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한 기도 / 교정 중
10월 중순 자락인데 벌써 찬 기운이 몸을 움 추리게 한다. 아침 가게 출근할 땐 방한복 차림까지 한다. 가게 룸은 좌식이다. 물론 전기 필름으로 난방시설은 잘 되어 있다. 벽체에 합판 덮 붙이기도 되어 있다. 바닥은 따뜻한데 위풍이 너무 심하다. 앉아 있으면 무릎, 옆구리에 찬바람이 느껴진다. 옛날 블록 건물 구조라 대안도 힘들다. 전기 히트도 사용한다. 가게 안에 약탕물 물 끊이기도 한다. 음식 나오기 전 따뜻한 물 한 잔하면 추운 몸 추릴 수 있어서다. 그 것도 야생 약초를 직접 깨와서 물을 따려 놓는다. 혹 가습으로 조금이라도 방한에 도움 될까 해서다. 임대라 내 집도 아니니 묘수가 없다. 그 나마 다행은 음식을 드시고 일 잔주 한 후 열기 오르면 추위를 모르게 된다. 손님들께는 다행이다.
어느 때 저녁 식사 시간 때 무척 바쁜 날도 있다. 회 포장 주문과 가게에서 회를 드실 손님들의 겹치는 시간대는 더하다. 지금은 전어 철이라 중식 전후 두서너 시간은 아주 바쁘다. 그렇게 일 처리하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나이가 환술이 지난 때인지라 아! 옛날이여 해도 쉬 회복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한 번씩 휴식하는 게 최고 보약이다. 잠시 몸 좀 추리기 위해 가게 구석 자리에 가림막으로 설치하고 단잠 자기도 했다. 한데 위풍이 너무 심하다. 등허리는 따뜻하다 볼따기는 시렸다. 누가 텐트를 설치하면 좋다고 조언을 한다. 그래서 원스톱 텐트를 구입해 설치했다. 텐트 안에서 눕곤 한다. 또 잠깐 쉬는 동안 손님 오시면 눈 가림도 될 수도 있다. 휴식을 위한 공간. 핑크빛으로 감싸 주는 분위기는 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염두 그림 그리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한 번씩 가게 일 마치고 집에 가지 않고 가게에서 자기도 하니 큰 도움이 된다.
오늘 오후 중식 시간 오는 손님이 없다. 핑크빛 텐트 앞에 있는 컴퓨터와 이곳 저곳 다니면서 논다. 잠이 살살 오기 시작한다. 몇 번 눈 껌뻑이다가 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 웬걸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머리는 더 말똥말똥 해진다. 밤에 잠잘 때 가끔씩 마음으로 잠을 다스리는 복식 호흡을 하곤 했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꼭 한다. 그러면 얼마 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뭘 해 볼까 머리 굴러 보다가 장난삼아 하지 않는 기도를 한번 해 보자며 손을 모았다. 물론 긴 숨을 쉬면서 마음 다스림도 겸해 한다. 잠시 단잠 자는 것도 좋지만 생뚱 기도를 해 보기로 한다.
‘오늘 손님 많이 오시게 해 주세요. 고기 값 벌어야 해요. 이번 주 외손녀 가족이 시흥에서 내려오는데 맛있는 것 좀 싸 주게 돈 벌게 해 주세요’ 하고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평소 하지 않은 짓거리니 벌줌 머쓱해진다. 요사이 장사도 잘 안된다. 들 돈은 늘어 나는데 지나 가는 바람으로 한 번 해 보았다. 이 기도에 솔직히 진심도 들어 있다. 반 농담 반 진심이랄까? 순간 머리가 띵하게 뭔가 부딪친 기분이 든다. 나의 가면을 보았다. 숨겨진 못 된 마음인 허세를 보았다. 나 자신만을 위하는 강한 이기심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았다. 강한 이기심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자신만를 위한 기도였다.
이기심. 내 편하려고 하는 바람이다. 욕심 채우려는 행위다. 돈 벌어서 외손주 용돈 주고 마누라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챙겨 주고. 이런 바람을 취하려는 나 자신만의 욕구를 보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돈 벌려고만 했다. 열심히 하면 돈 벌어진다는 논리다. 진심과 진실이 담겨지지 않았다. 가면 인간이다.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언제 해 보았나? 진심으로 간절함이 담긴 기도를 해보았나? 기억이 없는 것이라 아니라 해 보지를 않았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말로 하긴 한다. 잘 봐 주세요, 하면서 간단히 그리고 쉽게 합장이라는 단어 포장이 전부다. 이 나이에 시작하고 있는 횟집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느냐며 질문을 해 봤다. 그냥 무심 답변 돈 벌어야지가 다다. 진정 내가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 편함인가? 물음표뿐이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불쌍하다. 지금까지 계획 없는 이런 삶을 하고 있다. 가식으로 포장된 삶을 하고 있음을 지금에야 보였다.
