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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의 신학, 번영 신학, 율법주의, 기복주의, 혼합신앙 등의 부패한 가치관으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말씀의 재해석의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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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광의 신학을 경계하라!
주제 : 번영신학, 미혹, 기만
성경 : 삿 18:27-31
예배 :
장소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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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구조 및 특성 : 이 부분의 내용은 본문의 특성이나 문맥상의 위치 또는 전체적인 배경 등의 전이해를 위한 것입니다. 참고 이해 정도로 보시되, 필요시 설교 본문 중에 설명 자료로 쓸 수도 있습니다. - 본문은 사사기에 있어서 삼손까지의 사사의 활동 기록을 모두 마친 후에, 일종의 제 2편처럼 사사시대의 부패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기록된 첫번째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따라서 본문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대표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 따라서 이 본문이 사사가 활동하던 시기 중 어느 시기인지 특정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사사기 후반부에 기록된 것은 사사 시대가 사사들의 발현이 반복될수록 사실상 하나님의 뜻과는 더 멀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부패가 극에 치닫게 되고 있다는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곧 사사들의 행적을 영웅주의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아니되며, 사사기 전체 구조의 흐름에서 이스라엘이 참된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서 일으키는 부패상과 함께 비극이 발생하는 모습들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려 한다는 관점에서 사사기 전체와 본문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Structure A. 성공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하지 않는다 (27-29절)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B. 영광을 위한 신학화를 경계하라 (30절)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C.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 전체를 오랫동안 잘못되게 할 수 있다 (31절)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Introduction
- 우리는 자신의 눈이 인식 기관 중에서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하는 진술이나 또는 설명을 종종 하곤 한다.
- 하지만, 우리의 본성이 원래부터 부패한 연고로, 우리의 눈도 그 부패를 피해가기 어려운 신체 부위라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 듯하다. 눈의 부패는 바로 눈이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보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사기 17장 이후의 기록들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 곧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기초적인 오류를 신앙적으로 짚어내는 내용이다.
- 본문에 앞선 사사기 17장은 단 자손이 미가의 집에서 그 새긴 신상들과 제사장을 갈취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새긴 신상과 제사장을 확보한 단 자손은 드디어 라이스를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 기록만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 드디어 이런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장본인과 그 정체, 그리고 그들의 신앙세계가 민낯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앞서 미가의 집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으로부터 라이스 정복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탁을 받은 후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정복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어떻게 자기 편의를 위하여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인지, 자신의 뜻을 섬기는 것인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 함께 살펴볼 일이다.
1st DT A. 성공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하지 않는다 (27-29절)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27)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
Explanation
- 27절, 단 자손이 라이스에 이르러 그곳을 정복할 때에, 오늘 성경은 그 장면에서 독자의 심금을 찌르는 표현을 들려준다.
곧, 그 라이스와 그 백성은 ‘한가하고 걱정없이 사는 백성’이었다 한다.
그런데 단 자손들은 그들을 쳐서 죽일 뿐만 아니라, 그 성읍을 불살랐다.
이것은 ‘헤렘’이다.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라는 본문은 바로 이 성전이라는 진멸 전쟁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수 6:4, 8:19 등등).
곧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씨를 남기지 않는 초토화를 감행하는 ‘진멸’인데, 이것은 본디 가나안의 7족속에게만 허용된 전쟁방식이었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만 허용된 전쟁이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전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전에 본 바와 같이, 단 지파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은 삼손 가족이 살고 있던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이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12지파 누구에게도 약속의 땅으로 제비뽑도록 주신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단 지파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과는 상관없는 진멸을 한 것이다.
- 하나님이 주신 본디 약속의 땅에 대해서는 아모리 족속이 두려워서 하라는 진멸은 하지 않고,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곳인 엉뚱한 장소에 가서는 하지 말라는 진멸을 한 것이다.
단 지파의 정복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이 자의적으로 사람들이 행한 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게 된다.
- 문제는 이런 작전들이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단 지파의 라이스 정복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사사기 17-18장에서는 각종 죄스런 행위들이 결국 성공을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 개념에 있어서 함정이다.
➜ 곧 성공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Illustration
- 그렇기에,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성공과 성취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경고로 삼아야 한다.
결과가 좋다고, 또는 그것이 세상적인 눈으로 보기에 성공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적인 방식이어서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옳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하고 있는 과정에서도 모든 사람의 각개의 부패한 동기나 사상, 생각 방식 등에 대해서 바로 진압하시거나 심판하시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조차 큰 교회를 우러러 보며, 또한 세상적으로 크게 보이는 위치나 업적을 이룬 것을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 왜 하나님이 이런 부패를 그대로 두시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눈에도 보이지 않는가? 하나 둘도 아니고, 대부분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넘어져가고, 분란에 휩싸이며,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십중팔구는 그리 된 상황이다.
