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후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고착된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은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극도의 성과사회에 대한 ‘순응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우울증과 소진(消盡)이 만연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라는 정신적 재앙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의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려 하는 대신 자기 탓을 하고, 순위와 평점으로 인간을 상업화하는 세상에서 ‘혁명’은 가당치도 않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맹목적인 축적의 근원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고찰한다.
인간은 더 많은 자본을 가질수록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불멸의 환상을 갖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한다.
생존 양식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설 죽은 삶, 산 죽음’의 좀비 상태로 살아간다.
‘삶의 총체적 상업화’ 흐름은 무자비한 자기 착취를 가속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합병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이 만든 ‘총체적 감시사회’,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이 모두 사라진 ‘투명 사회’ 또는 ‘같음의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지향(志向)할 점은 지금과 ‘다른 삶’이고, 역설적이지만 “지금이 저항을 조직할 때”이며 인간의 ‘의식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글과 말로 철학적 봉기를 꿈꾸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권력 기술이 아니다.
‘자유와 존엄’을 잃어 가는데도 어떤 저항감이나 비판 의식도 품지 못하는 무감각한 세태를
우리는 통렬하게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