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마음에 가득한 죄악은 영혼을 부패하게 만들고, 생각을 어둡게 한다. 어떻게 해야 영혼을 건강하게 살릴 수 있을지 판단력이 마비된다. 그렇게 서서히 죄에 무뎌지면서 우리의 영혼도 메마르고 굳어 버린다. 무감각해진 영혼을 살리는 처방은 없을까? 영적 대각성과 사회 개혁을 이끌고 신앙의 모범을 보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내리는 진단이 있다. 바로 자기 점검과 결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이 살 길은 점검과 결단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이를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 자신을 깨달을 수 없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비춰 자신을 살피는 영적 성찰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나의 본성을 다스려 하나님께 순종하고 결단하는 길로 이끌어 준다. 쉽지는 않지만 포기하지는 말아야 할 믿음의 경주이다. 하지만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기 점검이 어렵고 딱딱한 훈련이 아니라 자녀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려는 아버지의 사랑에 답하는 자녀의 반응임을 깨닫게 해준다.
임목사의 밑줄
2장
인간은 죄를 지으려는 본능을 타고났습니다. 돌이 무게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려는 성질이 있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죄에 빠지려는 자연스런 성질을 지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해도 여전히 죄악의 길로 달려가려는 본성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죄가 이미 죽었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죄와 사망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죄의 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인간은 온갖 종류의 정욕을 지니고 있으며 그릇된 길로 빠지려는 성향이 매우 강력합니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자기 자신을 항상 엄격하게 살피지 않으면 본능처럼 또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3장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잠 21:2)라는 말씀대로 사람들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무슨 일을 행하면 비난을 서슴지 않으면서 자신이 그와 똑같은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그럴듯하게 정당화합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 말씀을 따라서 우리는 자기 마음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주의 깊게 점검하며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나를 살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잠 28:26)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9장
죄사함의 소망을 품고 있더라도 죽음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죽어서 영원한 세상에 가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진다면 자기 내면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죄는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생각을 심어 놓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힘을 잃고, 하늘의 기쁨을 느끼는 마음이 크게 줄어들며,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로 인한 위로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늘의 기쁨과 천국을 생생하게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질병에 걸리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당할 때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모른다면, 역시 평소에 죄의 길을 걷고 있는 데에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위로가 느껴지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평화와 고요함을 유지하려면 삶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그분의 계명에 온전히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행동들 때문에 때로는 경건한 사람들도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