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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유럽 의 판도를 뒤바꾼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을 담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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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도가 한창이던 중세 유럽 에서 왕은 충성을 맹세한 #봉신 ( #귀족 ) 에게 #봉토 ( #땅 ) 를 주어 다스렸지요. 여러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여러 지역의 땅을 봉토로 받을 수도 있었죠. 당연히 왕권은 약했고, 오늘날과 같은 국가나 국민의 개념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을 다스리던 귀족이 바다 건너 #잉글랜드 (오늘날의 영국)를 #점령 하고는 영국의 왕이 되는 역사적인 일이 발생했어요. #노르만정복 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으로 #윌리엄1세 는 영국의 왕이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귀족이라는 이중 신분을 갖게 되었죠. 이것은 영국과 프랑스 갈등의 씨앗이 되었어요.
▲ 백년전쟁에서 있었던 역사적 일화를 바탕으로 #오귀스트-로댕 이 만든 ' #칼레의시민들 '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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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프랑스 내에 있는 영국 왕의 땅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이 귀족의 위치에 있으니 권력에 대한 아쉬움이 컸어요. 반대로 #프랑스 왕은 #영국 왕을 프랑스에서 몰아내는 것이 숙원 사업이 되었고요. 결국 이 갈등은 프랑스 왕 샤를4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 하면서 #전쟁 으로 폭발했어요. 프랑스의 왕위가 4촌 형제였던 #필리프6세 에게 넘어가자, 영국 왕 #에드워드3세 가 반박하고 나선 거예요. "내 어머니는 샤를 4세의 누이였다. 당연히 가장 가까운 왕위 계승 후보자는 조카인 나다." 게다가 영국과 손잡고 모직물 공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플랑드르지역 의 상인들이 앞장서서 영국을 지원했죠. 프랑스 땅이지만 영국을 응원할 만큼 당시에는 국가나 영토의 개념이 부족했던 거예요. 1337년 시작된 전쟁은 자그마치 116년간 지속하다가 1453년에야 끝났어요. 사람들은 긴 전쟁이라는 의미로 백년전쟁이라 부른답니다. 겉보기에는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 때문에 일어난 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은 플랑드르를 비롯한 땅을 차지하려는 전쟁이었죠.
▲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 이 거행된 #랭스대성당 (사진 왼쪽), 프랑스 카페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백년전쟁을 일으키는 발단을 제공한 #샤를4세 (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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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처음에 영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했어요. #영국군 은 갑옷을 뚫을 만큼 놀라운 위력을 지닌 #석궁 으로 무장했죠. 영불해협 건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칼레 를 포위하고 #공격 했어요. 칼레의 시민은 1년 동안 결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1347년 항복하고 말았어요. 이때 에드워드 3세는 시민을 살려주는 대신 그동안의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6명의 대표를 처형하겠다고 했어요. 누가 감히 죽음 앞에 선뜻 나설 수 있을까요? 그런데 "내가 시민의 대표로 죽음을 택하겠소!" 하며 용기 있게 외친 사람이 있었어요. 칼레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생피에르 였죠. 그의 뒤를 따라 #시장 , #상인 , #법률가 , #귀족 등이 나섰다고 해요. 놀라운 #희생정신 이죠. 다행히 임신한 에드워드 3세 왕비의 간청으로 사형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로댕의 조각으로 다시 살아난 이들의 이야기는 칼레 시청 앞 광장에서 이기적인 세상을 향해 경종을 울리고 있죠. 이렇게 #사회적 으로 고귀한 위치에 있는 #지도층 의 #도덕적의무 를 #노블레스오블리주 라고 해요.
칼레가 함락되고 나서도 영국의 승리가 이어졌어요. 1356년에는 프랑스 왕이었던 장 2세가 포로로 잡혀 치욕을 당했죠. 결국 1360년 #브레티니-칼레조약 이 맺어지면서 #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됩니다. 영국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포기하는 대신에 이때부터 칼레를 새로운 영토로 얻었죠. 이후에 전쟁은 #페스트 , #농민반란 등을 겪으면서 휴전했다가 다시 싸우기를 반복해요. 이 전쟁이 만약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면, 영국과 프랑스는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전쟁 말미에 신의 부르심을 받고 홀연히 나타난 #잔다르크 의 활약 덕분에 프랑스는 승리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군 은 영국군을 몰아내고 프랑스 #영토 를 #회복 했어요. 다른 나라와 영토의 경계가 확실해지고 국가의 개념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단 한 곳, 칼레만이 예외였지요. 이후에도 칼레는 영국의 영토로 남아 20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답니다. 영국은 대륙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섬나라로서의 인식을 강화했죠. 뜻밖에도 서로 다투고 미워하다가 영국인, 프랑스인이라는 #국민의식 이 생겨났어요. 전쟁 중 많은 귀족이 사망하면서 왕권이 강해져서 근대 #중앙집권국가 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전쟁 중 세금을 걷는 권리를 얻은 왕은 #관료제 와 #상비군 을 유지하며 강력한 권력의 기틀을 만들어 나갔어요. 백년전쟁은 오늘날 영국과 프랑스의 영토와 국민을 만들어준 전쟁이 되었죠.
출처: 조선일보|[공미라]세계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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