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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제 5 장 득의(得義)
(대 지)
一. 득의 결과(得義結果)(1-5)
二.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 얻음(6-11)
三. 아담과 예수(12-21)
1. 득죄 득의(得罪得義)(12-16)
2. 득사 득생(得死得生)(17-21)
(본문강해)
一. 득의 결과(1-5)
.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화평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죄함을 받았고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함을 누리게 되었다.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는가?
① 성도가 중생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화평하다.
②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화평하다.
③ 성령이 내주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에 화평하다.
.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성도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또한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고 은혜 속에서 살게 되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 때 기쁘고 자유롭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성도는 그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갈 수 있으며(엡 4:24) 그 영광에 도달할 소망을 가지고 크게 즐거워한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다. 지렁이와 같고 구더기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될 것을 바라볼 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영광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소망을 바라볼 때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게 한다.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하려면 참고 견디어야 한다. 참고 견디면서 말씀을 지킬 때에 영혼이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성도에게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자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에게는 귀중하고 존귀한 것을 줄 수가 없고 준다고 해도 그것을 누릴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비파를 연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값비싼 비파를 준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아무 자격이 없고 능력도 없고 우준하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장관이나 도지사의 직분을 맡긴다고 해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 것이다. 환난 중에서 연단을 잘 받아 자격을 갖춘 성도에게 하나님이 일을 맡기고 존귀와 영광도 주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일을 맡기기 위하여 애굽에서 사십 년간, 시내광야에서 사십 년간(합 팔십 년간)을 연단 시키셨다.
또 하나님께서 요셉을 많이 연단 시키신 후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그 일도 맡기고 그 영광도 준다. 우리 성도는 환난과 핍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인 것을 알고 즐거워하면서 믿음으로 통과하여야 한다.
.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티끌과 같고 벌레와 같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그 영광에 참여하고 도달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두 가지를 주셨다. 그 첫째는 성령을 주신 것이요, 둘째는 사랑을 마음에 부어 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전 12:3). 그 성령이 성도 속에서 역사하시고 또 외부에서 역사하셔서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아 몸을 바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모든 환난을 단 마음으로 받아 죽도록 충성하게 된다(고후 5:14-15). 사람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부어준 자에게 어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이 확실하다. 이로 인하여(성령의 역사와 사랑의 강권) 성도의 소망은 실패하지 않고 성취되어 나간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소망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만일 성도가 소망에 도달하지 못할 때에는 성도가 부끄러움을 당한다.
二.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 얻음(6-11)
.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본에서 8절까지는 윗에서 말한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여준다.
연약할 때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가졌던 육체적 행습(肉體的行習)을 가리킨다(박윤선).
기약대로 영원 전에 예정한 때를 가리킨다.
경건치 않은 자 육체대로 사는 자 곧 불신자를 가리킨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죄 가운데서 살다가 멸망 받을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사람들 가운데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나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는 없다.
.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확증해 주셨다.
확증이라는 말은 나타내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가리키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전체 즉 십자가와 부활 곧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서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받을 것이 더욱 확실하다.
.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행위계약을 어기고 그 외 모든 율법을 어겼지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이루어 드려야 그 원수된 것이 풀어질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 법을 다 이루어 드릴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다 이루어서 원수된 죄값을 지불케 함으로써 믿는 성도와 화목을 이루신 것이다.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로 인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의를 우리에게 입혀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고 또 그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중생시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다.
.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과 화목한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 성도의 즐거움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아버지(하나님)를 찾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아버지 없이 고아처럼 살던 자가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즐겁다.
둘째, 장차 아버지의 나라인 천국에 가서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고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것이다(요일 3:2-3 참조). 성도가 하늘나라에 갈 때에 이 세상에서 영혼이 자라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것만큼 하나님이 영광에 참예하고 상급을 받게 된다. 성도는 이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농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고생하며 수고하는 것은 가을에 자기가 수고한 것만큼 추수할 것을 소망하기 때문인 것과 같다.
셋째, 신령한 세계 안에서 살 때에 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시편 43:4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셨다.
베드로전서 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영적 세계(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성도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항상 기뻐하며 감사로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三. 아담과 예수(12-21)
1. 득죄 득의(12-16)
지금까지 논술(論述)한 것은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였다. 본에서부터 5장 말(章末)까지는 모든 사람이 죄인된 근원과 의인이 되는 근원을 밝히고 있다.
