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문가 성씨 어디서 유래 되었을까 ?
오늘날 명문가로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한국의 성씨는 고려건국에 공인 큰 인물들이 대부분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하사받은 성씨가 지금도 한국의 정재계를 이루고 그성씨들을 보면 고려부터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류로 명문가 다운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평윤씨 한동훈 장관 청주한씨 를 비롯 그 시조를 알아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 초기부터 측근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새 왕조를 수립하는 데 공을 세운 세력에게 성을 많이 하사하였다. 또한 중앙과 연결된 호족들도 그들 나름대로 성을 갖게 되므로써 많은 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려의 개국공신(開國功臣)에 홍유(洪儒 남양홍씨), 배현경(裵玄慶 성산배씨), 신숭겸(申崇謙 평산신씨), 복지겸 (卜智謙 면천복씨)등이 있는데 그들은 처음에는 성이 없었다.그러나 그들이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기 때문에 홍술(弘述)을 홍유(洪儒 남양홍씨), 백옥삼(白玉衫)을 배현경(裵玄慶), 삼능산(三能山 성산배씨)을 신숭겸(申崇謙 평산신씨), 사귀(沙貴)를 복지겸(卜智謙 면천복씨)등으로 태조 왕건이 성을 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홍유는 부계홍씨(缶溪洪氏), 배현경은 경주배씨(慶州裵氏), 신숭겸은 평산신씨(平山申氏), 복지겸은 면천복씨 (沔川卜氏)로 성관(姓貫)도 함께 받았다 한다.
또한 왕건이 세력을 점차 넓히게 되자 각처에서 왕건의 편에 서서 궁예와 견훤의 세력을 물리치고 고려 왕조를 창업하는 데 공을 세운 호족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명주(강릉) 장군이라 일겉던 신라계 김순식을 왕순식(王順式), 벽진이씨 (碧珍:성주) 장군이라 일컫는 이총언(李悤言), 고울부(영천)장군 황보능장(皇甫能長) 등이었다. 왕순식은 명주의 호족으로 고려 건국 후에까지도 지방에서 독립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승려로 고려 지배권에 살던 아버지가 귀순을 권하자 맏아들 수원(守元)을 보내 귀부했으며, 다른 아들 장명(長命)에게는 1백명의 사병을 데리고 가서 태조의 왕궁을 숙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후에는 자신도 태조를 배알하여 왕(王)씨 성과 대광 (大匡)이란 관직을 받았다. 이총언은 왕건의 권유를 받고 아들 영(永)에게 군사를 이끌고 왕건을 돕게 했으며, 황보능장은 왕건을 도와 공을 세우고 영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총언은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시조가 되고, 황보능장은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시조가 되었다. 오늘날의 성씨 중 상당수는 고려 개국공신의 후예들이다.
=앞서 언급한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나 무송 유씨(武松 庾氏)의 시조인 유검필(庾黔弼) 처럼 군인으로서 공을 세워 중앙세력으로 등장한 인물도 있었고, 지방 세력으로도 왕순식, 이총언, 황보능장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문화 유씨(文化 柳氏)의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은 황해도 유주(儒州:문화) 의 부호였는데 왕건이 견훤을 칠 때 1천 량의 수레를 동원하여 군량을 보급해 주었다고 하며, 전의 이씨(全義 李氏)의 시조 이도(李棹)는 왕건이 남정할 때 금강의 물이 넘쳐서 군사들이 강을 건너지 못할 때 그들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주었고, 양천 허씨(陽川 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공암(孔巖:양천)의 부농으로서 왕건의 군사들에게 군량을 대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 외에도 고려 개국공신으로 각 성씨의 시조가 된 이들이 많았다.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 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 남양 홍씨(南陽 洪氏)의 시조 홍은열(洪殷悅), 홍주 홍씨(洪州 洪氏)의 시조 홍규(洪規), 인동 장씨(仁同 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 남양 방씨(南陽 房氏)의 시조 방계홍(房季洪), 원주 원씨(原州 元氏)의 시조 원극유(元克猷),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 용인 이씨(龍仁 李氏)의 시조 이길권, 청주 이씨(淸州 李氏)의 시조, 이능희, 면천 박씨(沔川 朴氏)의 시조, 박술희, 아산 이씨(牙山 李氏)의 시조 이서, 동주 최씨(東州 崔氏)의 시소 최준옹,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시조 조맹, 영광 전씨(靈光 全氏)의 시조 전종회, 선산 김씨(善山 金氏)의 시조 김선궁, 해평 김씨(海平金氏)의 시조 김훤술, 봉화 금씨(奉化 琴氏)의 시조 금용식 등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권행은 원래 김씨였으나 권씨 성을 하사받았고,
=그 외에는 성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없어 고려 건국 이전부터 사용하던 성이었던 듯하다. 고려 건국 이전에 성씨가 널리 보급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근거로는 고려 초기의 호장을 시조로 삼은 예가 많음을 들 수 있다. 호장이란 고려 건국 초에 새 왕조에 귀부하지 않은 지방세력들을 강제로 향리의 장으로 삼아 강제로 새왕조에 귀속시켰던 것을 말한다.
=그 예로는 신라에서 벼슬을 살던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시조 이순유는 고려가 건국되자 이에 불복하고 이름을 극신(克臣)으로 고쳐 경산(성주)에 숨어 살다가 경산부의 호장으로 강제로 귀속되었고, 역시 신라의 신하였던 기계 유씨(杞溪 兪氏)의 시조 유의신은 기계현의 호장이 되었다.
=그 외에 호장이 어떤 인물은 시조로 하고 있는 성씨로는 광주 이씨, 한산 이씨, 진성 이씨, 합천 이씨, 덕산 이씨, 고흥 유씨, 단양 우씨, 고령 신씨, 순창 조씨, 동래 정씨,봉화 정씨, 창녕 성씨, 예안 김씨, 반남 박씨, 양주 조씨 무송 윤씨, 목전 상씨, 등이 있다.
=위에 든 성씨는 이외에도 고려 초기의 인물을 시조로 하고 있는 성씨가 많은 것으로 보아 신라말부터 고려 초에 이르는 사이에 지방 호족이나 고려의 공신들이 대부분 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거나 성을 만들어 가졌다고 보여지며, 고려에 들어와선 성씨 앞에 본관을 표시하여 혈족 계통을 구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