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03. 17
2012년 미국이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국제결제시스템에서 이란 은행들을 차단하자 이에 놀란 러시아와 중국은 각자 루블화결제시스템(SPFS)과 위안화결제시스템(CIPS)을 개발해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달러 주도 결제시스템 독주 체제에서 결제시스템의 분권화가 시작되었다. 이 무렵 가상자산(암호화폐) 세계에서도 비트코인 기반 암호화폐 독주 체제에 대한 대항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기반 파생 암호화폐들은 모두 비트코인과 같이 ‘오픈소스’로 운영된다. 비트코인과 같은 이념을 표방해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닌, 사용자 전체에 의해서 운영된다. 이렇게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암호화폐들도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만든 암호화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코드를 모두 새로 작성해서 고유의 독자적 화폐를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네이티브 암호화폐’라 불린다. 이들은 본질적인 부분들에서 비트코인과 차이를 두고 있다. 이들 중에는 블록체인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갖추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 암호화폐의 영역을 확장한 리플(왼쪽)과 이더리움. / ⓒ 게티이미지
국제송금용 암호화폐 ‘리플’
기존 블록체인과 개념이 다른 암호화폐는 2012년 처음 출시되었다. 바로 국제송금용 암호화폐 ‘리플(Ripple)’이다. 은행에서 기존 SWIFT망을 이용해 국제송금을 하려면 상당히 불편하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은행과 계좌번호뿐 아니라 지점명과 영문 주소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수수료도 비쌀 뿐 아니라 송금 시간도 오래 걸린다. 리플은 이러한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리플은 달러, 유로화 등 기존 화폐들끼리의 국제송금을 빠르고 싸게 하기 위해 탄생했다.
리플은 다른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리플의 자체 화폐인 ‘XRP’ 코인으로 송금할 수 있지만 ‘IOU(I Owe You)’라는 차용증으로도 송금할 수 있다. IOU는 어음의 개념으로 보내는 사람이 해당하는 금액만큼을 지급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일례로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달러나 유로화는 은행에서 거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자산들을 리플 네트워크 위로 올려 거래할 수 있도록 도입된 것이 ‘IOU’ 개념이다.
또 기존 블록체인과 큰 차이점은 리플에서는 빠른 거래 검증을 위해 누구나 검증자로 참여 가능한 분산화된 구조가 아니라 사전 검증된 소수의 주체들만 검증자로 허용되고 있다. 따라서 탈중앙 분산화의 이념에는 맞지 않는 암호화폐다.
다른 암호화폐들과 또 다른 차이점은 리플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영리기업이라는 점이다.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비트코인 캐시 등의 비트코인 기반 암호화폐들은 모두 오픈소스로 운영되며 영리기업이 아니다. 반면 리플은 미국의 주식회사이며, 영리를 목표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리플은 93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투자자 중에는 ‘구글벤처스’와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창시자가 세운 미국 최대 벤처투자사인 ‘앤드리스호로위츠’도 있었다.
리플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라이언 푸거로 2004년에 전 세계 은행 간 실시간 결제시스템인 ‘RipplePay.com’을 개발했다. 이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의 시도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이를 현재의 암호화폐로 새롭게 탄생시킨 실제 주인공은 제드 맥칼렙이었다.
맥칼렙은 2000년에 P2P 파일 교류 프로그램 ‘이돈키(eDonkey)’를 만들었으나 당시 대표적인 P2P 프로그램 ‘냅스터(Napster)’와 함께 음악업계로부터 소송을 당해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2006년 맥칼렙은 첫 암호화폐거래소 마운트곡스(Mt.Gox)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판타지 게임카드 거래 사이트로 만들었다가, 2010년에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암호화폐거래소로 탈바꿈시켰다. 취미로 시작했던 사이트가 너무 빨리 커지자 2011년 마운트곡스 사이트를 마크 카펠레스에게 팔았다. 마운트곡스는 이후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가 되었다가 85만비트코인을 해킹당해 결국 파산했다.
▲ 이더리움을 창시한 러시아 출신 유대계 캐나다인 비탈릭 부테린. / ⓒ 뉴시스
암호화폐를 확산시킨 일등공신 이더리움
이 시기 제드 맥칼렙은 고전하고 있는 리플사에 합류,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리플을 만들기 위해 ‘오픈코인(OpenCoin)’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크리스 라슨과 데이비드 슈워츠 등을 영입했다. 한편 라이언 푸거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들은 C++ 언어로 2012년 리플(XRP)을 공동 개발했다.
XRP 프로토콜은 오픈소스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든지 개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은행 간 거래 원장을 P2P 방식으로 분산 저장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XRP 송금 기록을 열람·복사·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누가 누구에게 송금했는지는 알 수 없도록 했다. XRP는 비트코인과 달리 채굴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XRP는 총 1000억개가 일괄 생성되었으며, 더 이상 코인이 발행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리플의 경영 방향에 대해 의견 충돌이 생기자 2013년 맥칼렙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이후 그는 스텔라재단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다. 그리고 같은 해 ‘오픈코인’은 회사 이름을 ‘리플랩스(Ripple Labs)’로 바꾸었다. 제드 맥칼렙을 포함해 리플의 초기 창업자들은 많은 리플 코인을 갖고 있어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중 크리스 라슨은 약 52억XRP를 갖고 있어서 세계 최대 암호화폐 부호가 되었으며, 2018년 1월 리플 가격이 치솟으면서 한때 자산액이 마크 저커버그를 능가하기도 했다.
