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이 미천하고 배경이 없더라도 무공은 바로 자신을 나타내는 힘이다.
그러나 강호는 넓다. 홀로 이룩하려면 무수한 난관이 다가온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강호로 들어섰다면 세력권에 들어가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왕에 문파에 몸을 담기로 했다면 세력이 큰 문파가 좋다.
거대 문파에 발을 들여놓으면 여러가지 혜택이 따라온다. 검증 받은 무공을 익힐 수 있으며,
문파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많은 문파에 들어가서 능력발휘를 못한다면 힘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세력다툼의 와중에 검하고혼(劍下孤魂)으로 사라지는 운명이 대부분인 것이다.
무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공의 종류는 다양하다. 흑백마도로 구분되는 강호의 문파는 그 성향에 따라 무공의 특성 또한 다르다.
물론, 무공의 성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무사들도 있으나 그 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무사의 성향을 가르는 무공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면 강호 대부분의 무공은 몇 개의 종파를 시발점으로 한다. 달마의 불가무공,
장삼봉의 도가무공, 서역에 그 뿌리를 둔 마교, 이성보다는 마성을 따르는 혈교(血敎)의 무공,
은밀하게 서원을 통해 계승되는 유가의 무공까지.
무공의 원류가 비슷하기에 대부분의 문파들은 같은 방식으로 제자들을 거두며 그들만의 무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
재능을 인정받아 어렵게 문파에 들어가면 기다리는 것은 모진 수련의 기간이다. 오음절맥, 태양신맥 등 특수한 기질을 지닌 천재형
무사가 아니라면 최하 7년 이상이 걸리는 기간 동안 문파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
영혼마저 문파에 바치는 심정으로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 능력과 충성심을 인정받아 그에 합당한 무공을 전수받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무공을 전수받지는 않는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해 능력과 품성에 적합한 무공을 선별적으로 물려받는다
보통 강호의 문파들은 제자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문파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기명제자(記名弟子)와 무공을 전수받았으나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무기명제자이다. 기명제자는
그 문파의 최후무공까지 습득할 수 있으나 무기명 제자는 그 한계가 주어진다.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비전의 무공을
배울 처지가 아니며, 자신의 사문을 쉽게 밝힐 수 없는 신세인 것이다.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기명제자(寄名弟子)는 명분상의 제자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의 풍습 중 하나로, 여유 있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부처나 신령의 가호를 받기 위해 명망 있는 승려나 도사에게 명분만 있는 사제관계를 맺게 하였다. 젊은 무인과 무림의 원로가 뜻이 맞으면 기명사제지간으로 맺어 질수도 있다. 무공과 파벌은 다르지만 뜻이 통하기에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피는 다르지만 형제로 뭉치는 결의형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기명제자 중 가장 주요한 제자는 문파의 대를 이어갈 후계자이다. 문파의 적통(嫡統)을 이어받는다 하여 적전제자(嫡傳弟子)라
부른다. 적전제자란 가문의 종손과 같은 의미이다. 이를 두고 불가에서는 의발(衣鉢)을 잇는다고 한다.
의발은 옷과 발우라 불리는 식기를 말하지만, 주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 즉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정신세계를 이어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문파와 달리 불가나 도가에서는 출가를 원칙으로 하여 제자를 선별한다. 무공은 물려받았으나 출가하지 않은 자를 일컬어 속가제자(俗家弟子)라 부른다. 속가제자는 그 문파의 정식제자로 대우를 받지만 출가를 하지 않았기에 법통(法統)은
물려받지 못한다.
관문제자(關門弟子)는 명망 있는 노사(老師)가 마지막에 거두는 제자를 말한다. 더 이상 제자를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관문제자가 되면 적전제자가 물려받지 못하는 최후의 심득을 전수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문파의 제자가 되어 무공 수련이 어느 정도 끝났다면 강호를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공이 우선이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의 삶을 알아야 한다. 강호를 모르고 무공만 배운다면 그야말로 선무당에 불과할 뿐, 경전을 외우고 법도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알아야 하나의 무사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속가문파라면 굳이 강호를 알 필요가 없겠으나,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불가와 도가의 제자들은 어떻게 강호가 돌아가는 지 그 끝자락이라도 만져봐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불가나 도가의 문파에서는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무공을 터득한 제자들을 강호로 내보낸다. 세상 구경을 하면서 심신을 단련시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불가에서는 만행(萬行)이라 하고 도가에서는 표주(漂周)라 부른다.
표주에 나선 도문의 제자는 필수품 몇 개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소지할 수 없다. 금품의 소지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표주의 기간은 대략 1년에서 3년 정도. 신분이 밝혀진다면 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극히 위험한 시기라 하겠다.
무일푼으로 강호에 뛰어든 도사들이 생활하는 방식은 사문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 하는 것. 무공을 배웠으니 산적을 만나도 걱정은 없을 것이고, 학문 또한 일정 수준에 도달했으니 어디를 가도 푸대접 받는 일은 없다. 기본적으로 익히는 의술과 역술을 총동원하면 하루 세끼는 해결 할 수 있다. 풍찬노숙 또한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의 과정이다. 풋내기 도사나 승려에겐 강호를 떠도는 기간이
인맥을 넓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백도의 문파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인간성이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성이 결여 되었다면 절기를 전수하지 않는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 때에는 절기를 전수하지 않는다.
