황은 곧 고기(古記)에 기(記)한 삼신삼성(三神三聖) 등의
류(類)이고, 삼일신(三.一神)을 우리 고어(古語)로 번역하면, 천일(天一)은 '말한'으로 상제(上帝)를 의미한 것이요,
지일(地一)은 '불한'으로 천사(天使)를 의미한 것이요, 태일(太一)은 '신한'으로 신(神)은 최고최상(最高最上)이란 말이니
신한은 곧 천상천하독무이(天上天下獨無二)를 의미한 것이므로 말한.불한.신한을 이두문자(吏讀文字)로 마한(馬韓).
변한(卞韓).진한(辰韓)이라 기(記)한 것이며, 오제(五帝)는 돗가.개가.소가.말가.신가 등 오(五)가 곧 오방신(五方神)을
가리킨 것이니, 차서(次序)로 말하면 말한이 불한을 낳고,불한이 신한을 낳았으니 권위(權位)로 말하면 신한이 신계(神界)
와 인계(人界)의 대권(大權)을 총지(總持)하여 말한과 불한 보다 최귀(最貴) 한고로, 삼일 가운데 태일이 최귀라 함이며,
오석(五席)(五加)은 곧 태일의 좌(佐)라 하였으니 신가가 오(五)가의 수위(首位)임은 '신'의 어의(語義)로 말미암아 명백
하니 구(龜)의 삼신오제(三神五帝)는 곧 왕검(王儉)의 제작(製作)한 전설(傳說)이니라." (종로서원간.1947년.p.56.)
위의 기록으로 보면 선생은 삼신(三神).삼황(三皇),삼한(三韓)을 인정하며, 동일한 개념으로 보았으나, 삼신오제의 신정
사상(神政思想)과 더불어 의례적(儀禮的)인 것으로 받아 들였다. 이는 신화나 전설이 정치나 역사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밝히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준 귀중한 유산은 삼황(三皇)이 곧 삼한(三韓)으로서 번역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진한.마한.변한
이 곧 삼황의 이름이라고 지적한 사실이다. 또한 오제를 동물의 이름으로 밝히고 그중 신(神)이 으뜸이라 하였다.
또 진한.마한.변한의 한(韓)은 천.대.간(天.大.干)과 동일한 의미이며, 이두로 적은 신.말.불 (辰.馬.弁)의 뜻을 보면
공기(하늘.해.○). 물(땅.□). 불(생명체.사람.사내.△).로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 있겠다. 여기서 원.방.각은 형상을
상징하며 우리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 되는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공기를 말하는 고대 그리스 의 철인(哲人)들도 우주의 근본이로 자리 매김하는 요소이며, 물은 말(言),물(水),말(馬)
모두 같은 어원의 물질적인 것을 말하고, 불은 세계 거의 모든 민족의 말들이 유사할 정도로의 공통어 이다.
이처럼 공기.물.불은 우리의 기본적인 요소 이지만 그리스나 이집트 등 소위 문명시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세개의
원소인 셈이다.
이러한 신화적인 기본 요소는 우리가 신화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만약 물을 중요시하는 시기 였다면
기본 세요소의 균형이 깨어지고,물을 상징하는 나라의 세력 확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최치원의 난랑비서'의 다음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할 수 있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이 삼교(三敎)란 곧 삼황이며, 우리의 기본 삼극(三極)을 불(佛).선(仙).유(儒)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직능
(職能)으로 확대 해 보면 불(佛)을 공기,로 선(仙)을 물로, 유(儒)를 사람,생명,불로 해석할 수 있는데, 최치원은 이
세요소의 통합 조화가 우리의 위대한 길(道)이라 보는 것이다. 또한 이 세가지의 삼교를 하늘(아버지).땅(어머니).
사람(아들,사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지울 수 있으며, 삼한시대의 연장인 신라.백제.고구려 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도 드러나듯 삼국의 초기에는 신라는 제의를 중시한 나라였고, 백제는 삶의 터전을 딱는 기술이
월등한 나라 였으며, 고구려는 아들의 역활답게 병권의 나라였다. 후일 서로의 다툼으로 통일이 되었으나, 백제의
기술자들이 신라로 가서 한 일들이나 고구려가 신라를 도운 일은 일반 정치 상식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