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소설] 우리의 모든 꿈들
전창수 지음
우리가 쓰는 모든 꿈들은 이젠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우리에겐 이제 남은 거라고는 입고 있는 옷과 가방과 가방에 들어 있는 속옷이 다였다. 우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막막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엔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저렇게 푸른 하늘인데, 우리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먹을 게 없고, 있을 곳이 없었고, 갈 곳이 없었다. 아내가 걱정되었고, 딸 애가 걱정이 되었고, 아들도 걱정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삶.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 넷은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끝에를 가니, 바다가 보였다. 바다에 풍덩 빠질까, 그러면 이 삶이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도 아들도 아내도 표정이 어두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삶이었다. 바다를 걸었다. 바다의 끝에 푸른 산이 있었다. 이 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푸른 산이 바다의 경계와 닿아서 길이 있었다. 이 산을 걸을면, 어디가 나올까.
마냥 걷는 이 길에 희망이 있을지는 몰랐다. 당장 노가다를 한다고 해서 집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막막한 생계.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는 우리를 비참하게 하였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 길이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렸다.
우리는 하나님께 먹을 걸 달라고 기도했고, 집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셨다.
우리는 계속 길을 걸었다.
우리는 가다가 또 기도했다.
하나님, 정말로 계시는 거냐고, 그러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투덜대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놀라운 음성이 들렸다. 아주 엄청나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자리가 필요한 것이오, 집이 필요한 것이오, 먹을 것이 필요한 것이오?”
“다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음성이 사라질까봐 얼른 대답했다.
그때,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왔다.
“저, 저게 뭐지?”
“글쎄요?”
밧줄은 우리의 앞으로 왔다.
거기에 집이 있었고, 먹을 게 있었고, 일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산림관리청 직원, 집은 서울 구로구 온수동”이라고 써 있었다.
“여보, 잠꼬대 그만해요! 출근해야 돼요!”
나는 잠에서 깨었다.
“무슨 꿈을 그렇게 꿔요?”
“응? 여기 우리 집이야?”
“회사 늦겠어요!”
“내가 무슨 일 하고 있지?”
“아니, 이 사람이!”
나는 아들과 딸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 그들이 있었다.
“아참, 얘네들도 회사 다니지”
“정말!”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아내가 타준 호박죽을 죽 들이키고 출발했다.
그렇지, 나는 나무를 캐는 사람도 아니고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니지.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 소일거리를 하고 있지. 아아, 내 직업이 뭐였지?
“여보, 근데, 내 직업이 뭐야?”
“당신 왜 그래요?”
“아, 장난이야!”
“정말, 장난이에요?”
아, 내가 다니는 회사가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하지?
“여보, 사실은 말이야...”
“네?”
“내가 도서관에 다니는데 말이야”
“그건 알고 있어요”
“근데, 왜 회사 가라고 해?”
“거기가 당신 회사 아니에요!”
“작가면 작가답게 도서관을 회사라고 하면 되지!”
“아, 그, 그런 거였어...”
“어제, 작품 매출 봤더니 다른 날보다는 좀더 나갔던데?”
한숨을 쉬며, 또 길을 나선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오늘도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더해 가는데,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이렇게 큰 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길거리에 나앉은 상태가 아니라는 거.
길거리에 나앉았던 그때가 있었지.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흘러갔다. 지금 바라보는 하늘은 마음이 편안했다. 다행이다.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니. 아내가 멀리서 소리친다.
“여보, 난, 당신 소설이 제일 좋아. 힘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