.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킨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요 시조이다. 인류의 시조요 대표가 범죄했으니 모든 사람이 범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 모두가 하나님 앞에 정죄 받았고 또 부패성이 유전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죄값은 사망이다(롬 6:23 참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왔다. 아담이 범죄하자 그가 벌을 받아 그의 영혼이 즉시로 죽었다. 영혼이 죽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斷絶)되는 것을 말한다. 왜냐 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때는 산영이요 하나님과 끊어질 때는 죽은 영이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그 후에도 약 900여 년간 더 살다가 죽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선악과를 두고 행위 계약을 할 때에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언약에 참예했다. 그 대표인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轉嫁)되었다. 또 부패성이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유전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범죄했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들어왔다.
.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 있기 전에 아담으로부터 모세(시내산)까지를 가리킨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다. 그 증거는 노아 시대와 소돔 고모라 시대에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기타 그 외 세대 사람들도 범죄하여 심판 받은 일들이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은,
① 죄를 짓고도 죄인 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② 범죄한 일에 대해서 죄책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7:7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셨다.
③ 법적 제재와 법적 책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7:9에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셨다.
.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율법 있기 전을 가리킨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지은 죄를 가리킨다.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히 받고도 범죄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율법이 없을 때에는 아담처럼 계명을 받고 범죄한 것이 아니고 율법을 잘 모르고(율법이 오기 전이므로) 범죄하셨다. 그러나 그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셨다. 이것을 보면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오실 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제 이(第二)의 아담이다(고전15:45).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된 것은 대표 원리에서 그리스도와 같다는 뜻이다.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가 범죄함으로 그 죄가 모든 인류에게 전가됨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인류(택한 백성)의 대표자로서 의를 행함으로 그 의가 모든 자(믿는 자)에게 미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표상 원어 (튀포스)는 자국, 인적(印蹟), 모형(模型)의 뜻이다.
왕노릇한다는 것은 지배(支配)하는 것을 뜻한다.
.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전 인류에게 정죄와 사망이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는 많은 죄인에게 입혀져서 의인이 되게 하였고 사망에서 구원하셨다.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아담의 죄로 많은 사람이 사망에 이른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많은 사람에게 넘친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담의 죄는 죄 없는 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고, 예수님의 의는 많은 죄인을 살렸으니 얼마나 더 위대하고 능력이 많은가? 예수의 의로 인하여 많은 죄인이 의롭게된 사실은 그 의(義)의 효능이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죄의 오염보다 몇 억만대나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 하수도에서 오염된 물이 흘러 강물을 다 더럽혔다고 하면 그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재료(材料)는 얼마나 질이 우수하고 효과가 강하겠는가? 그처럼 예수의 의는 아담의 죄로 더럽혀진 죄인들을 능히 깨끗하게 씻어주고도 남을 만큼 능력과 역사가 강하고 크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와 같지 않은 점이다. 그 의를 힘입어 우리 성도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예수의 의는 아무리 죄로 더러워지고 악독해져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도 흉악하고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하여 완전한 의인이 되게 한다. 이와 같이 예수의 의는 질적으로 완전하고 강한 능력이 있다. 예수의 의는 아담의 죄의 오염보다 차원이 높고 질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이 의가 믿는 자에게 미칠 때에 많은 죄에서 깨끗함을 받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된다.
.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이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를 죄와 사망에 처한 많은 사람에게 분배하여 의와 생명을 주신 것을 가리킨다.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를 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의는 많은 범죄를 의롭게 하셨다. 아담의 한 범죄는 하나의 죄가 많은 죄가 되었고(죄의 확산), 예수의 의는 많은 죄를 도말하여 의로 만들었다(많은 죄가 의에 삼키워져 소멸됨). 즉 ① 죄는 하나가 많아진 것이고 의는 많은 죄를 의 하나로 만든 것이 다르고, ② 한 죄가 많은 사람을 죽였고, 한 의가 많은 죽은 사람을 살려낸 사실이 다르다. 아담의 죄와 예수의 의(義)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파괴와 건설의 차이요, 확산과 소멸의 차이요, 죽음과 생명의 차이이다.
