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달러 릴레이. 김규련
12월이 시작하자마자 감기를 앓았다. 2주가 지났는데도 그대로다. 의사한테 항생제도 처방을 받아 복용도 해보았지만, 뜨거운 여름날의 타는 듯한 갈증은 여전했다 . 밤새 열이 39도가 넘었다.
11월에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매일 운동을 했던 것이 무리가 됐나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나. 운동도, 친절도, 재물도, 배려도, 먹는 것도 과하면 모자라니 만 못하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만큼 힘든 감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인간의 나약함이 겁나도록 무서웠다.
아플 땐 겨울밤에 못 다한 이야기와 과거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찾아든다. 혼자 외롭게 사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쓸데없는 아집으로 50년이나 넘게 사귀어 온 친구와 소원하게 되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후회와 연민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문득 나의 이러한 생각을 바꾸게 한 그날이 떠올랐다. 작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러 가기 몇 시간 전 모처럼 우리 부부는 멀리 사는 친구 집을 방문 했다. 남편들에게 핸드백을 맡기고 꼭 무언가를 살 의도가 없었기에 20불만 손에 쥐고 가벼운 마음으로 옷가게에 갔다. 눈여겨 두었던 스웨터가 반값 세일 이었다. 난 너무 좋아서 옷을 들고 계산대 앞에 왔다. 그때서야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점원에게 돈이 5달러가 모자라니 1시간 후에 다시 돈 가지고 사러 오겠다며 이 옷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내 뒤에 서있던 여자가 나에게 부족한 5달러를 건넸다. 당황한 내가 돈을 반쯤 받아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사이에 그녀는 내 옷값 전체를 자기 옷과 합쳐 크레딧 카드로 계산하고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렸다 그녀는 유타(Utah)에서온 리즈(Liz) 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아기엄마였다. 내가 평생에 모르는 사람한테 이유나 조건 없이 받은 최고의 큰 선물이었다. 얼떨떨한 감사의 마음이 식기 전에 나 또한 그녀에게서 받았던 25달러로 따뜻한 옷이 꼭 필요했던 뒷사람에게 털옷을 사주었다.
요즘 “남에게 베풀어라”("Paying Forward“)라는 운동이 전개 중이라 한다. 유타(Utah) 주 어느 드라이브 쓰루 커피 샆 (drive through coffee shop) 에서 시작 되었는데 앞 차가 가면서 자기 뒤에 오는 차의 커피 값을 대신 내준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선물만큼 감사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다. 더구나 연말에 낯선 곳에서 누군가의 배려를 받았다면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하지 않던가. 남에게 베풀면 자신에게도 그 이상의 것이 되돌아오는 법이다
남을 배려하는 향기로운 작은 사랑의 표현이 모두를 기쁘게 한다. 그 뿌듯한 마음을 딴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그 생각만 으로도 감기와 열이 내려가는 듯하다.
친절만한 항생제가 따로 없다. 이런 운동을 통해서 더욱 따뜻해지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