리플은 BOA, HSBC,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크레디아그리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은행들이 은행 간 결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리플 덕분에 무엇보다 평균 3~5일 걸리던 외화 송금이 하루에 가능해졌다. 반면 리플은 악재도 있었다. 2020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운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 리플랩스와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랩스 CEO, 크리스 라슨 공동창업자 겸 전 CEO가 지난 7년간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미등록 증권을 판매했다는 게 SEC의 핵심 주장이다.
비트코인이 혁명적 암호화폐를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면, 이더리움(Ethereum)은 암호화폐를 널리 확산한 일등공신이다. 비트코인은 최초이자 최대의 암호화폐지만, 비트코인 이후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단연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을 창시한 러시아 출신 유대계 캐나다인인 비탈릭 부테린은 모스크바 인근 콜롬나에서 1994년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부테린이 5살 때인 1999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했다. 그는 천재였다. 4살 때 PC로 엑셀 작업을 했고, 7살에는 ‘토끼 백과사전’이라는 복잡한 문서를 만들고 10살 때 이미 게임 코딩을 독학으로 배워 직접 온라인게임을 만들 정도로 프로그래밍에 소질을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재반에 뽑혀 수학과 경제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프로그래밍에 빠져 지냈다.
이후 부테린은 17살 때 IT사업을 하는 아버지 드미트리 부테린으로부터 비트코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 매료되어 대학도 들어가기 전 18살 때인 2011년에 ‘비트코인 매거진’이라는 전문잡지를 창간했다. 암호화폐 관련 전문 간행지로는 최초였다. 이후 비트코인 미디어에서 ‘비트코인 매거진’을 인수했다. 부테린은 2012년 워털루대학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으나 공부보다는 여행을 더 많이 다녔다. 부테린은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비트코인 매거진’에 글을 쓰고 다양한 암호해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부테린은 한때 이스라엘에서 ‘컬러드코인즈’라는 비트코인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부테린은 2013년 5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가하면서 암호화폐 분야에 뛰어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한다. 그는 비트코인 개발팀에 합류했다. 그즈음 그는 누구보다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믿는 개발자였지만 비트코인의 문제점에 주목하게 된다. 암호화폐를 만들고자 하는 후발주자들이 매번 별도의 블록체인을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매번 블록체인을 다시 만드는 것이 무척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들을 많이 개발할 수 있어야 비트코인의 사용성과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그는 비트코인 고유의 스크립팅 언어 개발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부테린은 당시 비트코인 개발팀 중 상당수가 비트코인을 화폐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지불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데이터가 들어가면 블록이 처리하는 거래 수가 적어져 비트코인 개발자들은 비(非)지불 데이터의 한도를 40바이트로 제한했던 것이다.
42일간 열린 사상 초유의 ICO
그래서 부테린은 아예 독립적인 플랫폼 이더리움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창업을 위해 학교 자퇴를 결심하고 이를 아버지와 의논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아버지 드미트리 부테린은 2000년부터 소프트웨어 회사 보나소스(Bonasource)를 창업하여 운영하고 있었기에 창업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면 애플이나 구글 같은 안정된 직장에 갈 수 있고 아마도 연간 10만달러를 벌 수 있겠지만, 학교를 그만두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 뒤 그는 2013년 10월 토론토로 돌아와 한 달간 연구에 집중한 끝에 11월 36장의 ‘이더리움’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암호화폐 백서를 출시했다. 그리고 ‘차세대 스마트계약 & 분산 응용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라는 이름의 이 백서를 토대로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이 운영하는 ‘틸 펠로십’ 프로그램으로부터 10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몇 주 후 창업팀을 구성하고, 2014년 초부터 이더리움 개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20살 때였다. 비탈릭은 이더리움 개발자금을 모으기 위해 획기적인 발상을 했다. 앞으로 이더리움에서 사용할 화폐인 이더(Ether)를 미리 대량 생성한 후, 이를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더리움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은 싼 가격으로 이더를 살 수 있고, 이더리움 측은 모아진 비트코인으로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부테린은 이를 위해 2014년 7월 스위스에서 ‘이더리움재단’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7~9월 3달 동안 이더를 공개적으로 팔았다. 이로써 첫 공개적 암호화폐 판매, 곧 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초기 개발자금을 모집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가 열렸다. 42일간 열린 ICO를 통해 약 3만1500개의 비트코인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하여 마침내 2015년 7월 30일 공식적으로 이더리움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이지만 비트코인보다 범용성과 확장성 그리고 호환성이 뛰어나다.
