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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2차 기업 분배
여호수아 18~21장
기억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 21:45).
중심 사상
정복의 목표는 이제 달성되었다. 주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실현되었다. 하나도 실패하지 않았다!
서론
정복과 기업 분배 - 두 후반부의 대응. 우리는 다시 그 이야기의 두 후반 부분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복의 역사와 땅을 분배하는 일을 준비하신 방법을 목격하게 된다. 정복을 완수한 일과 기업을 분배한 일이 어떻게 일치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정복 (2단계) | 기업분배 (2단계) |
1. 세겜 - 제단을 쌓음, 언약식(8:30~35) 2. 남부출정(9,10장) 3. 북부 출정(11:1~15) 4. 땅을 취함; 전쟁 그침(11:16~23) | 1. 실로 - 회막 세움, 분깃을 제비뽑는 의식(18:1~10) 2. 남부 기업 분배(18:11~19:9) 3. 북부 기업 분배(19~21장) 4. 땅을 주심; 안식함(21:43~45) |
(1) 여호수아서의 전반부 중간에서는 세겜에서 제단을 쌓는 일을 언급하며 (2) 후반부 중간에서는 실로에서 회막을 세우는 일을 언급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성소는 여호수아서의 중심이다.
실로에서(수 18:1~10)
성소를 영구적으로 안치할 장소로 어느 곳이 선택되었는가? 이유는?(수 18:1; 부조와 선지자, 514; 본교 성경 주석 2권, 998 참조)
답:
<참고> 실로는 “안식처”를 뜻한다. 신명기 12장 10~1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법궤를 두실 장소를 선택하실 것임을 말해 준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한 후, 법궤는 마침내 영구적인 집을 갖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염두에 두고 이 장소를 택하셨을 것이다: (1) 실로는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접근이 용이하였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로 나아오는 순례자들이 안전하도록 그 땅의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였다. (3) 그 땅의 중앙에 있는 성소는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참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었다. (4) 실로 지역의 음향학적 효과와 “공간적 수용 능력”은 대집회를 위한 이상적인 장소가 되게 하였다. 고대 실로에 대한 최근의 조사에서 성막이 자리했을 법한 장소가 밝혀졌다. 발굴된 유적은 여호수아와 사사 시대 동안에 성막이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인접해 있던 저장실들을 드러내었다.
실로의 나중 역사는 어떠하였는가? 예레미야는 실로의 멸망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었는가?(렘 7:12, 7:12~14, 26:6~9; 삼상 1:3,9,24, 3:21, 4:3,4,12; 왕상 2:27; 시 78:60).
답:
<참고> “엘리의 죄악으로 블레셋인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후 실로가 망하기까지 법궤는 3백년 동안 실로에 안치되어 있었다. 법궤는 그후 이곳 성막으로 되돌아오지 않았으며 마침내 성소 봉사는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옮겨지고 실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지금은 한때 실로가 있었던 곳을 나타내는 유적들이 있을 뿐이다. 오랜 후에 실로의 운명은 예루살렘을 경고하는 데 사용되었다”(부조와 선지자 514, 515).
너희가 지체하겠느냐?(수 18:3) 이스라엘의 방랑 생활은 끝났다. 그러나 명백히 그들은 서로 떨어진다는 것이 어렵고 실제로 그 땅을 그들의 소유로 삼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함께 남아 있는 것에 만족하였으므로 그들의 영적 시야는 점점 더 어둡게 되었다.
남은 일곱 지파의 기업(수 18:11~19:48)
왜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뽑아 기업을 나누도록 지시 하였는가?(수 18:6, 18:3~10). 이것은 오늘날에도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
답:
<참고> 제비라는 말은 여호수아서 후반부에 스물 두번 나타난다. 신정정치(神政政治) 하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제비 뽑는 일은 선택을 여호와의 손에 맡기는 것이었으므로, 조작이나 정실(情實)의 가능성을 배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직접적인 신정 정치 하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방향을 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찾아보라고 촉구하신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제비 뽑는 일에 아무런 신뢰를 두지 않는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을 위하여 제비 뽑는 일은 하나님의 명하신 바가 아니다”(엘렌 G. 화잇 코멘트, 본교 성경 주석 6권, 1054).