그래서, 더 세상적인 방법을 쓸 줄 모르거나 쓰지 아니하는 작은 교회까지 함께 욕을 먹게 되는 인식이 팽배하게 만들었다.
Application
- 단 지파는 우상을 취하고,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집을 갈취하고, 나아가 평화로운 성읍을 습격해서 초토화시키면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번영하고, 성공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자신의 길이 잘못되었는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고, 하나님의 뜻이 되겠는가?
성공이 결코 하나님의 뜻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 일이 잘되어 간다고 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기도해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해서 더 많은 소유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항시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길에서 바로서서 하나님이 주신 복들을 받게 되었는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공하고 잘되는 것보다, 바르고 정직한 것에 먼저 눈을 돌리는 자세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자녀들을 결혼시킬 가정들이 임박해 있는데, 한 번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자녀가 결혼하겠다는 상대가 배경이 좋고 풍요로운 집안의 배우자인데, 믿음이 어떤지는 분명치 아니한 경우가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믿음은 좋은데, 그리 넉넉치 않는 집안 배경을 가진 상대라면 둘 중에 어느 사람에게 먼저 눈이 돌아가겠는가?
막상 당사자로서 마주하게 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놀랍게도 자기 자녀가 재력있고 배경 좋은 집안의 배우자감을 데려오면, 혹해서, 그의 신앙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니면 더 나아가 얼마나 정직하고 정확하며 건강한 믿음인지 검증 자체를 대충 하거나 아예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에 나중에 천천히 믿음을 길러주면 될 거라도 합리화도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게 우리네 부모들의 솔직한 마음이고 현실이다^^
- 하지만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라.
그렇게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비록 소유가 적고, 비록 성공이 더디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과 바른 길이 아니라면 눈을 돌리지 않을 만큼의 영성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보이겠는가?
우리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길 바란다.
Transition
이제,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다가 단 지파에게 매수되었던 레위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가 누구인지, 그의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보자.
2nd DT B. 영광을 위한 신학화를 경계하라 (30절)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Explanation
-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은 바로 모세의 손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지닌 인물이었다 한다.
모세의 손자 게르솜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식한 일을 모세의 손자가 벌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서기관들은 모세의 이름 자음 철자에 ‘ㄴ’을 하나 위첨자로 끼워 넣고는 모음을 바꾸어 ‘므낫세’(מְנַשֶּׁ֜ה)라고 읽게 만들었다.므낫세는 남왕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독하게 우상숭배를 하였던 왕이다.
그가 모세의 손자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우상숭배를 가장 심하게 했던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손자라고 바꾸어버린 것이다.
- 아무튼 그 레위인은 결코 단순히 떠돌며 굴러먹던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 정도 부패하였다면, 이스라엘 전체의 타락상은 어느 정도였겠는가?
그것이 사사시대의 현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더욱이 그의 이름은 ‘요나단’이라 한다.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뜻의 이름인가?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기 손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신학화하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영광의 신학이다! 오늘 말씀은 이것을 경계하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Illustration
* - 더욱 가관인 것은 그렇게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이 제사장으로 있게 된 단 자손이 자신들이 정복한 곳에 새긴 신상을 무엇을 위하여 세웠다 하는가?
30절을 다시 보라.
자기들을 위하여 신상을 세웠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사사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라이스 정복에 성공하고 나자마자 한 일이 바로 새긴 신상을 세우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것을 세웠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미가의 집 제사장으로 있던 요나단이라는 레위인의 축복과 그 새긴 신상 덕분이라고 믿었기에, 자신들의 성공을 그들에게 돌렸던 것이다.
우상에게 영광을 돌리면서도, 하나님의 주신 영광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팔아먹고 있을 따름이다.
Application
-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신학화를 경계해야 한다.
세상의 성공도 번영도, 승진도, 많은 소유도 모두 하나님이 주셨다고 쉽게 간증하고 신학화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그게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 그리 어려워보이는가?
자기를 위한 하나님 신앙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절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를 위한 신상을 세우는 일이다.
-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에 신앙윤리에 어긋난 방법이나 과정이 들어 있다면,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신앙윤리는 고사하고 세상 법이나 직업윤리에도 어긋나는 방법을 쓰면서 얻은 것을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 더 큰 교회당을 지어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다!
그래서 부자교회 부자목사는 그 자체로 잘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말씀 중에 평소 우리 귀에 잘 안 들리는 말씀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나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 되나니.... 오직 너 하나님아 이것들을 피하고! (딤전 6:9-11)
- 이런 모든 점에서, 오늘날 성경 중에서 한국교회를 빗대어 보라면,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사사기이다.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라도 그렇게 자기를 위한 신앙을 만들어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영광을 바라보는 대신에,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사실 이런 설교 말씀이 너무 이상해 보이지 않는가!