비트코인 대비 이더리움의 획기적 발전은 ‘스마트계약’ 기능 도입이다. 이 기능 덕분에 이더리움은 거래기록뿐 아니라 계약서, 유통과 게임, 미디어, 에너지, 소셜미디어(SNS), 이메일, 전자투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와 애플리케이션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더리움의 확장성은 개발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이더리움은 C++, 자바 등 대부분의 주요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한다. 이더리움의 또 다른 특징은 빠른 개발시간은 물론 다른 애플리케이션과의 호환성이다. 이런 다양한 장점으로 이더리움은 암호화폐 시장 진출 2년 만에 2위로 도약했다.
이제 이더리움을 기술적인 면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1MB로 블록 크기가 고정되어 있는 비트코인에 비해 블록 크기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한 블록 생성주기를 10분에 하나씩 만들어내는 비트코인에 비해 12초까지 줄여 훨씬 빠른 데이터 검증을 가능케 했다.
▲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시세가 표시돼 있다. / ⓒ 뉴시스
‘디지털 골드’ vs ‘디지털 원유’
비트코인이 ‘디지털 골드’라면 이더리움은 ‘디지털 원유’이다. 산업화 시대에 원유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듯이, 이더리움이 디지털 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비트코인은 주목적이 ‘디지털 화폐 플랫폼’이라면, 이더리움의 주목적은 그보다 더 큰 범주인 ‘디지털 거래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이 비트코인과 다른 핵심적인 차이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이더리움의 차이점은 ‘스마트계약 기능’이다. 스마트계약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전에 컴퓨터 코드로 설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적으로 계약이 이행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조건부 합의 프로세스’이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집을 팔려고 할 때 A가 B에게 집 양도계약서를 넘기면 B의 계좌에서 이더가 자동으로 출금되어 A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스마트계약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스스로 이행될 수 있기에 제3자의 관여 없이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만들어낸다. 제3자의 관여가 필요 없기 때문에 거래비용 또한 절감된다. 또한 거래내역은 거래 당사자들끼리만 공유되어 보안성도 높다.
이러한 이더리움의 기능은 디파이와 NFT에도 쓰인다. 디파이(DeFi)는 탈중앙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이다. 중간에 관여하는 금융기관 없이 블록체인상에서 스마트계약 기능을 이용해 자동으로 굴러가는 탈중앙 금융이다. 이미 다양한 예금·대출·투자 등 금융서비스가 나와 있다. 2022년 2월 현재 22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디파이 프로젝트에 예치되어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금융계에 천지개벽을 가져올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다.
NFT(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는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한 블록체인의 특성 덕분에 디지털 콘텐츠의 디지털 등기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에 그림, 영상, 음악, 텍스트 등을 결합한 것으로 거래기록이 자동 저장되고,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에게 디지털 콘텐츠의 소유권이 넘어가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특성과 스마트계약으로 오랜 기간 비즈니스 관행으로 고착된 여러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곧 사전에 합의된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현행 주주자본주의, 플랫폼 경제 등의 문제를 해결 내지 보완하여 경제경영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로, 이더리움에는 스마트계약보다도 더 용도가 많은 분산형 애플리케이션 ‘댑(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기능이 있다. 스마트계약을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해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댑(DApp)이다. 이를 ‘디앱’이라 부르기도 한다.
댑(Dapp)이란 이더리움의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인데, 이는 어느 한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분산화된 구조로 돌아간다. 따라서 댑은 해킹이 불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더리움 채굴자들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댑은 계약서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구동될 수 있다. 댑을 이용하여 어떠한 블록체인 기반 프로그램이 개발될지는 앞으로 개발자들의 창의력에 달려 있다.
세 번째로, 이더리움의 차별화된 기능은 ‘토큰(Token)’이다. 토큰은 이더리움의 오픈소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코인이다. 토큰과 코인의 가장 주된 차이점은 코인은 자체적인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데 비해 토큰은 이미 만들어진 플랫폼 위에서 간소한 수정작업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코인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이더’ 코인이다. 이 코인들은 자체적인 프로토콜로 만들어졌다. 아예 바닥에서부터 자체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드로 만들어진 것이다. 코인의 모든 기능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코드로 짜였다.
반면 토큰은 그렇지 않다. 토큰은 코인을 찍어내는 기계를 이용해서 가장 기본적인 사양만 정해서 찍어낸다. 그러므로 토큰들은 코인에 비해 만들기가 훨씬 쉽다. 비유를 들자면 코인은 웹사이트를 처음부터 HTML과 CSS로 코딩해서 만든 것이라면, 토큰은 워드프레스(WordPress)나 윅스(Wix)같이 웹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손쉽게 웹사이트를 만들어주는 플랫폼을 이용해 만드는 개념이다.
이더리움은 ERC-20이라는 프로토콜을 통해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 토큰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2015년에 공개했다. 이를 통해 누구나 ERC-20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코인을 생성할 수 있다. 실제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이 있으면 20분 만에 새로운 토큰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토큰을 무에서부터 새롭게 만들 필요 없이 이더리움을 활용해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부터 수많은 토큰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말 기준, 20만개가 넘는 ERC-20 기반 토큰들이 생겨났다.
홍익희 /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