왜 시므온 자손의 기업은 유다 지파의 분깃 중에서 잘라 내었는가?(수 19:9, 19:1~9)
답:
<참고> 시므온과 레위의 극악한 죄(세겜인들의 대량 학살, 창 34:25) 때문에, 야곱은 열두 아들에 대한 임종 예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레위와 시므온 지파)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창 49:7)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레위 지파는 여호수아 21장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전역의 48개 레위 지파 도성에 흩어졌으며, 시므온 지파는 특별히 솔로몬의 통치 후 그 영토는 유다 지파 내에 있었으면서도 북방 이스라엘과 연합하였을 때, “야곱 중에 나누”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와 교회에 어떤 기업을 주셨는가?(행 26:18; 엡 1:13,14; 비교, 골 1:12; 계 22:14)
답:
<참고> “권세”(계 22:14)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특권” 또는 “자유”로 번역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새 땅에서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자유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예수님과 얼굴을 대면하여 이야기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남은 분깃”: 딤낫세라(수 19:49~51)
여호수아는 언제 자신의 기업을 받았는가? 여호수아가 기업을 받은 때와 그 이름은 그의 품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데 얼마나 뜻 깊은가?
답:
<참고> 여호수아는 자신의 기업을 받기 위하여 끝까지 기다렸으며 “광막한 지역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읍을 하나 요구하였다. … 이 성읍에 ‘남은 분깃’이란 뜻으로 딤낫세라란 명칭이 주어졌는데 이는 정복한 땅을 제일 먼저 취하는 대신에 자기 백성 중 가장 미천한 자들까지 다 분배 받기 까지 자기 요구를 연기한 정복자 여호수아의 고상한 인격과 무아적 정신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부조와 선지자, 515).
우리는 여기서 이타적인 봉사의 비길 데 없는 모본이셨던(롬 15:3 참조) 신약의 여호수아(예수님)를 표상적으로 예시하는 구약의 여호수아의 생애에 대한 또 다른 국면을 본다. 병자를 고치느라 진종일을 보내신 다음에 수천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보라(마 14:14~20). 명사(名士)들이 대화를 나누려고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그분을 보라(눅 15:1,2).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그분의 친절한 행동을 바라보라(요 4:5~30). 종의 일을 행하시는 그분을 주목하라(요 13:1~17). 그리고 마침내 행악자의 죽음을 죽으시는 그분을 보라(눅 23:26~46). 그대를 위함이다.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여호수아의 행동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답:
<참고> 비록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중 최연장자요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였지만, 마지막까지 기다려서 분깃을 받았다. 공중(公衆)과 교회 직원들을 위한 얼마나 훌륭한 이기심 없는 종의 모습을 한 지도자의 모본인가! 여호수아의 모본은 또한 평신도들을 위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얻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세상의 거민들은 첫째가 되는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다. 나라들은 그들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애쓴다. 사업가는 그들의 은행 잔고를, 사람들은 그들의 소유를 늘이려고 애쓴다. 얼마나 정당하게 이익을 추구하느냐에 대해서는 거의 문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이기심들은 잔인하며 그 중 대다수가 비양심적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에 의하여 표상된 정신은 화평과 우애, 그리스도인 사랑과 사려 깊음을 촉진한다.
도피성과 레위 지파의 도성들(수 20,21장)
도피성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수 20:3, 20:1~9; 비교, 출 21:13; 신 4:41~43).
답:
<참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왜 하나님께서는 이 당시에 개인적인 복수의 관습을 폐지하지 아니하셨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거룩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만 그들을 인도하신다. 이와 같은 원칙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히브리 법령의 특징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태에 보조를 맞추었으나, 항상 사람들이 처음에는 깨달을 수 없는 완전을 지향(指向)하였다. 그러므로 노예제도, 일부다처, 자유 이혼 등은 비록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지도 승인 받지도 않았을지라도 한 동안 용인되었으며, 이러한 행위들을 규제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본교 성경 주석 2권, 277).
정죄 받은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도피성에 남아 있었는데, 이는 아무런 동물의 희생도 그 속죄를 대신하지 못했을 만큼 인간의 생명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원형적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표상하였는데, 그분의 보혈은 모든 죄가 고백되어 회개함을 입을 때, 그것들을 용서하는 효력이 있다.
도피성은 구속의 계획에 있어서 무엇을 상징하는가? 상징과 실제 사이의 비교점들을 생각해 보라. (부조와 선지자, 515~517쪽 참조).
