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산책 -힉스 입자는 어떻게 만들까?힉스 입자 발견의 통계적 의미

[한재영]

물리산책 -힉스 입자는 어떻게 만들까?힉스 입자 발견의 통계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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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7.17. 14:25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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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산책 -힉스 입자는 어떻게 만들까?

힉스 입자 발견의 통계적 의미

“I think we have it!”, 이 간단한 메시지는 2012년 7월 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롤프 호이어(Rolf Heure) 소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외친 말이다. 이 날은 바로 CERN이 힉스 입자의 발견을 선언한 날로,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은 날이라는 의미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힉스독립기념일(Higgs Independence Day)’라 부르기도 한다.

볼 수 없는 힉스 입자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럼 이들이 발견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 이집트의 소년 왕 투탕카멘의 무덤 발견이나 수천만 년 전 공룡 화석의 발견은 눈에 보이는 증거물이 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힉스 입자의 발견은 좀 다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컴퓨터로 재구성된 힉스 입자의 붕괴 이미지일 뿐, 힉스 입자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현미경으로 아메바를 보듯 힉스 입자 자체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증거물이다. 게다가 발견했다는 힉스 입자는 어디에 보관해둘 수도 없다. 발견 즉시 사라졌다는 것이다. 범인은 잡았는데 금세 사라졌다니. 게다가 남겨진 증거사진도 범인의 모습이 아니라 범인이 빠져나간 흔적이라니. 이쯤 되면 의심의 눈초리가 갈 법도 하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더 혼란스러워진다.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도 확률이라고 한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는 OX 답변이 아니고, 힉스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99.9999... 퍼센트 확실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보면 힉스 입자가 아닐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란 말이다. 이런 면에서 힉스 입자의 발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통계 공부가 필요하다. 물론 세상은 통계의 시대다.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들, 대통령 당선 확률, 사고율과 그에 따른 보험금 계산 등 우리 주변은 통계를 통해 얻은 숫자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웬만한 통계적 지식이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진실을 모두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 분야 전문가들이 아니고서는 그 숫자 아래에 숨어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의 주제로 힉스 입자 발견의 통계적 의미를 꺼내보고자 한다. 힉스 입자가 무엇인지,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반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던 실험들, 또 수십조 원을 들여 건설했다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에 대한 이야기 등은 모두 생략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힉스 입자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면 다른 글을 먼저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1)우리는 곧바로 힉스 입자 발견에 사용된 데이터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힉스 입자 발견을 선언할 수 있었던 통계적 추론은 어떠했는지에 집중할 것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설치된 거대강입자충돌기

<출처: CERN>

우리가 알고 있는 진공,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진공

그러면 힉스 입자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힉스 입자가 우리 주변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힉스 입자를 만드는 일이다. 힉스 입자를 만들어야 찾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가속기를 사용해 힉스 입자를 만든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서 힉스 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진공은 참으로 희한하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그 속에서 입자들이 뚝딱하며 튀어나오는 공간이니 말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생각하는 진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이론적으로 진공을 만드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먼저 단단한 유리로 투명한 유리상자 하나를 만든다. 그리고 한쪽 면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진공 펌프를 연결해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공기 분자들을 빨아 밖으로 내보내면 된다. 유리상자 안에는 어떠한 원자도 들어 있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진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진공 펌프의 성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 미량이나마 반드시 남아 있는 원자가 있을 수 있다거나 유리벽을 뚫고 스며들어가는 원자가 있을 수 있다는 등의 많은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론상으로는 진공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런 진공은 좀 미덥지 못하다. 우선 원소주기율표에 들어있는 원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내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빛은 존재하지 않겠는가? 투명한 유리라고 했으니, 외부에서 전파도 뚫고 들어갈 것이다. 다른 말로 유리박스 안에는 다양한 전자기장이 가득 차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뿐인가? 진공인 유리박스 안에도 중력은 작용할 것이다. 당연히 그 안에서도 사과는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유리박스 안에는 중력장도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원자는 한 개도 들어 있지 않지만 중력장이나 전자기장이 들어 있는 공간을 진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유리박스 안에 들어 있는 전자기장을 제거하는 일은 진공펌프로는 할 수 없다. 대신 유리상자에 철판을 덧대면 전파는 잘 막을 수 있다. 전파는 도체를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기장은 막기가 힘들다. 철판이 자기력선을 잘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자기장을 막으려면 초전도체를 써야 한다. 초전도체가 자기장을 배척한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하여간 이제 우리는 점점 더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중력장은? 중력장은 막을 방법이 없다. 일단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중력을 느낀다.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중력은 모든 곳에 작동한다.

