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 깎기 / 박영보
샤워를 할 때 자기 손이 미치는 부분을 씻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어깨의 뒤 등 밑 쪽이나 허리의 위쪽 부분은 대책이 없다. 한국에서 이태리 타월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 것이나 때 밀이라는 직종이 생기게 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꼭 실제로 머리 깎는 일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깎을 때도 샤워를 할 때처럼 손이 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머리의 앞과 옆, 위와 아래 부분은 자기 자신이 손질을 할 수가 있지만 뒤쪽은 그렇지가 않다. 거울로도 볼 수가 없는 부분이어서 어떻게 또는 얼마나 잘라야 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발관엘 가거나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수년 동안 ‘나 홀로 머리 깎기’만을 고집해온 사람이다. 이런 나를 두고 ‘괴짜’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사십여 년이 넘게 이 짓을 해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1968년 군에서 제대를 한 이후 지금까지 이발관에 간 것은 딱 두 번이었는데 지난 2~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조카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두 차례 한국방문을 했을 때 거의 반 강제적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수년 동안 지켜온 처녀성이 허물어지는 기분 같기도 했지만 결혼식장에 보다 더 말쑥한 차림으로 나와주기를 바라는 그분들의 바램에 따라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크던 작던 간에 내가 오랜 동안 이어오던 일들을 중단하거나 변경 한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거울에 비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다 보고 있자면 한심스럽기도 하다. 화장실의 싱크대 위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웃옷은 벗은 채 한 손에는 빗과 브러시를 번갈아 가며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다른 손으로는 몸을 뒤틀어가며 가위질을 하고 있는 모습 또한 가관이다. “귀찮지도 않느냐”며 돈 일이십 불이면 간단하게 처리될 일을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던 아내의 잔소리도 멈춰진 지 오래다. 포기를 했는가 보다. 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지난 사십여 년 동안 미장원이나 이발관을 이용했다면 그것도 작은 액수가 아닐 것 같다. 거기에 또 담배 한대도 피워본 적이 없는 것까지 합한다면 조그만 햄버거스탠드 하나 정도는 차릴 수도 있는 종자돈 정도는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청승은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게으른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아까워서 이다. 머리 하나 깎자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나가야 한다. 예약이라는 방법으로 얼마의 시간 절약도 가능하겠지만 약속된 시간에 도착을 한다 해도 가자마자 의자에 앉아 이발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발관이나 미용실에서는 나 하나만을 위해 시간을 맞추어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다. 집에서 내 손으로 직접 깎으면 십 분이나 십오 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오가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깎는 시간을 합하면 한두 시간은 우습지도 않게 넘어간다. 그 시간에 집에서 책을 읽거나 뒷마당에 나가 고추 모라도 옮겨 심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값진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재산이 2조원이 넘는 휴대폰 회사의 창업자 존 코드웰이나 스탠퍼드대학의 교수이며 구글의 창업에 참여하여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보유한 갑부 데이비드 셰리턴 같은 사람들도 집에서 이발을 한다고 했다. 나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손으로 직접 깎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아껴가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생활 자세를 나와 같은 류의 ‘궁상’으로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낭비벽'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자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들처럼 '검소함'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새겨본다.
그들이 집에서 이발을 하는 것은 돈보다는 시간절약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시간을 규모 있게 쪼개 써가며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현재의 내 꼴은 이게 무엇인가.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돈 때문이 아니라 작으나마 자기 스스로 해결을 해 보자는 데에도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니 누가 뭐래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들 앞에서 주눅을 들 필요나 이유도 없으니 편한 마음이야 그들만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사십여 년의 경험은 이제 거울로도 볼 수 없는 뒷부분을 감각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하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끄고도 고른 규격으로 떡을 썰지 않았던가. 머리칼의 부분부분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훑어 올려 끝부분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고 브러싱을 해 보면 전체적인 겉모양은 그런대로 잡혀간다.
아내는 머리를 잘라야 할 때 미장원에 간다. 가끔 미장원에서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나를 부른다. 고르지 않고 거칠고 볼품이 없는 부분을 손질해 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최소한 나의 가위질 솜씨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새겨도 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전문적인 헤어 디자이너의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내 무딘 손끝으로 다듬어 진다는 뜻이기도 하니 우쭐해 할만도 하지 않겠는가. 아내의 손에는 거울이, 내 손에는 빗과 브러시 그리고 가위가 들려있기 마련이다. 나의 가위가 이리 저리 위치를 바꿔갈 때마다 아내가 들고 있는 거울의 각도도 따라 움직인다. “이제 됐어. 땡큐” 라는 말은 나의 마무리 작업이 만족스럽다는 뜻으로도 받아드려도 될 것 같다.
아내의 머리를 자르거나 손질을 하는 일은 내 자신의 머리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완성됐다는 나의 머리 모양새는 변두리 싸구려 이발관에서 오 분이나 십 분 남짓한 시간에 끝내 논 것만큼도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아무리 대단한 장인(匠人) 한 사람이라도 보통사람 두 사람의 합해진 지혜를 따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