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경지를 체득하는 공부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중에서 이미 중생 제도하기를 마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부처님이 도솔천을 떠나지 않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다는 것은 전생에 머물러 있는 채로 금생에 태어났다는 말이다. 이를 의리적으로 해석하면 전생과 현생은 하나이다. 또는 전생과 이생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 인식의 한계 내에서는 이 말을 납득할 수 없다.
모태중은 태중에 갇혀 있는 시기인데, 이 시기에 이미 중생제도를 마시쳤다는 것은 우리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태이다.
도솔천이나 모태 중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곳이고 중생교화를 준비하는 시기이고 이 몸이 현실세계에 태어나기 이전이다. 이 의두는 분명 무엇을 상징하거나 비유적으로 또는 격외로 제시하여 우리에게 성품의 본체 자리를 깨닫게 하거나 그 경지를 터득하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진리의 본체 자리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본래 하나인 상태이며, 이는 깨달음으로 체득한 경지에서만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솔천과 왕궁가. 이 몸을 나타내기 이전 모태 중과 몸을 나타내서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은 어떤 관게가 있는가? 부처님은 현실세계인 왕궁가에 살면서도 일념미생전처인 천상계에 머물러 있고, 모태 중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채로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 그대로 중생을 제도하는 그 부처님 모습 그 자체다.
따라서 이 의두는 그 경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으로만 증득이 가능 하고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 부처님의 실제 경지를 몸소 체험하자는 것이다. 이상세게를 떠나지 않고 현실세계에 살며 우리의 이상향을 건설핮는 것이기도 하다. 성품의 본래자리를 여의지 않고 한 마음 내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천지미분전, 일념미생전처를 떠나지 않은 그대로 그 연장선상에서 한 마음을 내고 심신작용을 하여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도솔철 내원궁이요, 이 몸을 나타내기 이전의 태중의 모습으로 여여하게 사는 것이다. 현실의 오욕경계에 처해서 변화무쌍하게 심신을 작용한다 할지라도 시비선악을 초월하여 항상 여여한 그 정체를 떠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도솔천이나 모태 중과 같은 대적광전, 적멸보궁에서 안주하는 나의 주체를 잃지 않는 체험을 통해서 이 의두가 상징하는 경지를 맛 볼수 있을 것이다.
'물아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하신 좌선의 공덕처럼, 이 의두 공부는 의리적으로 연마하고 궁구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우리 공부인들 각자 마음으로 부처님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왕산 성도종 교무, 중앙중도훈련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