만행이나 표주를 통해 그 후예의 참된 마음가짐을 판가름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제자에게는 단지 수련의 연장선이지만 문파의 대를 이을 후계자라면 그 모양새가 다르다. 강호는 넓은 곳. 하지만 중요한 사항일수록 이미 소문이 나있는 법이다. 거대문파의 후예가 강호견문을 나섰다면 강호의 촉각이 곤두서기 마련. 후계자가 움직이는 곳마다 묘한 파문이 일어나게 된다. 날이 서있는 문파에서는 첩자를 보내 무공의 수위나 성품을 관찰하고, 각 지역의 무인들은 나중에 그림자조치 밟을 수 없는 거대문파 장문인이 되는 후예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어 인연의 끈을 만들기도 한다.
풋내기 도사들 중에는 표주를 하며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있으나 가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자도 있다. 누군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면 즉각적인 비상연락망을 통해 소집령이 내려진다. 개인적 이유라면 그대로 지나가지만 죽임을 당했다면 문파의 이름을 건 대규모 보복전이 펼쳐진다.
도사출신의 무도인은 천하를 도모하는 법이 없다
도사도 종파가 다르다.
일반인의 눈에는 다 같은 도사로 보이지만 강호의 도교는 몇 개의 종파로 나뉜다.
모산파, 천사도(天師道: 오두미교, 정일파, 용호파), 전진교, 삼봉의 무당파등이 강호에 유명한 도교 종파들이다. 제각기 의관이
조금씩 다르고 율법 또한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도가문파인 전진파는 출가를 원칙으로 한다. 금욕주의를 표방하며, 도관에서 생활하기에 불가의 승려와 마찬가지로 향채를 먹지 않는다. 육류와 어류를 금하며 오로지 곡식과 채소 위주로 식단을 꾸민다. 단정법을 중시하여 토납도인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기에 전진파의 도사들은 내공이 강한 편이다.
도교의 한 문파인 천사도는 출가를 하지 않기에 재가도사(在家道士) 또는 화거도사(火居道士)로 불린다.
이들의 생활은 일반인과 똑같다. 향채를 먹고, 육류와 어류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의 특징은 부주(부적과 주문)에 능하고,
진법과 역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다.
또 다른 도사의 부류는 인단법(人丹法)에 매진하여 음양의 화합을 중시한다.
방중술로 불리는 음양화합술에 심취하였기에 강호에서는 요사한 문파로 낙인찍혀 있다.
하지만 이들이 퍼트린 음양화합술은 때때로 무공을 일취월장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통칭 도장(道長)으로 불리는 도사에 관한 호칭은 여럿이다. 방사(方士), 우사(羽士), 우객(羽客) 등이 도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남녀도사를 구분하여 황관(黃冠)이나 건도(乾道)는 남자도사를, 곤도(坤道), 도고(道姑), 여관(女冠) 등이
여자도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진인(眞人)은 도력이 깊고 수양이 깊은 도사를 말하며, 거사(居士)는 속가에 속했으나 도교적 생활을 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같은 도사끼리는 도우(道友)나 도형(道兄) 등으로 부른다.
도관에서 생활하는 도사들은 직급에 따라 각기 다른 호칭을 사용하며, 도사들의 품계는 1품에서 9품으로 나뉘어졌다. 도법을 관장하는 법사, 율법을 지키는 율사, 복식과 예절을 관장하는 위의사, 손님 접대를 담당하는 지객사 등이 대표적인 직급이다.
도사들의 복장은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도사모를 착용하는데 도사모의 생김새는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전진파 도사들은 소요건(逍遙巾), 호연건(浩然巾), 일자건(一子巾) 등을 주로 착용하며 도사모의 종류는 총 아홉 종이다. 천사도 도사들은 순양건(純陽巾), 장자건(莊子巾), 구양건(九梁巾) 등을 착용하는데 역시 아홉 종류라 한다.
도관에 기거하는 도사들의 일상은 불가의 승려와 대동소이하다. 도경을 공부하고, 토납도인을 통해 내가진기를 함양한다. 이들이 모시는 도가의 신은 삼청존신(三淸尊神 =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과 삼천군, 오노군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도사들은 무공을 터득하는 시간 외에 연단에 주력한다. 연단은 바로 정진하는 길이며 이들이 꿈꾸는 불로장생을 달성하는 과정이다. 불을 다스리고 약초를 다스려 우주의 힘을 작은 환단에 담으려는 노력이 있기에 도가문파들 안에 유독 영약이 많은 까닭이다. 태청, 소청, 태일, 태극 등 도가문파에서 만든 환단들은 강호의 보물로 대접을 받는다.
도가란 무위자연이며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도사출신의 무도인은 천하를 도모하는 법이 없다. 이들이 강호에 나서는 일은 단 하나, 순리에 어긋난 무리들이 강호의 평화를 어지럽혔을 때뿐이다.
문파의 후예가 표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원로들의 인증을 받아 마침내 문파의 후계자로 거듭난다. 강호의 거대문파인 무당파, 곤륜파, 전진파, 청성파 등의 후계로 지명되면 그날 이후 모든 대우가 달라진다. 문파의 원로들도 쉽게 대하지 못하고, 문파의 대소사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지며 또한 비밀리에 전승되는 장문인의 독문무공을 익힐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