장난 삼아 잠시 한 기도가 나의 양심을 찔렀다. 자신만을 위한 가식으로 포장된 마음 보았다. 밝은 곳 보기가 민망하다. 눈 감고 있는 어둠이 가림을 해 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방향을 못 찾는다. 이제부터는 누군가를 위하여 특히 가까운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해 보자. 집 사람을 위해 모듬 다한 섬김을 해 보았는가? 부정이다. 그냥 여자로서 마누라로서 당연히 나를 위해 할 것이다로 정해 두고 있었다. 그게 일상이고 그렇게 살고 있다. 아직도 먹거리에 매달리고 있는 지금의 삶이 부끄럽다. 구태로 참 못났다. 무능하다. 나 자신을 지금이라도 알아보자. 내가 나를 모르고 있다. 근데 무슨 기도인가?
나를 위한 기도를 해 보기로 한다. “나를 알 수 있게 해 주시고 지금까지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 먼저 나를 위하게 하면 그 다음은 바로 식구들에게로 향해질 것이다. 분홍빛 텐트가 얼굴까지 분홍빛으로 덮어 준다. 추위를 막기 위한 물건이 마음가짐도 챙김을 받는다. 조용히 눈 감고 누워서 두 손을 세게 잡는다. 이 기도 나를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가게 위풍 밀어내는 전기 히트의 붉은 광채 돋나게 한다. 새로운 사람이 났다. 매일 기도를 하자. 앞으로의 풍요를 위해서다.
24. 03. 10.
잠시 한 기도 / 초고
10월 중순 자락에서 벌써 찬 기운이 몸을 움 추리게 한다. 아침 가게 출근할 땐 방한복 차림까지 한다. 가게 룸은 좌식이다. 무론 전기 필름으로 난방시설은 잘했다. 바닥은 따뜻한데 위풍이 너무 심하다. 앉아 있으면 무릎, 옆구리에 찬바람이 느껴진다. 가게 안에 한 구석에 원스톱 텐트를 설치했다. 방한을 위해서다. 손님 오시면 가림이 되도록 하고. 휴식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핑크빛으로 감싸 주는 분위기는 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워서 잠시 쉬면서 염두 그림 그리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어느 때 저녁 식사 시간은 무척 바쁜 날도 있다. 회 포장 주문과 가게에서 회를 드실 손님들의 겹치는 시간대다. 지금은 전어 철이라 중식 전후 두서너 시간은 아주 바쁘다. 그렇게 일 처리하고 나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나이가 환 술이 지난 때인지라 아! 옛날이여 해도 쉬 회복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한 번씩 휴식하는 게 최고 보약이다. 잠시 몸 좀 추리기 위해 텐트 안에서 눕곤 한다.
오늘 오후 중식 시간 오는 손님이 없다. 핑크빛 텐트 앞에 있는 컴퓨터와 이곳 저곳 다니면서 논다. 잠이 살살 오기 시작한다. 몇 번 눈 껌뻑이다가 잠시 눈 붙이려고 누웠다. 웬걸 잠은 오지 않고 머리는 더 말똥말똥 해진다. 밤에 잠잘 때 가끔씩 마음으로 잠을 다스리는 복식 호흡을 하곤 했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꼭 한다. 그러면 얼마 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뭘 해 볼까 머리 굴러 보다가 장난삼아 하지 않는 기도 한번 해 보자며 손을 모았다. 물론 긴 숨을 쉬면서 마음 다스림도 겸해서다. 꼭 잠자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 손님 많이 오시게 해 주세요. 고기 값 벌어야 해요. 이번 주 외손녀 가족이 시흥에서 내려오는데 맛있는 것 좀 싸 주게 돈 벌게 해 주세요’ 하고는 웃었다. 평소 하지 않은 짓거리다. 벌줌 하다. 하지만 솔직히 진심이 들어 있는 기도다. 순간 머리가 띵하게 뭔가 부딪친 기분이다. 나의 가면을 보았다. 숨겨진 못 된 마음인 허세를 보았다. 나 자신만을 위하는 강한 이기심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았다. 강한 이기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기도를 언제 해 보았나? 진심으로 간절함이 담긴 기도를 해보았나? 기억이 없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해 본 적이 있나? 하긴 한다. 잘 돌봐 주세요, 하면서 간단히 그리고 쉽게 합장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하곤 했다. 이 나이에 시작하고 있는 횟집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느냐며 질문을 해 봤다. 핑계거리 찾았으면서 돈 벌어야지’를 한다.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진정 내가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 편함인가? 물음표뿐이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불쌍하다. 지금까지 계획 없는 이런 삶을 하고 있다. 가식으로 포장된 삶을 하고 있음을 지금에야 보았다.
장난삼아 잠시 한 기도가 나의 양심을 찔렀다. 자신만을 위한 가식으로 포장된 마음을 보았다. 밝은 곳 보기가 민망하다. 눈 감고 있는 어둠이 가림을 해 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방향을 못 찾는다.
아직도 먹거리에 매달리고 있는 지금의 삶이 부끄럽다. 구태로 참 못났다. 무능하다. 나 자신을 지금이라도 알아보자. 먼저 나를 위한 기도를 해 보기로 한다. “나를 알 수 있게 해 주시고 지금까지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
2018.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