마땅히 모두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할 터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하여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있으려 하는 것을 우리는 닮지도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Transition
이제, 이 사건의 대미는 우리에게 더욱 심각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 어떤 배울만한 교훈과 원리가 있는지 읽어 보자.
3rd DT C.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 전체를 오랫동안 잘못되게 할 수 있다 (31절)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Explanation
- 31절,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바 새긴 신앙이 단 자손에게 있었다 한다.
이 구절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사사 시대의 합법적인 성소는 실로였다.
그렇다면, 단 자손이 자신들이 정복한 라이스, 곧 자신들이 이름한 단이라는 곳에 세워진 성소는 어떤 것이 되는 것인가?
이것은 성소를 중심한 언약 공동체까지 파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언약 공동체를 파괴하였으니, 그들의 말로가 어찌 될지는 오늘 설교 말씀의 결론에서 듣게 된다.
- 미가의 행위에서 단 지파의 행위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떻게 한 가지 범죄가 다른 범죄를 불러오며 이어지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사사기의 결론부인 17-21장에는 두 개의 큰 사건이 결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두 사건 중 첫 번째 건인 미가의 집 신상 이야기는 결국 단지파의 새로운 정착지인 단에 세워진 성소의 출발점과 배경이 된 것이다.
사사기가 이 이야기를 결론부에 먼저 정리하는 까닭이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남북 왕국이 갈리면서 남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대표적인 공식 성소가 되었지만, 북쪽에서는 단이라는 성소가 대표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단에 세워진 성소는 처음부터 우상숭배의 근원지가 되어서 나중에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상을 세우고, 북왕국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된 유명한 곳이다.
➜ 오늘 본문의 사건은 바로 북왕국에 유명하였던 우상숭배의 시발점이 된 단이라는 성소의 기원이 이렇게 의심쩍다는 것을 밝히려고 기록된 내용이다.
- 미가의 자기만족적인 우상숭배 행위가 결국 단 지파로 이어지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한 국가의 우상숭배 근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단에 세워진 유명한 우상숭배의 성소는 단 지파의 강탈이 끼어든 내용이고, 그 이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지지 못한 레위인 제사장의 타락이 끼어들었고, 그 이전에는 비도덕적인 누군가의 자기탐욕적 욕구가 시발점이 된 것이다.
결국, 북왕국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우상숭배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작은 자기중심적 범죄 행위가 결국 단 지파 전체를 넘어서서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 전체를 잘못되게 만들 수 있다!
- 한 집안에서 일으킨 잘못이 어찌어찌하여 단 지파 전체의 잘못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북쪽 이스라엘 전체의 잘못으로 연결되었다.
한 레위인이 제사장 노릇을 하면서, 자신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자와 무리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보고도 잠잠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결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은 전혀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한 다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였다.
이런 연결 고리는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Illustration
- 단 지파가 라이스(다른 곳에서는 ‘레셈’, 또는 개역옛판은 ‘레센)를 정복하여 자신들의 거주지를 삼게 되자, 이 단이라는 곳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영토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곧,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이 북에서 남에 이르는 이스라엘 전 영토를 표현하는 뜻이다.
현재도 이스라엘 공화국은 그 브엘세바 아래 남쪽까지 연장되어서, 그들은 ‘단에서 엘랏까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 게다가 여기 단에 세워진 성소는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로 보면, 꽤나 오래된 성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 지파의 성소는 훗날 북쪽 이스라엘 전체의 우상숭배를 대표하는 근거지로 악명을 떨쳤다.
- 거기서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 최초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건까지 더해져서 단의 성소는 영적으로 유명한 제단이 되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좋아보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 좋아하는 잘못은 결코 쉽게 중단되거나 멈추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더 크게 경계해야 한다.
Application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단 지파의 라이스 공략을 성공케 해 주셨을까?
로마서에 보면 이에 대한 답이 있다.
-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 자기를 위하여 세운 신상을 섬기는 이들, 곧 하나님의 뜻이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면, 자기를 위한 하나님 신앙을 만들어 섬기는 이들에게는 그냥 그렇게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의 작은 잘못이 사람들에게 계속 진행되는 것이고, 그런 진행은 결국 모두의 잘못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당할 심판의 진노를 더 많이 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롬 2:5-6)
-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언약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곳이다.
곧, 이렇게 신앙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서로 막아주는 곳이 공동체이다.
그것 때문에 서로 돕는 것이다.