답:
<참고> 레위의 도성들. 레위 지파를 위해 할당된 마흔 여덟 도성의 명단과 더불어 그들의 기업을 묘사하는 세 가지 표현들을 주목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됨”(수 13:14),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수 18:7). 레위 지파의 “기업”은 그들의 응식(應食)이었던 희생 제물의 몫으로부터(민 18:8~20),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로부터(민 18:21~24) 왔다. 레위 지파는 성소와 관련된 봉사에 전 시간을 바쳐 헌신하였으므로, 그들은 또한 특별한 의미에서 여호와 자신의 영적 기업을 소유하였다.
신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피난처를 어떻게 묘사 하는가?(히 6:18; 빌 3:9).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수 21:43~45)
가나안 땅의 기업에 관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회고해 보라(창 12:7, 26:3, 28:13; 신 7:1,2; 수 1:2, 1:2~6).
답:
이 약속들은 어느 범위까지 성취되었는가?(수 21:43, 21:43~45).
답:
<참고> 이들 성경절이 강조하는 땅에 대한 약속의 두 국면은 여호수아서의 주제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수 1:2,3,6, 21:43). 둘째 주께서는 그 땅에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약속 하셨다(수 1:13,15; 비교, 출 33:14). 이들 두 약속은 성경 전편을 통해 계속해서 그 차원이 심화(深化)된다.
온 땅(수 21:43). 이 성경절은 모순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때까지는 온 땅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성경절은 단순히 “여호와께서 … 온 땅을 …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다고 말한다. 가나안 온 땅을 한 번에 이스라엘에게 주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다(출 23:30). 그들은 온 땅을 차지할 만큼 수가 충분치 못했다. 그 때까지는 다소의 가나안인들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신 7:22; 출 23:29; 참조, 본교 성경 주석 1권, 629).
사방에 안식을 주심(수 21:44). 히브리어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안식하게 됨을 의미하는 “사방으로 부터의 안식”이라는 말로 읽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신체적인 쉼 이상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가나안 정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계획하고 계셨던 위대한 선교 사업의 준비 과정이었다. 그러한 계획은 오직 그들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그같은 계획을 대표하는 개인들에 의해서만 추진될 수 있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히 4:8)고 말하였을 때, 영혼의 이와 같은 영적 목표의 달성과 세계적인 선교 목적의 성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불행하게도 자신의 고귀한 사명을 성취하는 일에 실패하고 ‘안식’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부르셔서 거룩한 목적을 성취시키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히 4:1) 두려워해야 한다”(본교 성경 주석 2권, 284).
연구 토의 요약
연구와 명상
하나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을 성취시켰던 것처럼 우리와 맺은 약속들도 기꺼이 성취 시키고자 하실 만큼 의로우시다. 이번 주 기억 절을 복습하라. 그런 다음 베드로후서 1장 4절과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연구하라. 그대에게 최상을 의미하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와 같은 약속의 목적은 무엇인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중요성을 생각해 보라.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 도안에서 “아멘”임을 보게 된다. 여기서 아메은 “진실됨”, “충성스러움”, 확실함‘을 뜻한다.
부조와 선지자, 514~517 쪽에서 “가나안의 분배’ 장과 1881년 1월 20일자 영문시조 ”도피성“ 을 읽어라.
“고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지정된 도피성은 그리스도 안에 준비된 피난처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이 땅의 도피성을 마련하셨던 동일한 자비로우신 구주께서는 당신의 보혈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하여 저희가 둘째 사망에서 피하여 안전함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준비하셨다. 어떠한 권세도 용서를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영혼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부조와 선지자, 516).
토의 상황
그대는 그대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제비”를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그대가 더 좋아하는 어떤 곳에 정착하고자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도성의 이름과 경계선들을 성경에 기록하셨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의 지리는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성격에 관해서 무엇을 말해 주는가?
도피성으로 피신하는 살인자에 대한 법은 오늘날 계획적인 살인에 대한 형사 처분의 지침이 되고 있는가?(수 20:5; 창 9:6; 출 21:12,14; 영문시조, 1881년 1월 20일자 참조).
어떤 면에서 그대의 교회는 도피성과 같은가? 그대의 가정은 어떤가?
도피성을 마련하는 일에서 어떤 보편적인 공의의 원칙을 보게 되는가?
요약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안식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새 여호수아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적 기업을 소유하고 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