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일요일.
오늘도 아침 일찍이 절에 가려 문을 나선다.
법당에 방석과 법요집을 펼쳐 놓는 일을 일찍 온 법우님.. 아란 보살님 아드님.. 과 함께 했다.
법회 시작까지 시간이 있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얘기 말미에 불교는 윤회를 기반으로 하는데 젊은이들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윤회에 관심이 없으니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하면서 입을 다물었는데..
오늘 원영 큰스님 법문 주제는 윤회다.
마치 오늘 아침 관음전에서 무엇을 말할지 알고 계셨다는 듯..^^().
큰스님께서는 윤회에 대해 열 번째 하늘 왕인 제석환인[천]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변을 담은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설법을 하셨다.
제석환인 : 윤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처님 : 일체는 무상한 것임을 모르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상에 대한 법문을 들으면 마치 무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꽃은 피고 지듯, 사람은 생로병사하듯 모두가 무상이 아닌가 하면서..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상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나는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지..
어제 본 해와 하늘과 산과 강물.. 세상이 어제와 다른 것을 보고 있는지..
아니다. 어제 만난 그와 오늘 만나는 그는 같은 자라고 본다. 어제 먹은 음식과 오늘 먹는 음식은 같은 종류로 본다.
어제 트럼프와 오늘 트럼프는 같은 사람으로 안다.
지난번 왔던 보리사와 오늘 보리사는 같은 게 아니다.
무상을 안다고 하지만 실은 무상을 무시하며 어제 접촉한 것과 오늘 접촉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무상을 안다면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제 도둑질한 자와 오늘 그 자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제 도둑질한 자는 오늘 도둑질을 하지 않고 있어도 도둑넘으로 인정하는 사회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무상 대신에 항상 하는 게 있음을 전제하고 세워진 사회다.
그러기에 무상을 이해해도 현실에서는 무상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
무상한 현실이라면 남녀노소 차별이 없고, 빈부나 사회적 계급의 차이가 없이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인 존재 세계에서 무상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부처님이란 무상을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는 분이라 해도 심히 어려운 일인데.. 부처님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는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으로 이루시고 부처님이 되신 석가부처님께서 세상을 두로 보신 후 "내가 깨친 이법을 알아듣는 자가 없겠구나" 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집착을 끊을 수 있습니까?
집착은 항상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는 것은 없으니 무상입니다
무상을 일고 집착하지 않으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집착하는 자가 없음(무아)을 깨쳐야 합니다
무상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무상을 안다면 집착을 하지 않게 되는데.. 집착을 하지 않게 되었어도 부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집착을 일으키는 자.. '나'가 있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곧 당장은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나는 될 수 있지만, 그 나는 언제든 다시 집착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집착을 일으킬 수 있는 나를 멸해야만 한다.
큰스님은 이에 대한 설명으로 부처님 오도송으로도 불리는 <법구경. 154>를 말씀하셨다.
154
아, 집을 짓는 자여,
이제 너를 보았으니
너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너의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 조각났으며
마음은 열반에 이르러
모든 갈애는 파괴되어 버렸다.
어제의 해와 오늘 해는 다르다고 무상을 이해하고 바르게 바로 보고 있어도..
그렇게 바라보는 자인 자인 나.. 그 나는 존재가 아님을 깨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절에 간다고 말하듯.. 내가 있어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실은 그런 행위를 우선하여 존재하는 일인칭인 나는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흔히 몸과 생각하는 능력이 결합되어 있는 2원적 존재라 하는데, 불교는 그것을 다섯으로 구분하여 색. 수. 상. 행. 식 5온 존재라 한다.
하여 '나는 5온 존재다'라고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색수상행식 5온이 결합해 작용을 하면 그로 인해 '나'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지,
내가 나의 5온을 끌어 모은 게 아니라는 것.
오늘 원영 큰스님 법문은 너무 어려워 군더더기 설명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오늘 3.1절 법문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신에 윤회를 보면서 무상과 무아 법문을 하신 것은..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니..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 여기신 게 아닌지.()..
그런데 내용이 참 어렵습니다.().
오늘 공지 시간에..
오는 3월23일 네 번째 일요일은 3000배 용맹 정진 시간을 갖는다고 하셨는데..
3천배를 하고 나면
큰스님 법문 내용 이해가 잘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