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1944년 1월 19일 매사추세츠 뉴턴에서 태어났습니다.
피터 린치의 아버지는 보스턴 칼리지 수학과 교수였는데 린치가 7살일 적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피터 린치는 학비를 벌기 위해 11살에 골프장에서 캐디 알바를 하면서 부자들의 현금흐름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지식을 얻게 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그리고 캐디 알바를 하면서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사장 조지 설리번과 인연이 되어 추후에 피델리티에 입사하게 됩니다.
피터 린치는 그는 보스턴 칼리지 재학 중 플라잉타이거 항공 주식 300달러 어치로 5루타를 쳐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MBA(Wharton) 등록금을 벌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루타는 1루타에 100%의 수익을 말합니다.
이어 1996년 피터 린치는 피델리티에서 여름방학 중 인턴사원으로 일했고, 이후 1967년부터 1969년까지 ROTC 포병 중위로 복무했습니다.
피터 린치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1968년 포병 장교는 당시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라 베트남으로 배치되고 있었지만 피터 린치는 운 좋게 한국에서 복무했었습니다.
그는 당시 한국엔 주식시장이 없어 주식 금단현상에 시달린 점만 빼면 다 괜찮았다고 말했습니다.
68년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은 후 69년 피델리티에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입사, 77년 마젤란 펀드를 맡게 되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산업을 담당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피델리티의 주식분석가로 일하면서 1977년, 드디어 피델리티의 마젤란 펀드를 맡으며 펀드매니저 경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피터 린치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그의 마젤란 펀드는 연평균 29.2%라는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마젤란 펀드는 1800만 달러에서 무려 140억 달러로 660배나 성장해 세계 최고 펀드로 우뚝 솟게 됩니다.
하지만 마젤란펀드에 투자한 투자자 중 과반이 오히려 돈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그 이유는 마젤란펀드의 수익률이 높아지면 펀드에 가입하고 수익률이 낮아지면 환매하는 단기 대응을 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으로 큰 부와 명성을 얻은 피터 린치였지만 어느 순간 번아웃(burn out)을 겪은 것 같습니다.
그는 1400가지가 넘는 주식을 보유하며 관리했고 항상 새로운 기업을 찾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며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2천 가지도 넘는 종목코드는 외웠지만 딸아이의 생일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1990년, 46세 이른 나이에 은퇴하게 되며 현재는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의 컨설턴트이자 부회장으로 지내며, 주로 젊은 주식투자자들과 연구자들을 교육 중입니다.
그는 발로 뛰고 얻은 정보가 고급 정보이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을 철저히 지킨 사람입니다.
가장 확실한 투자정보는 기업 방문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습니다.
한편, 그가 투자한 종목은 1만 5천 개에 이르며 투자 주주만도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피터 린치는 생활 속에서 주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도넛을 많이 먹는 것을 보고 '던킨 도너츠'에 관심을 가졌고 부인이 '레그스'라는 스타킹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스타킹을 제조하는 '헤인스'를 분석하였고 여행 중 브리또를 먹다가 '타코벨'에 관심을 가졌고 모텔에서 지원하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 해당 모텔의 체인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피터린치는 펀드매니저가 월스트리트에 갇혀 있기 때문에 저평가된 기업을 알기 어렵다고 보았고 사무실 안이 아니라 길거리를 걷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투자대상을 선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에 투자할 때 왜 다른 기업 말고 그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초등학생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고 주식으로 돈을 잃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전망이 나빠지고 있는 기업을 추가매수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린치의 '수익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은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 확실히 치유된다.'라는 말은 증시를 관통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피터 린치는 성장주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기 위해 기업의 성장세를 주목했습니다.
주당 매출과 주당 순이익이 꾸준히 증가하는 종목들 가운데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되는 기업을 선호했고 합리적인 성장주를 가려내기 위해 린치는 주가이익성장비율(PEG: PER(주가수익비율)/EPS(주당순이익)증가율)이란 개념을 활용하였습니다.
PEG(페그, Price-Earnign to Growth Rate)는 주가이익증가비율 또는 주가수익성장비율이라고 불리는 지표입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피터 린치의 펀드매니저 경력이 미 증시의 강세장과 겹쳤던 탓에 약세장이나 박스권 장세에서 검증을 받지 못했다면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소비주 중심으로 투자 전략을 구사했기에 오늘날 한국시장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지만 한국경제 기자와 키움증권 연구원이 린치의 전략을 토대로 코스피200 종목들을 대상으로 모의투자한 결과, 2002년 이후 ‘린치 포트폴리오’는 연평균 19.1%의 수익을 냈다고 합니다.
누적 수익률은 394%이며 이 기간 코스피200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은 14.0%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