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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만큼 쉬운게 없다. 밸런스는 두 개가 붙어서 나란한 것이다. 밸런스의 변화는 분할이다. 분할하면 숫자가 증가한다. 너무 쉽잖아. 그런데 왜 다들 어렵다고 할까? 나는 거기서 인류의 어떤 약점을 봤다. 이 문명은 결함 있는 문명이다. 인류는 지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여기서부터 막힌다. 인류는 방향이 뭔지 모른다. 방향은 공간의 방향이다. 공간이 뭔지 모른다. 이쯤 되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밸런스 중심의 사고를 익혀야 한다. 밸런스는 깨진다. 마이너스다. 마이너스 사고를 배워야 한다.
인류의 사고는 플러스 방향인데 자연의 전개는 마이너스 방향이다. 인간은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만들려고 하지만 자연은 큰 것을 쪼개서 작은 것을 만든다. 엔트로피 증가는 작은 것의 증가다. 인간은 애초에 큰 것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작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열역학은 이상하다. 기초부터 빌드업 하는 과정이 없다. 수학 다음에 물리학이 있고 그 다음에 화학이 나와야 한다. 수학과 물리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화학을 한다면 그게 연금술이다. 열역학 법칙이 어려운 이유는 인류가 공간을 해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초를 건너 뛰었다.
지식의 출발점은 밸런스다. 에너지의 방향성은 저울의 축이 먼저 움직이고 다음에 접시가 기울어지는 순서다. 대칭은 축이 있다. 축 1이 움직이면 대칭 2가 움직인다. 1의 원인이 2의 결과를 낳으므로 증가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머리 속에 그리면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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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운동의 원인이다. 운동은 변화다. 변화는 왜 생겨나는가? 열역학 1법칙에 따라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 없으므로 변화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내부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밸런스의 붕괴로 인해 빗장이 풀려서 외부로 드러난 것이다.
에너지가 운동을 감추는 방법은 나란함과 방향전환과 간섭이다. 운동은 충돌한다. 나란하면 충돌을 피한다. 운동은 이탈한다. 방향전환을 하면 이탈하지 않는다.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것은 간섭이다. 에너지는 간섭에 붙잡힌다. 놓치면 빛으로 변해 이탈한다.
방향전환을 반복하면 파장이 짧아진다. 짧은 파장에 운동을 감추는 것이 각운동량 보존이다. 밸런스가 깨지고 감추어진 운동이 드러난 것이 관성이다. 운동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게 붙잡는 것이 밸런스다. 운동이 -><-꼴로 마주보고 교착된 것이 물질이다.
밸런스에 가두는 것이 닫힌계다. 모든 변화는 밸런스 붕괴다. 하나의 밸런스가 하나의 의사결정단위가 된다. 그것이 존재의 모습이다. 밸런스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아니면 붕괴한다. 밸런스는 간섭이므로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는 간섭이 풀리는 붕괴 뿐이다.
열역학 1법칙은 내부적인 간섭 형태가 달라질 뿐 그 이상의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자리바꿈이 일어날 뿐이다. 부부가 이혼을 해도 사람은 그대로 있다. 열역학 2법칙은 헤어질 수 있을 뿐 결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존재가 밸런스이므로 변화는 언밸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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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balance는 창lance 두 개가 나란하다는 말이다. 자전거bicycle의 사이클cycle 두 개가 나란한 것과 같다. 양팔저울의 접시를 매달고 있는 것이 창이다. 창은 2다. 2는 짝수다.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이룬다. 우주는 짝수다. 홀수가 되면 밸런스가 깨진다.
변화는 짝수 하나가 깨져서 홀수 둘로 바뀌는 것이다. 홀수가 되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밸런스 상태이며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는 반드시 밸런스가 깨지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나란함이 깨진 것이다. 바이크가 모노mono-로 바뀐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짝지워진 존재이며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무조건 짝을 잃는다. 홀로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자신을 둘로 쪼개서 짝지으면 무질서도 증가다. 모든 변화는 마이너스다. 에너지의 방향은 마이너스다. 우주의 근본 방향은 마이너스다.
존재는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변화하거나다. 변화가 있으면 그것은 무조건 떨어지는 것이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둘이 붙어서 나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원자론을 배운 우리는 자연의 어떤 존재가 혼자 있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우주 안에 혼자인 것은 없다.
