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품 1
| 달팽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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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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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년도
|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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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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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부산 |
달팽이꽃
김숙희
부산남항을 내려다보는 삼백계단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뒷목이 뻐근하다. 그 중간쯤 되는 옹벽 위에 자리 잡은 허름한 집 한 채가 내가 찾아가는 집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없는 민숭한 집, 사람의 훈김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 집은 낡고 엉성한 하나의 구조물에 불과하다.
하시라도 미련 없이 떠날 작정일까. 집은 풀지 않은 여행가방 같은 모습으로 오래 동안 방치되어 있다. 덧칠한 페인트가 각질처럼 일어나고, 마디마디 틀어진 현관문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다. 별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주먹만 한 자물통만 삐딱하게 매달려 있다.
헛기침을 하고 발소리를 크게 낸 다음 노크를 해본다. 대답이 없다. 잔뜩 긴장을 한 채 문밖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그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다시 목청을 가다듬으면서도 무심한 듯 “계세요? 꽃님이 아부지이~.” 했더니, 천천히 문이 열린다. 문은 비틀어지는 소리를 내며 방 안의 모습을 슬라이드처럼 조금씩 보여준다. 눈이 퀭하고 볼이 움푹 꺼진 그의 얼굴까지도.
‘50대 중반, 이혼, 정신 병력이 있고, 가족은 소식 끊긴 딸 한 명’. 그것이 동 주민센터로부터 넘겨받은 그에 대한 정보였다. 덥수룩한 반백의 머리,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 불안해 보이는 눈빛과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게다가 헐렁하게 걸친 옷은 그를 실제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산전수전으로 제법 배짱이 두둑해진 나였지만, 첫눈에도 그는 쉬 근접키 어려운 상대로 보였다.
매사 무신경한데다 딱히 무엇에도 반응이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벽에다 대고 나 혼자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복지 담당자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그를 찾았지만 조가비처럼 입을 걸어 잠근 그에게 막상 다가갈 방도가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계단 중간 참에 앉아 고함으로 주민들을 위협하는 바람에 민원이 여러 번 접수되었다.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키든지, 집안 쓰레기를 치우든지....,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며 이웃들은 한 목소리로 그를 성토했다. 그럴 때마다 “딸이 돌아올 때까지는 내 집에 있는 것은 아무도 손대지 못한다!”며 그도 맞고함을 질렀다. 그런 저장 강박증이 그를 점점 더 이웃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치 달팽이처럼, 좁은 집 안에 자신을 가두고 산지 5년 여. 침묵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웃과도 담을 쌓은 채 살아온 그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사회에서도 내쳐진 것 같지만 자신은 주변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사는 것이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로지 방안을 가득 채운,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을 듯한 허섭쓰레기 잡동사니에 집착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그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간간히 찾아가 대화를 청해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폭언이나, 알아듣기 어려운 고함소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씩 그의 경계심을 풀었을까. 그래봐야 단답형이지만, 종종 대꾸를 해주는 때가 생겨났다. 기분 좋은 날은 자청해서 지난날을 털어 놓기도 했다. 그의 입을 통해 딸인 꽃님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어버린 딸, 그는 아비이자 어미가 되어 핏덩이 딸을 키웠다. 그 딸이 어느 정도 자란 후 어느 날 훌쩍 자기 곁을 떠나버렸다.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으로 그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단다. 그에게는 딸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듯 보였다. 그날을 위해 딸이 좋아하던 것들, 딸이 오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쟁여 놓다보니 모두 넝마가 되고 허섭쓰레기가 되었을 만치 시간이 흘러버렸던 것이다.
종이컵에 가득 채워진 담배꽁초가 한쪽 벽면을 따라 쭈욱 늘어서서 모퉁이에 가서 ㄱ자로 구부러져 다른 벽면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오래 손보지 못한 낡은 집이라 비가 새고, 습기와 곰팡이까지 가세하여 그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방문을 할 때마다 청소를 권유했지만 도리질만 칠뿐이었다.
