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2 지휘자 -손목인(孫牧人 1913∼1999-경남 진주) 아코디언, 작곡가, 지휘자
[음악경력]
오케레코드사 전속 작곡가
조선악극단 악단 지휘자
CMC악단 창단하여 무대 활동 (1945)
KBS전속경음악단 지휘자 (1948~50)
일본 데이치쿠레코드사 전속 작곡가(1952~57)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초대 회장 (1964)
한국가요작가협회 초대 회장 (1989)
[수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장 (1987)
[작품]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 사막의 한, 짝사랑, 바다의 교향시, 해조곡, 뗏목 이천리, 아내의 노래, 슈샤인 보이, 카스바의 여인(일본에서
발표) 아빠의 청춘 외 다수
[스토리]
일본 동경음악학교에서 피아노전공 유학시절 오케레코드 사장 이 철의 눈에 띄었고, 1933년 첫 작품인 타향살이를 당시 무명이던
고복수에게 불리워 크게 인기를 끌어 단숨에 주목 받는 신예 작곡가로 떠올랐으며 이어 1934년에는 16세의 이난영에게 목포의 눈
물을 주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명곡 작곡의 주인공이 됬다.
당시 오케레코드사에는 작곡가와 악단장 경력자로 박시춘(朴是春)·김해송(金海松) 등이 있었지만 초창기 조선악극단(오케레코드
직영의 공연단체)연주는 주로 손목인이 악단장 역할을 담당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CMC악단이라는 경음악단을 조직, 무대 활동
을 하였으며 1948년 KBS개국 시 박시춘과 함께 전속경음악단 첫 지휘자로 활동했다.
일본에서 작곡생활을 했던 경력으로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말년에는 미국에서 살았으며 1999년 일본에
서 작곡한 노래의 저작권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해 머무르던 중 사망했다. 그는 트로트 외에도 재즈에 능하여 후기작인
“슈사인 보이“나 ”아빠의 청춘“에는 재즈풍의 분위기가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