짝이 없으면 움직여서 짝을 만든다. 왼쪽에 1이 있고 오른쪽에 0.5가 있어서 밸런스가 맞지 않다면 0.5가 두 배 속도로 움직여서 혼자 1의 몫을 해내는 것이 각운동량 보존이다. 우주는 짝이 있거나 빠르게 움직여서 짝을 맞추거나다. 우주가 역동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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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역설에 지배된다. 뱀의 꼬리를 건드렸는데 머리가 반격한다. '나는 꼬리하고만 싸울 생각이었는데 비겁하게 왜 머리를 불러오느냐?' 이런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분을 공격했는데 전체가 반격하는 것이 유체의 성질이다. 에너지는 유체다.
우리는 유체에 대한 감각이 없다. 유체는 역설이며 게다가 이중의 역설이다. 꼬리를 건드렸다가 머리에 물리는게 역설이다. 꼬리를 계속 때리면 결국 머리도 죽는다는게 이중의 역설이다. 선거 직전에 폭로하면 역풍이 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반영된다.
역설은 유체의 몰아주기다. 이중의 역설은 타이밍이다. 한 번 때리면 내 손만 아픈 것이 역설이고 두 번 때리면 넘어가는 것이 이중의 역설이다. 에너지는 의도와 반대로 되지만 길게 보면 의도대로 된다. 단기전은 변칙이 이기지만 장기전은 정석이 이긴다.
에너지가 반대로 가는 것은 관성력 때문이다. 자동차 핸들을 갑자기 꺾으면 전복된다. 선거 직전 폭로전은 갑자기 핸들을 꺾는 행동이다. 반격은 적의 공세종말점까지 기다렸다가 해야 먹힌다. 상대의 관성이 바닥났을 때 공격해야 타이밍 맞게 넘어간다.
우리가 에너지를 다루는 방법을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체는 눈에 보이는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다. 질서가 있다. 차원이 있고, 동력이 있고, 권력이 있고, 기세가 있다. 힘의 방향은 두 번 바뀐다. 초반에 변칙이 이기지만 결국 정석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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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공격할수록 강해졌다. 유방은 방어할수록 강해졌다. 이상하다. 에너지는 한 곳에 몰아주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공격할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항우는 왜 졌을까? 착각이었다. 항우는 진나라 폭정에 방어한 것이다. 방어 속의 공격이 강하다.
닫힌계 개념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지 방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권력은 원래 방어용이다. 권력의 본질은 밸런스의 복원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어해야 이긴다. 트럼프가 공격하면서도 중국의 경제침략을 방어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권력은 밸런스를 복원하려는 힘을 이용한다. 계급배반투표의 이유다. 진보가 밸런스를 무너뜨리므로 복원력이 발생하고 그 힘에 편승하는 것이다. 1차대전에 독일이 졌으므로 2차대전에 이기는 것이 밸런스다. 그런데 공격이 지나쳐서 밸런스가 무너졌다.
독일은 빼앗긴 땅을 회복하는 선에서 멈추어야 했다. 선을 넘는 순간 권력은 반대로 작동한다. 상부구조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이기려면 외부 힘을 끌어들여야 한다. 인터넷의 힘, 스마트폰의 힘, 인공지능의 힘, 국제관계의 힘을 끌어들여야 이긴다.
독일과 프랑스의 밸런스로 좁혀서 보면 고토를 되찾는 독일의 방어전이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지구의 밸런스를 지키는 문명의 방어전이다. 독일이 프랑스와의 밸런스에서 지구 전체의 밸런스로 게임을 넓히는 순간 상부구조가 개입해 원위치로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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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은 두 가지다. 더하기와 빼기다. 더하려면 외부에서 개입해야 한다. 닫힌계를 지정하면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은 마이너스다. 그것은 내부를 잘게 쪼개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우주는 밸런스다. 존재는 밸런스다. 밸런스는 짝수로 성립한다. 자연에 홀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이다. 만약 홀수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반드시 깨진다. 그것이 변화다. 우리가 목격하는 자연의 변화는 밸런스가 깨지는 모습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스스로 그러한 것은 깨지는 것이다. 반대로 합쳐지는 것은 스스로 외부의 개입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다. 인간이 관측하는 자연은 본래 모습은 오직 밸런스가 깨지는 것 뿐이다. 자연이 깨지지 않으면 인간에게 관측되지 않는다.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는 이유다. 소립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는 이유는 관측 방법이 입자를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는 밸런스다. 빛을 관측한다는 것은 빛의 밸런스를 깬다는 의미다. 깼으므로 원본을 관측할 수는 없다.