달래고 어르기를 반복하며 또 몇 달이 지났다. 인내와 기다림만이 답인 줄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 그에게 점점 지쳐갈 즈음, 선심이라도 쓰듯이 그가 집 치우기를 허락했다. 고작 다섯 평짜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가 1톤 트럭 한 대가 넘었다. 자신은 몇 년 동안 목욕과 이발도 하지 못했으면서, 딸을 위해 타월 한 장, 비누 한 개도 살뜰하게 챙겨 놓은 내력을 알고 나니, 무작정 그의 편집증을 타박할 수만은 없었다. 복지관에 밥솥과 이불 등 가재도구를 신청하고, 동주민센터에서 지원하는 조립식 옷장을 들여놓고, 방바닥에 돗자리를 펴놓고 나서 신방 같다고 놀리니, 그제야 부끄러운지 돌아서서 웃었다.
얼마 전, 집을 단장한 기념으로 헌 스티로폼 박스에 몇 가지 꽃모종을 심어서 갖다 주었다.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종용하며 수도를 끊은 지 오래 되었건만, 어디서 구해오는지 매일 물을 주는가 보았다. 나팔꽃이 벽을 타고 오르고, 분꽃이 막 봉오리를 터뜨릴 즈음 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치와 쌀을 들고 숨차게 들어서는 내게 “고맙심더.” 하는 말과 함께 진심어린 감사의 표정이 얼비쳤다. 내내 철옹성 같았던 그를 생각하면 고작 희미한 미소 한 번도 내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아픈 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진심이면 통할 것이라고 애써 마음을 추슬렀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 집엔 아직인데, 여긴 햇살이 좋아서인지 벌써 꽃이 피었네요!”
이렇게 호들갑스레 치하를 했더니, 그는 한층 유순해진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맨날 아침마다 물주니까 그렇지요, 뭐....”
몇 개 남지 않은 치아 사이로 내비치는 그의 희미한 미소도 조금씩 꽃을 닮아가고 있다.
한낱 식물조차도 물 한 모금의 성의에 저리 화사한 자태로 응답을 보인다 싶으니 그간 조바심을 부렸던 내가 낯 뜨거워진다. 그가 꽃을 향해 물을 주었던 마음, 어쩌면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정성껏 물을 주었던 시간에 자가수분을 할 수 없는 달팽이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오르내리는 한 마리 작은 개미 같은 마음이 내게도 있었던가.
그의 남루한 어깨 위로 눈부신 가을 햇살 한 줌이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섬처럼 오래 고립되었던 그가 세상으로 돌아오고, 그토록 그리워하는 딸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되는 날이 멀지않았다고 희망의 주문을 걸면서 내려오는 길, 험난하던 삼백계단이 오늘 따라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한국수필 2018.12월호)
* 달팽이꽃: 열대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 콩과에 속하는 덩굴성의 다년생 식물로 자가수분이 되지 않아 개미의 도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식물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2018.12월). 부산대학교평생교육원 효원수필아카데미 수료. 효원문학회 회원. 동주민센터 노인심리상담 및 복지관련 봉사. 부산 중구 건강마을 코디네이트 근무 중
제8회(2018) 한국수필 신인대상
심사평
한국수필 신인대상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편의 작품을 읽었다. 모두 무난하게 잘 썼고 문장력도 훌륭했지만 늘 놓치는 점 하나,‘감동’이 약한 것은 우리들의 공통적인 숙제라고 생각된다. 또한 A4 한 장 반의 범위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하는 글쓰기는 무리다. 작은 그릇에 고봉밥보다 더 높이 담다보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전지적 시점의 글쓰기는 수필 한 편에선 지양해야 한다. 상당한 시간의 토의 끝에 <아버지>(최기훈.5월호), <달팽이 꽃>(김숙희.12월호), <따개비와 몽돌>(백영미.6월호) 세 편으로 압축하였고, <달팽이 꽃>으로 선정했다. 좋은 소재를 다룬 <아버지>는 제목이 너무 평범하고 마무리에서 한 단락을 교훈조로 덧붙였다. <따개비와 몽돌>은 감동과 아픔을 너무 너무 압축하고 뒷심부족의 구성이 보이며 보석 같은 글의 진가를 드러내지 못했다.
<달팽이 꽃>은 글쓰기 시간을 오래 투자한 내용이 담겨있다. 시작을 위한 서두를 나열하지 않음으로 표현코자 하는 대상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가속력을 펼친 속도감도 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한 노인을 통해 소외된 인간의 아픔을 보여주는 소설 같은 작품이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권남희(글), 김선화, 최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