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어사 설화
김성문
세상에는 신비로운 현상이 많다. 바위에서 종소리가 난다고? 귀를 쫑긋하고 들으니 삼랑진 만어사에 가면 종소리가 나는 바위들이 많다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친구끼리 큰소리로 흥미 있게 주고받는 말이다. 나는 호기심을 안고 붉게 물든 단풍이 한창인 가을날에 만어사로 향했다. 밀양강(密陽江) 연변을 따라 경부선 열차는 날쌘 ‘치타’처럼 빠르고, 대구부산고속도로에는 많은 차가 재빠르게 오간다. 만어사는 삼랑진 IC에서 약 10km 정도 거리이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만어산 쪽으로 꼬불꼬불 올라가면 만어사 주차장이 관광객을 반긴다.
만어산은 해발 670m이고 동쪽으로 해발 640m인 구천산과 해발 766m인 금오산도 보인다. 서쪽은 밀양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기슭에는 보물 제466호인 3층 석탑이 있는 만어사(萬魚寺)가 있다. 만어사는 금관가야 수로왕이 서기 46년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재미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수로왕은 나라를 세운 지 네 번째 가을에 들판의 오곡이 영글지 않아 흉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라 안 옥지(玉池)에 사는 독룡과 만어산의 다섯 나찰녀가 왕래하면서 뇌우를 퍼부어 4년 동안 농사를 망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술법이 뛰어난 수로왕은 독룡과 나찰녀의 횡포를 막아 보려 했으나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궁전 마루로 비치는데 잠자는 한 신하를 깨웠다.
수로왕은 “독룡과 나찰녀를 물리칠 방도가 없겠느냐?”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리시지요.” 신하가 대답했다.
왕은 예를 갖추고 부처님의 도움을 청했다. 부처님은 수로왕의 뜻을 알고 여섯 비구와 1만의 하늘 사람을 데리고 왔다. 여섯 비구는 독룡을 설득하였고 1만의 하늘 사람은 나찰녀를 설득했다. 독룡과 나찰녀는 항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모든 재앙이 물러났고 농사를 잘 짓게 되어 풍년이 계속 들었다. 이를 기념하여 사찰을 창건하고 만어사라 했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우리나라 동해에 용왕이 살고 있었다. 용왕의 아들은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 아주 높은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부탁하기로 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1만 마리의 물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무척산의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용왕의 아들은 북쪽으로 가다가 만어산에 머물러 쉬었다. 만어산에 쉬고 있던 용왕의 아들은 몸통이 큰 바위로 변하였고, 1만 마리 물고기는 크고 작은 바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몸통이 큰 바위로 변한 용왕의 아들을 미륵보살이라 하여 바위를 둘러싸고 미륵전이 세워졌다. 미륵전 안에 있는 바위를 미륵보살로 형상화한 것이 신비롭다. 흥미로운 것은 큰 바위 전체를 전각으로 둘러싸지 못하여 바위 일부분을 전각 벽체 뒷부분으로 약간 나오게 한 부분이 용왕의 꼬리로 느껴진다. 불가에서 미륵은 희망의 신앙으로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 미래의 부처님이라 한다. 미래의 부처님은 언제쯤 이 혼탁한 세상에 와서 중생들을 구제하실까.
사찰 전각 안에는 대부분 불상이 있으나 미륵전에는 튼튼해 보이는 큰 미륵바위뿐이다. 미륵바위에 소원을 빌고 100원짜리 동전이 바위에 붙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정성 들여 빌고 동전을 붙였는데 붙지 않았다. 옆 사람의 동전은 그대로 붙어 있다. 바위벽의 구조에 따라 동전이 붙고 안 붙고가 결정되는 것 같다. 이것 또한 누군가가 만들어 낸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크고 작은 바위가 된 1만 마리의 물고기는 미륵전 밖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위가 된 물고기들은 산비탈로 무리 지어 넘실넘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인다. 약 700m 이상 펼쳐지며 주변과 어울려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나는 조금 크고 작은 바위 밭에 들어가 조그마한 돌로 바위를 두들겨 보았다. 맑은 쇳소리가 난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린다. 옆에 있는 관광객은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여러 군데를 두드려보라고 했다. 몇 군데를 건너가면서 두드리는데 소리가 들렸다.
크고 작은 바위가 수없이 모여 있는 물고기 모양의 바위 밭을 본 곳은 처음이다. 어떻게 생성된 것일까? 사찰 내의 설명 판에 눈길이 멈춘다.
“만어산 암괴류는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되었다. 한반 도의 빙하기가 끝난 후 비가 많이 내리는 지형에서 물리적, 화학적 풍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지형이다. 형성 시기는 대략 3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화강암류인 섬록암, 반려암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랜 풍화작용으로 모서리가 둥글고 거무스름한 색을 띠고 있다.”
3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기 전이다. 우리의 설화는‘상황에 맞게 잘 꾸며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어사는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만어사 암괴류는 독특하고 뛰어난 경관이라서 보존 가치가 큰 우리의 자연 유산이다. 한반도 지질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도 높다. 1만 마리의 물고기도 지금은 작은 바위가 되었지만 1만 마리의 물고기를 기리는 뜻에서 사찰을 창건하고 만어사라 했다는 전설은 우리의 재미있는 설화이다.
만어산의 아름다운 단풍이 만어사의 창건 사연을 더 말해 주려는 듯 나를 붙든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독룡과 나찰녀, 미륵바위로 변한 용왕의 아들과 조금 크고 작은 바위가 된 물고기들의 사연을 뒤로한 채 현실로 돌아왔다. 배가 출출하다.
만어산 암괴류, 촬영: 서기 2016.12.16.(금)
첫댓글 지난주에는몇 명 공문협회원들과 함께 남녁의 진도와 목포를 역사문화 탐방 겸 여행차 둘러보았습니다. 비록 설화와 구전, 민속담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 한민족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과 생활형태, 정신적 유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고려 삼별초 난때 진도에서 마지막 항전을 준비한 고려인의 기개와 비애가 '전왕온묘(傳王溫墓)'흔적을 통해 우리앞에 나타났답니다. 평소 잘 몰랐던 가야문화와 만어사 설화등 늘 좋은 글을 게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우리의 설화는‘상황에 맞게 잘 꾸며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 회장님!
설화는 언제 들어도 흥미가 있습니다.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