밸런스의 메커니즘을 알면 엔트로피의 법칙과 양자역학의 여러 현상을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언제나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인간은 오직 밸런스에 막혔다.
힘의 구조
세상은 원자의 집합으로 알려져 있다. 틀렸다. 세상은 밸런스의 복제다. 무엇이 다른가? 방향이 다르다. 원자가 집합하면 숫자가 증가하는 플러스 방향이다. 여기서 열역학 1법칙을 어긴다. 밸런스 복제는 내부로 분할되므로 열역학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안과 밖의 차이다. 원자의 집합은 밖으로 증가한다. 밸런스의 복제는 내부로 증가한다. 비트코인 채굴이 중단되면 액면분할을 한다. 황금은 언젠가 바닥나지만 코인은 바닥이 없다. 대신 단위가 작아진다. 우리가 세상을 마이너스 방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원자는 집합할 수 없다. 원자를 붙잡아두는 힘이 원자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만약 원자를 집합시킬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원자에 앞서는 근원의 존재다. 원원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밸런스는 패턴 복제의 일치에 따른 완전성이 있다.
원자는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는 단위다. 인간을 주체로 놓고 원자를 객체로 대칭시킨다. 가장 작은 객체가 원자다. 판단의 주체가 인간인 것이 틀렸다. 객체 안에서 주체를 찾으면 밸런스다. 주체와 객체가 대칭을 이루는 밸런스가 의사결정의 단위가 된다.
비트코인 액면분할은 내부로 증가한다. 알겠는가? 코인이 액면분할로 시장에 유통량을 늘리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자연은 액면분할을 반복하여 유통량을 증가시켜 밸런스를 유지한다. 자연은 변화다. 변화는 언밸런스다. 증가해야 밸런스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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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밸런스다. 구조론은 밸런스 이론이다. 존재는 밸런스다. 밸런스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밸런스는 언제나 붕괴된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공통되는 하나의 원인은 밸런스의 붕괴이며 결과는 그에 따른 2차적 파급 효과다.
열역학 1 법칙 - 변화는 밸런스의 변화다.
열역학 2 법칙 - 변화는 밸런스의 붕괴다.
과학의 비빌 언덕은 수학이고 수학의 근거는 인과율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원인은 밸런스 붕괴다. 비가 와도 밸런스가 붕괴했기 때문이고 바람이 불어도 밸런스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겨도 밸런스 덕에 이기고 져도 밸런스 때문에 진다.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 먼저 밸런스가 붕괴하고 다음 우리가 그 결과를 인식한다. 붕괴가 먼저라는 것이 열역학 제 2법칙이다. 밸런스는 붕괴될 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밸런스가 복원된 것처럼 보여도 낮은 차원에서 복원된 것이다.
밸런스는 상부구조가 있다. 바퀴를 붙잡고 있는 축이 있다. 팔다리를 붙잡아주는 몸통이 있다. 권력은 상부구조에 있다. 동력은 상부구조에 있다. 관성력은 상부구조에 있다. 상부구조의 밸런스가 차원이다. 차원은 밸런스 위의 밸런스로 중첩된다.
밸런스는 스스로 만들 수 없다. 계에 압력을 걸어서 차원을 높여야 밸런스가 성립한다. 대칭을 붙잡아주는 축이 있어야 한다. 외부 개입 없이 저절로 밸런스가 만들어지면 무한동력이다. 밸런스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우주에 질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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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1법칙은 에너지가 수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말이다. 사차원의 세계나, 둔갑술이나, 마법은 인정하지 않는다. 수학은 규칙이다. 에너지는 규칙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규칙을 어기는 듯한 현상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화학실험이 잘못되면 물질의 질량이 증가하는 수가 있다. 쇠가 녹쓸면 무거워지는 것은 공기 중의 수분이 침투한 것이다. 세균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가 엄격한 실험조건을 적용하여 자연발생설을 해결했다. 엄격한 실험조건을 적용하면 규칙이 지켜진다.