교회는 그런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한 울타리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잘못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 공동체가 누군가를 지켜주고 보호할 수 있는 참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인 것이다.
Conclusion
- 이제,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 욕심에 버려진 단 지파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오늘 사사기의 첫번째 결론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 7에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구원의 인침을 받은 자들의 십사만 사천 명의 지파 명단이 나오는데 본문 살피기 질문에서 단 지파는 몇 명이나 기록되었는지 미리 살펴들 보셨을 것이다.
단 지파는 아예 이름 자체가 빠져있다.
구원에서 제외된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근거로 아마도 적그리스도가 출생한 족속이라는 신념 때문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단 지파가 그 전에 이미 가장 먼저 우상숭배로 타락한 지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약시대 가장 후대에 기록된 역대기의 족보에서도 이미 단 지파는 언급되지 않는다(대상 4-7장)
한때 삼손이라는 사사를 배출했던 단 지파는 이렇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성공했다고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그런 성공이 자신들의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하나님이 주신 영광이라 주장하여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의 역사와 운명을 심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곳, 더 큰 곳, 더 많은 곳, 더 편한 곳을 바라보는 영광의 신학을 경계하길 바란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이런 영광의 신학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각자 책임이 있다.
사사기를 보면서 우리 공동체를 좀 더 잘 가꾸도록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진실하게 들여다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 참고 : 이 부분은 해당 성경 본문과 관련된 추가 이해나, 또는 설교 본문의 방향을 보강하거나, 또는 다른 방향의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내용을 중심으로 설교의 초점이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 - 28절의 ‘상종하는 사람도 없다’라는 표현에서 ‘사람’에 해당하는 ‘아담’을 ‘아람’으로 읽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같은 표현이 나오는 7절의 LXX나 시리아역본 등은 그곳의 ‘아담’이 ‘시리아’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동번역은 이를 받아들인 유수 영어번역들처럼 이것을 반영하였다. 28) 그 성읍은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아람인들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와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 성읍은 벳르홉 가까운 계곡에 있었다. 단 사람들은 그 성읍을 재건하여 자리를 잡고는 - 30절의 ‘므낫세’는 칠십인역이나 수많은 맛소라 사본들, 아람어역, 불가타 등이 모두 원래의 본문은 ‘모세’(מֹשֶׁה)라고 읽고 있다. 대다수 필사본들에는 모세의 이름의 첫 두 철자 사이에 히브리 철자 ‘눈’(נ)이 위첨자로 첨가되어 ‘므낫세’(מְנַשֶּׁ֜ה)로 읽히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 이러한 서기관들의 작업은 모세의 명성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 단 지파가 누락된 것은, 역대기나 계시록만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왕하 15장에서 이스라엘의 북부 침공에 관한 기사에서도 이미 단 지파는 누락되어 있다. 또한 삼손이라는 사사 자신도 하나님이 그를 쓰셨을 뿐이지 그의 행적으로 보면 그 사사 시대의 신앙적 부패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 본문 살피기 : 이번 주는 단 자손 중 600여명 미가의 집 신상들과 제사장을 강탈한 후에 드디어 라이스를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게 됩니다. 앞서 미가의 집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으로부터 라이스 정복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탁을 받은 후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정복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어떻게 자기 편의를 위하여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인지, 자신의 뜻을 섬기는 것인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 함께 살펴볼 일입니다. - 단 자손이 라이스에 이르러 그곳을 정복할 때에, 그 라이스와 그 백성은 어떤 상태에 있었다 합니까? 그런 사실에 비추어 단 자손이 행한 정복 과정 중에 그 자체로만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행사는 어떤 것입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단 지파의 라이스 공략을 성공케 해 주셨을까요? - 단 자손이 자신들이 정복한 곳에 새긴 신상을 무엇을 위하여 세웠다 합니까? - 본문에서는 드디어 미가의 집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의 신분이 드러납니다. 그는 누구였습니까? - 30절의 모세에 대한 난외주는 무엇이라 기록하고 있습니까? 왜 그런 난외주가 생겼을까요? - 사사 시대에 공식적인 하나님의 성소는 어디에 있는 것이라 합니까? 그렇다면, 단 자손이 자신들이 정복한 라이스, 곧 자신들이 이름한 단이라는 곳에 세워진 성소는 어떤 것이 되는 것입니까? - 요한계시록 7:3-8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그곳에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구원의 인침을 받은 자들의 십사만 사천 명의 지파 명단이 나오는데 단 지파는 몇 명이나 기록되었습니까? |
첫댓글 본문의 2nd DT와 참고 자료의 '므낫세' 관련 히브리어 철자 순서가 이른바 '상승된 눈'(suspended nun)의 표기가 다음 카페편집기에서는 반영이 안되어 대신 볼드체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