전자기파나 자기장을 차단할 수 있듯이 중력장도 차단할 수 있다면 정말 대박일 것이다. 만약 중력장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필자가 알고 있다면 아마도 이 글을 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무중력 방을 하나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받으면서 큰돈을 버느라 매우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중력장을 없애려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로 나가면 될 것이다. 물론 유리상자와 철판, 진공펌프 모두 중력의 원천이 되지만 이는 무시하기로 하자. 자. 그럼 이제 물질도 장도 그 어떤 것도 없는 참된 진공이 만들어진 걸까? 물리학자의 답변은 그래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진공.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을 들여다보면 입자와 반입자가 마구 생겨나는 공간이다. 또 힉스장이 가득 찬 공간이기도 하다. 물리학자의 진공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리학자의 주장은 진공이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니. 물리학자가 말하는 진공은 첫째로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입자와 반입자가 마구 생성되는 공간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는 입자와 반입자 쌍이 마음껏 생긴다는 것이다. 또 물리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진공에 필연적으로 힉스장이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이 힉스장은 진공의 본질로, 중력장처럼 텅 빈 우주공간으로 나간다고 해도, 또 철판을 대고 초전도체로 감싼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힉스장은 진공 그 자체와 항상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의 진공은 이렇듯 알쏭달쏭하다. 그렇다면 이런 힉스장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힉스장과 힉스 입자

사과를 손에 들고 있다 놓으면 아래로 떨어진다. 뉴턴은 지구가 사과를 잡아당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로부터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든다. 나침반 주변에 전류가 흐르는 도선을 가져가면 나침반이 흔들린다. 또 자석 위에 흰 도화지를 올려놓고 그 위에 철가루를 뿌리면 신기하게도 자기력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시각화를 통해 자기장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힉스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힉스장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철가루를 뿌려야 할까? 불행히도 그런 철가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는 힉스장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다.

힉스장은 굳이 비유하면 공기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땐 공기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기껏해야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일 뿐이다. 그러나 공기가 뭉쳐 토네이도와 같은 강력한 돌풍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면 공기는 더 이상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는 매질이 아니게 된다. 쇠망치보다도 더 강력한 파괴의 도구가 되어 집도 부수고 나무도 뽑아버린다. 공기가 평상시처럼 퍼져있으면 장과 같지만 뭉쳐 있으면 입자와 같이 행동한다고 할 수 있다. 공기 말고 물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잔잔한 호숫가에 나뭇잎 배를 타고 있는 개미라 하자. 이 호수는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운 힉스장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자, 그럼 호수에 물이 가득 차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주 간단하다.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된다. 돌멩이는 에너지를 수면에 전달하여 물방울이 튀어나오게 할 것이다. 수면 위로 튀어나온 물방울을 관측하여 사진을 찍으면 호수가 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호숫물이 장이라면 튀어나온 물방울은 입자인 것이다.

수면 위로 튀어나온 물방울. 수면이 크게 요동하면 물방울이 입자가 되어 튀어나온다.

힉스장도 마찬가지다. 비록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어 느낄 수 없는 장이라 할지라도 호숫물에 돌멩이를 던져 넣듯 진공 속에 에너지를 잔뜩 집어넣으면 힉스장이 요동하면서 힉스 입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그 힉스 입자의 사진을 찍어 그 존재를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힉스 입자 제조기, LHC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서로 상쇄되어 사라진다. 예를 들어, 전자와 그의 반입자인 양전자가 만나면 ‘뿅’하고 둘은 사라진다. 전자가 가진 전하 -1과 양전자가 가진 전하 +1이 만나 합이 0이 된다. 그런데 전자가 가진 질량 9.1×10-31kg과 양전자가 가진 질량 9.1×10-31kg은 어떻게 될까? 질량은 마이너스가 없으므로 둘의 합은 18.2×10-31kg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전자와 양전자가 서로 상쇄되어 없어졌으므로 질량도 어디론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질량을 담고 있던 전자와 양전자라는 틀이 사라졌으니 그럼 질량은 다른 뭔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때 쓰라고 나온 공식이 아인슈타인의 E=mc2이다. 그렇다. 질량은 광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이 에너지는 곧바로 두 줄기 빛으로 바뀌어 이내 사라지고 만다.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서로 사라지고, 사라진 질량만큼의 에너지를 갖는 빛이 생성된다.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의 근본 작동원리다.

같은 원리로 높은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여 서로 부딪치게 하면 더 큰 에너지를 진공 속에 축적할 수 있다.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장치다. 양성자를 엄청난 에너지로 가속시켜 서로 정면충돌하게 만드는 기계인 것이다. LHC는 양성자 한 개를 7조 전자볼트(TeV)의 에너지로 가속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두 개의 양성자가 정면으로 충돌할 때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14조 전자볼트나 된다.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작은 에너지만 변환이 가능하다. 전자와 양전자의 충돌과 달리 양성자는 여러 개의 쿼크와 글루온이 뭉쳐져 만들어진 복합 입자로 실제 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여간 LHC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입자 충돌기로, 이곳에서 수많은 종류의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LHC에 의해 가속된 두 양성자는 정면충돌하여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이때 힉스 입자의 질량에 광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보다 더 큰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면 힉스 입자가 생성될 수 있다.

힉스 입자가 발견된 지금이야 그 질량이 125GeV/c2 임을 알고 있지만, 힉스 입자가 발견되기 전에는 그 값이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125 GeV/c2는 상당히 큰 질량이다. 양성자의 질량이 대략 1GeV/c2 정도이니까, 힉스 입자는 양성자보다 130배나 무겁다. 그러니 LHC 이전 낮은 에너지의 가속기에서 힉스 입자가 생성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2편에서 계속)

[네이버 지식백과] 힉스 입자는 어떻게 만들까? - 힉스 입자 발견의 통계적 의미 (1) (물리산책,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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