2. 득사 득생(得死得生)(17-21)
.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아담과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한 많은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와 은사를 풍성히 받은 자들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었다. 왕노릇한다 함은 왕과 같은 강한 세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주장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할 때에는 죄의 세력(왕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죄를 끊어버리고 싶어도 끊어버릴 수 없었다. 이것은 백성이 왕의 명령을 거역할래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죄의 종이 된 때에는 죄를 범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죄를 거역하지 못하고 그 결과로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술을 마시는 사람이 조금만 마시려고 하였으나 조금 마신 후에도 "조금만 더 마시자"하고 술이 취한 후에는 술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그 결과는 자신의 건강을 망치고 가정과 사업과 모든 것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온다. 그와 같이 죄도 처음에는 작은 것에서 시작이 되지만 죄가 죄를 낳고 나중에는 죄의 세력에 끌려서 죄에 삼키우고, 죄의 종노릇하다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은혜와 생명이 왕노릇하고 그 세력이 죄의 세력보다 몇 억만 배 더 강하기 때문에 죄의 굴레와 사망의 세력을 다 물리치고 의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인도하는 데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죄악도 다 이기고, 날마다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이 은혜와 생명이 왕노릇하는 증거이다.
.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아담의 자손 되는 전세계 인류가 다 정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범죄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많은 믿는 사람들이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에 이르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받은 성도의 대표(代表)이기 때문이다.
.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므로 그 후손이 죄인이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다. 그 이유는 대표원리(代表原理)로써(18절 해석 참조)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 후손에게 전가되어 그 후손이 죄인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입혀져서 의인이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죄를 더하게 함이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13절). 그 때는 죄가 죽은 것이었다(롬 7:8). 그러나 율법이 이르매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죄인인 줄 깨닫게 되었고 율법이 명하는 바를 반항심으로 거역하여 죄를 더 많이 짓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가 일하러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콧구멍에 콩을 넣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나갔는데, 아이들이 호기심과 반항심으로 콧구멍에 콩을 넣는 것과 같다. 부모는 콩알이 콧구멍에 들어가면 콧속에서 그 콩이 불어서 나중에는 빼내기 힘들고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미리 주의를 시킨 것인데 오히려 속에 있는 호기심과 반항심의 충동을 받아 이렇게 사고를 내게 된 것이다. 그 아이들이 차라리 넣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안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넣지 말라는 말을 듣자 왜 넣지 말라 했을까 한번 넣어 보자 하고 넣게 된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와 같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 부패한 인간이 더욱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반항심이 발동하여 더욱 거역하고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이 없을 때보다 죄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율법이 가입하여 죄를 더하게 한 것은 없던 죄가 많아진 것이 아니고 과거에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몰랐으나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다는 것과 또한 사람의 속에 잠재해 있는 악한 부패성이 계명으로 인하여 발동하고 반항하여 죄를 더 많이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나온 것만 알고 속에 있는 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속에 있는 것을 나오게 만들어서 자신이 죄인인 줄 알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목적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많이 깨달은 자가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죄를 많이 깨달은 자가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감사도 더 많이 한다(눅 7:41-47 참조).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고 적게 사함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했다. 죄를 많이 사함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고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은혜에 더욱 감격하고 감사하게 된다. 죄가 없는 줄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수님의 은혜가 크고 귀하지만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특사를 베풀어 모두 출감시킨다고 할 때 형기(刑期)가 하루나 이틀 남은 자는 적게 감사하게 되고 몇 십 년이나 무기의 형을 받았던 사람은 그 감사와 기쁨이 참으로 클 것이다. 또한 사형수가 사면을 받고 출감하게 되면 얼마나 큰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겠는가? 이와 같이 죄를 많이 깨닫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오면 그 은혜에 많은 감사와 감격이 넘치고 겸손히 주를 섬기게 된다. 이것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 것이다.
.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며 모든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간다(고전 15:56 참조). 그리하여 죄가 모든 사람을 종으로 삼고 주장하여 죄에 죄를 더하게 하고 멸망으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죄인들에게 사죄와 칭의를 주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그 은혜가 늘 왕노릇하여 날마다 영생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영생은 날마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나가는 것과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