열역학 1법칙 - 에너지는 규칙을 따른다.
열역학 2법칙 - 에너지의 규칙은 방향성이다.
규칙의 규規는 컴퍼스다. 컴퍼스의 동그라미를 벗어나지 않는게 1법칙이다. 동그라미를 그리는게 2법칙이다. 2법칙은 에너지에 방향성이 있다는 말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이유는 거기에 방향이라는 말이 왜 등장하는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을 말하려면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컴퍼스가 그리는 동그라미 중심점이 기준이다. 그곳이 밸런스다. 밸런스 개념이 없으면 방향을 이해할 수 없다. 밸런스는 대칭을 이룬다. 대칭은 축이 있고 변화는 축의 이동이다. 에너지 방향은 축의 이동방향이다.
에너지는 밸런스를 깨뜨려 콤파스의 중심점을 이동시키는 형태로 변화를 일으킨다. 에너지에 방향성이 있는 이유는 밸런스의 중심이 주변에 앞서기 때문이다. 중심이 주변보다 차원이 높다. 중심이 주변을 결정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밸런스 이동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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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힘이 무엇인지 모른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힘은 밸런스다. 밸런스가 깨지고 또다른 밸런스로 옮겨간다. 질의 밸런스가 깨지면 입자, 입자의 밸런스가 깨지면 힘, 힘의 밸런스가 깨지면 운동, 운동의 밸런스가 깨지면 량의 밸런스로 갈아탄다.
량으로 갈수록 무질서하다. 큰 집합 하나에서 작은 집합 여러 개로 쪼개지기 때문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상체와 하체의 밸런스에서, 상완과 하완의 밸런스, 손목과 손의 밸런스, 손가락과 공의 밸런스로 옮겨가며 범위가 좁혀지는 것이 무질서도 증가다.
밸런스는 차원이다. 4차원 압력의 밸런스에서 3차원 코어의 밸런스, 2차원 방향의 밸런스, 1차원 순서의 밸런스, 0차원 정보의 밸런스로 좁혀진다. 사회의 권력도, 기계의 동력도, 자연의 기세도, 시장의 이윤도 밸런스다. 보이지 않는 압력균형이 숨어 있다.
권력자는 힘이 있지만 힘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밸런스가 깨지면 권력을 잃기 때문이다. 부자간에도 권력을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밸런스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밸런스에 기술을 쓴다. 박정희는 차지철과 김재규를 경쟁시켜 밸런스를 유지한다.
마음대로 하는 것이 권력인데 마음대로 할 수 없는게 권력의 딜레마다. 마음대로 핸들을 꺾을 수는 있지만 사고난다. 외부 힘이 자동차를 흔들었을 때 방어하여 균형을 회복하는 형태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권력자가 방어에만 권력을 사용하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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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힘을 모른다. 힘을 사용할줄 모른다. 권력을 사용할줄 모른다. 힘을 운동의 원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 운동은 힘의 해체다. 화살이 결과라면 활은 원인이다. 활이 뭐냐고 물었더니 활은 화살을 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식의 돌려막기 순환논증이다.
힘은 밸런스의 붕괴다. 운동은 밸런스가 붕괴하는 과정이다. 엔트로피에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말이 나와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게 그렇다. 이미 밸런스가 붕괴했기 때문에 밸런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발사되어 총구를 떠난 총알은 쓸수 없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질은 압력, 입자는 압력의 균형, 힘은 붕괴 촉발, 운동은 붕괴의 진행, 량은 이탈이다. 원인과 결과가 별도로 있는게 아니라 원인과 결과 둘을 통일하는 하나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있는 것이다.
권력의 힘은 쓸수록 약해진다. 권력자는 밸런스를 깨려는 외부 힘에 맞서는 형태로만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외부를 치려면 더 높은 단위로 올라서야 한다. 가족을 지키는 형태로만 권력을 쓸 수 있다. 가족을 깨려면? 사회를 지키는 형태로 깰 수 있다.
약자 포지션에서 방어하면 힘을 쓸수록 강해지고 강자 포지션에서 공격하면 힘을 쓸수록 약해진다. 정권이 교체되어 포지션이 바뀐 줄 모르고 강자가 약자 코스프레 하다가 털리는게 우리나라 정치판에 반복되는 실패다. 권력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